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4일부터 21일동안 매일 3000배를 하게 될 성주(왼쪽), 승연(가운데), 소영이. 이들은 초등학생임에도 수년 째 매일 수백배를 하고 삼천배도 거뜬히 해내는 베테랑 수행자들이다. 부산 영도초등학교 5학년 최소영(13) 양은 겨울방학이 시작된 지 며칠 되지 않았지만 눈코뜰새 없이 바쁩니다. 오랜 여행을 떠나기 앞서 꼭 읽어야 할 책들이 있고 숙제도 조금은 해놔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에도 소영이를 온종일 두근거리게 만드는 게 있습니다. 그건 긴 여행에 대한 부푼 기대감이 아니라 ‘내가 정말 21일간 잘 견딜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랍니다. 몇년 째 매일 108~300배 지난 여름 소영이가 제주도 법성사로 처음 삼천배 21일 정진을 떠날 때만 해도 조금은 자신이 있었습니
어제-오늘 햇빛 같으니 새해는 처음부터 없어 유위-무위 세계 허물 때 걸림없는 삶 향유 60여년 체득한 法 길 떠난 후학의 등불 간절함 상실하면 나태함만 낳아 묘엄 스님은 화엄경에 담긴 ‘믿음이 도의원천’이라는 말을 전하며 “나태함을 버리고 간절한 마음으로 정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느 날 청담 스님이 속가 딸인 묘엄 스님에게 물었다. “니, 중 된 거 후회 안 하나?” “예, 스님. 후회 안 합니다.” “그라믄 끝까지 중노릇 잘 할 자신 있나?” “예, 스님.” “그럼 됐다.” 스님은 두 눈을 지그시 감으며 빙긋이 웃었다. 수원 광교산 중턱에 자리 잡은 봉녕사에서 묘엄 스님을 만나 독자를 위한 새해 덕담을 청하자 스님은 미소부터 지어 보이셨다. 순간, 묘엄
총무원장 지관 스님과 불자가수회 김흥국 불자가 반갑게 악수를 하고 있다. 불자가수회(회장 김흥국) 임원진은 12월 27일 오전 10시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을 예방했다. 이날 자리에는 김흥국 회장을 비롯해 불자가수 김활선, 남강수 작곡가이자 불자가수회 사무국장 선선호 씨 등 8명이 참석했으며 불자가수회 임원진은 총무원장으로 선출된 스님의 취임을 거듭 축하했다. 김흥국 회장은 “사실 불자가수회가 재정적으로 상당한 어려움에 처해있지만 회원들의 돈독한 불심으로 유지하고 있다”며 총무원장 스님의 각별한 관심을 부탁했다. 이에 대해 총무원장 지관 스님은 “불자가수회의 역할이 불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며 “앞으로 힘닿는데 까지 도움을 주겠다”고 말했다. 이날 총무원장 예방
1982년 오랜 방황을 하고 있던 김인경 교수는 우연히 친구를 따라 간 선방에서 평생의 스승인 종달 이희익 선사를 만났고, 그의 푸른 안광은 김 교수로 하여금 평생 참선수행자의 길을 걷도록 했다. 조선대 미술대학 김인경(慧頂, 53) 교수는 미술계의 주목받는 중견 조각가다. 해남 대흥사의 초의 스님 동상도 그의 작품이며 특히 지난해에는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 선정하는 2004 올해의 예술상 시각예술부문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그가 개인 선원까지 마련해가며 20년 넘게 참선정진을 하고 있는 선객임은 그리 알려져 있지 않다. 특히 『무문관』 48관문을 모두 투과한 참선의 ‘고수’라는 사실은 더욱 그러하다. 중견작가이자 참선 ‘고수’ 김 교수가 수행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지난 8
13년간 매일 절-능엄주 정진 (주)광신에어텍 박 병 규 회장 부산에 거주하는 (주)광신에어텍 회장 박병규 (66, 복호)씨는 오전 6시, 눈을 뜨면 제일 먼저 거실로 향한다. 원상 앞에 향을 하나 사르고 예불대참회문을 부르며 절을 하기 위해서다. 13년 째 매일 300배와 능엄주 3독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박 회장은 울산에 있는 회사에 출근해서도 별도로 마련한 기도실에서 목탁을 치며 업무의 시작을 알린다. 백련암과 그 말사인 부산 고심정사 등에서 법회나 재가 있는 날에는 한 시간 일찍 일어나 아내와 함께 장을 보고 채소와 과일을 한가득 차에 싣고 절로 향하는 일도 예사다. 매일 300배-능엄주 3독 중견 중소기업을 이끌면서도 정진을 거듭하는 활기찬 미소의 박 회장은 사실 20여 년 전까지
