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조계종사에서 자승 스님은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든든한 문중의 뒷배도 없이 50대에 총무원장에 선출됐고, 숱한 저항과 도전 속에서도 재임에 성공해 4년 임기를 두 번이나 꽉 채웠다. 1962년 통합종단조계종이 출범한 이후 청담, 의현 스님이 총무원장을 연임했지만, 4년 임기 두 번을 모두 채운 것은 자승 스님이 유일하다. 총무원장에서 퇴임한 이후에도 상월선원 결사, 만행결사를 이끄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자승 스님은 1954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났다. 19세 되던 해 “출가수행자로 살겠다”며 산문에 들었다. 1972년
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본부장 원택 스님, 이하 민추본)가 남북관계 위기극복과 평화통일을 발원하며 4개월여 동안 전개한 기도정진을 마무리한다.민추본은 10월13일 조계사 대설법전에서 ‘남북관계 위기극복 및 평화통일 발원 기도정진’ 회향법회를 봉행한다. 법회는 민추본 본부장 원택 스님을 법문을 시작으로 동참자들의 소감과 동참자 인증사진 영상 시청 순으로 진행된다.‘남북관계 위기극복 및 평화통일 발원 기도정진’은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등 남북간 찾아온 갈등과 위기를 극복하고 한반도에 평화가 지속되기를 바라는 서원을 모으고자 기
국내 최대 규모 사회복지관 중 하나로 손꼽히는 ‘덕양행신종합사회복지관’ 관장을 맡고 있는 성화 스님은 어린이집부터 장애인복지관, 노인복지관, 종합복지관 등 사회복지 전 영역에서 20여년간 헌신하며 복지계를 선도해 왔다. B등급의 성남 한솔종합사회복지관을 맡은지 3년만인 2006년 사회복지시설평가 ‘최우수 복지관’으로 탈바꿈시켰고 2009년에도 사회복지시설평가(중앙지표) ‘최우수(A)’에 등극 시켰다. B등급에 머물러 있던 서울 영등포장애인복지관도 2012년 ‘최우수(A)’로 자리매김했다. 이러한 공로로 보건복지부장관상(2010),
숭유억불의 조선시대를 불교 암흑기라 말하지만, 일각에서는 조선시대 들어서야 비로소 불교가 진정한 종교로 성장할 수 있는 출발점에 선 것이라고 평가하는 이들도 있다. 권력 중심부의 지지와 비호 속에서 성장했던 과거와 달리, 성리학의 나라 조선에서 살아남으면서 민중을 제대로 보는 진정한 종교의 자격을 갖게 됐다는 시각이다.금강산 신계사 복원불사에 참여하면서 금강산을 80회 이상 방문하고, 전국 사지와 전통사찰 전수조사 사업에 참여하는 등 불교건축과 인연을 맺어온 홍병화 박사도 조선시대 불교를 그렇게 보고 있다. 그래서 그는 조선시대를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 스님이 “민간기구 및 종교인 간의 잦은 왕래를 통해 경색된 남북관계를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원행 스님은 9월3일 오후 서울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4층 접견실에서 이종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의 예방을 받은 자리에서 “남북 민간교류의 활성화가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원행 스님은 “남북의 경색이 장기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일각에서는 종교인들이 오고 가는 게 대수냐는 말들이 있지만 그래도 종교인을 포함한 민간단체 대표들이 서로 왕래하면서 물꼬를 터야 한다”며 “민화협이 적극적으로 나서 민간단체들이 자주 왕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남북 당국 간 협의가 진행되기 이전이라도 남북불교계가 뜻을 모은다면 금강산 신계사 템플스테이 사업이 진행될 수 있도록 적극 뒷받침 하겠다”고 밝혔다.이인영 장관은 8월31일 오후 서울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4층 접견실을 찾아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 스님을 예방하고 이같이 밝혔다. 신임 인사차 원행 스님을 예방한 이 장관은 “남북관계가 막혀 있어 여전히 어려운 점이 많다”며 “(남북관계가) 열리고 잘 풀리면 기쁜 마음으로 스님을 찾아뵐 수 있었을 텐데 마음이 무겁다”고 말했다.이에 대해 원행 스님은 “국민들이 장
1925년 왜색 승려들이 설치는 꼴을 보다 못해 “천고에 자취를 감춘 학이 될지언정 춘삼월 말 잘하는 앵무새의 재주는 배우지 않겠노라”며 오대산으로 들어가 26년간 동구불출하며 ‘오대산 학’으로 불린 한암 스님. 스님은 1876년 3월 강원도 화천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유교경전을 공부하며 세상과 인간의 근원에 대한 의문을 갖고 살다가 22세에 금강산 유람 중 돌연 입산 출가했다. 금강산을 떠나 성주 청암사에서 운명처럼 근대 선의 중흥조 경허 스님을 만났고, 경허 스님의 ‘금강경’ 설법 중 “무릇 형상 있는 것은 모두 허망한 것이다.
