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종장교 시절 종종 지휘관 및 간부들과 족구를 같이 하고는 했습니다. 점심을 먹고 난 후 사령부 앞에 네트를 치고 다 같이 모여서 단합 활동의 목적으로 운동을 한 것이죠. 전 항상 뒤에서 공을 받아주며 수비를 했는데 발을 쓰는 것보다는 머리를 써서 공을 받는 것이 참 편하더군요. 그런데 이 버릇을 계속 목격한 지휘관이 어느 날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스님은 왜 공을 자꾸 머리로만 받으시나요?”“머리가 편하게 잘 받을 수 있으니까요.”“그러지 말고 발로도 받으시는 연습을 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잘 할 수 있는 것을 계속 잘하면 됩
야간 참선반을 맡아 진행해 보라는 제안에 아는 것을 많은 도반들과 나누는 기회가 되리라는 확신과 희망을 가졌다. 하지만 참석 인원이 적어 늘 마음이 쓰였고 안타깝기까지 했다. 오늘은 몇 명이나 올까 하는 마음 졸임과 찜찜함이 가시지 않았다. 그래도 4년이라는 세월이 지나면서 이런 마음에 휘둘리지 않고, 내려놓는 나를 바라볼 수 있으니 이 또한 내 공부였다.선어록 반복해 읽다 보니제법 읽는 재미도 생겨나삼라만상 실체 아니란 말 못 박듯 새겨가면서 공부언제쯤 구하는 마음 없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까? 부지런히 공부하고 닦아 나가는 방
사실 이 도량이 아니었다. ‘선림고경총서’와 만남에본격적인 불교공부 몰입화두참구에 목마름 느껴정진력 얻은 참선반 결성부산 대광명사에 오기 전 다른 사찰에 다녔다. 8년 정도였던가. 그 사찰에서 불교기초교리와 경전 공부를 꽤 오랫동안 해왔던 기억이 있다. 집안 자체가 부처님 가르침을 믿고 따라왔기에 신앙은 불교에 가까웠다. 하지만 평소 내 모습은 불자라고 하기에는 좀 거리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경책이라고나 할까. 부처님은 불서로 이끌었고, ‘장경각’에서 발행된 ‘선림고경총서’를 마주했다. ‘선림고경총서’를 무심코 꺼내 읽으면서 부
얼마 전 강남의 한 사찰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함께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지인의 소개로 이틀간 진행된 저녁강의에는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함께 했습니다. 수강생들이 불교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했는지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강의를 해야 하는 터라 걱정이 앞섰습니다. 하지만 조급했던 염려는 수강생들의 눈빛으로 사라졌습니다. 격무에 시달린 직장들이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듣는 시간답지 않게 불자들은 수업 내내 엄청난 집중력과 흡입력을 보여줬습니다.첫째 날 강의를 마치고 지하철을 타기 위해 잰걸음으로 도량을 걷고 있는데 한 보살님이 다가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삶의 과정이자 수행으로 보는 사람과, 결과로 보는 사람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십여 년 만에 어느 보살님이 찾아왔습니다. 군대까지 잘 다녀온 아들이 갑자기 쓰러져 큰 수술을 받고 생사를 헤매는 힘든 일을 겪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딸은 동생 간병으로 계획했던 일을 중단했지요. 보살님은 ‘대단히 좋은 걸 바라지도 않았고 가족들 건강하고 평범하게, 탈 없이 살고 싶었을 뿐입니다. 남을 아프게 하거나 크게 나쁜 짓을 한 적도 없는데….’라고 힘없이 말합니다. 보살님은 자신의 업장과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참 이상한 말입니다. 무슨 말인지 충분히 알겠지만 심리적으로 납득이 안되죠. 왜 굳이 고생을 사서까지 해야 합니까? 청춘은 아파야 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안 그래도 아픈 세상인데 고생길로 청춘들을 밀어 넣어버릴 필요는 없습니다.이 시대의 청년들은 이미 충분히 힘듭니다. 사실상 특별재난 세대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평생을 부모에게 이끌려 억지로 배움을 이어왔는데 사회에 진입하는 장벽이 지나지게 높아져 버렸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서글픈 것이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 아
