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 짓지말고 선 받들란 말에 헛웃음만 터뜨리던 백거이 ▲일러스트레이터=이승윤 언젠가 사촌동생이 제법 진지한 표정으로 이렇게 물은 적이 있다. “형, 불교에서는 궁극적으로 어떻게 살라고 가르쳐요?” 서울에서 목회를 하는 목사님의 질문이니 쉽게 대답할 수 없는 노릇이다. 공연히 시비가 생길까 싶어 염려스러웠다. 그래서 어물쩡 넘길 속셈으로 웃으며 말했다. “그걸 어떻게 간단히 말할 수 있겠니.” “저처럼 불교를 전혀 모르는 사람도 공감할 수 있는 표현으로 간단하게 한번 말씀해 보세요.” 가볍게 아래로 내리는 눈초리와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를 보아하니, 다행히도 투견의 자세는 아니었다. 그러니, 피하기만 하는
신통력이란 말에 놀란 스님들 찻집 노파 일상심으로 깨우쳐 희한한 언행으로 혹하는 것은불교에서 말하는 신통과 무관 ▲일러스트레이터=이승윤 몇 년 전, 한 해가 저무는 이맘 때였다. 찬바람에도 아침마다 아버지를 찾아오시던 갈말 할아버지가 하루는 대뜸 나에게 말을 거셨다. “자네, 내 올해 토정비결 좀 봐주게.”“저, 그런 거 모르는데요.”“불교공부를 했다면서 그것도 몰라!”재작년 여름, 첫 손자를 본 이모가 들뜬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애기 이름 좀 지어줘라.”“손자 이름은 할머니가 정을 담뿍 담아 지어줘야지. 아님 아버지가 짓든지.”“제대로 지어야지. 관운에 재운까지 팔자가 술술 풀리게.”“나 그런 거 모르는
불법 이치는 누구나 알아도실천 없으면 공덕 입지 못해 말로 세상사람 지도하는 스님뱃사공이 물속 처박아 깨우쳐 ▲일러스트레이터=이승윤 멀리서 벗이 찾아왔다. 욕망과 열정이 뒤엉킨 젊은 날을 함께 보내며 불교공부를 한 사이니, 보통 인연이 아니다. 공자님 말씀대로 기뻐해야 마땅할 텐데, 맘이 무거웠다. 깊게 패인 팔자주름이 미간에 여전하고, 억지웃음 너머의 씁쓸함이 입가에 여전했기 때문이다. 털어놓는다고 풀어질 근심이 아니란 걸 그가 잘 알고, 고단한 짐을 나눠질 역량이 없다는 걸 나 역시 잘 아니, 둘 사이에 특별한 기대란 있을 수 없다. 그래도 친구랍시고 멀리까지 찾아와주었으니, 한 잔 술이 빠질 수 없다. 우수수 지는
산 생명 제물로 받는 조왕신에 본성이 찰흙임 알게 해 깨우쳐 ▲일러스트레이터=이승윤 찬비에 후드득 지는 낙엽이 낯설질 않다. 봄이면 싹트고, 여름이면 무성하고, 가을이면 낙엽지고, 겨울이면 말쑥한 일기(一期)의 순환, 어느 생명체도 거부할 수 없는 자연의 법칙이다. 그 언저리에서 봄·여름보단 가을·겨울이 더 익숙한 걸 보면, 나도 이제 삶의 쓸쓸함을 알 나이가 되었나보다. 그래서일까? 이젠 웃음보다 눈물이, 만남보다 헤어짐이 익숙하다. 모든 건 인연 따라 모였다 인연 따라 흩어진다 하신 붓다의 말씀, 역사와 문화의 장벽을 넘어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는 만고의 진리이다. 그 한 구절에서 ‘모임
번뇌 없애고 열반 찾는 것은 몸을 버리고 그림자 찾는 꼴 ▲일러스트레이터=이승윤 소외(疏外)의 시대라고들 말한다.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음식점과 술집에 넘쳐나는데도 다들 외롭다고 말한다. 손뼉을 치고 농담을 주고받으면서도 “내 곁엔 아무도 없다”고들 아우성이니, 그런 걸 보면 이웃이란 얼굴의 거리보다 마음의 거리가 중요한가보다. 하긴 몇 년에 한 번을 보아도 늘 어제 본 듯한 사람이 있고 사흘이 멀다 하고 만나도 늘 낯선 사람이 있는 걸 보면, 정말 그렇다. 소통(疏通)이 필요한 시대라고들 말한다. 참 많은 말들을 하고, 전화에 문자메시지, 스마트폰의 카톡으로 밤잠까지 설치면서도 다들
