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산당 철우 각령이시여. 율사께서 남긴 ‘사분율’ ‘사분율의’ 등의 법신사리는 청정승가의 기틀이 되었고 보이신 지계가풍은 후학의 귀감이 되었습니다. 잘 가시오. 다시 만나 정진합시다.”제방의 율사 스님들이 운집한 법당에는 맑은 침묵이 흘렀다. 고요하면서도 성성함이 쟁쟁했다. 철우 스님이 일생 설한 청정 승단의 위의는 스님을 떠나보내는 이 길에서 승가 공동체의 완연한 풍경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조계종 단일계단 설립과 행자교육원 설립에 진력하고 파계사 영산율원에 율장연구회를 결성하는 등 평생 조계종의 지계가풍 진작에 힘쓴 파계사 영산
2005년 10월31일 세간의 이목이 조계종으로 향했다. 이날 조계종은 법장 스님의 입적으로 공석이 된 총무원장을 새롭게 선출했다. 종단 안팎을 넘나들며 이슈의 중심에 섰고, 마지막 육신마저 사회에 회향한 법장 스님의 행보는 조계종의 사회적 위상을 견인했다. 그렇기에 누가 법장 스님의 뒤를 이을 것인가는 종단 안팎의 주된 관심사가 됐다.32대 총무원장 선거는 지관·정련·법열·월서·대우·각명·장주 스님이 후보등록하면서 다자구도로 출발했지만, 선거막판 종책모임의 지원을 받은 지관 스님과 정련 스님의 양자대결로 굳어졌다. 지관 스님은 당
조계종 단일계단에 종사했던 초기 율사스님들을 조명하고, 스님들의 중생구제 원력과 지계의식을 이 시대의 되살리려는 토론회가 열렸다.조계종 율장연구회(회장 무관 스님)는 10월17일 서울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국제회의장에서 ‘제6회 계율토론회’를 개최했다. 토론회는 ‘계법의 확립 및 정착과 발전의 주역’을 주제로 조계종 단일계단 성립 등에 한 축을 담당한 스님들의 역할을 집중 조명했다.‘승가와 화합’을 기조발제한 율장연구회장 무관 스님에 이어 해인사 율학승가대학원장 서봉 스님이 동곡일타 스님을, 해인사 율주 경성 스님이 가산지관 스님을
“체계적인 행자교육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교육과 수계를 함께 담당하는 상설 수계도량이 만들어져어야 한다.”단일계단 습의사를 지낸 통도사 대전포교원 설문 스님이 조계종 사미계단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행자교육과 수계전담 상설도량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조계종 계단위원회와 율장연구회가 ‘단일계단의 설립’을 주제로 10월22일 서울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국제회의장에서 개최한 ‘제5회 계율토론회’에서다.설문 스님은 통도사를 시작으로 삼보사찰과 직지사 등에서 계속된 사미(니)수계산림서 상설도량의 부재로 발생한 문제를 예로 들었다. 스님은 △수계산림
“청정승가 집단에서 청정승가를 이룰 수 있는 계율에 대한 관심 부족이 안타깝다.”조계종 계단위원회와 율장연구회가 10월13일 서울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국제회의장에서 개최한 ‘제4회 계율토론회’ 발제자들의 공감대다. 스님들에게 지남이 되는 기준이자 규범인 계율의 1700년 역사는 물론 단일계단 설립과 의미, 비구니 율맥 전수 등 유의미한 기록들이 ‘한국불교 계단사’를 주제로 한 토론회에서 갈무리됐다. 반면 미흡한 계율교육, 율사 외 무관심 등 계율 정신에 대한 관심을 청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영축율학승가대학원장 덕문 스님은 ‘
