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물어 가는 늦가을. 억센 바위틈에 가는 뿌리 내리고 한여름 뙤약볕 견뎠던 산의 생명들이 울긋불긋 저물어갑니다. 가을은 체로금풍(體露金風)이라. 청명한 바람에 잔풀과 잎사귀 모두 털어버리면 그 자리에 오롯하게 진리가 드러날까요. 투명한 햇빛 받으며 월출산을 자애롭게 굽어보는 마애불 천년의 미소. 추워질수록 겹겹이 몸을 감싸야하는 우리네 삶의 아이러니가 더욱 불편한 가을입니다.
▲ 그렇게 앉아 있었다. 1000년을! 비 한 줄기 옷 주름 사이로 흐르고, 눈송이 한 점 어깨에 내려앉아도 영월의 무릉리 마애여래좌상은 그렇게 앉아 있었다. 지나가던 나그네, 합장 올린 수좌는 알아차렸을까. 천년 동안 전했던 그 한마디를. 100년 동안 한 자리에 머물렀던 소나무가 오늘 예를 올린다. 이제야 깨우쳤나 보다. 오후의 한적함을.
▲미황사에 노을이 들었다. 길게 드리운 태양의 붉은 한숨이 바다 너머로 조금씩 잦아든다. 긴 여름 부지런히 맑은 울림 들려주던 물고기도 바다로 돌아가고 허공에 매달린 풍경은 덩그라니 한가롭기만 하다. 한낮의 부산함도 노을 따라 시나브로 사라진 저녁. 부처님이시여, 우리네 삶도 이토록 고운 빛으로 저물도록 하소서.
▲장마가 잠시 숨을 돌린 한적한 여름날, 승보종찰 송광사에 붉은 백일홍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타는 듯 발갛게 물들어 사방으로 너울거리는 붉은 꽃들이 열 지어 걷는 스님들의 정갈한 침묵에 간신히 마음을 추스른다. 백일을 일념으로 피고 진다는 백일홍. 연봉우리 고운 문안의 풍경이 참으로 맑다.
▲ 불볕더위 도심 떠나 호젓하게 오대산 월정사 숲길을 걷습니다. 쪽빛 하늘 우뚝 솟은 전나무 시원한 그늘에 얼굴 담그니 마음까지 상쾌합니다. 부처님 공양에 차가운 눈 쏟은 소나무의 눈물. 그 참회 뒤로한 채 전나무들만이 천년을 하루같이 숲을 지켰습니다. 세월 갈수록 푸름을 더해가는 굳은 신심. 심연(深淵)처럼 그윽한 숲길의 끝에서 부처님 진신사리의 영롱한 빛이 적멸의 싱그러움을 일러줍니다.
▲ 방싯방싯 귀여운 손주 눈에 밟혀 부처님 앞에 섰습니다. 투박한 손 가슴에 모으니 애잔한 기도 더욱 간절합니다. 팍팍한 무릎 부서질 듯 아파도 결코 포기할 수 없어요. 아득한 옛날 옛적 임금님에게 아들 점지했다는 용미리 부처님, 자애로운 그 가피 저에게도 내리소서. 하늘은 부시게 투명하고 부처님 미소는 맑기만 합니다.
▲금정산 범어사 대나무 숲길. 청량한 그 길 따라 가부좌 풀고 행선(行禪)에 나섰다. 맑은 새소리에 숲은 더욱 숨을 죽이고 곧게 뻗은 대나무엔 푸른 결기 가득하다. 걸음 허허로워도 마음 안은 치열한 전쟁터. 언제쯤 화두 깨쳐 적멸의 즐거움 맛볼 것인가. 납자들이여, 가는 길 그대로 부처되어 돌아오소서.
▲통도사 서운암 산사에 벚꽃이 피었습니다. 눈송이 같은 새하얀 꽃들이 서리서리 날립니다. 눈부신 벚꽃의 향연에 장독대에도 따스한 봄이 들었습니다. 화려하게 피어나 이내 저버리는 벚꽃의 숙명이 장독대 진득한 인고의 시간 위에서 봄을 자축합니다. 벚꽃을 즐기기에 젊음은 너무 짧고, 장독 안 소식 알기엔 세월이 너무 더딥니다. 오늘은 눈부시게 아름다운 봄날입니다.
▲ 지리산 피아골 초입, 암울한 시절 빨치산 핏빛 낭자하던 연곡사에 황금빛 봄꽃이 화사하게 내려앉았다. 지난겨울 추위는 흐드러지게 핀 산수유나무 아래 추억으로 잠기고 감미로운 꽃향기에 취한 부처님이 살포시 문을 열어 향긋한 봄을 감상한다.
깨달음의 밝은 빛 밝혔던 석등에 등불 대신 소백산이 담겼다. 멀리 도량 너머로 겹친 산들이 하늘을 향해 아득하게 나아간다. 작은 네모 공간 안에 등불 대신 산을 담은 석등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다른 곳 보지 말고 앞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라는 무언의 경책, 아니면 우리네 작은 가슴도 석등처럼 넉넉히 세상 품을 수 있다는 간절한 가르침. 석등 안으로 시나브로 잦아드는 산과 하늘의 입맞춤이 참으로 멀다.