영화와 문학은 늘 이웃하여 발전했다. 문학 작품은 영화로 제작되는 관행을 초기부터 지금까지 이어왔다. 문학 작품의 영화화는 두 갈래로 정리된다. 첫째는 원작을 충실하게 영화화하는 방식이며 둘째는 원작을 재해석하여 창조적으로 영화에 수용한다. 전자는 원작을 영상으로 번역한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문학에 대한 의존도가 높으며 창조적 재해석은 문학이 영화에 복무한다고 볼 수 있다. 대체로 문학작품을 프레임에 담아내는 무난한 선택을 한다. 함세덕의 ‘동승’(1939, 원제는 道念)은 세 번 영화로 옮겨졌으며 대체적으로 원작에 충실한 영화적
2003년 3월24일 제31대 총무원장에 취임한 법장 스님은 종단현안 해결에 착수했다. 첫 과제는 94·98년 멸빈자 사면이었다. 멸빈자 사면은 30대 총무원장 정대 스님 때부터 추진된 사안이지만, 중앙종회의 반발로 번번이 무산됐다. 이런 가운데 종정 법전 스님이 그해 1월5일 신년하례 법회에서 “징계자 사면을 진행해 종단 구성원 모두 화합해야 한다”고 밝히면서 사면논의에 다시 불을 지폈다. 원로회의도 2월27일 총무원장을 인준하면서 이례적으로 유시를 발표해 “징계자에 대한 전면적 사면을 시행하라”고 촉구했다.(법보신문, 2003년
조선시대 ‘억불숭유’처럼 국가의 강력한 정책에 의해 절의 기능을 잃어야만 했던 산사도 있었지만 전쟁은 한순간에 산문을 닫게 했다. 몽고 침입으로 폐사된 경주 황룡사, 임진왜란 때 소실된 남원 만복사, 6·25한국전쟁으로 무너진 금강산 유점사는 1000년 동안 이어져 온 법등이 끊긴 채 폐사지로 남아 있다. 현재 남한을 중심으로 전국에 산재각처한 폐사지는 4500여개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예로부터 현자들은 사찰이 남긴 흔적을 기록해 두었다. ‘삼국사기’ ‘삼국유사’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신증동국여지승람’ ‘여지도서’ ‘
‘금강경’ 독송을 간경수행법으로 체계화하여 생활 속 수행으로 마음의 해탈을 강조한 근현대의 선지식이 있다. 바로 백성욱 박사다. 그는 일찍이 명실상부한 수행공동체를 마련하여 마음의 수행과 몸의 수련을 동시에 꾀했다. 독일 철학박사 1호 또한 그였다. 자신의 욕망을 뛰어넘은 발원의 중요성도 그는 강조했다. “미륵존여래불(彌勒尊如來佛)을 마음으로 읽어서 귀로 듣도록 하면서 당신의 생각은 무엇이든지 부처님께 바치는 마음을 연습하십시오. 궁리를 가지면 병이 되고 참으면 폭발합니다. 이것이 닦는 사람의 항복기심(降伏其心)이라고 합니다. 아침
조계종 백년대계본부 불교사회연구소(소장 원철 스님)가 7월15일 오후 1시30분 전법회관 3층 보리수 회의실에서 ‘현대사회와 불교-남북불교 교류 및 북한불교 지원 활성화 방안’ 세미나를 진행한다. 세미나는 △남북불교 교류 및 협력, 남북평화 통일의 불교적 대안 마련 △남북불교 교류와 지원에 따른 실질적인 프로세스 구축 △사상적·문화적·신행적 측면에서 남북불교 교류와 협력체계 설계 △중단기적 전망에서 남북불교를 통한 북한불교 지원체계 마련을 위해 기획됐다.이번 세미나에서는 남북교류 쟁점 사항에 대한 견해를 불교적 가치관으로 조명하고,
“평화통일로 가는 길이 어렵고 힘들지라도 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헤쳐 나갈 지혜를 심어 주시고, 저희들의 걸음이 평화와 통일을 향해 바르게 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염원이 겨레 모두에게 전해지고 우리가 서원하고 행하는 이 길에 자비광명을 주시옵소서.”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본부장 원택 스님)와 통일바루는 7월1일 조계사 대설법전에서 평화통일을 염원하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남북관계 위기극복 및 평화통일 발원 기도정진’에 입재했다. 입재식은 삼귀의와 반야심경 봉독, 민추본 사무총장 도성 스님 인사말,
석가모니 부처님이 입멸하고 다비 후 나온 한 말 여덟 되의 사리는 우여곡절 끝에 골고루 나누어져 8기의 탑에 봉안되었다(이를 ‘근본 팔탑’이라 하는데, 8탑이 아니라 9탑, 혹은 10탑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한동안 이 탑들을 중심으로 사리신앙이 이뤄졌을 것이다. 그런데 당시 사리신앙이 인도 전체로 볼 때 과연 보편적 현상이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사리 혹은 그를 담은 탑에 직접 경배하여야 하는데, 단 8기의 사리탑만 가지고서는 사리신앙이 확산하기 어려웠을 것이기 때문이다.사리신앙이 인도 전역으로 퍼지게 된 데는 아소카(Asoka
