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음 짙은 칠월의 산사, 매미 울음소리가 산객(山客)들의 귀를 맑게 적시고 계곡 틈새로 흐르는 물소리는 마음을 한없이 정겹게 한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땀이 줄줄 흐르는 무더위 속 회원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산길을 오른다. 동학사 산문(山門)에 이르자 승가대학 비구니 스님들의 부처님 같은 미소가 한 줄기 시원한 바람처럼 잠시 더위를 잊게 해준다. 동학사와 맺는 ‘108산사순례’ 47번째 불연(佛緣)의 자리, 맑은 목탁소리가 대웅전 법당에 울려 퍼진다. 낭랑한 스님의 목소리에 맞추어 엄숙한 참회의 문을 여는 기도소리. 한줄기 바람은 목어(木魚)를 흔들고 잠시 가사자락을 훔치다가 일순간 적요(寂寥)속으로 이끈다. 회원들은 동시에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두 손 모아 108배를 하기 시작한다. 입속에서 한
산사순례에 다니는 회원들 중에 집안의 어려움이나, 개인적 문제로 상담을 요청할 때가 가끔 있다. 어느 날 친정어머니의 치매 때문에 고통스럽다는 회원 한 분이 나를 찾아왔다. 40세 전후의 이 보살은 나를 보자마자 눈가에 눈물이 글썽거렸다. “어릴 적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혼자 갖은 고생을 다하며 남매를 대학까지 공부시켰는데 이제 살만큼 되니까 친정어머니가 그만 노환(老患)에 치매를 앓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댁 때문에 어머니를 제대로 돌보지 못해 그 죄스러움으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그 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격려와 용기뿐이었다. 사람의 병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육신의 병이요, 또 하나는 마음의 병이다. 어머니는 육신의 병을 앓고 있었지만 그 보살은 마음의 병을 오래 동안
인생을 살다보면 참으로 ‘아름다운 인연’들을 많이 만난다. 부모와 자식, 친구, 스승과 제자, 부부간의 인연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인연으로 싸여 있다. 나에게 있어 인연들 중 첫 번째 인연은 연꽃 같은 깊디깊은 진리의 가르침을 주셨던 부처님과의 인연이며, 두 번째는 나를 스님의 길로 인도해 주신 청담 스님과의 인연이다. 세 번째는 바로 108산사순례 길에 나선 회원들과의 소중한 인연이다. 사람에게는 매일 매일 만나는 아침이 새롭듯이 늘 이 순간이 새롭다. 이 세상은 내일이면 새로운 세상을 만난다. 그것이 인생이다. 우리가 한 달 한 달 마음으로 찾아가는 산사 또한 새로운 인연을 짓는 곳이다. 만나는 산새와 풀꽃, 천년의 탑과 전각, 그리고 부처님과의 만남 또한 경이롭다. 이것은 평생 간직하고도 남을 소
반도의 남쪽 고성 연화산 옥천사로 오르는 산길, 유월의 녹음이 짙게 깔려 있다. 나무터널 사이에서 산새들이 순례자들을 반기고 계곡에 흐르는 물소리가 『금강경』 몇 줄처럼 귓가에 와 닿는다. 무성화(無性花)의 불두화가 핀 돌층계를 지나 대웅전을 올라서니 문득, 은사이셨던 청담 스님의 진영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종연생(從緣生) 종연멸(從緣滅), 인연 따라 왔다가 그 인연이 다해 우주질서와 생사와 열반이 지난밤 꿈결 같다’는 스님의 경구가 귓가에 아른거리는 것은 회억(回憶)때문일까? 태어남과 사라짐이 인연인 것처럼 내가 ‘108산사순례기도회’를 이끌고 이곳 연화산 옥천사에 머물게 된 것도 은사 스님과의 끊을 수 없는 인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옥천사의 유래는 깊다. 신라 문무왕 16년(676년)에 창건되어
