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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세 나라 이야기

기자명 최원형

백년동안 성장한 국민 힘이 핵 발전소 막아냈다

세 나라가 있다. 우연히 그 세 나라의 과거사를 들여다보다 재미난 사실을 발견했다. 세 나라 모두 한때는 같은 시도를 했다. 그러다 현재 두 나라는 같은 길을 또 한 나라는 완전히 다른 길을 가고 있다. 그런데 같은 길을 가는 두 나라도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평화적 사용 내세워 핵발전 보급
독일, 환경문제 눈뜨고 반핵운동
덴마크, 시민 반대로 핵발전 접어
일본, 핵발전소 짓고 원전사고

유전이 개발되면서 석유가 일상적인 에너지의 대명사가 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다 70년대 두 번의 오일쇼크가 들이닥친다. 4차 중동전쟁과 이란 혁명이라는 변수가 기름 값을 큰 폭으로 올려놔버렸다. 당시 주요 국가들의 주가가 폭락했으니 경제에 미치는 파장이 적지 않았다. 발등의 불도 문제지만 70년대면 세계 경제가 순풍을 타며 꾸준히 성장가도를 달릴 때였다. 풍요로움의 단맛에 한창 빠져들던 때라 에너지 소비 역시 꾸준한 상승 그래프를 그리고 있었다. 향후 에너지소비가 꾸준히 증가했을 것이라는 사실은 굳이 과거 통계치를 뒤지지 않아도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기후변화가 심각한 지경에 이른 오늘날에도 해마다 에너지 소비가 증가하는 마당에 그때야 말할 필요도 없지 않을까.

석유를 대체할 에너지원을 찾는 일은 선진국을 중심으로 진행되었고 당시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미명 아래 핵발전이 슬그머니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 왜 미명인지에 대해서는 다른 기회에 지면을 통해 언급할 예정이다.

그 세 나라는 독일, 덴마크 그리고 일본이다. 우리에게 탈핵국가의 대명사로 알려진 독일은 이미 1969년부터 실용적인 목적의 핵발전을 시작한 핵에 우호적인 국가였다. 핵발전소 건설이 꾸준히 증가해 한때 나라 전체 전력의 30%를 핵발전이 담당하기도 했다. 1970년대 초 프라이부르크 가까이에 있는 비일지역에 독일 연방정부는 스무 번째 핵발전소 건설계획을 세웠다. 비일지역 사람들은 주거지역의 숲이 망가지면서 핵발전소가 들어오는 것에 반대했다. 반대운동을 하다가 핵발전소뿐만 아니라 환경문제 전반에 눈을 뜨게 됐다. 이런 움직임은 독일 곳곳으로 퍼져나갔고 그 와중에 체르노빌 사고가 일어났다. 시민들의 반핵운동은 대단했다. 독일정부는 결국 2022년까지 핵발전소를 모두 폐쇄하기로 결정한다. 오일 쇼크 당시 덴마크는 전체 에너지 공급량 가운데 수입하는 석유가 88%를 차지하고 있었다. 석유의존도가 높았던 만큼 핵발전소가 화두로 떠올랐다. 1976년 덴마크 정부는 향후 20년 동안 에너지소비가 50%가량 증가할 것이란 예측을 토대로 15기의 핵발전소 착공 계획을 발표했다. 그런데 시민단체들은 ‘대체 에너지 정책 보고서’를 내놓는다. 덴마크 공과대학의 닐스 마이어 물리학교수를 비롯한 과학자와 시민들이 함께 머리 맞대고 만들어낸 보고서였다. 10년간 정부와 시민 사이의 지난한 싸움 끝에 핵발전을 접는 걸로 결론이 났다. 그 결과 덴마크에는 핵발전소가 아예 없다.

나머지 한 나라는 일본이다. 일본은 핵발전 상업운전을 1966년에 시작했다. 이른 출발이었고 매우 공격적으로 핵발전소를 건설했다. 시민사회는 조용했고 정부는 마음껏 핵발전소를 지었다. 정부의 이런 친핵 정책에 처음으로 반대의 목소리가 나왔던 것은 세계 최초의 고속증식로 몬주에서 냉각제유출사고가 있었던 1995년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6년 뒤 후쿠시마 사고가 터졌다. 사실 일본은 핵과 악연이 있는 나라다. 1945년 8월 6일과 9일 두 차례에 걸쳐 핵폭탄이 투하됐던 나라니까. 그리고 그 후유증은 대를 이어 지속되고 있다. 그럼에도 또 다시 핵을 들여왔고 세계에서도 유래가 없는 9등급의 핵발전소 사고를 당하고야 말았다.

세 나라의 이야기에서 중요한 사실을 하나 발견할 수 있었다. 덴마크는 핵발전을 시작하기도 전에 시민사회의 반발로 핵발전을 아예 접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를 들여다보다가 그룬트비를 만났다. 그룬트비는 19세기 사람으로 종교인이면서 시인이자 농민교육자다. 틀에 짜인 교육이 아니라 일하는 국민을 위한 학교의 필요성을 역설했고 그의 철학에 영향을 받은 자유학교들이 덴마크 곳곳에 만들어졌다. 선생과 학생의 구분이 아니라 남녀노소 누구를 막론하고 평등하게 자유학교에서 다양한 토론을 하면서 생각을 키워가는 폴케호이스콜레가 그 한 사례다. 이렇게 백년 이상 키워진 국민의 힘이 핵발전소가 발을 들여놓지 못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정부가 20년 동안 50%의 에너지증가를 예측했을 때 시민들은 ‘왜 그토록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가?’ 의문을 던졌고, 핵발전소가 생산하려는 전기를 풍차로 해결하자고 했다.

신고리 5,6호기 건설찬반을 묻는 공론화 기간이다. 더 이상의 핵발전소를 멈추라고 외침을 할 시민의 힘이 절실한 때다. 우리는 어느 나라의 길을 갈 것인가?

최원형 불교생태콘텐츠연구소장 eaglet777@naver.com
 


[1409호 / 2017년 9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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