요즘은 인터넷에서 많은 정보를 얻고 공유합니다. 포털 인기 검색어는 커뮤니티를 장악하는 힘을 갖습니다. 뉴스를 점유하기 위한 검색어 경쟁은 보이지 않은 전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한 시대의 트렌드를 이끄는 포털 이슈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사들이 반영된 결과이기도 하고, 특정집단이나 인물이 작위적으로 형성되기도 합니다. 포털은 시장과 여론을 점유하기 위해 실시간 이슈와 연관검색어를 치열하게 생산하는 무한 경쟁의 장입니다.포교는 과연 어떠한 연관검색어들이 있을까요. 매체에서 특정 인물, 사물, 현상들을 포털 사이트에 검색창에 입력
평소보다 더 부지런해지는 날이 있다. 수행에 의기양양하던 중남편 병마 소식으로 상심간절히 다라니기도·사경불교로 오는 남편에 감사다라니기도를 하는 날이다. 곧잘 미뤄두곤 하던 설거지도 즉각 해결한다. 다라니기도가 있는 날이면 오히려 시간을 더 아껴 쓰게 됐다. 미루던 일들을 한꺼번에 처리하면 쌓이던 피로도 물리칠 수 있었다. 기도를 시작한 지 어느덧 1년을 넘겼다. 그러면서 언제부터인가 매월 다라니기도 날짜를 손꼽아 기다리게 됐다. 차츰 수행이 무르익어간다는 느낌도 있었다. 수행하는 스스로를 대견해하면서 의기양양 하루하루 보내고 있었
추석을 보냈다. 그리고 오랜만에 10월 다라니기도에 참석했다. 5년전 부산 여래사와 인연불교대학·산사순례로 발전명상 때 흘러내렸던 눈물일일수행 등 불연 깊어져축원문을 찾아도 없기에 그냥 기도를 했다. 박동범 부산불교교육원장이 병중에 있는 남편을 염려했다. 그동안 참석하지 못한 나와 남편을 위한 축원을 해주고 있었다. 지금도 귓가에 그 축원이 맴돈다. 참 감사하다. 인연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계기로 삼고, 선한 인연이 법보시가 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 글을 쓴다. 부산 여래사와 인연은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수덕행 법
계성변시광장설(溪聲便是廣場舌)계곡 물 소리가 곧 부처님의 설법이요 산색기비청정신(山色豈非淸淨身)산 빛이 어찌 청정법신이 아니겠는가? 야래팔만사천게(夜來八萬四千偈)한 밤에 팔만사천 게송을 들으니 타일여하거사인(他日如何擧似人)다른 날, 다른 이에게 어떻게 일러 줄 것인가.소동파가 폭포수 소리를 듣고 지은 시가 절로 떠오르는 계절입니다. 나뭇잎 하나하나 물들어 찬란히 빛나고, 흔들리는 바람결 따라 어디든지 둘러보아도 눈부신 가을빛이 나를 따라다니며 반깁니다. 무정설법(無情說法)을 통해 깨달음에 이른 선사들의 기행이 이해되는 시절입니다.이
얼마 전 해남 미황사에서 괘불재가 있었습니다. 참석하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지금도 남아있습니다. 매년 가을이면 하는 법회지만 이번에 특히 미안한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미황사 주지스님과 이번 총무원장 선거기간 동안 서울에서 함께 한 시간이 길었습니다. 함께 고민하고 먹고 자면서 나눈 정들이 특별해서입니다. 그 스님과는 1994년 종단이 정부의 손으로부터 진정한 독립이 될 때 승가대생으로, 저는 동국대생으로 함께 했습니다. 함께 하면서 서로를 알 수 있었고 믿는 인연이 되었습니다. 그 뒤로 1998년에도 함께 같은 방향으로 걸었고,
최근 한국불교사에 대한 교양적인 저서들이 다양하게 간행되고 있는데, 그 가운데 개설서로서 평가될 수 있는 것은 김용태(金龍泰)의 ‘한국불교사(韓國佛敎史’(일본어판, 2017) 뿐이다. 이 책에서는 특히 한국불교사를 7시기로 시대구분하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즉 삼국시대-불교의 수용과 확산 통일신라시대-불교의 대중화와 교학의 융성 고려시대-불교의 융성과 선·교종의 공존 조선시대전기-유불교체의 시대성과 억불의 전개 조선시대후기-불교의 존립과 전통의 계승 근대-식민지불교의 굴절과 근대성의 모색 현대-식민지유산의 청산과 정통성의 탐색 등으
한 청년이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스님 어떤 마음으로 기도를 해야 하나요?”그 청년은 불교를 공부하기 전에는 열정이 넘치는 성향으로 될 때까지 밀어붙이는 스타일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불교를 공부하면서 밀어붙이기 보다는 상황을 관조하며 ‘되면 좋고, 안 돼도 어쩔 수 없고’라는 마음가짐이 생기기 시작했죠.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 마음이 편안하기는 한데, 혹시 자신이 열정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걱정을 하고 있었던 것이죠. 무엇인가를 성취하기 위한 기도를 할 때, 안 돼도 될 때까지 밀어붙이는 것이 좋을까요? 아니면 부처님께 턱
