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 녹이는 소화력에초기엔 약으로도 응용송대부터 고급문화 돼 황금 들녘, 고개 숙인 벼이삭이 함초롬한 산색(山色)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었다. 끊일 듯 이어진 귀뚜리 소리, 가을 정취를 더하고 샘물도 이미 가을 맛을 지녔다. 봄은 봄대로 여름은 여름대로 가을과 겨울에 따라 각기 다른 풍취를 지니는 것이 차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차의 변화이지만 정작 차의 풍색(風色)은 물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따라서 이런 미세한 변화는 차를 즐기는 이의 오랜 숙련과 치밀한 궁리에서 얻어지는 은미(隱微)한 차의 경지이다. 사람의 취향에 따라 즐기는 향미(香味)가 다르겠지만 담백한 사람은 가을차가 주는 텅 빈 자유로움을 좋아할 것이다. 엊그제 모처럼 인사동 고서점을 들렸다. 층층이 쌓인 책 더미 속에서
추사 김정희가 초의 선사에게 보낸 편지. 『완당선생 문집』 중에 ‘여초의(與草衣)’38편 중 8편 글이다. 추사 진적은 2005년 과천 문화원 주최 전시에 나온 작품이다. 나지막한 둔덕 위에 난 들풀들은 가을빛이 완연하다. 하지만 한낮의 기온은 무더워서 새벽녘 길어 온 샘물, 용기 밖으로 수정 같은 물방울이 맺었다. 필시 깊은 땅 속에서 솟아난 샘물과 밖의 기온차이 때문일 터. 물을 끓여 차를 다렸다. 여름 물에서 느낄 수 없는 맑고 당찬 기운이 가을 하늘처럼 상쾌하다. 맑은 차는 답답한 울증을 사라지게 하는 마력을 지녔는지 한결 가슴이 서늘해졌다. 옛날 사람 추사 김정희도 차를 마신 후 가슴이 서늘해지는 감회를 이렇게 말하였다. “중략…금강산 가는 것을 누가
음울한 하늘에서 장대비가 내린다. 선명하던 하늘과 땅, 그 경계가 사라진 듯 천지가 물바다, 혼연(渾然)하다. 언제까지 비가 오려나. 눅눅해진 방의 습기라도 말려 볼 양으로 빛바랜 선풍기를 켜 보지만 별 소용이 없다. 얼마 전 지인으로부터 한통의 이메일을 받았다. “녹차에서 고독성 농약 검출”이란 연합뉴스 기사로 KBS 1TV ‘이영돈PD의 소비자고발’이다. 이 프로에서 소비자들이 흔히 마시는 티백녹차를 수거하여 농약 잔류량 검사를 실시하였더니 국내산 티백 녹차, 그리고 국내산과 중국산 혼합 티백 녹차 두 종류에서 고독성(高毒性) ‘메치타치온’이 검출 되었다는 것이다. ‘메치타치온’은 1940년 독일에서 처음 제조되었다. 살충력이 강하여 광범위하게 사용되었지만 독성이 강하여 EU및 18개국에서 이미 사용을
굵은 장대비가 이슬비로 바뀌었다. 온 세상이 안개에 싸여 신선이 사는 별천지인 양 현현(玄玄)하다. 엊그제 길어 온 샘물은 건수가 들어간 듯 청량한 본래 맛이 아니다. 비가 온 탓인가 차는 차대로 물은 물대로 흩어져 중화(中和)의 미덕을 기대하기 어렵다. 구질한 장마철, 따뜻하고 감칠 맛 나는 차가 그립다. 얼마 전 최한기(浿東 崔漢綺1803~1877)의 『추측록(推測錄)』「기열생풍(氣熱生風)」을 읽었다. 뜨거운 차를 따르면 잔의 표면에 용트림하며 이는 차이내가 바로 기운이 움직여 바람을 일게 하는 이치와 같다는 것이다. 물리(物理)를 관찰하는 발상이 하도 기발하여 고개가 절로 끄떡여졌다. 세상 사람이 차를 가까이하는 정감과 풍류쯤이야 옛 시에도 많거니와 바람이 일어나는 이치를 이렇게 관찰하다니. 차라는
