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대사 '해골물' 설화 터에 지어진 평택 ‘원효대사 깨달음 체험관(관장 수도사 주지 적문 스님)’이 5월30일 개관 5주년 기념식을 개최한다.역사적인 곳을 지키고, 보존하며, 발전·계승시키자는 취지로 개최되는 이번 기념식은 1부 점안 법회, 2부 천안함 순직 장병 위령제, 3부 축하공연으로 이뤄졌다.원효대사 깨달음 체험관 관장을 맡고있는 평택 수도사 주지 적문 스님은 “역사적인 의미를 깨닫는 시간과 더불어 국가를 위해 희생한 천안함 장병들을 위로하는 자리도 함께 마련했다”며 “종교를 초월해 많은 분들이 참석해 역사적인 유적지를 보
몇 년 전 이른바 ‘경허논쟁’이 심하게 불붙은 적이 있다. 학술회의장에서 발표된 한 연구자의 논문이 발단이 되어 유력한 불교계 잡지의 정간 사태까지 발생했던 사건이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사태는 수습되었지만, 이 일은 우리 불교계의 학술담론 필요성과 그 방향성에 대해 함께 성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최근 원효 스님을 둘러싼 논쟁이 교계 한 신문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진정한 의미의 학술 담론이 사라져버린 현실에서 논자는 이들 기사를 반가운 마음으로 읽어보았다. 불교학의 발전 없이 불교의 발전을 기
서울 인사동에는 행인들에게 가훈이 될 만한 글을 붓으로 써 무료로 나눠주는 분이 있다. 글 내용도 다양해서 성인이나 철인들의 말씀, 고사성어, 그밖에 삶의 귀감이 될 만한 내용들을 골라서 써준다. 그중에는 부처님 말씀도 포함되어 있다.어느 날에도 나는 그분이 글을 쓰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때 육십쯤 되어 보이는 한 아주머니가 그분에게 다가가 부처님 말씀 가운데에 좋아하시는 글이 있으면 한 장 써 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러자 그분은 흔쾌히 아주머니의 부탁을 승낙하고 숙달된 솜씨로 불경 한 구절을 한자로 써내려갔다. 가만히 보니
평택 불교계가 원효대사의 중흥을 꿈꾸며 부처님 오심을 찬탄했다.평택불교사암연합회(회장 적문 스님, 수도사 주지)는 4월21일 평택 서부문화회관에서 부처님오신날 봉축법요식을 봉행했다.‘세계와 함께하는 평택문화, 평택불교(원효·혜초)의 중흥을 꿈꾸며’라는 주제로 열린 봉축법요식은 1부와 2부로 나눠 진행됐다. 1부는 삼귀의례, 반야심경 봉독, 명법사 합창단 찬불가, 소외이웃돕기 공양미 10kg 500포 전달, 발원문 낭독, 사홍서원 순으로 실시됐다. 2부에서는 부처님 오심의 기쁨을 다양한 공연으로 표현했다. 청보리예술단의 춤, 너른들사
화쟁사상의 원류를 찾아 원효대사의 삶을 거슬러 올라가는 순례가 이번엔 일체유심조를 깨달은 경기도를 찾는다.조계종 백년대계본부 화쟁위원회(위원장 호성 스님)는 “4월20~21일 원효의 발자취를 좇아 경기도 일원을 순례한다”고 밝혔다.이번 원효순례 경기편은 지난해 11월 경주, 경산 일원을 돌아보며 원효대사의 출생부터 입적까지의 삶을 통찰했던 원효순례의 시즌 2다. 경기편은 ‘원효와 나, 원효의 길에서 나를 만나다’를 주제로 깨달음의 공간을 느끼는 과정으로 구성됐다.순례단은 원효대사가 중국 당나라 유학길에 올랐다가 해골물을 마시고 일체
수도사의 원효깨달음 체험관에 ‘발심수행’의 내용을 문화콘텐츠로 가공한 ‘원효학당’ 프로그램을 새로이 만들 수 있다. 원효의 많은 저서가 있지만 어린이부터 일반 대중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눈높이에 맞는 텍스트는 ‘삼국유사’나 ‘발심수행장’이 최적이 될 것이다. 비종교인과 외국인에 이르기까지 원효를 알리고 그의 생애와 사상을 쉽게 전달하려면 두 텍스트만한 것이 없다. 이 또한 여러 가지 멀티미디어를 활용하여 재미와 의미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한다.수도사 원효 깨달음 체험관 원효학당 프로그램과 관련된 ‘일체유심조’를 초중고 청소년을
원효대사가 물을 마셨다. 간밤에 시원했던 감로수는 깨고 보니 해골물이었다. ‘모든 것은 마음이 결정한다’고 깨달았다. 그 가르침을 선양하고 있는 경기도 평택 포승읍 수도사는 원효대사 오도성지로 널리 알려졌다. 그리고 사찰음식에 담긴 ‘수행자의 정신’도 되살리고 있다. 원효대사가 해골물로 한국불교사에 큰 가르침을 남겼다면, 수도사는 한 그릇의 사찰음식으로도 불법을 전하고 있는 셈이다.수도사 경내에는 한국전통사찰음식문화연구소가 있다. 소장이 수도사 주지 적문 스님이다. 스님은 사찰음식 본질이란 ‘수행자의 음식’임을 고집(?)한다. 원효