훔친 물건 쌓아두고 으스대면 도둑놈·파렴치한으로 비웃음 ▲일러스트레이터=이승윤 장명 스님 토굴에 일거리가 많단다. 오래 비워두었던 탓에 얼어터진 수도계량기와 고장 난 펌프, 깨진 변기를 교체하고 이제 뒷마무리만 남았단다. 여름철 익힌 노가다실력을 뽐낼 요량으로 간만에 신이 났다. 해서 오지랖 넓게도 대뜸 도와드리겠다고 나섰다. 빨간 고무 다라와 물통, 삽과 흙손, 연탄창고를 만들고 남은 블록 스무 장, 작은 손수레를 차에다 실고 지례 철물점에 들러 시멘트몰탈 네 포를 사고, 보일러실 깨진 유리를 대체할 합판과 실리콘도 구입했다. 그리고 바퀴가 내려앉은 묵직한 차를 끌고서 아내와 함께 거창과 함양을 돌아 산 높고
공의 바다서도 시비와 득실우열과 승패는 의미를 상실 ▲ 일러스트레이터=이승윤 산산한 바람에 단풍이 곱다. 이맘때면 꼭 혼자서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 맘이야 네팔도 가고 싶고 칠레도 가고 싶지만, 가장이라는 족쇄에 밥벌이라는 항쇄까지 찬 죄인에게 그만한 자유가 허용될 리 없다. 헛헛한 계절병을 다스릴 요량으로 아쉬운 대로 황악산을 올랐다. 회자정리(會者定離)를 새삼 가르치고 싶은지 낙엽은 사방으로 흩어지고, 처량한 나그네 꼴에 손가락질하듯 비까지 추적거린다. 그래도 아직은 고운 빛깔이 여전하겠지 싶어 애써 나뭇가지사이를 더듬거려보지만, 어찌된 일일까? 고개가 힘없이 자꾸 숙여진다. 곱고 빛나던 인연은 몽땅 추억으로 사라지고 옹
담장이 스스로 목욕물 데운 건자기몸 자유자재 사용함 증거 ▲ 일러스트레이터=이승윤 일요일 아침, 밥상머리에서 아들 녀석과 실랑이가 벌어졌다. 발단은 슬그머니 내민 공납금 통지서였다. “아빠, 30일까지 내래.”“너 아빠한테 빚 많이 진다.”“무슨 빚?”“그냥 혼자서 쑥쑥 자랐냐? 먹이고 입히고 학교 보내느라 너에게 들어간 돈이 얼만데.” 새벽별 보고 나가 저녁별 지고 들어오는 고단한 아들 녀석과 간만에 부자유친(父子有親)의 살가운 관계를 회복할 요량으로 농담이랍시고 한마디 던졌는데, 이 녀석 눈빛이 발끈한다. “아빤 그런 것도 계산해?”“분유 값 영수증부터 공납금영수증까지 차곡차곡 모아 놨다
선사는 밤하늘 별보다 다양한희로애락을 한마음으로 규합 ▲ 일러스트레이터=이승윤 늘 검사를 받으며 살아왔다. 어린 시절에는 엄마 아빠가 시험관이었다. “때치, 하지마.”“어이쿠, 내 새끼 잘했어.” 그 덕분에 궁금증으로 덥석덥석 달려들던 버릇은 어느새 엄마 아빠의 눈치를 보는 버릇으로 바뀌었다. “엄마, 이거 해도 돼?”“아빠, 어떻게 해야 돼?” 학교를 다니고부터는 선생님이 시험관이었다. 선생님이 동그라미를 치면 옳은 것이고, 선생님이 가위표를 치면 틀린 것이었다. 즉 오답의 결정권자는 선생님이니, 문제의 답은 문제 자체보다 그 문제를 낸 선생님의 머릿속에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칠판
생명체 특성은 뜨겁고 차가움개인 인생사에 적용해도 무방 젊어서는 누구나 뜨거운 삶조용히 늙는것도 아름다움 ▲일러스트레이터=이승윤 간만에 대구 처형 댁이 왔다. 온 김에 감주 처이모 댁에 들러 보잔다. 골짜기를 몇 개나 돌아 자동차가 지나는 길 끝자락, 하늘만 빠꼼한 그 동네 어귀에 사시사철 몸빼를 걸치는 처이모님이 한결같은 웃음으로 서계셨다. “어여들 와.” 아들네들이 꼭꼭 채운 냉장고를 훌훌 털어 거하게 점심을 먹고 커피까지 한잔씩 마셨는데도 이모님은 뭘 더 먹여야 성에 차실 눈치다. “아이 야들아, 여 술상 좀 봐 와라. 사우들 왔는데 한 잔썩 해야지.” 대낮의 술판도 부담스럽지만 턱까지
