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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정토문 제1의 금서(禁書)

“함부로, 선근 없는 사람에게 보이거나 베껴 쓰게 하지 말라”

지난 편지에서 잇펜(一遍, 1239~1289) 스님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에 뒤이어서 이제는 신란(親鸞, 1173~1262) 스님에 대해서 말씀드릴 차례입니다. 물론, 이 차례는 그 스님들이 사셨던 시대의 선후와는 역순입니다. 다만 우리나라의 불자들에게 좀 더 이해하기 쉬운 스님부터 하자는 생각에서 정해진 순서입니다.

‘탄이초’ 정토진종 금서
소수 스님만 읽을 수 있어
근대 이르러 비로소 재발견
철학자·예술가 등도 극찬

“악한이 먼저 왕생한다”
“내겐 스승도 제자도 없다”
교단 필요 부정 파격 주장

그런데 신란 스님의 입장에 대해서는 다음 편지에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그 전에 먼저, 다음 편지에서 소개해 드릴 신란 스님의 말씀을 담고 있는 책에 대해 소개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에서입니다.

바로 ‘탄이초(歎異抄)’라는 책입니다. 제목의 의미는 이단(異端)이나 이설(異說)을 탄식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책 자체가 일종의 금서(禁書)로서 봉인(封印)된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그것도 정토문 밖에서가 아니라, 정토문 안에서입니다.

현재 ‘탄이초’의 가장 오래된 사본(寫本)은 정토진종의 제8세 렌뇨(蓮如) 스님이 필사한 것입니다. 렌뇨 스님은 정토진종의 제8세로 추대되기 전에, 본원사의 한 구석진 방에서 25년 동안이나 때를 기다리면서 공부에 매진한 시절이 있었습니다. 이때 정통 교리라고 인정되는 책들만이 아니라 다소 이단적인 책들이나 다른 종파의 책들까지 폭넓게 읽었습니다.

지금 말로 하면 일종의 퓨전 역시 이렇게 해서 생기기도 하고, 지피지기면 백전불패라는 말처럼 상대의 교설에 맞추어서 더욱더 나의 교설을 강하게 다듬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이 ‘탄이초’ 역시 읽혔고, 필사되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필사를 다 마치고 나서, 렌뇨 스님은 ‘탄이초’는 “전생에서부터 선근(善根)이 없는 사람에게는 함부로 보이거나 서사(書寫)를 허락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 까닭에 오랫동안 소수의 스님들을 제외하고서는 이 ‘탄이초’를 읽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근대에 이르러 비로소 ‘탄이초’가 재발견됩니다. 특히 정토진종의 동본원사(東本願寺), 즉 대곡파(大谷派)에서 ‘탄이초’에 주목합니다. 대곡파에서 세운 종립대학인 대곡대학의 초대 학장 기요자와 만시(淸澤滿之) 이래, 많은 사람들이 ‘탄이초’를 읽게 됩니다.

스님들이나 종립대학의 교수들만이 아닙니다. 작가, 철학자, 예술가 등도 앞 다투어 ‘탄이초’를 읽고 말합니다. 그 대표적 사례가 구라타 햐쿠조(倉田百三)의 희곡 ‘스님과 그 제자’입니다. 이 작품의 ‘스님’은 바로 신란 스님이고, ‘그 제자’는 지금은 ‘탄이초’의 편저자로 인정받고 있는 신란 스님의 제자 유이엔(唯円)입니다(우리말 번역본은 김장호 교수가 옮겼습니다).

여기서 이제 우리는 ‘탄이초’의 구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총 18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장에서 10장까지는 유이엔이 들은 신란 스님의 말씀이고, 11장에서부터 18장까지는 유이엔 스스로의 글입니다. 전자를 1부, 후자를 2부라 합니다. 그런데 1부와 2부가 시작되기 전에 각기 ‘서(序)’와 ‘별서(別序)가 있으며, 18장이 끝난 뒤에는 ‘후기’가 붙어 있습니다.

이 ‘후기’가 끝난 뒤에는 ‘유죄기록(流罪記錄)’이라는 특이한 내용이 기록돼 있습니다. 이는 바로 스승 호넨(法然) 스님과 함께 당한 법난에 대한 짧은 메모입니다. 이때 호넨 스님도 신란 스님도 다 귀양을 갑니다. 이 법난 이야기는, 다음 기회로 미루어 두고자 합니다.