인도 북부의 다람살라를 찾는 한국인 불자라면 누구든지 한번은 꼭 만나야 하는 한국인 스님이 있다. 한국 스님이면서도 세계 최고의 현자이자, 관세음보살의 화신으로 추앙받고 있는 달라이라마로부터 ‘텐진 최꺕’(護法)이란 법명을 수지한 청전 스님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다람살라에서 달라이라마의 가르침을 받들며 올해로 꼭 18년 째 수행하고 보시하며 보리도를 따르고 있는 ‘코리안 멍크’(korean monk) 텐진 최꺕은 다람살라에선 한국 불자들의 큰 형님으로 통한다. ‘다람살라의 큰 형님’ 텐진 최꺕이 큼지막한 선물 보따리를 들고 서울 땅을 다시 밟았다. 5년간의 각고의 노력 끝에 완간한 『깨달음에 이르는 길』을 들고서, 이 책의 원제목은 『람림체모』, 우리말로 풀어 쓰면 『
전주시 외곽에 자리 잡은 완산구 삼천동. 널찍한 논밭을 지나 산기슭에 자리 잡은 이곳은 시내라는 말이 머쓱할 정도의 전형적인 농촌이다. 현대화가 비껴간 좁고 굽이진 마을길을 따라 터벅터벅 오르다보면 끝자락께 덩그러니 놓인 집이 나온다. 바로 황규성 씨가 사는 곳이다. 황 씨는 불혹을 훌쩍 넘긴 마흔 다섯 노총각으로 어머니와 단 둘이 산다. 가진 거라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손바닥만한 밭떼기와 허름한 집, 거기에 한 팔마저 없는 황 씨지만 요즘 그는 누구보다 행복하다. 어머니의 허리가 비록 깊이 굽었음에도 여전히 정정하고 뒤늦게 시집간 유일한 여동생이 잇따라 예쁜 조카 둘을 낳았기 때문이다. 또 누가 있건 없건 늘 오래된 습관처럼 읊조리는 염불이 황 씨를 깊고 그윽한 행복으로 이끌고 있는 까닭이다.
“그동안 격려에 고개숙여 감사” “연예인불자로서 모범 보일 것” 먼저 부족한 제 글을 읽고 동감하고 응원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어느덧 법보신문 지면을 통해 여러분들과 만나는 마지막 글입니다. 지면을 통해 불자님들과 만난 시간은 그 어느 때보다 즐거운 기억이었습니다. 최근 제게는 기쁜 소식이 연일 들려옵니다. 중앙신도회가 명원문화재단 김의정 이사장을 회장으로 맞아 힘차게 도약했습니다. 우리 도반, 불자들이 거는 기대가 상당합니다. 얼마 전 우연히 불교방송 ‘무명을 밝히고’를 통해 김 회장님이 여러 가지 계획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특히 ‘신도회관’을 건립하겠다는 계획은 참으로 신선하고 하루빨리 이뤄지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하나의 건물에서 불교계 신행단체와
보살은 비심(非心)으로 보시에 전념해 재물이 없을 경우라도 남이 구걸하는 것을 보면, 차마 말하지 못하고 눈물을 떨군다. 괴로워하는 사람을 보고도 눈물을 흘리지 않고서야, 어찌 수행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겠는가? 보살의 눈물에는 세 경우가 있다. 첫째는 공덕을 닦는 사람을 보면 사랑하고 존경하는 까닭에 눈물을 흘린다. 둘째는 괴로움 받는 중생의 공덕 없는 자를 보면 가엾이 여기는 까닭에 눈물을 흘린다. 셋째는 큰 보시를 행할 때에 비희용약(悲喜踊躍)하여 또한 눈물을 흘린다. 보살이 떨구는 눈물을 헤아릴 양이면 사방의 바닷물보다도 많을 것이다. (大丈夫論) 11월 20일 논산 육군 훈련소. 일요법회를 맞아 훈련병 3천여명이 법당 앞에 집결했다. 순수 자비로 마련한 던킨 제품의 빵 6천여개와 3천여병의
부산에서 재가 불자들의 수행도량 ‘금정선원’을 운영하는 대명화 정숙녀 보살(52). 호탕한 웃음으로 대중을 이끄는 그는 범어사 선덕 대정 스님을 지도법사로 모시고 50여 명의 불자들에게 참선 수행을 지도하고 있다. 정진 시간에는 숨소리마저 들리지 않을 정도로 고요한 금정선원이 휴식 시간에는 가족의 온정이 피어나듯 정다운 미소로 가득하다. 불자들에게 정 씨는 선원 운영자이기 이전에 주부의 애환과 고민을 함께 나누는 도반이자 인생 상담자이기 때문이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정 씨는 경남 고성에서 유년과 학창시절을 보냈다. 졸업 후 정 씨가 대기업에서 근무할 당시만 해도 삶에 대한, 존재에 대한 고민은 관심 밖이었다. 정 씨의 삶이 180도 달라진 것은 직장을 그만두고 결혼을 하면서부터다. 10년간
불자연예인-스포츠스타 관심가져 대중 포교 첨병으로 활용 하시길… 으아! 산과 들에는 단풍이 절정을 이루는 가운데 주말을 이용해 등산과 마라톤, 자전거, 축구 등 운동하기 좋은 계절입니다. 요즘은 여기저기 문화생활을 즐기며 특히 책을 가까이 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이렇게 좋은 계절, 우리 불교계에는 제32대 조계종 총무원장에 지관 큰스님이 선출됐습니다. 모든 분야가 선의의 경쟁을 하고 최선을 다하듯 반드시 경기가 끝나면 함께 어깨춤을 춰야 합니다. 그래야 화합이 이루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스님들께서는 분명 그 모습을 보여주시리라 의심치 않습니다. 우리 방송계도 가을 개편이 한창입니다. 살아남는 자가 있고 집으로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아쉬워하며 종(終)파티도 합니다. 저는