무업, 마조 덕분에 한 생각 바꿔 강의 파하고 평생 조용히 살아 제 그림자에 놀람은 망상 때문내달리지만 말고 반조도 해야 ▲ 일러스트레이터=이승윤 인터넷을 뒤지다 ‘산이조아’라는 분의 글을 읽고 한바탕 크게 웃었다. “6개월에 걸쳐 ‘장자’를 읽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소박하게 살아라.’ 두 마디로 요약하면 ‘나대지 말고 소박하게 살아라.’ 세 마디로 요약하면 ‘설치지 말고 나대지 말고 소박하게 살아라.’” 동감이다. 긴 시간 부처님 말씀과 조사들의 어록을 읽은 소감을 밝히자면 나 역시 이렇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조용히 살자.”두 마디로 요약하면 “헛짓거리 하지 말고 조용히
억세고 추한 검정소도 소지만순하고 귀한 하얀 소만은 못해 당신이 본래 부처라고 한 말은 당장 붓다처럼 행동하라는 뜻 ▲ 일러스트레이터=이승윤 추석이다. 많은 사람과 한자리에 모이는 명절이면 늘 듣는 꾸중이 한 가지 있다. “너, 아직도 담배 피우냐.” 살을 덧붙이면 “불교공부 한다는 놈이 그것 하나 절제하지 못하냐”는 말씀이고, “백해무익한 담배도 끊지 못하면서 꿀처럼 달콤한 욕망과 폭풍처럼 거센 분노를 어찌 다스리겠냐”는 말씀이니, 사무치는 부끄러움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골백번도 더 다짐했을 게다. 허나 번번이 하루나 이틀을 넘기지 못했고, 까짓것 참아본 게 사흘이다.
“옛 종이 백년 뚫어봤자 못나가”신찬, 경만 읽는 은사에 쓴 소리 육근 벗어나면 본체가 드러나 허망한 인연만 여의면 부처님 ▲일러스트레이터=이승윤 등유 한 드럼에 27만원이란다. 여름 지난지가 언제라고, 덜컹 겨울걱정이 앞선다. 지난해 거금을 들여 창호를 교체하고 천정에 단열재를 부착해보았지만, 겨울을 보낸 소감은 에구 머니~ 였다. 돈이 들어가도 일정 소득이 있었다면 덜 억울했을 게다. 내복을 껴입고 방안에서 외투까지 걸치고도 기름을 열 드럼이나 썼으니, 팡팡 돌아가는 보일러 소리가 뒷골목에서 삥 뜯는 깡패의 협박처럼 들려 겨우내 불쾌했다. 그래도 방법은 있겠지 싶어 인터넷을 뒤졌다. 그러다 환경운동가들이
본정선사, 황제 앞서 한곡 뽑아아집에 갇힌 승려·대신들 경책 도, 복잡하고 거창히 설명말고강남스타일 처럼 쉽게 전해야 ▲일러스트레이터=이승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전세계인들이 그 음률과 율동에 열광하는 것을 보면 역시 음악의 힘은 대단하다. 대중의 마음을 뒤흔드는 매체 가운데 음악보다 폭발적인 파급력을 가진 수단은 아마 없지 싶다. 그래서일까, 종교의 영역에서도 음악은 대중의 공감을 이끄는 주요한 포교수단으로 사용되어 왔다. 불교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경전에는 수많은 게송(偈頌)들이 등장한다. 게송은 ga- tha- 의 번역어로 곧 노래라는 뜻이니, 불교집안 최고의 명
처처가 도량임을 제대로 알아주어진 상황 맞춰 최선 다해야 아만을 뿌리까지 뽑지 못하면 만물 평등한 자리 깨닫지 못해 ▲일러스트레이터=이승윤 광주 번듯한 아파트에 살던 학우형님네가 나주에 촌집을 마련했단다. 사촌이 땅을 사도 배가 아픈 법인데, 이건 배앓이 정도로 그칠 일이 아니다. 만사를 제쳐두고 기어코 전라도까지 길을 나섰다. 학우형님, 널찍한 테라스에 거창한 벽난로가 있는 전원주택은 싫단다. 뒷마당 대밭을 매일 들여다보게 쪽문이나 내고, 살던 이들의 냄새 지우기 싫어 비스듬히 기운 흙벽조차 허물지 않을 생각이란다. 나주 곰탕에 밥을 두 그릇이나 말아 후루룩 비우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한동안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이고불교 깔보며 기고만장 일관 태수로 좌천돼 울분만 쌓다 약산 물 법문에 깨닫고 웃어 ▲일러스트레이터=이승윤 사람들에게 부처님 가르침을 이야기하다 보면 늘 느끼는 게 한 가지 있다. 