5월1일(수) ▲합천 해인사 ‘혜암당 성관대종사 탄신 94주년 기념 화보집 봉정법회’=오전 10시30분, 경내 원당암. 055)932-7308 ▲조계종·BTN ‘틱낫한 스님 초청 명상수행·대중강연’=평창 월정사·중앙승가대·부산 범어사·동국대·잠실실내체육관·서울 국제선센터. 15일까지. 02)3270-3360 ▲조계종 율장연구회 ‘제2회 계율대토론회-삼귀의계와 오계’=오후 12시30분,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02)2011-1700 5월2일(목)▲파라미타청소년연합회 ‘제16회 청소년 사경공모전’=24일까지. 02)723-6165 ▲속초 신흥사 ‘주지 후보자 선출을 위한 산중총회’=오후 1시, 경내 설법전. 033)636-7044 5월3일(금)▲경기도북부불교사암연합회 ‘제9회
조계종 계단위원회 산하 계율연구모임인 율장연구회(회장 철우 스님)가 삼귀의계와 오계를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한다. 율장연구회는 5월1일 오후 12시30분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제2회 계율대토론회’를 개최한다. ‘삼귀의계와 오계’를 주제로 열리는 이번 세미나는 원로의원 인환 스님이 ‘삼귀오계의 국제적 확산을 바라며’라는 주제로 기조발제한다. 이어 중앙승가대학 교수 경성 스님이 ‘삼보의 정의와 삼귀의계’를, 전 봉녕사 율학승가대학원장 대우 스님이 ‘삼귀의계의 제정과 그 정착 과정’을, 영축율학승가대학원장 덕문 스님이 ‘삼귀의계의 역사 및 역할’을 주제로 발제한다. 또 청암사 율원장 지형 스님이 ‘오계와 윤리도덕’, 계단위원 지운 스님이 ‘현대사회의 문제 해결을 위한 오계의 재해석’에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난이여, 이 세상에서 육도 중생들이 누구나 훔칠 마음이 없으면 생사를 해탈할 수 있을 것이다. 네가 수행하는 목적은 번뇌를 벗어나려고 하는 것이다. 훔치는 마음을 끊지 아니하면 절대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설사 기틀이 훌륭하여 ‘선정이나 지혜가 생겼다’하더라도 훔칠 마음을 끊지 아니하면 사도에 떨어져서 정령(精靈)이나, 도깨비나, 귀신들린 사람들이 될 것이다. 내가 열반에 든 뒤에 말법시대에 이런 요물의 세상이 성행하여 간사함과 협잡을 부려 선지식 노릇이나 하면서 무지한 사람들을 현혹하고 가는 곳마다 남의 집 재물을 손해나게 할 것이다. 내가 비구들로 하여금 걸식을 하게 하였으며, 자기 손으로 익혀먹지 않게 한 것은 온갖 탐욕을 버리고 보리도를 이루게 하려는 것이니, 지
어느 때에 부처님께서 기원정사에 계실 때의 일이다. 그 때에 아난은 옷을 바로 입고 합장하여 절하고, 부처님께 이와 같이 사뢰었다. “부처님이시여, 열반하신 뒤 말법시대가 오면 세상에는 사특한 무리들이 많아 그릇된 법문이 많이 나와서 부처님 법을 배우려는 사람들은 그 마음을 어떻게 가지고 온갖 장애를 물리치고 보리심에서 물러남이 없이 위없는 공부를 성취 할 수 있겠나이까?”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난이여, 너의 물음과 같이 말세에 중생들을 구호하는 방법은 그 마음에 올바른 자리를 잡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수행하는 데에는 세 가지 이치가 있다. ‘마음을 거두는 계율, 계율로 인하여 생기는 정, 정으로 인하여 생기는 지혜’ 이것이 무루를 얻는 세 가지 공부이다. 아난이여, 이 세계의
스승이 상좌를 극진히 생각해 언행 하나하나를 조심시키고 챙겨주는 등 온갖 정성을 다하는 모습을 종종 본 적이 있다. 지금은 아무리 찾아도 그런 스승의 모습이 흔치 않지만, 그래도 스승이 상좌에게 마음을 쓰는 것은 여전한 것 같다. 동안거 결제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스승은 제자의 모든 생각이 모름지기 이 공부를 위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는 것이나 얻어먹고, 허송세월이나 보내서는 아니 된다. ‘사느냐, 죽느냐’ 하는 두 글자를 이마에 붙여 놓고 온 종일 눈과 코를 잡고 이 이치를 밝혀야만 하는 것에 매여 있어도 부족하다는 것이다. 만일 공부는 하지 않고 패거리들과 어울려서 공연히 시간이나 보내다가 이 다음에 염라왕이 밥값을 따질 적에, “그때 내가 말해주지 않았다”고 핑계하지 말라는 것이다.
