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분율장’을 배우면서 율장 속에 드러난 이상적 승가 모습과 현실에서 작동하는 승가 모습 사이에서 느껴지는 괴리감과 출가 수행자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갈등에 직면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현실을 이해하기 위해 한국불교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의문과 관심도 깊어졌고 다른 나라의 불교에 대한 궁금증도 일었다. 율장에 의거하여 수행하는 도량이 대만에 있다는 것을 알고 의덕사에 갔었다. 6개월 정도 머물면서 하안거와 구족계 수계산림만 보고 돌아오려던 계획이 6년으로 바뀐 것은 출가자의 정체성은 율장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실천을 기반으로 한
전 지구를 강타한 이례적 바이러스로 삶이 완전히 달라졌다. 감염자와 의료진은 물론이거니와 그들 가족과 자영업자들이 겪는 경제적 고통도 심각한 수준을 넘어섰고, 사회 인프라 전반에 미치는 보이지 않는 손실과 어려움은 체감할 수 있는 수준 이상이다. 일 년 남짓 계속되는 팬데믹 과정에서 전문가들은 가장 안전한 대응으로 마스크 착용과 손씻기를 강조한다. 그간 인류가 축적해온 엄청난 의학 발전으로도 검증된 안전한 백신을 개발했다는 소식이 들리지 않는 상황에서, 가장 안전한 대책이 마스크 착용과 손씻기란 사실은 작고 귀찮은 일에 충실한 게
중국은 4~5세기를 거치면서 성문율장의 번역이 완성되자 여법한 갈마법을 통해 구족계를 받아야 정식 비구와 비구니가 된다는 의식이 보편화되었다. 이렇게 탄생한 비구와 비구니가 수행의 목표를 아라한에 두지 않고 무량겁을 거치더라도 불도를 이루고 보살도를 실천하겠다는 보리심을 발하면 추가로 대승보살계를 받았다. 즉 구족계를 받은 출가자가 보살계를 추가로 받아 지니는 대소겸수(大小兼修)의 풍토는 중국불교 역사에서는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졌다.신라불교 역시 초기부터 출가사문은 구족계를 받았고 대승보살계가 설해졌던 것으로 보이지만 이에 대한 기
도선율사의 ‘행사초’에 “증일아함에 따르면 우전국왕은 전단나무로 불상을 만들었고, 파사익왕은 자금으로 불상을 조성했는데 두 불상의 크기가 5척이었다”라는 문구가 있었다. 불상은 부처님 입멸하신 후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았다. 불상 의 최초 연기는 ‘증일아함’에 나온다. 현장삼장의 ‘대당서역기’ 권5에도 이와 유사한 내용이 언급돼 있다.이하는 ‘증일아함경’ 권28 ‘청법품’의 내용을 정리해본다. 이때 세존께서는 삼매에 들어 하늘세계로 가셨다. 인간세계의 중생들이 오랫동안 부처님을 뵐 수 없자 아난의 처소에 가서 말했다. “여래께서는 지
도선율사의 ‘사분율행사초’ 제잡요행편에는 복덕과 지혜의 관점을 가지고 출가자가 의지해야 하는 긴요한 일들을 설명하고 있다. ‘대지도론’에서 “지혜는 해탈의 인이 되기 때문에 출가자는 주로 지혜를 닦고, 복덕은 즐거움의 인연이 되기 때문에 세속인은 주로 복덕을 닦아야 한다”고 말한다. 출가자와 세속인은 복과 지혜를 다르게 닦는다. 이렇게 둘이 나눠지는 차이를 이치적으로 알아야 하고, 서로의 공통점과 차이점도 알아야 한다. 그렇다고 복과 지혜 둘이 차이가 있어서 도속(道俗)이 다르게 수행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단지 세속은 얽힌 것이
초기불교 수행을 하는 어떤 이가 ‘거룩한 스님들께 귀의합니다’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스님들에게 절을 하고 공경을 표하는 것에 대해 반론하더니 급기야 출가자도 재가자에게 절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표명할 때는 반드시 삼장의 근거를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까지 잘못 이끄는 무거운 업보를 감당해야 한다. 부처님 법에 따르면 원칙적으로 출가자는 재가자에게 절을 하지 않는다. 이것은 삼보에 대한 공경을 통해 정법이 세상에 유지되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써 상좌부 불교에서는 지금도 아주 엄격하게