불교의 힘은 타력이 아니라 자력에 의한 해탈을 본연으로 삼는 데에 있다. 불교는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는 타종교와는 달리 자신이 열심히 수행하고 닦으면 반드시 성불을 이룰 수 있다는 확고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이는 아미타불의 서방극락정토에 대한 왕생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극락정토는 아미타불의 서원으로 세워진 하나의 이상향으로 아미타 부처님이 보살이었을 때 세워진 곳이다. 보살께서는 극락정토에 태어나게 해 달라고 서원을 세운 뒤 만약, 이루지 못한다면 결코 부처가 되지 않겠다고 하셨다. 그리하여 보살의 수많은 공덕의 결과로 세워진 곳이 극락정토이다. 그럼, 오늘날 보살이 서원하신 그 극락정토는 어디에 있는가? 대승불교 정토종의 소의경전인 『정토삼부경』중의 한 경전인 『아미타경』에 보면 ‘서쪽으로
나는 ‘108산사순례’ 회원들에게 사경을 매우 강조한다. 사경은 경전 내용을 필사하는 것을 말하는데 석가모니께서 입멸하신 후 구송으로 전해지다가 제자들이 결집하여 문자화 한 부처님 말씀이 경전이다. 원래 사경은 경전의 내용을 널리 전파하거나 배우기 위해 시작되었다. 그러나 방대한 분량의 경전을 사경하는 일은 신앙심과 정진력이 없으면 결코 할 수 없다. 때문에 우리나라나 중국에서도 공덕의 척도를 재는 중요한 수행법의 하나로 발전하였다. 불가에선 만다라를 그리는 것이나 깨알 같은 글로써 부처님의 형상을 그리는 행위 또한 사경의 범주로 인정한다. 오늘날 이러한 사경들은 하나의 예술적 가치로 희화(戱畵)되어 하나의 예술로도 인정을 받고 있다. 후한(後漢) 영제(靈帝) 광화(光和) 2년에 지루가참(支婁迦讖)에 의
제 45차 ‘108산사순례’ 발길이 가닿은 곳은 신라 경문왕 때 도의국사가 창건한 천년고찰 완주 송광사였다. 5월 하늘은 더 없이 맑아 종남산에서 불어오는 신선한 바람이 가사자락을 훔쳤다가 향긋한 꽃 내음을 절 마당에 풀어 놓았다. 일주문 앞에는 두 장승이 서서 있고 ‘이문을 통과할 때는 세상의 모든 알음알이와 삼독심을 버리고 경건한 마음으로 부처님을 마주하라는 入此門內 莫存知存 (입차문내 막존지존)’의 경구(經口)가 회원들의 마음을 먼저 적셨다. 이 말씀은 우리들에게 ‘순례지를 방문하면 할수록 내려놓는 하심’을 먼저 배우게 하는지도 모른다. 마치 맑은 그릇을 깨끗이 비웠을 때 감로수를 받을 수 있듯 탐진치 삼독심을 버려야만 청량한 바람이 부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불가(佛家)에서는 일주문을 두고 속계
‘성지순례’는 하나의 신앙여행이다. 성지순례를 완수한 사람은 ‘지옥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염라대왕의 약속도 있듯이 인도·티베트·일본 등 불교국가들은 ‘내생의 안락’을 발원하기 위해 순례를 나서며 이를 통해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참회하고 청정한 세계에 들기 위함이다. 불교의 최대 장점은 ‘다생다사관(多生多死觀)’에 있다. 타종교는 한 번 태어나 죽으면 천당에 가거나 지옥에 가는 ‘일생이사관(一生二死觀)’인데 반해 인간은 단 한번태어나 죽는 게 아니라 자신이 쌓은 공덕에 의해 육도윤도를 하거나 다시 인간 세상에 태어난다는 데에 있다. 오늘날, 어떤 사람들은 사후(死後)세계를 믿지 않는다. 사람에게 이러한 내생(來生)관이 없다면, 한생을 제멋대로 살다가 죽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내생을 믿는 사람은 두려움 때