서진에서 수, 당까지 생산됐던 계수호. 酒器, 혹은 물 그릇. 후기에 다구(당나라 이후 차물을 담는 용기)로 쓰였다는 설이 있다. 뿌연 운무(雲霧)가 아련히 산과 들을 덮고 있다. 필시 한 여름의 무더위를 방불(彷佛)할 징후(徵候). 어떤 이는 우리나라의 날씨가 이미 아열대 기후와 비슷하단다. 그러고 보니 무성하고 빽빽해진 숲이 거거년 보아왔던 성글하고 여유 있는 숲이 아니다. 이런 날은 산들바람을 맞으며 탁족(濯足)하는 것이 제격. 올해는 유난히 차에 관한 새로운 자료가 다양하게 발굴됨에 따라 차 문화사의 연구가 한층 발전되지 않을까하는 기대가 큰 해이다. 특히 “풍납토성 내 백제왕경 유적 발견 10주년 기념 학술세미나”에서 풍납토성에서 다량 출토된 서진(西晉
모내기를 끝낸 들녘, 땅내 맡은 벼들이 미풍(微風)에 일렁인다. 눈 두렁 사이 재두루미 두어 마리, 한 폭의 수채화처럼 싱그럽다. 초여름의 정경(情景)치고 이만한 절경(絶景)을 보기 쉬운 일은 아니다. 부처님께 차 공양을 올리러 가던 길에 우연히 마주친 광경이니 성의를 다한 후 얻은 여유, 부처님의 보상(報償)인가. 차 꾸러미를 만들어 벗에게 보냈다. 차를 만든 후 연중행사처럼 하는 일이니 손에 익숙하다. 몇 마디 안부쯤이야 있어도 좋고 없어도 무방(無妨)하다. 이런 저런 형식을 갖추지 않아도 차 속에 담긴 소박한 마음을 이미 느끼고 있을 터. 공연한 형식은 서로가 번거롭다. 우연히 간 책방에서 이숭인(1349~1392)의 「백염사혜차(白廉使惠茶)」를 읽었다. 예나 지금이나 햇차를 받은 기쁨은 매한가지
무성해진 나무 잎 사이로 바람이 인다. 바람결을 따라 일렁이는 나무의 용틀임이 장관(壯觀)이더니 후드득 몇 방울 떨어지던 빗방울이 제법 굉음(轟音)을 내며 시원한 빗줄기로 바뀌었다. 분명 기상대의 예보로는 내일쯤 비가 내린다고 하더니. 이런 일은 차를 따는 계절에 한번쯤 벌어지는 해프닝으로 그저 멍하니 하늘을 바라 볼 뿐 대책이 없다. 하지만 비가 그친 후 벌어지는 운무(雲霧)의 향연(饗宴)은 ‘바로 여기’가 아니면 볼 수 없는 소중한 광경이다. 더욱이 비 개인 후 해맑은 하늘과 싱그러운 풀과 땅 내음은 천금(千金)과도 바꿀 수 없는 산중의 보물이다. 도회에서 느낄 수 없는 여유로움이나 간혹 대나무 사이로 내리는 장대비를 감상하는 일은 차를 만드는 사람만이 갖는 망중(忙中)의 여유이다. 햇차가 주는
일교차가 고르고 기온이 일정하면 좋은 햇차를 얻을 확률이 높다. 좋은 햇차는 선정에 유용한 효과가 있다. 화사(華奢)하던 산자락, 연록 빛이 완연하다. 조막만한 잎엔 생명(生命)의 애잔한 고뇌(苦惱)가 묻어 있다. 하지만 자연은 자연대로 위육(位育)의 아름다움이 있다. 이 화창한 봄날, 꽃을 찾아 나섰던 당대(唐代)의 시인 이상은(李商隱 812~858)은 이렇게 노래하였다. “꽃 찾아 나섰다가 나도 모르게 자욱이 핀 꽃에 취해, 나무에 기대어 잠이 든 사이 해가 이미 기울었다. 객은 흩어지고 술 깨어보니 한밤중, 다시 촛불 밝혀 남은 꽃을 구경하였네. (尋芳不覺醉流霞 依樹深眠日已斜 客散酒醒深夜後 更持紅燭賞殘花)” 꽃에 취해 봄밤을 즐기는 풍류, 즐길 이 몇이