6‧25를 지나면서 참으로 여러 생각이 든다. 민족의 역사에 가장 참혹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그리고 그 참혹한 아픔을 치유하는데 얼마나 많은 세월이 필요할지 모르는 아픈 역사…. 그렇지만 아무리 힘들더라도 그 아픔을 치유하지 않으면 우리 민족, 우리나라가 바로 설 수 없는 역사의 상처가 바로 6‧25이다.그 치유의 바른 길은 무엇일까? 여기에 정답은 없을 것이다. 정치적 입장과 사상적 색깔에 따라 극단적이고도 천차만별한 시각이 존재하고, 자칫 그런 입장들이 부딪히면 건설적인 토론이 되기보다는 극단적 감정의 대립으로 치닫는 파국을
“나는 한번 하고자 하는 일은 그 누가 반대해도 하고 마는 성정이다. 석가모니부처님이 출현해서 못하게 한다면 그만두지, 그렇지 않고는 지금까지 중도에 폐한 일은 없었다. 이러한 의지로 강사와 법사와 포교사와 율사와 선사의 길을 묵묵히 걸어왔다.” (‘지리산의 무쇠소’, 조계종출판사)조계종 제29대 총무원장 고산 스님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밝혔듯 평생 수행자로서 강직함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 인물이었다. 옳다고 믿는 일에는 물러섬이 없었고, 부처님 법에 어긋나는 일이라 여길 때는 단호히 거부했다. 1999년 총무원장 재선거를 거부하고 스
“북한의 강경대응은 남북관계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남과 북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한다.”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 대표회장 원행 스님)는 6월17일 북한이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와 금강산 관광지구·개성공단에 군대를 투입하겠다고 밝힌 데 ‘지금은 더 나은 남북의 미래를 위해 노력해야 할 때입니다’ 제하의 성명을 발표했다.KCRP는 “북한의 강경대처 이면에 자리한 답답한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분명하고 확실한 전환이 필요하다”며 “그럼에도 연락사무소 폭파, 군부대 재배치와 같은 방법이나 일각에서 주장하는 불필
북한의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로 남북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는 가운데 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본부장 원택 스님, 이하 민추본)가 성명을 내고 “만남과 대화를 통한 남북관계 개선”을 촉구했다.민추본은 6월17일 ‘또 다시 대결의 시대로 되돌아가서는 안 됩니다’ 제하의 긴급성명을 발표하고 현재 남북 상황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민추본은 “북한은 5월말 탈북자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에 연일 비판을 쏟아내고, 남북 간 통신연락선을 폐쇄한 데 이어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는 등 강경 대응을 지속하고 있다”며 “6·15남북공동선언
“임진강 맑은 물은 흘러 흘러내리고 뭇 새들 자유로이 넘나들며 날건만 내 고향 남쪽 땅 가고파도 못 가니 임진강 흐름아 원한 싣고 흐르느냐.”재일동포의 삶을 다룬 일본영화 ‘박치기’의 주제곡으로 한국에 알려진 후, 양희은, 적우, 임형주 등이 불러 유명해진 북한노래 ‘임진강’의 후렴 가사이다. 1958년에 발표된 이곡은 북에서는 그다지 인기를 얻지 못했지만, 의외로 재일동포들 사이에서는 ‘제2의 아리랑’이라고도 불릴 만큼 애창되고 있는 곡이다. 분단된 한반도에서 남과 북을 흐르는 임진강과 분단선을 오가며 자유롭게 날아가는 새를 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