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 순응하는 삶에서겸손·공경의 미덕 배워무분별한 현대문명으로변질되는 모습 안타까워 ▲디지털 문명시대에 티베트는 더욱더 관심과 사랑을 받을 수 있다. 사진은 관광객들 앞에서 티베트만의 전통적인 문화와 역사를 춤과 노래로 표현하는 뮤지컬의 한 장면이다. 지금 티베트 전역에서는 이방인들에게 현대화된 방식으로 티베트 알리기에 주력하고 있다. 히말라야 오지 속에 숨어있는 티베트가 주는 매력은 무엇보다 문명세계에서는 좀처럼 발견할 수 없는 거룩하고 성스런 ‘자연환경’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곳(티베트)에 진입하려면 숨을 헐떡거리는 고산증을 감수해야 한다. 처음 이방인들이 티베트에 와서 놀라는 것은 해발 4000미터 상공에 펼
샹그릴라는 中도심 풍경노년층의 전통 고집에도젊은 층 한족 문화 수용문화적 혼란 갈수록 극심 ▲티베트에서 노년층은 외부세계, 즉 한족 혹은 이방인에게 여전히 경계심을 갖고 자기만의 정체성을 강조하려 하지만 젊은 층(어린아이 포함)은 부모가 생각하는 것에 상관없이 외부인(한족, 관광객 포함)을 적극적으로 접촉하고 받아들이고 있다. 국가나 민족의 정체성과 고유의 전통문화가 어떤 경로를 통하여 변화했는가를 알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여기에 대한 답변 중 하나는 외부의 몇몇 개념(요소)들이 강력하게 경계를 허물고 침투해 들어와 이전 개념, 즉 국가나 민족의 정체성, 객관적 문화특질(언어, 복식, 풍속, 종교적 사유체계)들을 대체하거
‘지상의 낙원’으로 불리던중국 운남성 티베트자치주한족·관광객 대거 유입으로티베트 탈정체성 급속 확산 ▲티베트인들의 언어와 복식은 그들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유지하는 방법 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샹그릴라현의 티베트인들은 경계를 허물고 들어오는 외부인들의 영향으로 그들의 언어와 복식을 벗어던졌고 심지어 정신적 토대인 불교사원마저도 외면하고 있다. 사진 속의 티베트인은 앞으로 사원에 보시 하지 않고 저축을 하여 개인 관광사업을 하고 싶다고 했다. 상상을 해보았다. 당나귀와 얼룩말은 서로 사랑할 수 있을까? 사랑해서 새끼를 낳는다면 그 종은 어디에 속하는 것일까? 말도 안 되는 상상이다. 그런데 최근 이런 상상 속의 일
해발 4000m의 넓은 초원서양·야크를 벗 삼아 살아가는티베트 유목민 어린이의 삶비문명화 됐지만 자연에 순응 ▲유목민의 삶을 살아가던 티베트의 초원사회는 오늘날 중국의 개방 정책으로 급격한 현대화를 겪고 있다. 자연에서 모든 것을 배우고 알아가던 하늘 위의 아이들은 이제 현대화된 학교를 다니고 부모와 떨어져 산다. 다와도 지금은 초원에서 내려와 학교를 다니고 있으며 대학은 북경으로 갈 예정이다. 저 파란하늘, 저 구름 속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어떤 이는 하늘 위의 구름을 열어 그 너머의 세계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해 하고 노력하는 과정을 불교공부이라고 말하고 선(禪)이라 했다. 이런 이야기를 받아들인다면 다와는 매일 ‘선’
험한 티베트 여행 함께한가족의 일화를 되새기면자식에 남길 최고 유산은부모와 동행한 추억일 뿐 ▲ 티베트의 고원에서 아이들은 아침에는 야크와 양, 저녁에는 별과 달을 친구삼아 즐겁게 논다. 영국의 세계적인 4인조 록밴드인 비틀스의 멤버였던 존 윈스턴 레논(John Winston Lennon)은 이렇게 회고 했다. “내가 다섯 살 때 어머니는 ‘행복’이 인생의 열쇠라고 말씀하셨다. 학교에 들어갔을 때, 커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묻는 문제에 ‘행복한 사람’이라고 답을 적었다. 학교에서는 내가 숙제를 잘못 이해했다고 했지만, 나는 그들에게 인생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부모가 자식에게 물려주는 유산 중 최고는 무엇일까?