사마타 정진 없이 위빠사나 수행 못해 중음세계 없고 식물은 윤회할 수 없어 초기불교 수행의 강국인 미얀마에서도 최고의 수행자로 손꼽히는 파욱 아친나 사야도(70)가 최근 방한했다. 서울 홍원사가 개최한 국제학술대회에 참가하고 또 직접 호흡관을 중심으로 한 집중수련을 지도하기 위해서다. 파욱 사야도는 최근 널리 확산돼 있는 마하시 계통의 위빠사나 지도자가 아니라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하지만 미얀마를 비롯해 세계적으로 널리 확산돼 있는 사마타 수행의 ‘절대 고수’라는 점에서 큰 관심을 모았다. 위빠사나가 몸, 느낌, 마음, 마음의 대상이 변함을 관(觀)하는 것이라면 사마타는 호흡 등 특정한 무엇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러나 마하시 계통에서 사마타를 그리 중요시 하지 않는 것과는 달리 파욱 사야도는
새 수행공동체-귀농 센터 모델 창출에 진력 직접 식물종자 배양…화훼-축산-작물 실험 “시농선(示農禪) 거사/ 논밭 없다 하소연 마소/ 대불전(大佛田) 소불답(小佛畓) 참선밭이니/부지런히 소나 몰고 들바람 쏘이게” 동국대학교 목정배 명예교수는 최병호 법사의 포부를 듣자마자 그 자리서 ‘농선’이라는 법명을 내렸다. 농선(農禪). 선가의 선농일여(禪農一如) 내음이 짙게 배인 법명이다. 농선 최병호 법사(42세)는 지금, 11월의 늦가을 들녘을 거닐며 봉화 희방산 자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마음껏 들이키고 있다. 경북 봉화 상운면 하눌리 마을에 웅지를 튼 지 10년. 농선 법사가 선농의 원력을 세운 것은 중학교 1학년 때다. “허리가 굽고 무릎이 아파 어쩔 줄 모르는 할아버지, 할머
“짙어가는 노을을 보면 그대 모습이 생각나네…” 벌써 늦가을로 접어들면서 이제는 아침 저녁으로 벌써 쌀쌀합니다. 겨울을 준비해야 할 것 같습니다. 거리에 낙엽이 뒹굴고 붉은 단풍이 물드는 계절 으아! 제가 기러기 아빠라 그런가요? 으아~ 제가 무지하게 올 가을을 타는 것 같습니다. 으아! 그러나 이럴 때 일 수록 우리가 문화·스포츠를 즐겨야 합니다. 여기저기 공연도 많고 가을축제 가을 운동회도 열립니다. 지금은 웰빙시대입니다. 자신의 건강을 위해 꾸준히 노력해야 합니다. 얼마 전 청계천에 새로운 한강시대가 열렸습니다. 맑은 물일 흐르고 물고기가 놀고 숲이 조성되고 많은 사람들이 몰립니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이 달라지고 아이들의 교육에도 좋고 산책하기 좋고 숨쉬기 좋은, 좋은 나라 한국으로 발전의 발전을 거듭
천태종이 군종장교 운영대상 불교종단 및 학교지정에 대한 국방부의 불분명한 태도에 강한 불만을 표시하며 태도를 분명히 할 것을 요구했다. 천태종 사회부장 무원 스님은 10월 26일 기자간담회를 자청 “지난 9월 9일 국방부에 군종정책의 형평성을 묻는 질의서를 보냈으나 아직 답변이 없다”며 국방부의 소극적 태도에 문제를 제기했다. 무원 스님은 “국방부에서 행정적으로 처리하면 될 일을 조계종과 타협하고 합의하라고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라며 “국방부가 조계종 국방부는 아니지 않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무원 스님은 이어 “국방부가 애매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서, 일정부분 정리할 필요가 있다”며 “계속해서 애매한 태도를 보인다면 행정소송을 내서라도 국가가 제 역할을 하도록 할 것”이라는 입장을
지난 10월 19일 한국을 방문한 우 자띨라 사야도는 미얀마 위빠사나를 전 세계에 전파한 마하시 사야도의 제자다. 간화선 위주의 한국불교 정서 속에서의 우 자띨라 사야도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지난 1988년 서울 승가사를 방문해 위빠사나 수행을 전함으로써 우리나라에 미얀마 위빠사나 수행의 씨앗을 심은 스님이다. 스님의 한국 방문은 올해로 두 번째. 세계 각지에 500개의 분원을 운용하고 있는 마하시 선원에 주석하며 세계 각지서 운집하는 수행인들을 지도하고 있다. 마하시 선원을 찾는 수행인만도 매월 300여명. 그러나 스님은 한국 불자들에 대한 남다른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스님 스스로 우리나라에 처음 위빠사나 수행을 전파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우리나라 수행인들의 심지 굳건한 발심 때문이다.