40여년을 지켜온 사찰의 창립기념법회에 참석한 연세 지긋한 거사는 종무원의 도움을 받아 조심스레 걸음을 옮겨 부처님을 올려다봅니다. 합장한 거사의 얼굴엔 만감이 교차합니다. 도심포교사찰을 일군 핵심신도로 신심과 함께 뿌듯함이 넘칩니다. 노거사의 신심 충만한 합장은 지켜보는 이들에게 그대로 전달되어 존경의 마음이 모아집니다. 출가수행자들에게 고개를 숙이는 모습은 숙연하기까지 합니다. 삼보를 예경하며 살아오신 노거사의 일생이 묵직하게 다가옵니다. 평생을 한결같이 부처님 가르침을 의지하며 살아온 노거사의 믿음의 힘은 무엇일까요. 법회를
2017년, 올해는 변화가 찾아왔다. 지난 5년 동안 쉼 없이 이어 온 일과 수행이 달라졌다. 마침 윤달이 있는 해다. 생전예수재를 지내게 됐다. 생전예수재는 살아 있는 사람의 사후를 위해 공덕을 미리 쌓는 의식이다. 49재나 수륙재가 죽은 이의 명복을 빌고 고혼이 극락왕생할 수 있도록 하는 반면 예수재는 살아 있는 동안 공덕을 미리 닦는 일이다. 그래서 고통의 세계에 떨어지지 않도록 노력하는 일인 셈이다. 이 시기에 자비도량참법 기도에 집중했다. 곧바로 백중을 맞이했는데 우란분절이라고도 불린다. 많은 불자들이 알다시피 백중 기간은
1945년 해방된 이후 일본인 학자들의 한국불교사 연구 활동은 전반적으로 침체를 면하지 못하였다. 일제강점기에 활약하던 연구자들에 의해 겨우 명맥을 유지하는 정도였다. 이들 일본인 학자들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로 들 수 있는 것은 다카하시 토오루(高橋亨)와 에다 토시오(江田俊雄) 등 2인이었다. 이들은 당대 한국인 학자들에 견주어 수준 높은 업적을 내고 있었으나, 역사인식의 면에서는 여전히 식민지사관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시대적 한계성을 보여주고 있었다.인도·중국·일본 중심의‘삼국불교전통사관’ 틀1970년대부터 탈피 시작일본의 전후
‘일체 모든 일이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는 가장 평범하고도 널리 알려진 ‘화엄경’의 한 구절입니다. ‘선한 씨앗은 선한 과보를 맺고 악한 씨앗은 악의 과보를 가져온다’는 선인선과 악인악과(善因善果 惡因惡果)는 아이들도 아는 진리의 말씀이지요. 이 두 구절만 오롯이 지녀도 진리의 바른 길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입니다.몇 년 전, 추석 명절이 다가올 때 쯤, 한 집안에 비상회의가 열렸습니다. 며느리가 무속인에게서 아들이 시험에 합격하려면 차례를 지내면 안 된다는 말을 듣고 온 것이었습니다. 평생 동안 작은 제사 한
불교에서 성인과 범부의 차이는 의외로 간단합니다. 무아(無我)에 대한 앎이 생기기 시작하면 그는 성인으로 분류됩니다. 하지만 꿈에도 무아를 모를 때는 범부라고 부르죠. 이것은 지식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무아로 삶의 자유를 성취하는 정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더 간단하게 구분해보자면 ‘나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워졌는가?’ 이것이 성인을 구분하는 척도입니다.아라한이라는 존재는 다른 이름으로 무학(無學)이라 불립니다. 더 이상 무아에 대해서 배울 것이 없다는 뜻이죠. 즉, 나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워졌다는 것입니다. 범부를 자유롭지 못하게 묶고
불교는 어릴 때부터 결혼 후에도 자연스러움이었다. 유년 시절부터 어머니의 손을 잡고 절에 다녔다. 가정을 꾸린 뒤에도 집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절을 찾아가는 일이 내겐 결코 어색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절에 자주 간다고 생활에 큰 변화가 있진 않았다. 불교를 잘 아는 것도 아니고 부처님 가르침을 새기고 수행을 실천한다고 단언할 수도 없었다. 누구보다 내 경우가 그랬다. 부산 해운대 신시가지에 생활터전을 잡고 가까운 절을 찾아 신행생활을 했다. 초하루면 절에 가서 법회에 동참하고, 부처님오신날이면 매년 연등도 밝혔다. 꾸준히 법회에
1930년대 한국불교의 종파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는 김영수(金映遂, 1884~1967)에 의해 이루어졌다. 김영수에 앞서 권상로·이능화·김해은 등에 의해서도 불교종파에 대한 관심이 기울여져 왔으나, 단편적인 소개의 수준을 벗어나지는 못하였다. 한국불교사에서의 오교구산(五敎九山)과 오교양종(五敎兩宗)에 대한 이해체계의 정립은 김영수에 의해서 비로소 이루어졌다.불교전문학교 김영수 교수‘종파사’ 논문 잇따라 발표한국인 학자 학술논문으로전문 학술지 실린 최초 사례김영수 교수의 시대구분론교종과 선종 관계 이해 축역사적 사실 정확히 하려는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