불교에서는 4대 명절이 있다. 누구나 태어난 날이 있듯이 부처님에게도 생일이 있다. 그날이 바로 음력 4월 8일 부처님 오신 날이다. 부처님께서는 인간으로 태어나셨지만 나중에 깨달음을 얻으시고 많은 중생들을 구제하여 성자가 되셨기 때문에 우리가 이 날을 성대하게 기리는 것이다. 음력 2월 8일은 부처님이 도(道)를 닦기 위해 출가한 날이고, 음력 12월 8일은 보리수 아래서 성도를 한 성도재일이다. 음력 2월 15일은 인간으로서 부처님이 육신을 거두고 열반에 드신 날이다. 이 명절들은 불교에서 제각각 엄청난 의미를 지니고 있다. 특히 부처님 오신 날은 이 4대 명절 중에서도 가장 특별한 날이다. 만약,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이 땅에 오시지 않았다면 불교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출가절은 부처
인간에게 행복의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재물을 많이 모으는 것, 건강하게 사는 것, 명예를 얻는 것 등이라 할 수 있지만 이러한 것들이 행복의 근본적인 이유는 될 수 없다. 사람의 행복은 객관적인 것이 아닌 어디까지나 주관적이라 할 수 있어 자신이 어떤 삶을 사느냐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이다. 옛날 인간은 굶주린 상태에서 배부른 상태를 원해 왔으며 비바람 때문에 집을 추구해 왔으며 추위 때문에 옷을 입었다. 하지만 오늘날 인간의 행복은 이미 그러한 의식주를 벗어나 물질적인 것보다 정신적인 면을 더 추구한다. 그럼, 그 정신적인 행복은 과연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일반적으로 행복이란 자신의 욕구가 만족되어 부족함이나 불안감을 느끼지 않고 편안한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 때문에 사람은 어떤 마음으
지난 일요일, SBS 일요스페셜 ‘세상을 바꾸는 행복한 인연’ 이라는 제목으로 산사순례가 방영되었다. 산사순례의 결성에서부터 농촌사랑운동, 108 다문화가정 인연 맺기, 소년 소녀 장학금 전달식 등 다양한 활동들을 여과 없이 시청자들에게 보여주었는데 특히 이 중에서 ‘다문화가정 인연 맺기’에 대한 방영은 많은 시청자들의 심금을 울렸다. 캄보디아 한 여성의 이민을 통해 그들이 처한 아픔을 담담히 그리고 있었는데 산사순례 회원들의 지원으로 고국을 찾게 된 이야기이다. 그러나 그녀의 친정아버지는 보고 싶은 딸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그만 세상을 뜨고 말았다. 아버지의 임종을 보지 못했던 그 결혼 이민 여성의 아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그날, 장례식에 참석하여 염불을 대신 해주었다. 어쨌든 산사순례
108산사 제 44차 순례지인 경주 기림사로 가는 길목, 하얀 벚꽃이 비 오듯 바람에 흩날렸다. 회원들은 깊디깊은 전생의 인연으로 해동성지를 찾아 기도를 올렸다. 뒤 늦게 찾아온 봄은 회원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특히 LA에서 예정도 없이 오신 비구니 가수 정율 스님의 열정적인 찬불가로 인해 더욱 즐거웠다. ‘꽃잎이 떨어져도 그 떨어질 곳을 미리 알고 있다’는 말이 있다. 이것이 부처님 사상인 ‘인연’이며 ‘연기’가 아니겠는가. 한국불교 최초의 해동(海東) 불교성지인 기림사의 순례는 회원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게 했다. 일반적으로 한국으로 불교가 전래된 것은 고구려 소수림왕 17년(372년)이라고 알고 있지만 학자들의 사료(史料)에 의하면 이미 한국으로 불교가 들어와 있었다고 추측하고 있는데 그곳이 바로