박종린 씨는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는 것은 나와 부처님이 둘이 아님을 확인하는 길이자 아미타부처님의 원력에 의지해 내가 부처님이 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말한다. 대기를 모아 잡아 비틀면 물이 줄줄 흐를 듯이 습한 96년 6월의 어느 날, 동국역경원 편찬차장 박종린(50·덕암) 씨는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기 위해 고향 청도로 향했다. 식민지와 전쟁, 혹독한 가난 속에서 5남매를 키워야 했던 어머니. 지나친 고생으로 젊은 시절부터 몸이 좋지 않았지만 몇 해 전부터 부쩍 심해진 관절염은 박 씨의 어머니를 밤낮 없는 통증으로 몰아넣었다. 박 씨는 그런 어머니에게 염불을 간곡히 권했다. 어머니는 아들의 당부대로 염불을 시작했고, 그 뒤 박 씨가 어머니를 찾을 때도 늘 염불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얼마나
‘사생의 어버이이신 거룩한 부처님께 간절히 비옵니다. 저의 말 한 마디, 저의 작은 움직임 하나, 저의 어설픈 사랑 한 움큼마저도, 그분들에게 생명의 감로수가 되게 하시고, 그늘진 마음에 따사로운 햇살 되게 하시고, 내 작은 가슴 그들에게 따뜻한 언덕이 되게 하소서. 질병으로 인하여 고통과 슬픔, 절망과 두려움 속에서 방황하는 그들의 마음속에 당신의 자비가 깃들게 하소서.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어둠이 가시지 않은 이른 새벽. 능행 스님의 기도소리가 정토마을의 정적을 깨운다. 교계 유일의 독립형 호스피스 시설 정토마을은 더 이상 생명을 이어갈 수 없다고 선고받은 사람들이 모여 마지막을 준비하는 곳으로 늘 스님의 기도로 하루가 시작된다. 죽어가는 사람들이 새로운 생을 시작하는 자비의 도량인 이
저는 얼마 전 불자라는 사실이 참으로 자랑스러웠습니다. 법장 스님의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말이죠. 법장스님과는 (사)생명나눔실천본부 초대 홍보대사를 하면서 인연을 맺었습니다. 키가 크시고 인물도 좋으시고 인자하시고, 항상 웃음을 보이시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죠. 그런데 갑자기 이른 새벽, 핸드폰 문자를 받았는데 법장 큰스님이 열반하셨다는 것입니다. 전 그 소식이 믿겨지지 않았고 저 또한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죠. 아마 이천만 불자들이 모두 저와 같은 마음으로 슬픔에 잠겨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상을 하러 조계사를 찾았고 절을 하는 순간 저는 너무나 허무함을 느꼈습니다. ‘세상에 이럴 수가!’ 그런데 9시 뉴스를 보는 순간, 저는 또 한 번 놀랐습니
성철 스님 입적을 계기로 본격적인 수행자의 길을 걷고 있는 심전 김창열 법사는 ‘진실한 마음 하나만 있다면 안 될 것은 없다’고 강조한다. ‘1993년 11월 4일 오전 7시 30분, 해인사 퇴설당에서 성철 스님 입적.’ 삶의 이정표를 성철 스님 가르침에 두고 살았던 부산의 한 청년 불자에게 이 소식은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청년은 해인사 백련암을 수없이 오갔지만 정작 성철 스님을 친견하지 못했다는 안타까움과 자책으로 가슴이 터질 듯 고통스러웠다. 해인사로 단숨에 달려간 청년은 일주일간 스님의 가장 가까이서 장례식의 온갖 수발을 자청했다. 성철 스님을 살아생전 눈으로만 뵙는 것이 만남의 전부는 아니다. 바로 지금 내 안에서 바른 공부만 이어진다면 언제 어느 때든 스님을 만날 수 있을 것 아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