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 2017.7.28 금 20:33
연재
법륜 스님의 지혜로운 삶
김택근의 성철 스님 평전
나의 발심수행
채문기의 길따라 절에 들다
명법문 명강의
남수연 기자의 한국불교 비구니 리더
세심청심
김형중의 내가 사랑한 불교시
이수정 박사의 절터는 불교문화의 보고
법보신문 연중캠페인 불자답게 삽시다
대만 성운대사의 나의 인생 나의 불교
김형규의 불설과 언설
김용규의 숲에서 배우는 지혜
최원형의 불교와 생태적인 삶
불교는 나의 삶
우리동네 우리절
지역불교 구심점 사암연합회
김규보 기자의 불교학 리더에게 듣다
최호승 기자의 문인을 만나다
황순일의 원전 자타카
김정빈의 일화로 보는 불교
김성순의 지옥을 사유하다
철학자 이진경 선어록을 읽다
성원 스님의 나의 천진불
조정육의 불교의 발견
이병두의 사진으로 보는 불교
정진희의 사찰미술여행
최병헌의 한국역사와 불교
김권태의 마음을 읽다
오중철의 돈황벽화 감통설화
이제열의 파격의 유마경
강병균의 수학자가 본 금강경
정운 스님의 전심법요
포교사의 하루
신현득의 내가 사랑한 동시
재마 스님의 존재여행
주수완의 미술사학자와 읽는 삼국유사
불교작가를 말하다
성효 스님의 그림이 있는 선시
남수연 기자의 부탄 들여다보기
나의 신행일기
태국 고대 불교왕국 수코타이·치앙마이 순례
기사 (전체 27건) 제목보기제목+내용
[연재] 27. 1932년 박문사(博文寺) 개원
현재 국내 최고급의 신라호텔이 있는 자리는 1932년부터 민족해방에 이르기까지 13년 동안 일제가 한국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추모하기 위한 사당을 겸한 절을 세워 운영하던 곳이다.이토 사망 23년 맞아 낙성식이광수 등 친일 부역자 참석식민지
이병두   2017-07-25
[연재] 26. 만공 스님과 선학원 유교법회
1941년 3월4일부터 10일간 서울 종로구 안국동 선학원 중앙선원에서 열린 유교법회(遺敎法會, 이하 법회)는, 당시 전국의 승려 6000여명 중 독신 비구승이 300여명에 지나지 않던 시절에 “조선 불교의 전통을 살리겠다”며 비구승 34명이 서울 중
이병두   2017-07-17
[연재] 25. 석주 정일 스님
“서리와 소나무 같은 지조로 자신을 정제하고, 물에 담긴 달처럼 마음을 비우고 사람을 대하라(霜松潔操 水月虛襟). 내가 좋아하는 구절이지. 영명연수 선사 문집의 서문에 나오는 글인데, 시류와 이해에 따라 오락가락하고 탐심으로 인생을 망치는 사람들이 늘
이병두   2017-07-11
[연재] 24. 중앙불교전문학교
현재의 동국대는 1906년 명진학교, 1910년 불교사범학교, 1914년 불교고등학교, 1915년 불교중앙학림으로 명맥을 이어오다가 1922년 강제로 폐교되었다. 1922년 출범한 조선불교중앙교무원에서 1930년 중앙불교전문학교(이하 불전)를 설립하여
이병두   2017-07-04
[연재] 23. 조선불교중앙교무원
일제의 강제 병탄 후 불교를 관리하기 위하여 총독부에서 조선사찰령을 반포하고, 세속사회의 행정 체계에 따라 전국 사찰을 ‘본-말사’ 체제로 재편하였다. 이에 따라 전국에 본사 30곳이 정해졌으며, 1915년 중앙에 ‘삼십본산연합사무소’를 두었다. 이
이병두   2017-06-27
[연재] 22. 1929년 조선불교대회
1929년 10월11일, 이제는 허물어져 역사 속으로 사라진 옛 조선총독부 안의 큰 홀에서 당시 총독 사이토 마코토(齊藤實, 1858~1936)가 입회한 가운데 조선불교대회(이하에서는 ‘불교대회’) 창립대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육군·해군대신, 외무
이병두   2017-06-20
[연재] 21. 서울 개운사 대원암
서울 개운사는 찬란한 전각 등 ‘유형’의 자산을 많이 소장하고 있는 곳이 아니다. 그러나 1845년 우기 스님이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대원암(大圓庵)에 1926년 석전 한영(1870~1948) 스님이 불교전문강원(이하 ‘강원’)을 설립하여 근대 교육을
이병두   2017-06-13
[연재] 20. 순정효황후 대지월보살
1905년 을사늑약으로 외교와 국방에 관한 모든 권한을 빼앗긴, 이름 뿐의 ‘제국(帝國)’ 대한제국 마지막 순종황제의 황후 윤씨(시호: 獻儀慈仁純貞孝皇后. 아래에서는 ‘황후’)는 을사늑약과 한일 병탄에서 매국 행위에 앞장 선 ‘공로’(?)로 일본 정부
이병두   2017-06-05
[연재] 19. 1928년 조선불교학인대회 개최