뭉개 뭉개, 구름이 산허리를 두른 듯, 산 벚꽃이 한창이다. 차 밭이 있는 남녘에야 복숭아 꽃 점점(點點)이 붉고, 자운영(紫雲英)도 논바닥에 즐비하게 피었겠다. 이름이 아름다워 듣기도 좋은 꽃. 이 꽃이 필 때면 차를 만들 시기이다. 이미 보성이나 화계골에는 햇 차를 만든단다. 하지만 깊은 산 속, 은밀한 곳에서 자라는 차나무이야 겨우 매부리만한 싹을 틔우고 있을 것이다. 한 열흘 쯤 후면 향기로운 첫 차를 만들 수 있을까. 이렇게 노지(露地)의 차밭에서 햇차 소식이 들리면 천천히 차를 만들 준비로 분주해진다. 차를 따는 시기에 비가 오는 것은 금물이다. 하지만 하늘의 일을 어찌 알랴. 그 해의 좋은 차는 하늘이 점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사람은 자연의 순리를 따르고 겸손하게 시절의 인연을
마음 준비하며 개화기-기온변화 주시찻잎 따기는 자기 점검법…구도와 닮아 은은한 꽃 향이 언뜻 코끝을 스친다. 무심코 하늘을 보니 환한 등불을 켜 놓은 듯, 화사한 살구꽃이 눈에 가득 하다. 황사가 천지를 덮고 우박까지 내린 어수선한 틈에도 어느 새 화사하게 봄의 문장(文章)을 이루었다. 문득 차 잎은 어찌 되었을까. 감나무 가지를 살펴본다. 작디작은 맹아(萌芽)가 겨우 겨울 꿈에서 깨어난 듯, 푸시시 고개를 들었다. 몇 해 전인가. 우연히 감잎이 피는 시기가 차 잎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았다. 차 밭이 먼 곳에 있는 탓으로 일일이 차 잎의 상태를 볼 수 없는 필자에게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다. 하여간 궁여지책(窮餘之策)이긴 하지만 감잎을 보면서 나름대로 차 잎이 피는 시기와 상태를 살필 수 있는 요령을 터
춘분(春分)이 지나고도 춘설(春雪)이 분분(紛紛) 터니 서울 근교 매화나무는 이제야 겨우 올망졸망한 꽃망울을 막 피울 참인가 보다. 필시 그윽한 암향(暗香)으로 벌뿐만 아니라 문향객(聞香客)을 유혹할 것이다. 산하(山河)의 만물(萬物)들은 봄맞이가 한창이다. 대나무 아래 차나무는 봄꿈을 깨었을까. 이미 바닥난 차 통을 안고 이리저리 궁리해 본다. 햇차가 나오려면 한 달은 족히 걸릴 텐데, 슬며시 조바심이 일어난다. 기실 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춘궁기(春窮期)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백화사에 머물던 어느 날 응송 박영희(1893~1990)스님에게 차 춘궁기를 지내던 얘기를 듣고 파안대소(破顔大笑)하던 기억이 난다. 불과 2~3십년 전만 해도 지금처럼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지 못했다. 겨우 가양(家釀)할 만큼
남녘의 매화 소식, 담담하더니 산책 길가에 핀 노란 산수유가 별처럼 곱다. 양지 쪽 진달래도 배시시 수줍은 듯 발간 볼이 더욱 붉어졌고 냉이랑 꽃다지도 제법 봄기운을 머금었다. 답청(踏靑)이라도 떠나야하나 아직은 이른 춘삼월(春三月), 공연히 마음만 분주하다. 얼마 전 ‘대관(大觀)’ 특별전 자료를 뒤적이다가 황급히 수첩에 필사해 온 송(宋) 구양수(歐陽修)의 『집고록발(集古錄跋)』을 정서(正書)하였다. 『집고록』은 말 그대로 “옛 일을 모아 발문(跋文)을 붙인 것”으로 긴 두루마리 축으로 되어 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이 당시 차 상인들의 육우에 대한 신격화(神格化)와 다경(茶經)저술이 차 문화에 기여한 공적에 대한 평가를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구양수(歐陽修1007~107