활불은 종교적 영성 계승자세속적인 이유로 가짜 출현고급승용차 타며 정치 활동한 가정서 2~3명 나오기도 ▲오늘날 티베트 전역에서 가짜 활불의 출현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그들은 중국 정부와의 긴밀한 밀월관계 속에서 적지 않은 부와 명예를 축적하고 있다. 생전에 무소유의 길을 전파하셨던 법정 스님은 “내 소망은 단순하게 사는 일”이라며 “우리는 욕심의 땅에 서 있다. 그러니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고 돈과 권력에의 집착을 경계했다. 그런데 얼마 전 몇몇 스님들이 말년에 ‘돈’ 이 없으셔서 병을 치료도 못하시거나 심지어 비참하게 자살까지 한다는 안타까운 사연을 접하면서 ‘스님은 과연 돈이 없어야 하는 걸까? 최소한 있어야 한다면
청해성 공항서 만난 활불은젊다 못해 어리게 보일지경함께 차타고 사원 도착하니신자들 고개 숙인 채 맞이해 ▲‘니종사’에서 활불의 시봉을 맡고 있는 라마승과 함께. 그는 자동차(車) 운전부터 식사 준비까지 모든 것을 도맡아 처리하고 있었다. 너무 젊지 않나? 청해성(靑海省)의 한 공항에서 비밀스럽게(?) 접선 한 활불은 너무도 젊은, 죄송스럽지만 심지어 어리게 보였다. 그는 청해성 옥수티베트자치주(玉树藏族自治州)에 위치한 니종사(尼宗寺)의 책임자이자 환생자이다. 지도교수의 소개로 나는 이 분이 거주하시는 사원에서 2주간의 생활을 허락받았다. 공항 출구로 나오니 건장한 라마승 한명이 차를 미리 가지고 나와서 우리를 반겼
즐공 사원은 백교의 종주천장 전통 고스란히 계승작은 동굴서 만난 활불짧은 만남이었지만 감명 ▲즐공 사원에는 황금지붕을 가지고 있는 특별한 법당이 있다. 이는 대만의 티베트불교 신자가 8000만 원 정도를 기부해서 만들어진 것이라 한다. 즐공 사원에는 매우 흥미로운 전설을 간직한 법당이 따로 있다. 바로 대웅전 뒤편에 지붕을 황금(?)으로 휘감은 휘황찬란한 이름 모를 법당이다. 법당의 간판에는 ‘라예티(拉耶替)’라고 쓰여져 있고 그 옆에 나무 기둥에는 흐릿한 글씨가 박혀져 있는데 ‘단멸생왕악취지문(斷滅生往惡趣之門)’이라 쓰여 있다. 현생의 악업을 끊어주는 문이라? 그런데 정말 황금일까? 도무지 궁금해서 법당을 지키는 라마승에게
화장실도 없는 백교사원배설 문제로 고통 겪다활불이 전해준 가르침에마음 돌리고 자연에 순응 ▲‘즐궁곰빠’ 사원에서 필자의 의식주 어려움을 해결해주었던 라마승들과 함께. 불편하다. 지금 당장 배 속의 똥을 해결해야 하는데 하지 못하고 있다. 벌써 3일째다. 그런데 이곳은 아무리 둘러봐도 화장실 모양새를 한 건물은 보이지 않는다. 여기도 인간사는 세상인데 스님이라고 안 싸고 살 수 없는 법. 순간, 법당 귀퉁이에서 모습을 드러낸 한 스님이 걷는 모양세가 좀 이상하다. 저 폼은 화장실을 찾는 전형적인 몸의 형태다. 그런데 스님이 걸어가다가 갑자기 땅 바닥에 그냥 주저앉았다. 스님의 얼굴이 잠시 상기되고 힘을 준다는
윤회·환생에 대한 질문에활불은 긴 호흡 끝에 설명현생의 자아가 미래를 결정매일 선업 쌓아야하는 이유 ▲티베트인들에게 있어서 ‘활불’은 죽음에 대한 친절한 가이드이다. 침을 꼴깍 삼키며 질문을 던졌지만 상대방은 대답이 없다. 침묵이 한동안 계속됐다. 이럴 때는 어찌해야 하는가? 겸연쩍은 표정과 미안한 기색으로 화제를 바꾸어야 하는가? 아님 대답이 나올 때까지 빤히 쳐다보아야 하는가? 내 질문이 너무 노골적이었는지 활불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둘러서 해주셨다. 활불이 먼저 물었다. “매일 커피를 마시나요? 주로 무슨 커피를 드시나요?” “저는 한국산 맥심 커피! 입에 쩍쩍 달라붙는 게 죽여요~ 스님!” 활불은 내 표정과 손짓이