“첫째, 불타의 구제자(救濟者)의 중심자로 큰 임무와 굳건한 행실을 가지자. 둘째, 시대에 적응한 교화방법을 만들자. 셋째, 불교 조선의 건립에 필요한 모든 경비를 통일적으로 준비하자. 넷째, 불타의 자리이타(自利利他)의 불지(佛旨)를 몸으로 실천하기
이병두   2017-05-30
[연재] 18. 범산 김법린
“일본의 식민제국주의는 국제정세 상 가장 범죄적이고 부끄러운 것이라는 사실이 명확하게 밝혀졌습니다. 이제 문명과 인류를 타락시키는 이 같은 범죄를 씻어내고 처벌할 때가 되었습니다.”1914년 14세에 은해사로 출가범어사 만세운동·만당 등 주도해방 후
이병두   2017-05-23
[연재] 17. 불교계 보성고 운영
서울 보성고등학교는 보부상 출신으로 탁지부대신에까지 올랐던 이용익이 1906년 9월 현재 조계사 경내에 세운 사립학교이다. 일제에 항거했던 이용익은 을사늑약 이후 러시아 여러 곳을 떠돌다 1907년에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사망하였는데, 이 때 고종에게 보
이병두   2017-05-16
[연재] 16. 1909년 석굴암 본존불
마치 동학농민혁명군 사령관 전봉준 장군을 서울로 압송하던 철창처럼 생긴 틀 안에 갇혀 굳게 입을 다물고 있는 이 사진 속 주인공이 누구일까.전국 고적 조사 사업의 일환끊임없이 제기되는 졸속 논란이제라도 부처님 참뜻 새겨야지금은 국보 제24호로 지정되어
이병두   2017-04-24
[연재] 15. 친일승 강대련
‘조선 불교계의 큰 악마·관청과 도제를 속이고 사익만을 도모하는 악마’, 전 용주사 주지 강대련의 이름에 함께 붙는 수식어이다.30년간 본산 주지 지내며 친일국방헌금·친일 법요식 등 자청일제에 “뼛속까지 친일” 읍소젊은 승려들에 ‘명고축출’당해실제로
이병두   2017-04-17
[연재] 14. 불교 농락한 이완용
이완용(1858∼1926)은 악명이 아주 높아서, 이 세상을 떠난 지 100년이 가까워오는 오늘까지도 우리 국민 대부분이 그 이름 앞에 ‘나라를 팔아먹은 나쁜 놈’이라는 뜻의 ‘매국노(賣國奴)’와 함께 그를 기억하고 있다.독립협회 임원 지낸 명
이병두   2017-04-11
[연재] 13. ‘조선불교통사’를 저술한 이능화
충청도 괴산 출신의 이능화(1869∼1943)에게는 간정(侃亭)·상현(尙玄)·무능거사(無能居士) 등 호(號)가 여럿 있다. 그뿐 아니라 당시로서는 드물게 중국어(漢語)·일어·영어·프랑스어(法語) 등 여러 외국어에 능통하였으며, 관심 분야가 넓고
이병두   2017-04-04
[연재] 12. 봉은사 주지 청호 스님
청호(晴湖, 1875~1934; 입적 연도가 1936년으로 나온 자료도 있으나 ‘봉은사지’에 표기한 대로 따른다.) 스님은 서울 강남 봉은사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분이다. 열두 살에 강원도 양양 명주사로 출가하기 전 속가의 성은 나(羅)씨이고, 출
이병두   2017-03-28
[연재] 11. 다르마팔라 스님
어릴 때 이름이 헤와위타르네(Hewavi tarne)였던 앙가리카 다르마팔라(Anagārika Dharmapāla, 1864~ 1933)는 조국 스리랑카에서 꺼져가고 있던 불교의 불을 다시 밝혔을 뿐 아니라, 붓다가야를 비롯하여 인도
이병두   2017-03-21
[연재] 10. 와타나베 아키라(渡邊彰)
1910년 조선을 강점한 일제는 기층(基層) 백성들의 반발을 막기 위해 불교와 유교 등 조선의 전통 종교계를 장악하려고 하였다. 특히 전통종교인 불교계를 통제할 목적으로 1911년 6월3일자로 ‘사찰령’을 공포하고, 이어서 7월8일자로 ‘사찰령시행규칙
이병두   2017-03-14
[연재] 9. 1929년 수감 중인 만해 스님
위 사진은 1929년 감옥(또는 경찰서)에서 촬영된 만해 용운(萬海龍雲) 스님(이하 존칭 생략)의 정면과 옆면 모습이다. 머리와 수염을 제대로 깎지도 못하고 얼굴은 초췌하지만 ‘모진 고문에도 굴복하지 않고 열반에 이르기까지 일제와 타협하지 않았던’ 혁
이병두   2017-03-07
[연재] 8. 황폐했던 20세기 초의 경주
우리 국민 대다수가 중·고등학생 시절 경주로 수학여행을 다녀온 추억을 갖고 있다. 그래서 천 몇백 년 전 신라인들이 남긴 찬란한 불교문화 유적에 가졌던 감격을 잊지 못하고 성인이 되어서도 다시 찾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학생시절의 형식적인 수학여행에
이병두   2017-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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