▲유난히 추운 겨울. 인적이 끊긴 순천 선암사의 늦은 오후. 절 한 켠 요사가 따뜻한 햇볕에 가물가물 잠긴다. 가버린 세월은 고졸한 나무 기둥에 자잘한 주름으로 남았고 가지런한 문살에선 정갈한 수행의 향기가 묻어난다. 방향을 달리한 신발은 어느 것이 바른 것일까. 가고 옴이 댓돌 위에서 한가지로 생사(生死)를 묻고 있다.
▲부시게 하얀 눈이 깃털처럼 대지에 내린 겨울날. 만복사지 오층석탑이 찬바람 맞으며 추위를 견디고 있다. 1000년도 유수 같아라. 남원 제일가람(第一伽藍)으로 그 많은 전각 허망하게 사라졌으나, 빈터에 홀로 남아 오히려 한가롭다. 금오신화 속 소설 만복사저포기의 가난한 선비 양생과 처녀 영혼과의 애틋한 사랑. 서리서리 눈 걷어내면 도량 어디쯤 못다 한 사랑 남아 있을까.
토끼털처럼 포근하게 하얀 눈꽃 내리던 날,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 새날이 밝았습니다. 적막한 겨울 산 찾아오는 이 없어, 돌에 몸을 부린 마애부처님도 호젓하게 명상에 들었습니다. 도선 스님이 하룻밤에 신통을 부려 모셨다지요. 그럼 신통을 부린 도선 스님은 어디로 가셨을까요. 마음이 맑아지면 알게 됩니다. 부처님은 언제나 그 자리에 계셨다는 걸. 과거에도, 현재에도, 그리고 오는 미래에도. 천년이 그렇게 밝았습니다. 날마다 희망 가득한 새날입니다.
▲풍경소리 고운 삼척 신흥사에 하얀 눈 자박자박 쌓이던 날, 절집 아궁이 모락모락 하얀 입김 뿜어낸다. 절집도 현대식으로 말쑥하게 차려입는 게 유행이라지만 춥고 배고파야 도심(道心)이 생긴다는 건 만고의 진리. 땔나무 그득하고 금강석 같은 신심이 변함없으니 추위여 번뇌여 올테면 와라.
계절은 겨울로 치닫는데 지팡이 하나 의지해 올라온 노보살님이 가쁜 숨 몰아쉬며 갓바위부처님을 향해 두 손을 모았다. 세상에 손만큼 정직한 게 또 있을까. 때론 안아주고 감싸주고 끌어주고, 때론 온갖 슬픔과 외로움의 눈물을 남몰래 닦아낸 것도 바로 저 손이었으리라. 세상의 모든 자식들에겐 늙은 노모의 저 고단한 손이 관음보살의 천수(千手)이자 말없는 자비법문이다.
#짙은 안개에 휩싸인 장성 백양사(白羊寺). 법당 뒤편 주렁주렁 매달린 감들은 곱게 안아 줄 임을 기다리고, 꽃보다 붉은 단풍은 스스로를 치장하며 세상과의 마지막 이별 준비로 분주하다. 그 마지막 잎새와 감 하나가 세상을 향해 화려하게 비상하는 날, 양털 같이 하얀 눈송이가 천지를 뒤덮어도 좋으리라.
#긴 하루 붉은 빛으로 지던 어느 날, 간절한 마음이 어둠에 젖어가며 기도를 올리고 있다. 무릎을 꿇고 두 손엔 염주를 쥔 채 눈물 그렁그렁 시린 눈으로 부처님을 바라본다. 무슨 사연 많아 적막한 산 홀로 내려가지 못하는 것일까. 아수라 같은 세월이 흐르고 흘러도 중생의 고통은 끊이지 않아 부처님은 오늘도 그렇게 졸린 눈 비비며 중생을 어루만지고 있다. 멀리 하늘은 붉은 빛으로 소멸하고 절벽에 뿌리내린 소나무는 말없이 미소만 짓고 있다.
싱그러운 가을바람에 콧속까지 상쾌해지는 산사의 오후. 황토로 예쁘게 몸단장한 흙담이 연지곤지 바르고 오는 가을을 반기고 있다. 한여름 무서운 폭풍우 피해 흙담에 얼굴 숨겼던 지붕이 파란 하늘을 향해 기지개를 켜고, 울긋불긋 물들어 가는 숲길 따라 가을이 시나브로 산사에 들었다.
#산중 암자를 휘감는 삭풍이 상처 입은 짐승처럼 사납게 울부짖으며 지나간다. 머리마다 촘촘히 눈꽃을 피워낸 겨울나무들은 번뇌의 살점을 깎아내려 애쓰는 여윈 수좌를 빼닮았다. 천길 낭떠러지에 나툰 미륵부처님의 엷은 미소가 홀연 봄볕보다 더 따사롭다. 하지권 작가는 『뿌리깊은나무』. 월간 『샘이깊은물』 사진을 찍으며 우리 것의 아름다움에 관심을 갖게 됐다. 해인사 팔만대장경판 디지털화 작업에 청춘을 보냈다. 불광출판사에 몸을 담고 우리나라의 불교문화를 기록하고 있다. 그 동안의 작업으로 『즐거운 소풍』, 『산사의 아름다운 밥상』, 『서울, 북촌에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