갈마는 대계(大界)를 기준으로 형성된 현전승가의 비구 및 비구니가 육화합 정신에 의거하여 각각 독립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승가의 고유한 의사결정 방식이다. 기존의 많은 연구자료에는 승가 회의방식이라고 소개돼 있다. 승가 의사결정은 개인의 이익 목적이 아니라 승가 전체의 이익을 위하고, 수행에 방해되는 번뇌를 대치하는 것이 목적이므로 일반적 언어인 ‘회의’라는 표현이 적절치는 않다.갈마가 성립하기 위한 절대조건으로 전원출석과 만장일치가 강조된다. 그런데 이 말을 현대적 사고로 ‘구성원 전원이 모여 각자의 의견을 평등하게 반영하여 만장일
승가의 화합은 각 현전승가에서 여법(如法)을 기반으로 한 갈마를 실행할 때 온전히 이뤄질 수 있다. 갈마법은 승가가 세속적 가치에 물들지 않고 승가다운 방식으로 운영되도록 하는 유일한 기준이기도 하다.바라제목차가 악법에 속하는 행위를 하지 않는 것에 치중하는 지지계(止持戒)라면, 갈마는 승단과 개인이 적극적으로 비법을 척결하고 선업을 증장시키기 위해 행동으로 옮겨야 하는 작지계(作持戒)이다. 율장의 전체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지지와 작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비구·비구니는 이 두 가지를 잘 알아야 정법구주의 책임자로서 여래의
‘십송율’ 권49에는 난제장로가 부처님께 예경을 드린 후 다음과 같이 여쭙는다. “부처님! 정법이 멸하고 상법이 되면 세상에 어떤 비법(非法)들이 생기게 됩니까?” “난제여! 정법이 멸하고 상법 시대가 되면 다섯 가지 비법이 세상에 나타난다.” “어떤 것이 다섯 가지입니까?”“정법이 멸하고 상법 시대가 되면, 비구가 오정심관 수행으로 잠시 번뇌를 눌러놓을 수 있는 정도의 견지를 조금 얻고는 성인의 법을 이미 이루었다고 스스로 말하니 이것이 첫 번째 비법이다.”“재가자는 계법이 없더라도 불법승 삼보를 공경하고 믿음으로써 천상에 태어나
북방전통에 따르면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후 가섭에게로 법이 전승됐다가 아난존자를 거쳐 상나화수 존자, 우박국다 존자로 이어졌다. 영지율사의 ‘사분율함주계본소행종기’에는 100세가 넘게 산 것으로 알려진 아난존자는 병이나 고령 등의 이유가 아니라 한 젊은 비구가 게송 읊는 소리를 듣고 열반을 결심하고 실행한 이야기가 나온다.‘불조통기(佛祖統紀)’와 ‘부법장인연전(付法藏因緣傳)’에는 더욱 상세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간략히 살펴보자. 가섭존자는 입멸하면서 가장 수승한 법을 아난에게 부촉했다. 아난존자는 법을 부촉 받고 나서 세상을 다
2008년 4월 조계종단은 ‘스님들의 수행 장소와 수행이력을 신고하는 결계(結界)와 특정 장소에서 계율을 암송하며 자신을 반성하고 참회하는 법회인 포살(布薩)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12년이 지난 지금 ‘결계신고’와 ‘포살’이라는 단어는 스님들에게 아주 익숙한 용어가 됐다.스님들은 매년 안거가 시작되는 음력 4월15일~10월15일까지 거주지 관할 교구 본사에 결계신고를 하고 안거기간에는 포살에 참가해야 한다. 종단은 교구본사에 신고된 수행이력을 취합해 ‘결계록’을 간행하는데 여기에 등록되지 않을 경우 사미(니)는 비구(니)가 될 수
한동안 열심히 글을 올리던 소셜 네트워크에서 친구삭제를 한 적이 있다. 출가자임을 알고도 친구신청을 해오는 이들은 다 수락했었다. 삭제는 한두 사람만 해보았는데 게으름이 큰 원인이었고, 그래도 혹시나 필자와의 교류로 불교나 출가자에 대해 약간이라도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면 좋겠다는 마음 때문이었다. 그런데 어느 한순간 그것이 순진한 착각이었구나 싶어서 친구삭제를 시작했고 그 이후로는 여러 인연이 겹쳐 소셜 네트워크와 소원해졌다.삭제를 했던 대상은 비록 불자라 하더라도 자신의 수행법 혹은 믿음만이 가장 바른 길이라는 확신으로 대승불교를
계율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글을 쓰다 보니 불교공부를 하는 분들 중 간혹 ‘그럼 다른 것은 제쳐두고 계율부터 배워야 하는가’라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 불자라고 하더라도 믿음이나 법에 대한 이해의 차이는 천차만별이다. 그래서 전법을 할 때는 설령 불자라고 칭하는 이가 있더라도 곧바로 계학부터 강조하는 것은 주의해야 한다. 때마침 도선율사의 ‘사분율함주계본소’에 이에 대한 내용이 있어서 간략히 정리해 본다. 불교 용어에서 ‘삼륜’ 은 여러 가지 의미로 쓰이지만 여기서 말하는 삼륜은 ‘사분율’ 권33 ‘수계건도편’에 나오는 1000명의
