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 2017.4.21 금 20:11
연재
법륜 스님의 지혜로운 삶
김택근의 성철 스님 평전
나의 발심수행
채문기의 길따라 절에 들다
명법문 명강의
남수연 기자의 한국불교 비구니 리더
세심청심
김형중의 내가 사랑한 불교시
이수정 박사의 절터는 불교문화의 보고
법보신문 연중캠페인 불자답게 삽시다
대만 성운대사의 나의 인생 나의 불교
김형규의 불설과 언설
김용규의 숲에서 배우는 지혜
최원형의 불교와 생태적인 삶
불교는 나의 삶
우리동네 우리절
지역불교 구심점 사암연합회
김규보 기자의 불교학 리더에게 듣다
최호승 기자의 문인을 만나다
황순일의 원전 자타카
김정빈의 일화로 보는 불교
김성순의 지옥을 사유하다
철학자 이진경 선어록을 읽다
성원 스님의 나의 천진불
조정육의 불교의 발견
이병두의 사진으로 보는 불교
정진희의 사찰미술여행
최병헌의 한국역사와 불교
김권태의 마음을 읽다
오중철의 돈황벽화 감통설화
이제열의 파격의 유마경
강병균의 수학자가 본 금강경
정운 스님의 전심법요
포교사의 하루
신현득의 내가 사랑한 동시
재마 스님의 존재여행
주수완의 미술사학자와 읽는 삼국유사
불교작가를 말하다
성효 스님의 그림이 있는 선시
남수연 기자의 부탄 들여다보기
나의 신행일기
기사 (전체 15건) 제목보기제목+내용
[연재] 15. 친일승 강대련
‘조선 불교계의 큰 악마·관청과 도제를 속이고 사익만을 도모하는 악마’, 전 용주사 주지 강대련의 이름에 함께 붙는 수식어이다.30년간 본산 주지 지내며 친일국방헌금·친일 법요식 등 자청일제에 “뼛속까지 친일” 읍소젊은 승려들에 ‘명고축출’당해실제로
이병두   2017-04-17
[연재] 14. 불교 농락한 이완용
이완용(1858∼1926)은 악명이 아주 높아서, 이 세상을 떠난 지 100년이 가까워오는 오늘까지도 우리 국민 대부분이 그 이름 앞에 ‘나라를 팔아먹은 나쁜 놈’이라는 뜻의 ‘매국노(賣國奴)’와 함께 그를 기억하고 있다.독립협회 임원 지낸 명
이병두   2017-04-11
[연재] 13. ‘조선불교통사’를 저술한 이능화
충청도 괴산 출신의 이능화(1869∼1943)에게는 간정(侃亭)·상현(尙玄)·무능거사(無能居士) 등 호(號)가 여럿 있다. 그뿐 아니라 당시로서는 드물게 중국어(漢語)·일어·영어·프랑스어(法語) 등 여러 외국어에 능통하였으며, 관심 분야가 넓고
이병두   2017-04-04
[연재] 12. 봉은사 주지 청호 스님
청호(晴湖, 1875~1934; 입적 연도가 1936년으로 나온 자료도 있으나 ‘봉은사지’에 표기한 대로 따른다.) 스님은 서울 강남 봉은사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분이다. 열두 살에 강원도 양양 명주사로 출가하기 전 속가의 성은 나(羅)씨이고, 출
이병두   2017-03-28
[연재] 11. 다르마팔라 스님
어릴 때 이름이 헤와위타르네(Hewavi tarne)였던 앙가리카 다르마팔라(Anagārika Dharmapāla, 1864~ 1933)는 조국 스리랑카에서 꺼져가고 있던 불교의 불을 다시 밝혔을 뿐 아니라, 붓다가야를 비롯하여 인도
이병두   2017-03-21
[연재] 10. 와타나베 아키라(渡邊彰)
1910년 조선을 강점한 일제는 기층(基層) 백성들의 반발을 막기 위해 불교와 유교 등 조선의 전통 종교계를 장악하려고 하였다. 특히 전통종교인 불교계를 통제할 목적으로 1911년 6월3일자로 ‘사찰령’을 공포하고, 이어서 7월8일자로 ‘사찰령시행규칙
이병두   2017-03-14
[연재] 9. 1929년 수감 중인 만해 스님