어디서나 대중 속에서 제 몫을 다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제몫을 다한 것은 부처님 말씀에 따라 그대로 실천하는 것이다. 부처님은 “남자나, 여인이나 누구를 막론하고 이 법문을 믿고 공부하면 모두 부처가 되리라”고 하셨으니 어찌 사람을 속일 수 있겠는가. 홍인 대사는 “내 마음을 공부하면 깨달을 것”이라고 하시고 “너희가 나의 말을 믿지 아니하면 세세생생 호랑이에게 죽을 것이오. 내가 너희를 속이면 내생에 지옥에 떨어지리라”고 하셨다. 이런 말씀들을 듣고 어찌 믿지 않을 수 있겠는가.공부하는 사람들은 마음이 흔들리지 않기를 산과 들같이 하고, 마음 쓰기를 허공과 같이 하여, 지혜로 불법(佛法) 생각하기를 해와 달같이 하라고 했다. 그리하여 남이 나를 옳다고 하거나 그르다 하더라도 마음이 흔들리지
수행하는 스님으로서 ‘이래서야 되겠는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한심한 일들이 종종 있다. 출가자는 세속 사람의 생각과 방식을 모두 버려야 한다. 생각도 그대로이고 먹고 싶고, 입고 싶은 것 그 어떤 것 하나도 버리지 않고, 모든 것이 그대로라면 세속인과 다른 것이 무엇이겠는가. 경허 선사는 그 유명한 ‘중노릇 하는 법’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대저 중 노릇하는 것이 어찌 적은 일이리요. 잘 먹고 잘 입기 위하여 중노릇 하는 것이 아니요, 부처되어 ‘살고 죽는 일’을 면하기 위하고자 하는 것이다. 부처가 되려면 내 몸에 있는 내 마음을 찾아보아야 하나니, 내 마음을 찾으려면 몸뚱이는 송장으로 알고, 세상일은 좋으나 좋지 않으나 모두 꿈으로 알고, 사람 죽는 것이 아침에 있다가 저녁에 죽는 줄로 알고 죽
지난 날 절 부엌 시렁 위에는 전날 잠시 행자에게 구경만 시켰던 부처님 마지 밥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마지 밥이 행자의 차례에 온다는 기약이 없지만 행자는 기다려야 한다. 기다리다가 2~3일이 지나면 반드시 행자에게 돌아온다. 2~3일이 지나면, 그 밥은 그야말로 천상에서 하늘 사람들이나 먹을 수 있는 밥으로 행자 앞에 나타난다. 이 밥은 진정 누구의 몫인가? 사실 이 밥은 어쩌다 오가는 객실의 스님들과 재가신도들의 몫으로 남겨 둔 것이다. 이런 비상대책이라도 쓰지 않으면 갑자기 찾아온 손님들에게 말 그대로 냉수 한 그릇 밖에 대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찬밥의 사연 뒤에는 가난했던 절 집안에서 어른 스님들이 만든 궁여지책이었다. 지금 우리의 살림살이는 이런 작은 한 숟가락의 밥이라도 아
우리가 마음을 바르게 하고 또 스스로에게 큰 공덕을 짓게 하는 수행이 있다. 합장하고 절을 하는 수행이다. 부처님께 하거나, 스승에게 하거나, 도반에게 하거나, 개인에게 하거나. 무거운 짐을 하나 둘 내려놓듯 나에게서 꺼내 놓는 것이 절이다. 얻어지는 수행력이나, 얻어지는 공덕으로는 나에게 과분하리만큼 크고 대단한 것이 바로 합장하고 절하는 일이다. 우스운 말로 ‘절을 많이 한다’ 해서 절이라 한단다. 두 손바닥과 열 손가락을 합하되 가운데를 비게 하지 말며, 손가락이 어긋나거나 벌어지지 않게 하고, 팔목을 가슴팍과 명치 뼈 위에 닿게 하되, 가슴에서 약간 떨어지게 하며, 두 팔뚝이 한 일(一)자가 되도록 해야 한다. 두 팔꿈치는 겨드랑에서 조금 떨어지게 하여서 손목을 바로 하여 합장을 세운다. 합장은
오계 어겨도 문제되지 않는 게 현실수행자에겐 지계가 근본임을 알아야 스스로는 아주 작은 것 하나도 실천하지 못하면서 ‘겉으로는 후배들을 위하는 것’이라며 몇 년 째 이글을 쓰고 있다. 불살생(不殺生), 불투도(不偸盜), 불사음(不邪淫), 불망어(不妄語), 불음주(不飮酒) 등 오계(五戒)를 범했어도 세속에서의 형사법을 위반한 것이 아니라면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는 게 오늘날의 현실이다. 수행자에게는 계를 지키는 것이 근본임을 알아야 한다. 중국의 두 스님의 글을 소개한다. 첫 번째, 영명지각수선사(永明智覺壽禪師)의 말씀이다. 스님은 “만일 심장과 간을 베어도 저 목석과 같아야 고기를 먹을 것이며, 술을 마시되 또 오줌 같이 여겨져야 술을 마실 것이고, 단정한 남녀를 보되 시체와 같이 보이거든 음행을 하고,