송 휘종의 문회도. 입춘(立春)이 지나더니 봄빛이 완연하다. 옛 날 시인 묵객들은 봄빛 따라 탐매(探梅)하는 여유(餘裕)도 있었건만, 이제는 이런 풍류 듣기도 어렵다. 종병(宗炳 375~443))의 와유 산수(臥遊山水)이후 자연합일(自然合一)을 꿈 꾼 것이 서화첩(書畵帖)으로 남아 있어, 탈속(脫俗)을 기망(期望)한 이들의 여운(餘韻)을 짐작케 한다. 지난해부터 올 3월 25일까지 대만 국립고궁박물관에서는 “대관 특별전”을 개최하여 북송 시대 서화(書畵)와 여요(汝窯), 송판도서(宋板圖書)를 전시하고 있다. 세계의 회화 연구자는 물론, 서화에 관심이 있는 많은 사람들이 모인 탓으로 그 열기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뜨거웠다. 특히 이번 전시품 중에 송 휘종(徽宗
온화(穩和)해진 햇살이 살갑다. 서걱 서걱대던 바람결도 한결 무디어졌다.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 간혹 띠는 입춘방(立春榜)이 눈에 어설프다. 거거년(去去年)전만해도 글깨나 한다는 한양(漢陽)의 명문가(名門家), 자손(子孫)의 문필(文筆)을 자랑삼아 걸던 것이 입춘방이 아니던가! 추사 김정희선생의 비범(非凡)한 문재(文才)가 세상에 드러났던 건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 입춘방(立春榜) 큰 글씨를 문 앞에 걸었던 탓이었다. 입춘(立春)! 이미 봄의 화신(花信)이 가까이 온 것이다. 며칠 전, 승주 차 밭에서 전화가 왔다. 대밭을 관리할 인부 몇 사람을 사야하니 비용(費用)을 보내란다. 벌써 차나무 관리가 시작되었구나. 내 마음도 덩달아 분주해졌다. 이맘때가 되면 산간 지역
산자수명(山紫水明)한 우리의 자연환경(自然環境)은 사람들의 심성(心性)이나 삶의 방식(方式)에 많은 영향(影響)을 미쳤다. 동이 틀 무렵 산뜻한 바람결, 투명한 맑음, 그리고 활활(活活)한 기운은 한국 산하(山河)의 장점이다. 이를 감지하는 태생적 능력 또한 우리의 마음과 인자(因子) 속에 온축(蘊蓄)되어 있다. 한국인의 미적 감각이나 정서는 바로 이런 태생적 바탕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따라서 담박 소쇄(淡泊 瀟灑)한 기품(氣稟)은 우리의 사유(思惟)와 문화의 최고 가치로 인식되었다. 한국의 차 문화는 바로 이러한 한국적 특성을 바탕으로 발전되었다. 맑고 산뜻한 맛과 활활한 생기(生氣), 황금빛 감도는 연두빛 차색의 투명함과 맑음은 한국적인 차 문화의 미감(美感)의 본질이며, 특수성으로 드러난
흰 눈이 사방(四方)에 가득하다. 아! 간밤에 눈이 내렸구나. 소쇄(瀟灑)해진 하늘, 까치 한 마리가 연신 꼬리를 흔들며 울고 있다. 행여 반가운 소식이라도 오려나. 문득 유종원(柳宗元:773~819)의 ‘강설(江雪)’이 떠올랐다. 온 산에는 새조차 날지 않고,모든 길엔 인적(人跡)마저 끊어졌다.외로운 배 위에 도롱이 쓴 노인이홀로 낚시질 하고언 강엔 소리 없이 눈이 내린다.(千山鳥飛絶, 萬逕人跡滅 孤舟 笠翁 獨釣寒江雪) 눈 내리는 강가의 풍경을 이처럼 맛깔나게 표현할 이, 많은 것은 아니다. 눈이 내릴 때의 고요한 정적(靜寂)을 선미(禪味)로 승화(昇華)한 것이다. 차를 마시는 정취(情趣), 이런 날이 제 격이다. 얼마 전 길어다 논 석간수(石間水)가 생각나 찻물을 끓였
