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 2017.5.30 화 17:50
연재
법륜 스님의 지혜로운 삶
김택근의 성철 스님 평전
나의 발심수행
채문기의 길따라 절에 들다
명법문 명강의
남수연 기자의 한국불교 비구니 리더
세심청심
김형중의 내가 사랑한 불교시
이수정 박사의 절터는 불교문화의 보고
법보신문 연중캠페인 불자답게 삽시다
대만 성운대사의 나의 인생 나의 불교
김형규의 불설과 언설
김용규의 숲에서 배우는 지혜
최원형의 불교와 생태적인 삶
불교는 나의 삶
우리동네 우리절
지역불교 구심점 사암연합회
김규보 기자의 불교학 리더에게 듣다
최호승 기자의 문인을 만나다
황순일의 원전 자타카
김정빈의 일화로 보는 불교
김성순의 지옥을 사유하다
철학자 이진경 선어록을 읽다
성원 스님의 나의 천진불
조정육의 불교의 발견
이병두의 사진으로 보는 불교
정진희의 사찰미술여행
최병헌의 한국역사와 불교
김권태의 마음을 읽다
오중철의 돈황벽화 감통설화
이제열의 파격의 유마경
강병균의 수학자가 본 금강경
정운 스님의 전심법요
포교사의 하루
신현득의 내가 사랑한 동시
재마 스님의 존재여행
주수완의 미술사학자와 읽는 삼국유사
불교작가를 말하다
성효 스님의 그림이 있는 선시
남수연 기자의 부탄 들여다보기
나의 신행일기
기사 (전체 19건) 제목보기제목+내용
[연재] 19. 만법귀일 일귀하처-상
어느 스님이 조주에게 물었다.현상·사물 하나로 설명하려는 시도서양에선 형이상학이라 말하지만하나의 원리 찾아내려는 노력은신학과 철학·과학이 다르지 않아“만법이 하나로 돌아가는데, 그 하나는 어디로 돌아갑니까?”“내가 청주에 있을 때 무명적삼을 한 벌 만
이진경 교수   2017-05-30
[연재] 18. 부처를 죽여서 사리를 얻겠다고-하
유머는 대개 웃음을 동반하고 웃음을 긍정한다. 그렇지만 유머는 단지 농담이 아니며, 유머감각이란 남들을 웃기는 말재간을 뜻하지 않는다. 유머란 차라리 웃음을 위해 무언가를 망가뜨리거나 웃음 때문에 무언가가 망가짐을 견디는 능력이다. 혹은 어떤 상황에서
이진경 교수   2017-05-23
[연재] 17. 부처를 죽여서 사리를 얻겠다고-중
이른바 ‘원시사회’에 대한 관찰 속에서 인류학자들은 ‘농담관계’와 ‘회피관계’라는 특이한 두 가지 관계를 찾아낸 바 있다. 그러나 농담관계란 단지 ‘농담을 주고받는 관계’를 뜻하지 않는다. 예컨대 멜라네시아에서는 젊은 남자의 경우 길을 가다 사촌을 만
이진경 교수   2017-05-16
[연재] 16. 부처를 죽여서 사리를 얻겠다고-상
단하 천연(丹霞天然)은 지존의 수준에 이른 유머 감각을 갖고 있었던 듯하다. 듣자마자 뇌리에 박혀 깊이 새겨진 ‘단하소불(丹霞燒佛)’이라는 유명한 공안이 그렇다. 단하가 혜림사란 절에 머문 적이 있는데, 어느 날 밤 혹독하게 추웠다고 한다. 하여 땔감
이진경 교수   2017-04-24
[연재] 15. 말해보라, 목구멍과 입을 닫은 채-하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선 침묵해야 한다.” 확고한 것을 추구하고 명확한 것만을 말해야 한다는 생각을 강하게 했던 젊은 시절의 비트겐슈타인이 쓴 책 ‘논리 철학 논고’의 마지막 문장이다. 불이법문에 대한 물음에 침묵으로 답했던 유마의 길을 여기서 다
이진경 교수   2017-04-18
[연재] 14. 말해보라, 목구멍과 입을 닫은 채-중
지극한 도란 말할 수 없는 것이란 생각은 단지 불법의 경우에만 해당되는 건 아니다. 알다시피 노자(老子)가 쓴 ‘도덕경’의 유명한 첫 문장이 바로 그렇다. “도를 도라 하면, 그 도는 제대로 된 도가 아니다(道可道非常道).” 서양의 신학에서도 이런 입
이진경 교수   2017-04-11
[연재] 13. 말해보라, 목구멍과 입을 닫은 채-상
‘벽암록’에서 원오 불과(圓悟佛果)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석가모니불이 세상에 출현하여 49년간 일찍이 한 글자도 설하지 않았다.”(‘벽암록’, 상, 250). 잘 알려진 것처럼 석가모니는 자신이 처음 깨달음을 얻은 직후, 그 위없는 깨달음이 너무
이진경 교수   2017-04-04
[연재] 12. 설법하는 고양이와 부처가 된 로봇-하
개에게 불성이 있다는 말은 개가 절에서 설법을 듣고 득도하여 부처가 되는 그런 게 아니다. 그것이야말로 불성이나 부처에 대한 아주 단순하고 고정된 모습(相)에 지나지 않는다. 개의 불성은 차라리 낯선 이를 보고 사납게 짖어대다가도 주인이 그에게 하는
이진경 교수   2017-03-24
[연재] 11. 설법하는 고양이와 부처가 된 로봇-중