산문에 확연히 봄이 왔다. 도선사 입구에 진달래꽃이 활짝 피어 있어 산객들의 마음을 즐겁게 한다. 올해는 사월 때 아닌 눈이 내려 꽃망울이 얼어붙어 땅에 떨어지더니, 채 피지 못한 꽃들이 이제야 망울을 터뜨린 것이다. 춘래불사춘처럼 우리 마음속에 봄이 더디게 온 것은 천안함 침몰 때문에 더욱 그런 것 같다. 꽃다운 병사들의 목숨이 지고 말았으니 국민들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여기저기에서 성금이 줄을 잇고 도선사도 성금 운동에 동참했다. 『화엄경』에 보면 ‘心如工畵師 能畵諸世間(심여공화사 능화제세간)/ 五蘊實從生 無法而不造(오온실종생 무법이불조)若人欲了知 三世一切佛(약인욕료지 삼세일체불) 應灌法界性 一切唯心造(응관법계성 일체유심조)’이란 사구게가 있다. ‘마음은 화가와 같아 능히 모든 세상을 다 그
4월 11일 동국대 중강당에서 미국, 인도, 중국, 일본, 한국 등 세계의 석학들을 모시고 한국불교학회(회장 김선근)와 공동으로 700여명의 불자들과 함께‘108산사순례 국제학술회의’를 성황리에 열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1600여년의 불교역사를 가진 한국에서 1960년대 이후 단 한 번도 순례에 대한 학술적 논의가 그동안 없었다는 사실이다. 인도, 중국, 일본, 티베트 뿐 만이 아니라 중동이나 동남아시아는 이미 순례문화에 익숙해 있으며 그에 대한 성과를 꾸준히 학술회의를 통해 논의해오고 있었다. 하지만 한국불교의 순례문화는 그동안 보편화되지 않았으며 더구나 이러한 대대적인 학술회의는 그동안 열린 적이 없었다고 한다. 물론, 성지 순례 같은 행사는 개인이나 사찰에서 수시로 갔다 온 적은 많았다
향일암 순례 마지막 날 오후, 한려해상수도에서 일심광명 무지개가 찬란하게 떴다. 일주일의 대웅전 복원기도법회를 마친 나는 피곤함도 잊은 채 회원들과 더불어 그 광경을 바라보고 난 뒤, 서울로 돌아오면서 깊은 생각에 잠겼다. 순례 기간 중 하늘에 뜨는 무지개는 부처님과 나의 은사 스님이 내게 내려주시는 하나의 공덕임을 나는 안다. 믿음은 누가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한 믿음이 없다면, 차라리 산사순례를 시작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벌써 3년이 훨씬 지나고 사계(四季)가 여섯 번이 지나가야 비로소 그 회향의 기쁨을 맛볼 수 있겠지만, 한 달 한 달, 순례를 마치는 날마다 나는 큰 기쁨을 느낀다. 무사히 마쳤다는 안도감보다 또 다시 순례를 준비해야 하는 나로서는 그것도 하나의 즐거움이
화마(火魔)로 대웅전이 소실된 향일암의 해수관음보살상 앞에서 부처님 전에 삼가 편지를 올립니다. 긴 겨울이 끝나고, 봄의 문턱에서 맞이하는 남도(南道)의 끝자락 향일암에서 바라보는 한려해상수도의 일출은 눈부시게 아름답습니다. 하향(下向), 그리운 것들은 모두 꽃핀다는 삼월 봄날, 한 마리의 용을 품은 듯한 아침 일출을 우리 회원들과 함께 이렇게 바라보는 것도 참으로 소중한 일임을 새삼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산승이 5,000여명의 108산사 순례기도회 회원들을 이끌고 향일암에 도착한 것은 대자대비하신 부처님의 은혜에 감사드리고 일천만 분의 일이라도 보답하기 위함입니다. 지난겨울 천년 전, 원효대사께서 창건한 이 아름다움 사찰에 알 수 없는 불길이 일어나 대웅전과 두 채의 전각들이 순식간에 소실되고