홍교 사원의 유일한 활불초라한 행색에 다소 실망 이방객에도 친근함 가득내친 김에 궁금증 쏟아내 ▲ 고일패(古日) 홍교사원의 활불이 자신의 제자가 피살당한 것을 가슴아파하며 종교의례를 지내는 장면. 2008년 11월23일, 드디어 만났다. 이분을 뵙기 위해 얼마나 많은 물리적 시간과 육체적, 정신적으로 공을 들였는지 모른다. 활불, 티베트인들이 숭상하고 존경하는 깨달은 자, 그는 환생으로 이 땅에 다시 재림한 인간이요 신이다. 그런데 이제야 고백이지만 첫 인상은 상상했던 구도자의 모습이 아니어서 내심 의아했다. 아니 이 분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갸름한 얼굴에 기름기 있어 보이는 콧수염. 볼품없는 뿔테 안경 그리고 나이가
1980년대까지 흑수현은외부와 단절된 자치지역전통 생활방식 잘 유지돼 1988년 외부 도로 완공 후한족 대거 유입되며 개방화감춰진 티베트 문화 드러나사원·활불 접할 기회 생겨 ▲ ‘화후’는 야크와 양들의 천국이다. 이곳의 야크와 양 그리고 초지는 티베트인들의 먹거리를 해결해주기도 하지만 대초원과 함께 공생하는 친구이기도 하다. 여름방학이 되자마자 필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동)티베트를 탐방하고 왔다. 사단법인 우리는선우가 기획 및 주관을 맡아 40여 명의 불교신자들과 해발 3000미터 이상의 티베트 초원과 성스러운 사원들을 둘러보았다.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에는 티베트 불교이야기(주로 天葬)와 처음 맛보는 대자
흑수현 활불 소식 듣고2년에 걸쳐 면담 시도활불 만나러 가는 길은티베트불교문화의 보고 ▲랑무스(木寺)가는 길에 만난 티베트 여인. 오늘날에도 랑목스에 가면 천장(天葬)의 장례풍속을 생생히 확인할 수 있으며 티베트인들이 신성시여기는 ‘독수리’를 볼 수 있다. 가끔 수업 시간에 학생들로부터 엉뚱한 질문을 받는다. 예를 들면 이렇다. “정말 하늘이 파랗고 밤에는 수박만한 별들이 쏟아지나요? 티베트는 정말 독립을 원하나요? 티베트의 냄새는 어떤가요? 그리고 그곳의 스님들은 법력이 높아서 축지법을 쓴다면서요? 정말인가요?”이런 식이다.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목에 힘을 주고 이렇게 말한다. “가봐! 직접 가보면 알게 돼! 가서 초원을
▲ 2011년 티베트망명정부의 총리로 선출된 롭상 상가이를 축복해주고 있는 달라이라마.. 활불세습 고민한 달라이라마2011년 선거 통해 총리 선출369년 만에 정치·종교 분리 비폭력 투쟁 향한 비판에도원칙 지키려는 무언의 노력망명티베트계 일관된 태도에中도‘쿤둔’귀환 문제 고민 1997년 필자가 대만국립정치대학교(臺灣國立政治大學校) 민족연구소에서 유학했던 시절‘중국의 민족문제’란 수업을 수강한 적이 있다. 당시 첫 번째 이슈와 논쟁거리는‘티베트의 독립은 가능한가’였고 두 번째 토론주제는‘티베트에서 과연 정교(政敎)분리가 가능한가’였다. 이는 오늘날의 표현으로 환언하자면 티베트는 1959년 이전 자신들만의 집단상
달라이라마, 97년 미 의회서“티베트 독립보다 자치 필요”인민군 철수·인권보장 요구중국과 입장차 커 협상 중단 ▲ 지난 2008년 11월 중국 사천성 아바 티베트자치주 흑수현에 위치한 고일패 사원에서 백교의 활불(사진 가운데)과 함께한 필자(사진 맨 왼쪽). 이 활불의 수제자는 2008년 4월 티베트 시위 때, 흑수현 거리에서 공안에게 총에 맞아 숨졌다. 2008년은 티베트나 중국정부의 입장에서 매우 긴장되는 한 해였다. 바로 베이징 올림픽이라는 커다란 국가행사를 앞두고 티베트와 중국정부가 첨예한 무력시위를 벌였기 때문이었다. 2008년 3월14일, 기다렸다는 듯이 티베트 라싸에서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다. 400