“심생즉종종법생(心生則種種法生) 마음이 생기면 가지가지의 법이 생기고, 심멸즉감분불이(心滅則龕墳不二) 마음이 멸하면 가지가지의 법이 멸한다. 삼계유심만법유식(三界唯心萬法唯識) 삼계가 오직 마음이요, 모든 현상이 앎에 기초한다. 심외무법호용별구(心外無法胡用別求) 마음 밖에 아무 것도 없는데 무엇을 따로 구하리.”원효대사가 해골에 든 물을 마시고 깨달은 경계다. 마음에 따라 생하고 멸하는 모든 일들을 단박에 깨친 그 환희를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는 전시실이 있다. ‘평택 원효대사 깨달음 체험관’이다.체험관은 원효대사가 의상 스님과 두
체험관 곳곳은 원효대사의 발자취를 좇는다.원효대사 일생을 기록한 전시실과 요석공주와 아들 설총, 당나라 유학길에 함께 올랐던 의상 스님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입구에 막 들어서서 오른쪽은 ‘깨달음을 나누다’를 테마로 좌선실이 자리했다. 입구 왼쪽의 안내데스크를 지나면 원효대사의 일대기가 한 눈에 들어온다. 좌우로 ‘어둠속에 빛을 밝히다’ ‘세상에 빛을 밝히다’를 주제로 원효대사의 일심, 무애, 화쟁사상이 글과 그림으로 다가온다. 오른쪽으로 꺾어 들어가면 원효대사의 유학길 코스가 큰 지도와 함께 전시돼 있고, 원효대사와 관련된 국내
한국불교문인협회(회장 선진규)와 화성문화원(원장 고정석)이 ‘제2회 화성불교문화유적 학술발표회’를 4월7일 오후 1시 화성시 서화성농협 대강당에서 연다.1971년 4월15일 사적 제217호로 지정된 화성 당성(당항성)은 원효대사(617∼686)가 인근에서 중국 당나라 유학길에 해골물을 마시고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깨달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원효대사는 이후 유학을 포기하고 귀향해 신라불교를 중흥시켰다. 학술대회는 원효대사를 중심으로 화성시의 향토유적, 사료 등을 발굴하고 선양하기 위해 마련됐다. 선진규 한국불교문인협회
의상 스님은 험난한 해로로 입당해(661년) 이듬해 장안 종남산 지상사에 당도하였다. 원효 스님과 헤어진 후 지상사에 이르는 도중에 의상 스님의 심경에도 큰 변화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것은 원효 스님과 함께 현장 스님을 찾아가려던 발걸음을 지엄(600~668) 스님에게로 돌렸기 때문이다.원효와 의상 스님 유학 시도현장 스님의 명성에 큰 영향원효 스님과 도중 헤어진 뒤의상 스님 심경 크게 변한 듯입당 후 지엄 스님 명성 듣고종남산 지상사서 문하에 입실중국, 각종 학파와 종파 형성화엄종 등 13개 종파가 확립수나라 때 창건
삼국시대 말기에서 통일신라 초기로 이어지는 시기에 걸쳐 활동했던 스님들 중에 ‘삼국유사’에서 가장 비중 있게 다룬 스님은 아무래도 자장(590~658), 원효(617~686), 그리고 의상(625~702) 이렇게 세분을 먼저 손꼽을 수 있겠다. 비록 자장율사는 신라가 백제를 점령한 660년 직전에 입적하셨지만 활동 연대의 일정 기간이 원효, 의상 스님과 겹쳐 서로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의상 스님 당에 들어간 연도삼국유사에 두 개로 기록 돼650년 배 타고 당에 갔다가670년 당 침공 알리러 귀국당으로 떠날 때 원효와 동행원효 해골물
한국불교문인협회(회장 선진규)와 화성문화원(원장 고정석)이 원효성사 탄신 1400주년을 기념하는 제1회 화성불교문화유적 학술발표회를 4월22일 오후 1시 화성시 남양읍 롤링힐스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연다.1971년 4월15일 사적 제217호로 지정된 화성 당성(당항성) 원효성사(617∼686)가 인근에서 중국 유학길에 해골물을 마시고 크게 깨달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학술대회는 원효성사를 중심으로 화성시의 향토유적, 사료 등을 발굴하고 선양하기 위해 마련됐다.‘원효사상과 화성당성’을 주제로 권탄준 금강대 명예교수가 좌장을 맡는다
