강원에 다닐 때다. 지대방에서 갑자기 호국불교에 관해 열띤 논쟁이 일었다. 누군가가 “스님들은 당연히 정부의 시책을 따라야 한다”고 발언해서였다. 당시 출가한 지 2~3년 차 사미들이었으니 대부분이 기존 사회에서 학습한 말투와 관념이 채 바뀌지 않았을 때였다. 치문반이었으니 치문(緇門), 그야말로 중물들이는 시기였다. 그때 한 스님이 “스님에게 국가에 종속되고 충성을 강요하는 것은 모순이다”라고 당당히 자신의 주장을 폈다. 대다수가 그 스님을 무슨 이상한 사상에 물든 ‘이념적 도피 출가자가 아닌가’하는 막말까지 던졌던 것이 기억난다
최근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이 급증하다 보니 선별검사소에서 검사를 받은 적이 있다. 검사를 위한 검진표 작성은 QR코드로 접속할 수 있었다. QR코드 안내는 간략하게 설명되어 있지만 큰 어려움 없이 진행할 수 있었다. 주변을 살펴보니 고령자나 외국인 주민은 진행요원의 도움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QR코드 같은 디지털 접근은 효율적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어려운 방법인 것이다. 그 모습을 보니 지방에 계신 부모님도 비슷한 어려움을 겪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설 연휴에도 아버지가 노트북을 내밀곤 “뭐 어떻게 하라고 하던데, 도통
지난해 11월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 정책 토론회’가 열렸다. 해 지난 이야기지만 여전히 중증장애인들은 노동의 기회를 박탈당한 채 자신의 권리조차 챙기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기에 아직도 현재 진형형인 화두이고 한국 사회 노동시장의 새로운 지평이 열리기를 기대하는 마음에 소개해 보고자 한다.토론회의 제목은 ‘세상을 바꾸는 노동을 합니다 : 재활을 넘어, 권리생산의 주체로’였다. 제목이 주는 함의와 명시성은 매우 뚜렷하다. 기존 비장애인 중심의 노동시장이 아니라 권리를 만들어 세상에 기여하는 것 또한 노동으로 인
‘인생에도 가상화폐처럼 기복이 있다.’ 이 말은 AI(인공지능) 스님인 파라 마하가 표현한 것이다. 얼마 전, 태국에서 가상 인물인 AI 스님을 개발해 각종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젊은 층에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고 언론을 통해서도 소개된 그 AI이다. 사실 다른 분야의 AI 바둑기사, 아나운서, 가수, 정치인 등을 접할 때나, 로마 바티칸의 프란치스코 교황 챗봇까지도 당연한 현상이라 받아들였던 필자이다. 하지만 AI에게 스님이라는 표현을 쓰려고 하니 어색함과 관념의 저항을 숨길 수가 없다. 그러나 이미 세상은 우리 자신
3년 287일. 하루 5만명의 코로나 확진자가 나온다고 가정할 경우 6000만 대한민국 인구 전체가 코로나에 걸릴 시간을 산술적으로 계산한 수치다. 지난 2년간 코로나가 진행된 점을 감안하면 적어도 2년 내 모든 국민이 한 번 이상 코로나가 감염될 수 있다는 경고이기도 하다.코로나에 감염되면 적어도 1주일, 많게는 2주간 자가격리에 들어가게 되면서 일상이 멈춰선다. 특히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에게는 적지 않은 타격이다. 경제활동이 멈춰서면 고스란히 그 타격을 스스로 감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가게를 운영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시법평등 무유고하(是法平等 無有高下)–이 법은 평등하여 높고 낮음이 없다.’젊은 한때, 불교에 귀의하고 출가하여 강원에서 공부할 때였다. 어느 날 ‘금강경’을 음독(音讀)하다가 제23장 정심행선분(淨心行善分)에 이르러 이 경구(經句)를 접하고 얼마나 놀랐으며, 얼마나 두려웠고, 얼마나 환희로웠던지 이 문구를 주제로 글을 쓰려니 지금도 그 설렘이 울컥 밀려온다.많은 사람들이 젊은 시절 차별 없는 평등하고 깨끗한 세상을 꿈꾸었을 것이다. 자신이 처한 시절과 위치에 따라 그 평등의 깊이는 다를지 몰라도 평등의 가치를 고민하지 않은 사람