율장에서 사용되는 계(界)는 크게 대중을 섭수하는 승계(僧界), 삼의를 섭수하는 의계(衣界), 음식을 섭수하는 식계(食界)가 있다. 승계는 동일한 장소에 있는 출가자를 섭수하여 별중(別衆)의 죄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범위이고, 의계는 삼의를 개인에게 소속시켜서 이의숙(離衣宿)죄를 범하지 않도록 하는 영역이며, 식계는 음식을 따로 보관하기 위한 특정구역으로써 정지(淨地)를 의미하는데 출가자와 음식을 분리시킴으로써 식욕이나 식탐으로 인한 숱한 번뇌를 덜어준다.갈마와 관련한 결계는 대중을 섭수하는 승계를 의미한다. 출가자들을 섭수하려면
도선의 ‘사분율행사초’에 따르면 승가를 구성하는 조건은 이화(理和)와 사화(事和)이다. `이화'는 불교 교의를 함께 따르는 것으로 열반해탈을 목적으로 한다. `사화'는 계화동수(戒和同修), 견화동해(見和同解), 이화동균(利和同均), 신화동주(身和同住), 구화무쟁(口和無諍), 의화동열(義和同悅)로써 육화합을 의미한다. 위 두 가지 화합을 조건으로 하기에 승가를 화합중이라고 부른다.육화합 가운데 세 번째까지는 특정구역을 대계(大界)로 정한, 현전승가 대중이 보편적으로 준수해야 하는 화합이다. 동일한 계를 지키고, 견해가
필자가 머물던 사찰에서는 임종한 스님이 남긴 물건을 대중이 나눠가지는 분망인경물(分亡人輕物) 갈마를 한 적이 있다. 두 번은 함께 생활하던 스님이었고 다른 한 번은 다른 곳에서 지내던 스님이 남긴 물건을 위탁받은 경우였다. 대만은 국가법에 따라 출가자의 사후 재산이 속가 가족들에게 권리 상속된다. 신심 없는 불자라면 사찰에서도 어쩔 수 없지만 첫 번째와 두 번째 경우는 친인척들이 모두 불법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어 사찰과 협의해 망자를 위해 공덕을 짓는 방향으로 남긴 물건을 원만히 처리했다. 세 번째 경우는 율문에 등장한 모라파구
가야할 때를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유명한 시의 한 구절이다. 수행자가 가야할 때를 분명히 알고 아뢰야식이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평생 닦아온 수행주제를 놓치지 않고 생생하게 깨어 죽음의 바다를 건널 수 있다면 큰 복이다. 그런데 필자는 우리의 진짜 뒷모습은 어쩌면 생을 떠난 후에 남은 자들이 사후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제대로 드러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율장의 많은 규정을 탄생시킨 발란타는 아마도 당시 출가자 가운데 재가자들과 가장 많은 반연을 맺은 비구인 듯하다. ‘십송율’에 발란타 비구 사후에 남겨
승가가 오염되는 이유가 스님들이 돈을 만져서라는 주장은 일견 맞기도 하고 일견 틀리기도 하다. 해결책으로 스님들은 수행에만 전념하고 사찰재정은 재가자가 관리해야 한다는 일부의 주장은 문제의 핵심을 꿰뚫지 못한 것이다. 스님들이 돈을 만져서 문제라면 늘 본받자고 하는 대만불교는 더 오염돼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인구는 우리나라 절반 밖에 안 되지만 승가나 스님들에게 보시되는 시주 금액은 훨씬 많다. 정확하게 말하면 스님들이 돈을 만져서 승가가 오염되는 것이 아니라, 출가자와 재가자 모두 계율에 대한 이해 부족과 인과응보에 대한 철저한
율장에는 스승과 제자 간에 지켜야 할 예법에 대해 자세히 언급하고 있다. 스승은 제자를 자식같이 생각하고 제자는 스승을 부모처럼 여겨야 한다. 제자를 자식같이 생각한다는 것은 제자가 전문가가 되도록 훈련시키고, 자비심으로 보호하며, 긍휼한 마음으로 사랑하고, 옷과 음식을 제공하는 행위를 하는 것이다. 스승을 아버지처럼 여긴다는 것은 스승을 친애(親愛)하고, 공경하고 효순하며, 어렵게 여기고 두려워할 줄 알며, 신하가 왕을 섬기고 자식이 부모를 섬기듯 봉양하고 모시는 것이다.어느 때에 제자들이 은사인 화상을 공경하지 않고, 스승의 일
스승과 제자 되는 일은 인연에 따라야 하지만 부처님 법을 이어야 한다는 측면에서 볼 때 사자상승(師資相承)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요즈음은 스님들로부터 ‘제자를 두지 않겠다’는 말씀을 자주 듣고,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형식적으로 유지될 뿐 남남처럼 사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사분율’에 화상은 제자 돌보기를 자식처럼 여겨야 하고 제자는 스승 모시기를 아버지 같이 해야 부처님 정법이 오래 머무르고 불법의 이익이 광대해진다고 하면서, 스승이 갖춰야 할 화상법(和尚法)과 제자가 갖춰야 할 제자법(弟子法) 등 스승과 제자가 각자 지켜야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