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 2017.11.24 금 13:48
연재
법륜 스님의 지혜로운 삶
김택근의 성철 스님 평전
나의 발심수행
채문기의 길따라 절에 들다
명법문 명강의
남수연 기자의 한국불교 비구니 리더
세심청심
김형중의 내가 사랑한 불교시
이수정 박사의 절터는 불교문화의 보고
법보신문 연중캠페인 불자답게 삽시다
대만 성운대사의 나의 인생 나의 불교
김형규의 불설과 언설
김용규의 숲에서 배우는 지혜
최원형의 불교와 생태적인 삶
불교는 나의 삶
우리동네 우리절
지역불교 구심점 사암연합회
김규보 기자의 불교학 리더에게 듣다
최호승 기자의 문인을 만나다
황순일의 원전 자타카
김정빈의 일화로 보는 불교
김성순의 지옥을 사유하다
철학자 이진경 선어록을 읽다
성원 스님의 나의 천진불
조정육의 불교의 발견
이병두의 사진으로 보는 불교
정진희의 사찰미술여행
최병헌의 한국역사와 불교
김권태의 마음을 읽다
오중철의 돈황벽화 감통설화
이제열의 파격의 유마경
강병균의 수학자가 본 금강경
정운 스님의 전심법요
포교사의 하루
신현득의 내가 사랑한 동시
재마 스님의 존재여행
주수완의 미술사학자와 읽는 삼국유사
불교작가를 말하다
성효 스님의 그림이 있는 선시
남수연 기자의 부탄 들여다보기
나의 신행일기
태국 고대 불교왕국 수코타이·치앙마이 순례
김호성의 정토행자 편지
이숙희의 문화재를 감정하다
알랭 베르디에의 스리랑카 페라헤라 참관기
불교 학술세미나 지상중계
기사 (전체 42건) 제목보기제목+내용
[연재] 42. 병들지 않는 사람이 병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하
그런데 선가에서는 ‘병들지 않는 사람’에 대한 물음이 종종 등장한다. 대개는 병든 선사들에게 던져지는 물음이다. 가령 덕산이 병이 들었을 때, 어떤 학인이 물었다.고요함 얻으려고 소란 탓하는 게 ‘소란’아프거나 병든 몸 그대로가 부처이니부처 찾는 이라
이진경 교수   2017-11-21
[연재] 41. 병들지 않는 사람이 병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중
병이란 세균과 그들의 생존환경인 내 몸이 만나는 지점, 혹은 내 몸과 내 생존환경인 지구가 만나는 지점에서, 양자의 부조화나 불화가 드러나는 현상이다. 고통 또한 내 삶과 그것의 ‘환경’이라 할 연기적 조건의 만남에서 불화나 부조화가 드러나는 현상이다
이진경 교수   2017-11-14
[연재] 40. 병들지 않는 사람이 병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상
절마다 하나씩 있는 기념품점에서 파는 손수건이나 다포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글로 ‘보왕삼매론(寶王三昧論)’이 있다. 이 글은 명나라 때 스님인 묘협이 쓴 ‘보왕삼매염불직지(寶王三昧念佛直指)’ 중 제17편 ‘십대애행(十大碍行)’에서 나온 것이라 한다.
이진경 교수   2017-11-07
[연재] 39. 귀향, 혹은 부모도 태어나기 전 고향에 대하여-하
“부모도 태어나기 전 내 자신의 본래면목은 무엇인가”를 묻는 육조의 질문을 나는 이런 맥락에서 이해하고 싶다. 내 자신의 본래면목을 내 자신 안에서 찾는 것은 내가 갖고 있는 것, 내가 익숙해 있는 것에서 본래면목을 찾는 것이니, 언제나 아상(我相)이
이진경 교수   2017-10-31
[연재] 38. 귀향, 혹은 부모도 태어나기 전 고향에 대하여-중
고향이란 말에서 아직도 강한 그리움과 향수를 느끼는 이들은 실향민들일 것이다. 저기 멀지 않은 곳에 고향이 있지만 철조망보다 무시무시한 군사분계선 때문에 돌아갈 수 없는 이들. 혹은 이런저런 이유로 자신이 태어난 나라를 떠나 외국에서 살게 된 이들.