한국사회는 다양한 주체 간의 갈등이 많은 사회다. ‘갈등공화국’이라는 말은 비단 어제 오늘만의 표현이 아니다. 2021년 6월, ‘IPSOS’라는 글로벌 조사업체는 ‘문화전쟁(Culture Wars)’이라는 주제로 28개국을 조사하였다. 조사 결과, 대한민국은 대부분의 갈등 영역에서 상위권을 차지했다. 진보 대 보수 갈등 87%(1위), 정당 간 갈등 91%(1위), 부자 대 빈자 간 갈등 91%(공동 1위), 남성 대 여성 갈등 80%(1위), 나이 든 사람 대 젊은 사람 간 갈등 80%(1위), 고등교육을 받은 자 대 고등교육을
“안내말씀드립니다. 지금 장애인단체에서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며 시위를 하고 있어 열차운행이 지연되고 있습니다. 급하신 분들은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해주십시오.” 며칠 전 지하철 안내 전광판과 함께 반복적인 역무원의 멘트는 촉박한 출근길 시민들의 불만과 보통의 삶을 위해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는 장애인 단체의 승강장 집회현장을 팽팽하게 분리하고 있었다. 찰나 생각이 많아진다. ‘왜 하필 출근시간에…’ 혹은 ‘얼마나 간절했으면…’ 나에겐 보통인 일상이 누군가에겐 치열하게 쟁취해야 하는 삶, 같은 하늘 아래 세상은 다르게 실존하는 듯하다.2
2022년, 호랑이가 주인공인 임인년(壬寅年)이 시작되었다. 그것도 평범한 호랑이가 아닌 검은 호랑이 흑호(黑虎)의 해라고 한다. 일명 Black Tiger이다. 이름이 갖는 의미를 생각하기도 전에 필자는 백호(白虎)에 대한 이야기와 모습은 본적은 있지만 지금까지 흑호에 대해 들어 본 적은 없었다. 그리고 얼마 전 세 분 스님들과의 차담에서도 다들 흑호는 실재하는 존재가 아닌 전설이나 이야기 속의 동물이라는데 의견 일치를 보았다. 그러나 다음날, 전날 차담에 함께 했던 스님 한 분이 내게 어느 주요 일간지 기사 속 사진 한 장을 보
사람의 한 해 기운이 바뀐다는 동지가 지나고, 임인년이 다가오는 거리를 걷는다. 연말연시임에도 상점마다 불이 꺼지고 인적이 끊어져 삭막함마저 느껴진다. 마치 커다란 태풍이 불어닥치기 전 ‘고요’의 느낌을 그 안에서 받는다. 2022년 대한민국이 만들어낼 변화의 역동성을 위해 잠시 숨고르기 하는 것이 아닐까.우리는 올해 3월 나라 일꾼을 선출하는 대통령 선거를 시작으로 6월 지방 일꾼을 뽑는 일정이 빠듯하게 짜여 있다. 세계는 코로나19로 변화된 질서를 받아들이며 새롭게 역동할 준비를 하고 있다.현재 우리나라의 노년층은 일제강점기에
12월16일 부슬비가 내리는 가운데 순천 송광사에서는 구산 스님 열반 38주년 추모제가 열렸다. 코로나가 다시 기승을 부려 일반 신도들은 거의 참석하지 못했지만, 추모의 열기는 뜨거웠다. 살아생전 스님을 친견하진 못했지만 보조사상을 전공하는 필자에게 있어서 효봉 스님과 구산 스님은 항상 그리움의 대상이다. 1969년 송광사에 조계총림이 만들어지고 초대 방장으로 구산 스님이 취임하셨고, 1983년 열반에 드실 때까지 수많은 불사를 통해 오늘날의 송광사를 만드셨다. 그중에서도 보조국사 지눌 스님의 목우가풍을 재현하고 제2 정혜결사를 통
영등포구에는 어디서든 볼 수 없는 특별한 축제가 있다. 서울시립영등포장애인복지관이 주관하는 영화제이기도 하고 다양한 분야의 인권이 모이는 축제이기도 하다. 이름하여 ‘나나, 인권페스티벌’이다.‘나나, 인권페스티벌’은 영등포 지역 내 인권플랫폼 연대단체와 주민이 함께 만들어가며 장애·종교·국적·성별·나이 등 모든 인간의 자유와 권리의 소중함을 존중하며 사회통합을 이루기 위해 매년 개최하는 축제다. 올해 4회째를 맞이했는데 지역을 넘어 인권을 대표하는 행사로 발돋움 중이다.행사 명인 ‘나나’는 ‘다르거나 같거나’의 끝말을 가져온 것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