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개의 텐트 앞에 놓인 아홉 개의 방석에 아홉 스님이 가부좌를 틀었다. 침묵은 강처럼 고요히 흘렀고, 화두는 별처럼 또렷이 빛났다.그 누구도 90일 정진 중에는 상월선원(霜月禪院)을 나갈 수 없다. ‘하루 한 끼 공양 14시간 정진, 그리고 묵언.’ 서릿발 결기 서린 이 청규를 끝내 감내하지 못해 비상문을 박차고 나가면 스스로 내건 약속에 따라 조계종 승려 자격을 잃는다. 삭풍에 얹어진 냉기가 뛰는 심장을 잡아채려는 순간이나, 공복에 꿈틀거리는 허기가 몸속에 남은 마지막 기운마저 앗아가려 할 때도, 비상문으로 눈길을 돌리기는커녕
‘오직 이것 하나만 바라옵니다. 다함이 없는 삼보님이시여. 저희 정례를 받으시고 가피력을 내리시어, 온 누리의 모든 중생이 함께 불도를 이루게 하옵소서!’저녁 예불 올린 스님들 하나둘씩 처소로 돌아가고 적광전에는 두 스님만 남았다. 양양 낙산사 주지 소임 내려놓고 절에 든 진철 스님이 또 한 번 두 무릎을 꿇고 108배를 올린다. 영월 보덕사 주지 임기 마치고 산에 든 현각 스님도 정성스레 절을 올린다. 동안거 한 철 보내려 오대산으로 걸음한 두 스님, 108배 마친 후엔 내려앉는 어스름 속에서 도량을 거닐며 법담을 피워내곤 했다.
‘일즉일체다즉일(一卽一切多卽一)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 경남 사천의 다솔사(多率寺) 아래에 살던 청년은 진주에서 학교를 다녔다. 이왕 방 하나 얻어야 한다면 조용한 공간이 좋을 듯해 비봉산 아래의 작은 암자로 들어갔다. 법당에 들어가 ‘절에는 무슨 책이 있을까?’ 하는 호기심이 발동해 이런 저런 책들을 뒤적였는데 한 문장에 눈길이 꽂혔다. 태어나 처음 마주한 글귀였지만 어렸을 때부터 한학자인 할아버지에게서 한학교육을 받으며 축적한 내공이 있었던 터라 한자로 된 원문을 단박에 읽어냈다.‘하나가 곧 일체이고 많은 것이 곧 하나
“종단은 누란의 위기에 처해있습니다.”태고종 27대 총무원장으로 선출(2019,6)되고도 총무원 폐쇄로 청사 앞 길거리에서 당선증을 받아야했던 호명 스님의 한 마디가 처연하게 울렸다. ‘한 종단 두 총무원장’ 체제라는 현실만을 탄식한 일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2000년대의 태고종을 관통하는 핵심어는 ‘갈등’이다. 2000년 19대부터 2017년 26대 총무원장직에 오른 스님들이 약속한 건 한결같이 ‘내분 종식’, ‘추락한 종단위상 회복’이었다. 17년 동안 반목, 비방, 비리, 횡령 등의 사건으로 점철됐음을 반증하는 대목인데 1년
코로나19 확진자가 4월13일부터 닷새째 20명대를 유지하고 있다.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 종료 시점이 그리 멀지 않았음을 직감할 수 있다. 깊게 들이 마신 숨을 이제 한 번 내쉬는 듯하다. 3월5일 예정이었던 ‘약천사 신제주불교대학 보리왓(Bodhi Wat)’ 3기 입학식은 ‘사회적 거리두기’ 궤적과 맞물리며 밀리고 밀려 거의 한 달하고도 열흘이나 지났다. 생활방역으로 넘어가는 시점과 함께 입학식을 치를 것도 없이 개강할 참이다. 나름 4월23일 개강을 기대하고 있지만 사회적 거리두기가 또 한 번 연기된다면 개강은 5월로 넘어
휘이익∼허허벌판을 휘몰아친 살찬 삭풍이 천막으로 둘러처진 상월선원(霜月禪院)을 흔들었다. “이 자리에서 내 몸은 말라버려도 좋다. 가죽과 뼈와 살이 녹아버려도 좋다”며 천막결사에 임한 스님들이요,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결코 일어서지 않으리라” 천명한 아홉 선객이다. 하루 14시간 정진 속 공양은 하루 한 끼. 90일 묵언정진 기간 동안 옷은 한 벌만 허용됐고, 삭발목욕·외부인 접촉도 금했다. 어떤 이유로든 수행 중 천막을 벗어난다는 건 정진을 포기했음이다. 스스로를 가둔 청규에서 혹한의 겨울 기운보다 매서운 불퇴전(不退轉)의 결기가