이진경 교수   2017-10-24
[연재] 37. 귀향, 혹은 부모도 태어나기 전 고향에 대하여-상
‘고향’이란, 지금도 귀향을 하게 하는 어떤 힘, 흔히 ‘그리움’이나 ‘정겨움’ 같은 것과 결부된 분위기가 함축되어 있는 말이다. 그래서 태어난 곳을 지칭하는 ‘본적지’라는 행정적 단어와 달리 고향은, 딱히 돌아갈 곳이 없는 사람조차 그리움의 뉘앙스를
이진경 교수   2017-10-16
[연재] 36. 분별없는 윤리학, 차별 없는 존재론-하
‘장자 만물이 모두 평등하다’는 장대한 존재론적 사상을 펼쳐 보여준다. 발가락 사이에 이어져 있는, 흔히 없는 살조차 군더더기로 여기지 않으며, 손가락이 갈라져 여섯 일곱이 된 것 또한 쓸데없는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장자’ 전편에 걸쳐서
이진경 교수   2017-10-02
[연재] 35. 분별없는 윤리학, 차별 없는 존재론-중
간택하지 말고 분별하지 말라는 말은 사실 동물인 우리로서는 정말 가능할까 싶을 만큼 어려운 일이다. 제 자리에 선 채 태양과 물만 있으면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는 식물과 달리 동물은 그런 능력이 없기에 먹이를 찾아 돌아다녀야 한다. 뇌는 그렇게 돌아
이진경 교수   2017-09-26
[연재] 34. 분별없는 윤리학, 차별 없는 존재론-상
조주 스님이 대중에게 법문을 했다.조주가 승찬의 ‘간택’ 부정했던 것은논리적인 역설 뒤엎어버리려는 의도말에 매이지 않고 실행하는 법 지도“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으니, 오직 간택을 하지 않으면 될 뿐이니라. 근근이 말하는 것이지만, 이 또한 간택이고 명
이진경 교수   2017-09-19
[연재] 33. 소나무에 앉은 학의 발밑이 한바탕 망신이지-하
굳이 유위적 세계를 파괴한다고 하지 않아도, 유위와 무위를 동렬에서 놓고 대비하게 되면 무위는 유위와 구별되는 반대개념이 되고, 유위를 배제한 별개의 영역이 되며, 그 결과 무위는 유위의 인위적 배제를 뜻하는 또 하나의 유위가 되고 만다. 손 대신 약
이진경 교수   2017-09-11
[연재] 32. 소나무에 앉은 학의 발밑이 한바탕 망신이지-중
고상하고 순수한 것을 추구하는 이들이 가장 쉽게 빠지는 함정은 그 순수한 어떤 것을 그렇지 못한 것과 대립시키고 따로 얻고자 한다는 점이다. 가령 쇤베르크에게 음악을 배웠고 음악에 매우 높은 식견과 섬세한 감각을 갖고 있던 아도르노는 대중음악은 물론
이진경 교수   2017-09-05
[연재] 31. 소나무에 앉은 학의 발밑이 한바탕 망신이지-상
사시사철 변함없이 푸른데다 품격 있게 뻗은 가지로 격조 있는 풍모 소나무, 그리고 그 가지 위에 고고하다는 말을 표상하려는 듯 긴 다리로 높이 올라 목을 더할 수 없이 길게 뻗은 학을 그린 송학도는 중국과 조선, 일본에서 오랫동안 그려져 온 그림일 뿐
이진경 교수   2017-08-29
[연재] 30. 아무것도 모르는 백치와 오직 하나만 아는 바보-하
이탈로 칼비노의 작품 ‘존재하지 않는 기사’는 백치와 바보에 대한 탁월한 소설이다. 이 소설은 도스토예프스키처럼 ‘백치’를 다루겠다는 생각은 없지만, 여기서 우리는 진정한 백치를 발견할 수 있다. 구르둘루라고도 불리고 오모보, 마르틴줄, 구디-우수프