위 사진은 1929년 감옥(또는 경찰서)에서 촬영된 만해 용운(萬海龍雲) 스님(이하 존칭 생략)의 정면과 옆면 모습이다. 머리와 수염을 제대로 깎지도 못하고 얼굴은 초췌하지만 ‘모진 고문에도 굴복하지 않고 열반에 이르기까지 일제와 타협하지 않았던’ 혁
이병두   2017-03-07
[연재] 8. 황폐했던 20세기 초의 경주
우리 국민 대다수가 중·고등학생 시절 경주로 수학여행을 다녀온 추억을 갖고 있다. 그래서 천 몇백 년 전 신라인들이 남긴 찬란한 불교문화 유적에 가졌던 감격을 잊지 못하고 성인이 되어서도 다시 찾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학생시절의 형식적인 수학여행에
이병두   2017-02-28
[연재] 7. 친일 불교 거두 이회광
일제강점 초기에 용주사 주지 강대련·위봉사 주지 곽법경과 더불어 ‘친일승려 대표’의 오명(汚名)을 가진 이회광(李晦光, 1862~1933)의 생애는 그가 살았던 시대만큼이나 굴곡이 심했다.처음엔 조선불교 유망주 기대원종 창설하며 친일행보 본격한국불교
이병두   2017-02-21
[연재] 6. 20세기 초 사찰들의 학교 설립
위 사진은 1909년 구례 화엄사 등 여러 사찰들이 함께 설립한 신명학교의 학생들이 1910년에 화엄사를 방문했을 때 찍은 것이다. 남학생은 거의 모두 한복 차림에 서양식 모자를 쓰고 있는 것이 특이하지만, 앞줄 양쪽 끝에 보이는 세 여학생의 모습에서
이병두   2017-02-14
[연재] 5. 1903년 유점사 봉축법요식
1903년 5월4일(음 4월8일), 금강산 유점사 능인보전(能仁寶殿) 앞에서 열린 봉축 법요식 장면을 찍은 것으로 추정되는, 촬영자가 알려지지 않은 사진이다. 맨 앞줄 가운데에 주장자를 짚고 있는 스님은 사중의 최고 어른인 조실이나 회주스님으로 다른
이병두   2017-02-07
[연재] 4. 다케다 한시(武田範之)
촬영 시점을 알 수 없는 위 사진은 1895년 10월8일 새벽에 일어난 명성황후 시해 사건의 주역인 우치다 료헤이·이노우에 도사부로·다케다 한시·요시쿠라 오세이·구주 요시히사 등이 함께 찍은 것이다. 그 중 앞 줄 맨 오른쪽이 일본 조동종 승려 다케다
이병두   2017-01-23
[연재] 3. 원흥사 창건
서울시 종로구 지봉로 73(창신동 128-32)에 자리한 창신초등학교는 한국 근대 불교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원흥사가 있던 곳이다. 원흥사는 부지 매입 등 필요한 경비 대부분을 황실 내탕금으로 부담하여 1902년에 창건한 뒤 ‘대법산국
이병두   2017-01-17
[연재] 2. 19세기 말 금강산의 사찰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전 세계를 여행한 영국 출신의 이사벨라 버드 비숍(Isabella Bird Bishop, 1831~1904년)이 1894년 겨울에서 1897년 봄 사이에 우리나라를 네 차례 돌아보며 남긴 기록을 바탕으로 쓴 책 ‘한
이병두   2017-01-10
[연재] 1. 이동인
범어사 출신의 승려 이동인은 풍운아였다. 1880년 전후에 찍은 것으로 추정되는 사진에서도 그런 기운이 느껴진다. 목에 염주를 걸고 오른손에는 단주를 들고 있어 승려가 확실해 보이지만 왼손에 펼쳐 들고 있는 책이 불교 경전인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왼편
이병두   2017-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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