젊은 사람보다는 나이 든 사람이, 한창 잘나갈 때보다는 잘나다가 뚝 떨어졌을 때, 훨씬 잘 받아들이고 깊게 이해한다는 사실이다. 하긴 갖고 싶은 것도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많은 꿈 많은 청춘이 “인생은 고통의 연속이다”는 말을 쉽게 받아들일리 없다. 잔뜩 성취감에 부풀어 성공신화를 향해 달려가는 사람에게 “모인 것은 반드시 흩어지고, 얻은 것은 반드시 잃는다”는 김빠지는 말이 귀에 들어올리 없다
약을 잘못쓰면 없던 병 생기듯불법 잘못 이해하면 주변 불편 공은 삼독심 치유에 최고 명약항상 스스로 점검해 봐야 할 일 ▲일러스트레이터=이승윤 세간에 ‘우유주사’란 말이 화제다. 하얀 우유빛깔을 띤 마취제 ‘프로포폴’을 일컫는 말이란다. 이 약은 위내시경을 할 때 수면유도제로 사용된다고 한다. 기다란 호스가 목구멍을 치밀고 들어올 때의 역겨움과 통증을 경험하지 않도록 해준다니, 고통을 없애주는 명약임에 분명하다. 그런데 잠에서 깨어날 때 약간의 환각 증세를 보이는 경우가 있어 일부에서 오남용된 사례가 있고, 근래에는 사망사건까지 발생하였다. 이 기사를 접하면서 예전에 도신 스님과 나누었던 대화 한
空 을 철저히 수긍한 자에게만허용된 신통이 분수껏 사는 삶 방 거사, 이것저것 차별 벗어나본래의 평등한 자리 두 눈 목격 ▲일러스트레이터=이승윤 올 여름 더위는 유난스러웠다. 밤낮없이 푹푹 찌는 열기에 “홧김에 에어컨 샀다”는 이웃의 말이 실감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렇게 더위로 잠자리까지 설쳤는데 처서(處暑)랍시고 새벽녘 찬바람이 코끝에 감돌았다. 그 상큼함에 이부자리에서 뭉그적거리다가 싱긋이 웃었다. 드디어 탈출이다. “분수껏 살아야지”하고 스스로를 달래기는 하였지만 내심 에어컨을 사고 싶은 욕망에 시달리고, 얇은 주머니를 더듬거리며 경제적 열등감에 시달리던 터였다. 허니 나에겐 처서가 여름
목불 태운 단하의 파격 행보부처님 가르침인 공 깨달음 가변적 이름과 형상 얽매여혐오하고 공경하는 짓 말라 ▲일러스트레이터=이승윤 파격(破格), 선종(禪宗)을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하는 단어다. 선종의 특징이 ‘파격’으로 분류되는 까닭은 동북아시아가 긴 시간동안 명분(名分)과 격식(格式)을 중시하는 유교문화권을 형성한 탓도 있을 것이다. 서로 상반된 요소가 서로를 두드러지게 만든 격이니, 일종의 보색대비 효과다. 그럼, 유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불교만의 독특한 색깔은 무엇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바로 공(空)이다. 선가(禪家)에서 파격의 대명사처럼 거론되는 이가 있으니, 바로 단하 천연(丹霞天然,
무엇을 두고 ‘살아있다’하고삶과 죽음 경계선은 무엇인가 한자루 촛불 타다 꺼짐과 같아있다·없다는 모양과 공능일뿐 ▲일러스트레이터=이승윤 강남성모병원 중환자실. 하루 20분만 허용되는 면회시간을 맞춰 조카를 만나러 갔다. 비닐 옷을 입고 세정제를 듬뿍 바른 손에 다시 비닐장갑을 끼고 들어선 병실. 그곳에 백혈병으로 십년의 유형생활을 한 스무 살 조카가 누워있었다. 열 살 어린아이 몸집에 머리카락 한 올 없이 얼룩덜룩 검버섯이 핀 여든 노인의 얼굴, 수족관 물고기처럼 두툼하게 낀 백태에 시력마저 잃고 그 가녀린 목구멍에는 수도관보다 굵은 호흡기가 꽂혀 있었다. 삑~삑~ 심장과 혈관에 연결시켜 놓은 기계음과 숫자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