우리가 불교를 배우는 이유는 마음 하나를 알고 마음 관리를 잘하기 위해서다. 마음 하나를 잘 쓰면 ‘극락’일 수 있으며 마음하나 잘못 쓰게 되면 ‘지옥’이 된다. 지금 우리는 미움과 시기, 폭력과 거짓이 난무하는 위기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러한 때에 백팔산사순례 회원들은 모두 불법을 만났으니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자경문』에 보면 ‘인생난득(人生難得) 불법난봉(佛法難逢)’이란 경구가 있다. 즉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기 어렵고 불법을 만나기도 어렵다’는 뜻이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비록 인간의 몸을 받고 태어났으나 불법을 만나지 못해 고통 속에 빠져 있다. 사람들이 고통 속에 헤매는 것은 아직도 정법(正法)의 인연을 제대로 만나지 못해서이다. 요즘같이 많은 종교 속에서 불법을 만난다는 것은 결코 쉬
우리 선불교에서는 ‘염일방일(拈一放一)’이라는 말이 있다. ‘하나를 잡으면 다른 하나를 반드시 내려놓아라’는 말이다. ‘무조건 내려놓아라’는 ‘방하착(放下着)’과는 달리 다소 유순한 표현이다. 세상을 살아오면서 작은 것 하나 내려놓지 못하면서도 모든 것을 움켜지려고 하는 것은 중생의 어리석은 마음 때문이다. 탐진치 삼독(三毒)의 근원은 이러한 욕심에서 출발한다. 하나를 쥐면 자연스럽게 다른 하나를 내려놓는 것도 참된 삶의 한 방식이다. 지난 주 ‘무소유’의 법정스님이 원적을 하셨다. 평생 스님이 ‘무소유’를 실천했던 것도 어찌 보면 선종의 ‘염일방일’과도 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고, 어둠이 있으면 반드시 빛이 있듯이 세상은 항상 양면(兩面)이 자리한다. 스님이 문필가로서 많은 국민들의
자연의 ‘발성법(發聲法)’은 ‘무념무심(無念無心)’이다. 진리를 그냥 드러내고만 있을 뿐, 그저 침묵하기만 한다. 그 속에서 사람은 진리를 배운다. 봄이면 잎이 피고, 여름이면 짙푸르고 가을이면 남김없이 자신의 몸을 지우는 잎, 겨울이면 새로운 잎을 틔우기 위해 인내하는 나무, 이렇듯 자연은 진리 그 자체이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연은 많은 것을 어리석은 중생들에게 가르쳐 주지만 오욕(五慾)에 젖어 있는 사람들은 이마저도 잘 모른다. 때문에 ‘산사순례’는 부처님과 자연의 진리를 찾기 위한 하나의 여정(旅程)인 것이다. 부처님의 경전인『유교경』에 보면 ‘깊은 물은 소리가 나지 않으나 얕은 물은 졸졸 소리가 나듯이 지혜로운 사람은 항상 조용하며 편안함과 즐거움이 있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불안하고 변덕스럽다.
2월 봄이 오는 길목, 백양사로 가는 겨울의 마지막 순례길. 봄을 재촉하는 비가 이른 새벽부터 추적추적 내렸다. 잔가지에 앉은 물방울들이 마치 꽃망울을 머금은 듯 반짝거리며 한 장 사진처럼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고 있었다. 회원들은 우산을 쓰거나 우비를 입고 형형색색(形形色色) 걸어서 산사로 올라갔다. 좀처럼 비는 그치지 않고 거세게 쏟아졌다. 회원들은 폭우에도 아랑곳없이 저마다 오백년 먹은 갈참나무와 고로쇠나무들이 서서 있는 산길을 지나 부처님을 만난다는 기쁨으로 옷이 젖는 지도 모르고 파안대소(破顔大笑)하며 걸었다. 나는 그러한 회원들의 지극스런 모습을 보고 이내 가슴이 뭉클해 졌다. 법회를 시작하면서 회원들에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오히려 역경 속에서 더 잘되는 것이 수행이다. 오늘 우리는 겨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