작은 잘못이라도 방치하면 나중에 큰 잘못된다는 것은 세 살 어린아이도 다 아는 일이다. 그런데 실천에 있어서 어린아이는 쉬워도 어른은 어렵다. 그래서 그런 잘못하기 쉬운 예절 교육의 한 부분을 소개하려고 한다. 이 내용이 수행자들에게 무슨 상관이 있냐고 할지 모르지만 스님들일수록 오히려 소홀이 여길 줄 모른다는 생각에서 몇 가지 일들을 글로 옮긴다. 먼저 병문안에 대해서이다. 병원에서 환자를 면회하는 시간은 환자가 병상에 누워 있어야 하는 상태라면 5분이나 15분이 충분하다. 베개를 높이 하고 몸을 반쯤 일으키고 있거나, 침대 위에 일어나 앉아 있을 수 있어도 10분 정도가 적당하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20~30분이 적당하다. 어쩌다 환자가 문병객을 오래 잡아 두려고 해도 그대로 받아들여서 오래 머
수행자가 수행에 어려움이 있을 때 은사 스님과 편지 왕래로 이야기해야 할 때가 있다. 은사스님이 아니면 가까운 어른 스님, 아니면 도반을 상대로 이야기해야 할 때는 편지를 나누는 것만큼 좋은 일이 없다. 그러나 요즘 수행자들을 보면 예상외로 편지 쓰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은사 스님께 편지를 쓰는 것은 우선 첫머리에 그때의 시기를 적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계절 이야기로 시작하거나 천재지변과 같은 모든 이들의 어려운 상황을 적어도 된다. 이렇게 쓴 다음 어른 스님이면 “그간 법체 청안 하십니까?”라는 안부와 주변 사람들의 안부를 물은 다음 편지를 올리게 된 용건을 말씀드리면 된다. 그리고 내내 법체청안 하시라는 안부도 빠트리지 말아야 한다. 편지 봉투를 쓸 때에는 우표를 붙이는 쪽
산중 사찰의 해우소는 절 입구에 있다. 해우소는 더러움으로 인하여 청정함을 배우는 곳이기도 하다. 객을 맞이하는 지객스님의 바른 예절과 바른 말씨는 신도로 하여금 스님을 공경하게 하는 예절을 배우게 한다.단월(시주자)이 절을 찾아 왔을 때 우선 법당에 부처님을 참배하도록 안내하고 정중한 말씨로 용건을 물어 안내하는 것은 기본이다. 처음 절을 찾은 신도에게 처음부터 이것저것 개인의 사적인 일부터 묻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다. 약속된 장소가 있거나, 방이 있으면 바로 안내해야 한다. 사찰은 참배와 수행의 장소이므로 약속을 하지 않고 오는 일반적인 신도의 방문은 목적을 정확히 물어 참배 수행 기도를 할 수 있도록 안내해야 한다. 만일 스님이 원하면 소임을 맡은 스님께 안내하면 된다. 관광지 사찰은 으레
옷 입는 것과 인사하는 법은 가장 기본적인 것임에도 예법에 맞지 않게 행동하는 스님들이 많은 것 같다. 옷을 올바로 입지 않는 것은 승단의 전통성을 훼손할 뿐 아니라 자칫 승단의 세속화를 부추길 우려도 있다.스님들의 일상생활에서 입는 옷은 여러 가지가 있다. 예식과 법문, 법공양, 큰스님을 친견할 때 입는 가사와 장삼이 있고, 외출할 때 입는 두루마기와 동방, 도량 안에서 입는 바지와 적삼 등이 있다. 종단에서는 옷을 입는 스님들의 신분을 구분하기 위해, 비구·비구니는 가사색을 통일하고 따로 구분하지는 않지만, 식차마나니와 사미·사미니에게는 동전이나, 소매 끝에 다른 가사색 천을 표시해 입게 하고 있다. 이는 갓 출가한 스님들을 구분하기 위한 방편이다. 스님들이 옷을 입을 때는 조심해야 할 부분이 많다.
출가수행자가 일상생활에서 대수롭게 여겨서는 안 될 두 가지 일이 있다. 그 중 하나가 불상에 대해 공경심을 갖고 결코 소홀히 여기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출가한 스님은 어떤 곳에 가더라도 불상이나, 그림, 또 큰방이나 작은 방이나 불상이 모셔진 곳이면 분별을 하지 말고 옷깃을 단정하게 여미고 절을 해야 한다. 또 부처님께 올릴 공양물이나, 법당에서 사용하는 물건을 옮길 때에도 항상 마음가짐부터 조심해야 한다. 법당에 들어서면 반드시 삼배를 하고 비로소 머리를 들고 우러러 보아야 한다. 뒷짐을 지고 두리번거려서는 안 되고 반드시 앞을 보고 바로 걸어야 한다. 팔을 흔들어도 못쓴다. 법당 안에서는 잡담하지 말고, 높은 소리로 웃지 말고, 높은 곳에 걸터앉아서도 안 된다. 주위에 침을 뱉지 말며, 벽에 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