‘티베트는 중국 일부’ 주장에 일국양제·자치 등 대응하며 국제 사회 여론 조성에 주력 역사적 이유와 입장의 불일치 속에서 달라이라마와 중국정부는 오늘날까지 공생의 조건으로 몇 가지 중요한 타협안을 가지고 협상을 해오고 있는데 시기별 이슈와 쟁점은 다음과 같다. 제1단계(1978~1985):1978년 12월28일, 중국의 등소평(鄧小平, 1904~19 97)은 미국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공식적으로 달라이라마에게 대화의 신호를 보낸다. “달라이라마는 언제든 조국으로 돌아올 수 있다. 그러나 중국공민의 신분으로 돌아와야 한다. 우리는 단지 하나만을 요구할 뿐이다. 바로 애국이다.” 이 신
티베트 불교 중심으로 한독립 지역이라는 인식이중국에 대한 반발 출발점 얼마 전, 미국의 저명한 티베트학자가 쓴 책의 한국어판 번역본에 대한 서평을 요청받았다. 책의 내용과 쟁점은 날카로웠고 동의하는 부분도 많았으나 아쉬운 점도 있었다. 그러나 내심 정말 반가웠던 것은 언제가 국내 학술세미나에서 필자가 발표했던 내용이 이 책의 어떤 부분과 비슷한 논조와 시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인데, 사실 당시 나는 어떤 문학하는 교수로부터 “티베트와 달라이라마를 그렇게 폄하하고 있다”며 핏대를 올리고 혼자 열변을 토하더니 문을 ‘꽝’ 닫고 나가버린, 그런 봉변(?)을 당한 기억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필자의 기억이 맞다면 그
개인·국가의 대소사 모두무사의 결정·기원에 의지 왕권 옆에서 권력 극대화상장 의식도 적극 주관해 ▲원시부락과 씨족사회에서는 대부분 씨족의 족장이나 부족의 수령이 무사의 직무, 즉 제사장의 신분을 맡았다. 그들은 신권을 부여받았으며 부족사회의 중요한 안건을 장악하고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인정받았다. 즉 하늘과 통할 수 있고 아래로는 민의를 감지해 길흉화복을 예지하고 악귀를 몰아내며 고약한 질병으로부터 구제할 수 있는 주술을 겸비한 신의 대리인이다. 사진은 중국 사천성 이현 강족마을서 만난 본교도의 마지막 후예. 티베트 원시종교 속에서 인간의 죽음은 단순한 생명의 종결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람은 모두 영혼을
하늘·땅·지하 세계에각각의 신 있다고 믿어 사회적 명망 높은 무당들귀족 결탁해 왕실 공격도 ▲티베트에서는 하늘, 땅, 지하의 삼계에 각각의 신이 있다고 믿었다. 특히 신들은 비, 우박, 눈사태, 가뭄 등 자연 현상 뿐 아니라 인간의 질병과 길흉화복 등도 결정하는 존재로 여겨졌다. 그래서 신이 살고 있는 산은 두려운 존재이자 경배의 대상이 되었다. 사진은 티베트인들이 신성한 산으로 여기는 카일라스산. 본교 주술의 한 장면을 감상해보자. 어두운 방에서 본교의 주술사는 혼자서 시체와 마주하고 있다. 이 시체는 죽은 지 3일이 채 안 됐다. 시체에 생기를 불어넣기 위해 주술사는 시체 위에 엎어져서 입을 마주 대고 두 팔
자연에 대한 민중의 공포재앙 막는 주술로 달래며 본교 巫師들이 특권 점유 영혼공동체의 핵심 형성 ▲광범위한 군중 기반을 구축하고 있던 본교는 티베트불교 형성 초반에도 대체 불가능한 운명공동체의 중심이 있었다. 사진은 중국 청해성에 위치한 옥수티베트 자치주 본교사원. 생명체는 태어나면 반드시 죽는다. 인간에게도 가장 두렵고 무서운 대상이 바로 ‘죽음’이다. 그러나 인간은 언제부터인가 동물과 달리 생물학적 죽음이라는 단계를 뛰어넘어 또 다른 문화적인 해석을 갖게 되었다. 살아 숨 쉬는 육체 외에 보이지 않고 알 수도 없으나 이 모든 것을 초월할 수 있는 존재인 ‘영혼’을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