원효 스님 오도성지로 알려진 전통사찰에 깨달음 체험관이 문을 연다. 평택 수도사(주지 적문 스님)는 4월21일 오전 10시30분 경내 ‘평택 원효대사 깨달음 체험관’에서 개관식을 개최한다. 총 사업비 28억7000만원(국비·시비 포함)이 소요된 ‘평택 원효대사 깨달음 체험관’은 총 면적 1051㎡(317평) 규모다. 현대건축물과 한옥양식으로 조성됐으며 멀티미디어를 활용한 첨단전시실, 토굴체험실, 회랑, 안마당·사랑마당 등이 구비됐다. 주변 공원과 휴게시설도 배치됐다. 체험관 조성은 2006년 평택시와 단국대 매장문화재연구소 학술조사
원문 : 이 마음이 곧 부처이며, 부처가 곧 중생이다. 중생이라고 해도 이 마음은 줄어들지 않으며, 부처가 된다고 해도 이 마음은 늘어나지 않는다. 6바라밀과 만행의 공덕을 본래 구족하고 있으므로 굳이 수행해서 얻는 것이 아니다. 인연을 만나면 베풀고, 인연이 다하면 곧 고요해질 뿐이다. 만약 이 마음이 반드시 부처라는 사실을 믿지 않고, 형상에 집착해 힘써 정진해서 뭔가 구하려고 한다면, 이는 망상에 빠진 것이요, 도와는 어긋난다. 세상 모든 것 마음이 만들어마음변화 따라 세상 움직여일상 그대로 불교적 삶이요깨달아 있는 부처로서의
굴속에 자리를 편 의상 스님은 몸과 마음을 정갈히 한 채 앉았다. 들려오는 건 바위덩어리를 때리는 바닷물 소리뿐이었다. 한 터럭의 번뇌조차도 허용치 않는 용심과 청심으로 7일을 보낸 후 새벽 바다 위에 앉았던 자리를 띄웠다.원효암서 1패 당한 의상 스님 의상대선 한 수 위 법력 보여의상 스님 ‘자리’ 띄운 그 파도붉은연꽃암자 아래서 ‘처얼썩’의상 스님이 해안절벽의 굴속에 좌복을 깔고 가부좌를 튼 연유가 있다. 당나라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직후 관세음보살의 진신이 이 해변의 어느 굴 안에 상주한다는 전언을 들었기 때문이다. 서역(西域
무등산에 주석하고 있는 원효 스님을 만나기 위해서 갔다. 1400년 전의 신라사람 원효. 원효 스님을 대하자마자 내가 삼배 하고나서 슬쩍 눙쳤다.중생 도탄 빠지게 한 삼국전쟁반드시 중단해야 한다는 지성인신라사회에는 단 한명도 없어해골물 마시고 깨달았다는 말훗날 사람들 지어내 잘못된 것첫날밤엔 시체 넣어놓은 땅막 알지 못하고 고단해 달게 자이튿날 자면서 귀신에 시달려잠못이루다 새로운 세계 각성요석궁에 연금이 되고 나서는승려라는 신분 거추장스러워자유자재한 존재로 거듭난 것▲원효 스님께서 신라 백제 고구려 삼국전쟁이 한창일 때 시장에 나
한국의 불교 연구에서 원효(元曉 617~686)가 점하는 위치는 특별하다. 우선 한국불교사상의 첫 번째 장을 펼쳐 열었던 인물이 원효라는 점은 누구도 부정하기 힘들 것이다. 그만큼 근현대기의 한국불교 연구사에서 원효는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아이콘과 같은 인물이었다. 이것은 동시에 그의 사상이 한국이라는 토양을 넘어 보편적인 경계를 획득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원효가 이 땅에서만 추앙되고 전승되었던 인물이 아니라, 중국과 일본을 아우르는 동아시아 세계 전체에서 전승되고 연구되어 왔다는 사실이 그것을 증명한다. 최남선이 193
인간은 진실을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낸다. 이야기는 철학만큼 심오하다. 그래서 간화(看話), 즉 에피소드를 읽는 기술이 개발되었다. 신화학자 죠셉 캠벨은 할머니 무릎에서 듣는 이야기와, 복잡 정교한 철학, 황당해 보이는 신화가 기실 같은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고 증언한다.한국불교가 나가야할 길은선사처럼 경전 외면하거나학자처럼 박제화하지 않고불교지식 인간화 주력해야원효는 내외전 모두에 정통어떤 틀에도 얽매이지 않아생명이 이끄는 대로 사는 게지혜 완성하는 길임을 역설1. 똥과 물고기“원효는 혜공에게 자주 불경의 뜻을 물었다. 둘이 시내를
부처님께서 입적하시기 직전 아난존자가 여쭸습니다. “부처님께서 돌아가시면 저희들은 누구에게 의지해야 합니까.” 부처님은 “자등명법등명(自燈明法燈明)하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자등명을 법등명 앞에 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자등명은 ‘자신의 등불을 밝혀 그 빛을 따라가라’는 뜻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미 45년간 법을 설하셨기에 그 법대로 살면 되는데, 왜 자등명을 먼저 언급하셨겠습니까. 여러분들은 여기서 ‘스스로’에 방점이 찍혀있다는 것을 깨달아야합니다. 내면에 있는 자등의 소리, 자등의 불빛에만 의지하더라도 우리 인생은 충분하다는 것입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