겨울비가 내린다. 세상이 온통 잿빛이다. 까치밥으로 남겨둔 발간 홍시(紅枾), 붉은빛이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냉냉(冷冷)한 겨울, 참으로 차 마시기에 좋은 계절이다. 찻잔에 피는 운무(雲舞)의 신묘한 율동(律動)과 따뜻한 온기(溫氣)가 주는 편안함이 있다. 겨울 샘물은 온화(溫和)하고 조용하다. 강한 여름 샘물이나 청량한 가을 물과는 달리, 담담하고 장중한 물의 품격은 차를 다루기에 제격이다. 실제로 샘물은 계절과 채수(採水) 여건, 시간에 따라 변화 되며, 물에 따라 차 맛 또한 변화무쌍해진다. 따라서 탕법(湯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물이다. 하지만 차 맛은 물에 따른 변화뿐만 아니라 차, 다구, 물의 온도에 따라 변한다. 아무리 물에 대한 연구가 내밀(隱密)하더라도 차품(茶品)에 대한
추사가 초의선사에게 보낸 글. 소설(小雪)도 지났건만 노란 단풍이 제철을 만난 듯, 오가는 이, 나무 아래 서성이게 한다. 하늘에 가까운 나무 가지야 서리의 혹독한 시련을 견디다 못해 상처 낭자(狼藉)하지만 그래도 낙낙한 기상(氣像)이 있어 좋다. 최근 차 문화 연구에 획기적인 자료인 ‘다설’의 발굴은 고무될 만한 사건이었다. 특히 한국 차 문화의 쇠퇴기였던 18세기 후반 거의 황폐했던 정황을 읽을 수 있는 자료요, 찬란한 문화적 기반을 갖춘 것일지라도 사람들의 무지(無知)와 경제력의 약화는 쇠퇴를 가져오기 마련이다. 차도 예외(例外)가 아니어서 찻잎을 고아서 고(膏)를 만들어, 일상에 필요한 약으로 응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혼란을 극복하고 새로운 실마리를
만산(萬山)에 홍엽(紅葉)소식, 귓가에 쟁쟁한대 관악산 정수리에 눈꽃(雪花)이 장관이다. 이만한 절경(絶景)이야 그리 흔한 일은 아니다. 간밤에 천둥 소리 천지(天地)를 진동(振動)터니 이런 조화(造化)알리려고 하늘 북을 울렸구나. 얼마 전 서가(書架)의 책을 뒤적이다가, 황상의『치원유고(園遺稿)』에서「걸명시(乞茗詩)」를 읽었다.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의 강진시절 제자인 황상(1788~1870)은 「초의행(草衣行)」을 지었던 인물. 걸명(乞茗)은 차를 얻고자 초의선사에게 보낸 것이다. 그는 “육우의 좋은 차는 소문으로만 들었고 建安茶 출중함은 소문만 무성하다. 승뢰(乘雷)차는 다만 귀만 소란할 뿐 초의선사가 신령한 차 잎을 따, 만든 것만 못하다. 죽엽과 같이 작은 찻잎 새로운 뜻으로 만들어낸 것은
가을은 풍성한 계절이다. 황금 들녘이 그렇고, 아직은 어설퍼 보이는 단풍나무의 아름다운 자태도 곧 풍성해 질 것이다. 이백(李白)이 “의고(擬古)”에서 “달빛은 쓸 수 없고, 나그네 시름 다 말할 수 없네. 맑은 이슬 가을밤에 생기고, 이리저리 나는 반딧불, 풀 위를 난다네.(月色不可掃 客秋不可道 玉露生秋夜 流螢飛百草)”라고 했지만 어디 이백(李白)만이 가을을 노래했으랴. 마음 열고 세상일에 매이지 않는 이, 이만한 경계쯤이야 풀잎 위에 티끌이라. 올 가을은 추사 김정희 선생의 서거 15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가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과천 시민회관에서 열리는 “추사 글씨 귀향”은 추사연구에 평생을 받쳤던 후지츠카 치카시(藤塚隣 1879~1948)선생이 기증한 추사 관련 자료전이며, 국립 중앙 박물관에서 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