이진경 교수   2017-08-22
[연재] 29. 아무것도 모르는 백치와 오직 하나만 아는 바보-중
‘장자’에는 최고의 경지에 이른 백치의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가령 설결(齧缺)과 문답하는 왕예(王倪)가 그렇다. 설결이 묻는다. “선생께서는 모두가 다 옳다고 동의할 무언가를 아십니까?(子知物之所同是乎)”“내가 어찌 그것을 알겠소.”“그럼 선생은 선
이진경 교수   2017-08-14
[연재] 28. 아무것도 모르는 백치와 오직 하나만 아는 바보-상
어리석음, 지혜에 반대되는 말이다. 누구나 어리석음을 멀리 하고 지혜를 얻고자 한다. 똑똑하고 현명한 사람이 되고자 한다. 불교 또한 지혜를 지칭하는 ‘반야’라는 별도의 핵심적인 개념이 있으니, 지혜를 추구한다 하겠다. 지혜를 위해 사람들은 대개 이런
이진경 교수   2017-07-31
[연재] 27. ‘있음’을 아는 자, 이르는 곳마다 주인이 되는 자-하
있음이 없음과 다른 방식으로 사는 것, 특이점이 되어 세계의 특이성을 형성하는 방식으로 사는 것, 그것이 존재자가 자신의 존재의미를 추구하는 삶이고, 유(有)를 아는 이가 사는 방식이다. 그것을 “이르는 곳마다 주인이 되라(隨處作主)는 임제의 말(‘임
이진경 교수   2017-07-25
[연재] 26. ‘있음’을 아는 자, 이르는 곳마다 주인이 되는 자-중
존재의미는 어느 한 사람이 부여하는 게 아니라, 관련된 존재자들의 관계들이 서로 엮이고 중첩되며 만들어진다. 예컨대 ‘폭풍의 언덕’ 인근의 마을에서, 이전에 사라졌던 히스클리프가 나타났을 때(그 세계 안에 존재하게 되었을 때), 그 세계는 이전과 아주
이진경 교수   2017-07-17
[연재] 25. ‘있음’을 아는 자, 이르는 곳마다 주인이 되는 자-상
불법이 공(空)을 설함은 잘 알려진 일이다. 불교 문헌에서 빈번히 만나게 되는 ‘무(無)’라는 말조차 실은 언제나 공을 뜻한다. 그저 ‘없음’이 아니라 “있음과 없음의 양변을 떠난 중도”의 무를. ‘없음’을 뜻하는 말뿐 아니라, 무언가를 부정하는 말들
이진경 교수   2017-07-11
[연재] 24. 구지 선사의 손가락-하
풍혈이 대중설법을 했다.중생과 부처의 세계가 다르지 않지만분노로 만든 세계가 부처세계는 아냐그때마다 손가락 세워 그곳서 나와야“한 티끌을 세우면 나라가 흥성하고, 한 티끌을 세우지 않으면 나라가 멸망한다.”이를 두고 원오는 묻는다. “말해보라, 한 티
이진경 교수   2017-07-04
[연재] 23. 구지 선사의 손가락-중
‘폭풍의 언덕’이 보여주는 세계, 손가락을 들 때마다 일어나는 다른 세계들은 어쩌면 고작 두 집을 둘러싸고 있는 아주 작은 세계일뿐이라고, ‘세계’라는 말에 값하긴 너무 작고 국지적인 세계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럴 것이다. 손가락을 따라 일어나
이진경 교수   2017-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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