‘탄이초’가 종문 제1의 금서라고 한다면 거기에는 놀라운 이야기, 평소에 듣지 못한 새로운 이야기들이 많이 등장하게 될 것임은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이 부분에 대한 확인은 여러분 스스로가 직접 노고를 기울일 수밖에 없습니다. 다행히 이 책에 대해서는 우리나라에서 2번 번역된 바 있습니다. 한 번은 마에다 류(前田 龍)·전대석 공역이며, 또 한 번은 오영은 번역입니다. 도대체 ‘탄이초’는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기에 스스로의 종단으로부터도 금서로 묶이게 되었던 것일까요? 이 점에 대해서는 저 자신도 자신 있는 해답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만, 추측하는 바는 없지 않습니다.

하나는 제3장에 나오는, 저 유명한 말과 관련되는 것 아닐까 합니다. “선인(善人)도 왕생하거늘 하물며 악인(惡人)이겠는가.” 아니, 이런 말이 있다니….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종래에 언제나 선을 행하는 것을 강조해왔습니다. 그리고 그 공덕으로 성불도 한다고 말입니다.

정말로 착한 사람보다도 악한 사람이 먼저 극락에 왕생하는가? 이런 질문이 이어집니다. 이에 대해서도 우리는 또 다른 기회를 가져야 할 것으로 봅니다만, 어쨌거나 ‘탄이초’를 금서로 묶은 데에는 자칫 잘못하면 이 제3장의 말씀, 이른바 악인정기설(惡人正機說)에 대한 잘못된 오해가 생길 수 있음을 염려했기 때문으로 생각됩니다.

다른 하나는 제6장에 나오는 말씀과 관련되는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나는 한 사람의 제자도 없다”라는 말씀입니다. 물론, 신란 스님에게도 많은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말 이렇게 한 사람의 제자도 갖지 않는다는 말이 구현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스승이 없고 제자가 없게 됩니다. 스승이 없고 제자가 없게 되면, 교단이 형성되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한 사람의 제자도 없다”라고 하는 것은 일종의 무사원(無寺院), 무교단(無敎團)주의입니다.

우메하라 다케시(梅原猛)의 이야기에 따르면, 초기의 정토진종에는 사원과 교단을 거대하게 성장시키고 발전시키려는 입장과 ‘탄이초’의 이러한 무사원, 무교단주의의 입장을 견지하려는 두 갈래 이념이 충돌하고 있었습니다. 전자를 대표하는 인물이 가쿠뇨(覺如)이고, 후자를 대표하는 인물이 손가쿠(存覺)였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부자지간인데, 바로 이러한 이념의 차이로 말미암아 부자지간의 의리를 끊는 의절(義絶)과 관계회복을 반복했다는 것입니다.

‘탄이초’에 일종의 금서 조처를 내린 렌뇨 스님 때에 이르면 이미 정토진종은 가쿠뇨가 추진하려고 했던 입장, 즉 거대한 종단으로 성장해야 한다는 유사원(有寺院), 유교단(有敎團)주의를 추진하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러한 이념적인 문제가 금서조처의 배경에 놓여있었던 것인지도 알 수 없습니다.

이제 더 이상 ‘탄이초’는 금서가 아닙니다. 거기 나오는 입장에 다 동의를 하느냐 않느냐 하는 것은 두 번째 문제입니다. 설사 동의를 하지 않더라도, 신란 스님이나 유이엔의 문제제기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받아들일 수 없다면, 그 점을 어떻게 비판하고 극복할 것인가? 또 그러한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이를 위해서도 ‘탄이초’를 읽지 않을 수 없습니다. 타력을 걷는 정토문의 사람만이 아니라, 자력을 걷는 성도문(聖道門)의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말씀드리려고 하는 신란 스님의 말씀은, 지금 이 편지에서 말씀드렸던 제3장이나 제6장의 입장과는 무관합니다. 그것은 제2장의 내용입니다. 아마도 좀 더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세계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잠시, 다음 편지를 기다려 주십시오. 나무아미타불

김호성 동국대 불교학부 교수 lokavid48@daum.net
 


[1409호 / 2017년 9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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