새벽녘, 별 하나가 반짝였다. 그때 인도 부다가야(Buddhagayā) 보리수 아래서 정진하던 고타마 싯다르타가 깨달았다. 이 땅에 붓다(Buddha)가 출현한 성스러운 순간이다. 부처님의 전도는 쿠시나가라 사라쌍수숲에서 열반에 들기까지 45년 동안 이어졌다. 그러나 인도불교는 8세기에서 13세기 초 쇠퇴해가다 절멸했다.1891년, 스리랑카에서 부다가야로 성지순례를 온 재가불자 다르마빨라(Dharma pāla, 1864∼1933)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성보들은 도난·파괴되었고 일부 사원은 돼지사육장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어린 시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가. 내 덕행으로 받기가 부끄럽네. 마음의 온갖 욕심 버리고 육신을 지탱하는 약으로 알아, 도업을 이루고자 이 공양을 받습니다.’(공양게 전문)공양은 존재와 직결된다. “일체의 제법은 식(食)으로 말미암아 존재하고, 식(食)에 의존하지 않고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증일아함경’도 설하고 있을 정도다. 하여 산사에서는 채소 다듬고, 국 끓이고, 밥 짓는 일 하나하나를 소중히 다뤘다. 채공(菜供), 갱두(羹頭), 공양주(供養主)의 정성이 배인 음식은 각기 특성이 있기에 사찰마다 다양한 맛을 창출해 왔다. 절만이 간
‘막막한 세상의 끝/ 천지에 더 이상 갈 곳이 없고/ 더 이상 나아갈 길이 보이지 않을 때/ 나는 홀로/ 돌담을 마주하고 선다/ 조용히 돌거울을 들여다보면/ 거기 내가 길이 되어 누워있다/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한 줄기/ 길이 되어 외롭게 누워있다.’(김영석 시 ‘돌담’ 전문)가끔, 새벽녘에 일어나 담 너머를 우두커니 바라보곤 했다. 마을 제일의 부호로 소문난 집안이었지만 아버지가 별세한 직후부터 살림은 급격히 줄어들어 갔다. 이 형편대로라면 7남매의 막내인 자신에게 돌아올 몫은 고사하고 중·고등학교 입학도 장담할 수 없을 듯싶었
“진리는 현실과 동떨어져 있지 않다. 우리 삶의 한 가운데 있다!”불교총지종은 원정 대성사의 일갈과 함께 1972년 12월 24일 세워졌다. 총지(總指)는 지혜·삼매, 진언·다라니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하여, 사원의 본당인 서원당(誓願堂)의 불단 중앙에는 육자대명왕진언(六字大明王眞言)인 ‘옴마니반메훔’이, 그 양 옆에는 불보살의 깨달음 세계를 상징하는 금강계 만다라와 태장계 만다라가 조성돼 있다. 진언 수행을 통해 깨달음의 세계로 들어가 안락과 법열을 얻겠다는 원력이 불단에 표출돼 있다. ‘불교의 생활화, 생활의 불교화’를 주창한
‘한수의 시를 적어서/ 사람들 가슴을 적시고 싶다. … 행여 내 노래가/ 감동을 주지 못하고/ 영혼을 일깨우지 못하면/ 바로 붓을 꺾어/ 입을 닫을지라도/ 오늘은 혼신으로 노래를 지어/ 그들에게 들려주고 싶다.’(‘한수의 시’ 중에서) ‘설담원 이야기’는 시집이다. 책 끝에 적힌 ‘한일여고 교사 김선홍’ 씨의 글을 통해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분의 수줍은 고백이 담긴 한 수 한 수를 시집으로 모았습니다.’ 책 편집 초기부터 저자의 허락을 얻어 출간한 건 아닌 듯하다. ‘그저 따스한 시선과 마음으로 읽고 또 읽으며 위로받고 공감하는
황정산 미륵대흥사 일주문 두 기둥에 걸린 주련이 묵직하다.‘하늘과 땅이 나와 한 뿌리요. 만물 또한 나와 한 몸뚱이라(天地與我同根 萬物與我一體).’구마라집(鳩摩羅什 344~413) 문하 가운데 해공제일(解空第一)로 손꼽혔던 사철(四哲)의 한 사람이자, ‘조론(肇論)’의 저자인 승조(僧肇 384~414)가 남긴 일갈이다. 일주문 뒤편의 두 기둥에도 주련이 걸려 있는데 승조의 일구는 아니다.‘동체대비를 실천하면 사바세계는 용화세계로 변하리라(行心同體大悲 娑婆変化龍華).’ 이 산사가 용화정토를 꿈꾸는 도량임을 극명하게 함축하고 있다.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