불성(佛性)이란 ‘열반경’에서 처음으로 사용된 말이다. 글자 그대로 보면 부처의 성품, 즉 부처가 될 능력을 뜻한다. 이 개념을 본격적으로 발전시킨 것은 ‘대반열반경’인데, 이는 사람의 본성이 정해져 있다면서 주어진 자리를 지키며 주어진 일을 하라는
이진경 교수   2017-03-20
[연재] 10. 설법하는 고양이와 부처가 된 로봇-상
유정(有情), 정식(情識)이 있는 것을 뜻한다. 정식이란 정(情)과 식(識)이니, 감정이나 지각능력을 뜻한다. 따라서 유정이란 감정이나 지각능력을 갖고 있는 것, 대개는 생명체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한 말이다. 중생이라 번역되기도 했던 사트바의 번역어다
이진경 교수   2017-03-14
[연재] 9. 사람의 마음 어디에 부처가 있다고-하
매일매일의 생활, 하나하나의 언행을 산출하는 물결들이 바로 마음이다. ‘배고프면’, 혹은 ‘때가 되면’ 밥을 먹고자 일어나는 마음, 그때마다의 연기적 조건에 따라 만들어지는 마음이다. 부서진 신체의 표면에 떠오르는 마음은 그 부서진 신체를 조건으로 하
이진경 교수   2017-03-07
[연재] 8. 사람의 마음 어디에 부처가 있다고-중
프랑스의 작가 조에 부스케는 1차 대전에 참전했다 포탄을 맞아 하반신을 쓸 수 없는 불구의 몸이 된다. 이런 일이 일어나면 대개는 그 사고를 감당하기 힘들어 그나마 남은 목숨마저 끊어버리고자 하게 된다. “스무살에, 나는 포탄을 맞았다. 내 몸은 삶에
이진경 교수   2017-02-28
[연재] 7. 사람의 마음 어디에 부처가 있다고- 상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 사람의 마음을 곧바로 통찰하여 그 근원에 있는 부처를 본다는 말이다. 선불교 초기에 남종선을 특징짓는 교의였다. 경전이나 누구에게 들은 말로 배우는 게 아니라 자기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보아 깨달음을 얻는, 당시
이진경 교수   2017-02-21
[연재] 6. 한 물건도 없는데, 부처는 어디 있는가?-하
홍인과 혜능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시작된 선의 새로운 궤적은 흔히 말하듯 여래장 사상과 연속성을 이루는 것이라기보다는 여래장 개념과 거리를 두고 멀어지는 과정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단적으로 소의경전이 여래장 사상의 ‘능가경’에서 여래장 이전 경전인
이진경 교수   2017-02-14
[연재] 5. 한 물건도 없는데, 부처는 어디 있는가?-중
여래장 사상에 대해선 적지 않은 논란이 있다. 일본의 불교학자 마츠모토 시로(松本史朗)는 ‘여래장 사상은 불교가 아니다’라는 자극적인 명제로 유명한데, 이는 그의 저서 ‘연기와 공’에 붙인 부제이기도 하다. 주장의 요체는 “일체중생이 불성을 가지고 있
이진경 교수   2017-02-07
[연재] 4. 한 물건도 없는데, 부처는 어디 있는가?-상
어디든 무언가가 새로운 게 시작되는 지점을 표시하는 사건이 있게 마련이다. 선(禪)이 시작되는 사건은 어디일까? 양무제(梁武帝)를 만나 법을 펴 보려다 ‘모른다’는 말만 남기곤 소림사에 들어가 누군가 말려들 때를 기다렸던 달마대사의 9년간의 면벽(面壁
이진경 교수   2017-01-23
[연재] 3. 선사들은 왜 이리 과격한가?-하
아상이란 사실 얼마나 강고한가? 사라졌다고 믿는 순간에도 의연히 살아남아 우리의 신체와 정신을 사로잡고 있는 게 아상이다. 그러니 아무리 세심하게 설득하고, 아무리 진심으로 수긍해도 사라지지 않고 부서지지 않는다. 선사들의 언행이 파격적일 뿐 아니라
이진경 교수   2017-01-17
[연재] 2. 선사들은 왜 이리 과격한가?-중
학인의 전제, 자신이 속한 집단이 옳다고 믿고 있는 전제를 깨주는 선사들의 이 과격한 방법은 사실 불교의 근본에 충실한 것이다. 그들이 깨주려는 것, 자신이 옳다고 믿고 있는 전제란 바로 ‘아상(我相)’이기 때문이다. 아상을 내려놓는 것, 그것이 불교
이진경 교수   2017-01-10
[연재] 1. 선사들은 왜 이리 과격한가?-상
선어록, 다는 아니라 해도 이해할 수 없는 문답으로 가득 찬 책들이다. 불법을 전하기 위해, 도를 깨쳐주기 위해 선사들은 그렇게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사용했다. 왜 그랬을까? 그뿐 아니다. 그들이 주고받는 언행은 대단히 과격하고 파격적이며 극단적이다.
이진경 교수   2017-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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