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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인디언 로우의 당처(當處)

“나는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오”

▲ 그림=근호

이 이야기는 ‘영혼을 위한 닭고기 스프’에 있는 내용을 필자가 손질하여 고쳐 쓴 것이다.

인디언 로우에 백인 사업가가
“취직해 돈 벌라”고 충고하며
“돈은 주조된 자유” 강조하자
“지금바로 자유 찾으라” 반박

바람이 매섭게 몰아치는 보스턴의 전형적인 아침나절이었다. 차들이 어찌나 밀리는지 운전사들은 짜증이 나서 서로를 노려보았다. 모두가 불행한 표정이었다.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그는 내가 타고 있던 택시의 운전사였다. 내가 그에게 말했다.

“길이 막히는데도 당신은 조금도 짜증을 내지 않는군요.”
“그럴 이유가 없잖소?”

운전사는 느긋한 표정으로 주차장처럼 변해버린 도로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어차피 아무 데로도 갈 수 없죠. 그러니 흥분할 이유가 없잖습니까?”

“그런데도 짜증이 나는 것 또한 사실이잖소?”

그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고 말했다.

“내가 손님에게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소. 사람들은 왜 택시를 타는 거요?”
“어딘가로 가야 하니까. 가능한 한 빨리.”

이렇게 말하며 나는 약속 시간이 임박해오고 있음을 가리키고 있는 손목시계를 보았다. “나는 삼십 분 후에 비행기를 꼭 타야 하고, 그래서 택시를 잡았단 말이오.”

“그렇군요. 그런데 그 문제에 있어서 나는 어떨까요? 택시 운전사인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요? 나는 지금, 당신을 비롯한 택시 손님들은 목적지로 가고 있는데 택시 운전사인 나의 목적지는 어디일까를 묻는 거요.”

나는 그에 대해 잠깐 생각해보았다. 택시 운전사의 목적지는 내가 가고 있는 공항인 걸까?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 내가 대답을 망설이자 그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나의 목적지는 언제나 택시 안이라오!”

나는 잠깐 그 말의 의미를 되새겼다. 택시 운전사가 다시 말했다.

“나는 늘 택시 안에 있죠. 택시가 거리에 있을 때도 거리의 택시 안에 있고, 고속도로에 있을 때로 고속도로의 택시 안에 있죠. 내 말은 나는 언제나 저기가 아닌 여기에 있단 뜻이오. 이건 공간 이야기지만 이걸 시간으로 바꾸면 나는 언제나 삼십 분 후 미래가 아닌 지금에 있는 게 된다오.
그리고 생각을 고쳐 먹기만 한다면 그건 누구나 마찬가지가 아니겠소? 당신도 지금 택시 안 여기에 있고, 같은 의미에 지금에 있는 게 아니냔 말이오. 예를 들어 당신이 지금 삼십 분 후 미래의 공항을 생각하고 있다고 해도 그 생각은 지금 하고 있는 게 아니겠소? 또는, 어쩔 수 없게 되어가고 있는 삼십 분 후 미래 대신  시간 차질이 생긴 후에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대처법이 무엇인지를 지금 생각해볼 수도 있지 않겠소?”

택시 운전사가 말을 이었다.

“아무려나 내 말은 이 정도로 하고 내가 손님께 인디언 로우 이야기를 들려드리리다. 인디언 로우가 강가에서 낚시를 하고 있었소. 잠시 후 한 백인 사업가가 값비싼 요트를 로우가 앉아 있는 옆자리에 대고는 로우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자기 아내에게 ‘저길 봐(영어로 로우)! 가난뱅이 인디언을 말이야!’라고 말한 다음 로우를 향해 거만하게 걸어왔소. 그가 로우에게 물었소.

‘자네, 거기서 뭘 하고 있나?’
‘보면 모르오? 낚시를 하고 있잖소?’
‘내 말은, 왜 돈을 안 벌고 낚시를 하고 있느냔 얘기야.’
‘내가 돈을 안 번다는 걸 어찌 아오?’
‘떨어진 옷을 입고 있으니까.’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요. 당신은 당신 일이나 보쇼.’
‘내 말은 당신도 취직을 해서 돈을 벌라는 이야기야.’

인디언 로우는 낚싯대를 놓고 돌아 앉더니 사업가에게 물었다.

‘백인 양반, 내가 몇 가지 물어보아도 좋겠소?’
‘뭐든지!’
‘돈은 왜 벌어야 하는 거요?’
‘돈을 버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인데 그걸 묻다니 당신 바보 아냐?’
‘다시 묻겠소. 돈을 왜 벌어야 하는 거요?’
‘그게 꼭 궁금하다면 내가 대답해주지. 자네가 돈을 왜 벌어야 하느냐면 돈을 모아야 하기 때문이야.’
‘다시 묻겠소. 돈은 왜 모아야 하는 거요?’
‘모은 돈을 투자하거나 사업을 해서 나처럼 큰돈을 벌 수 있으니까.’
‘그렇다 칩시다. 그렇게 해서 큰돈을 벌면 뭘 하게 되오?’
‘그땐 그 돈으로 자네가 하고 싶은 일을 맘대로 할 수 있게 돼. 내가 마누라와 함께 요트를 타고 즐기는 것처럼 말야. 돈이 사람을 자유롭게 만들어준다는 얘기야. 누군가가 말했지. 돈은 주조(鑄造)된 자유라고.’

사업가의 설명을 다 듣고 나서 인디언 로우는 몸을 돌려 낚싯대를 다시 잡으며 말했다.

‘자유를 주조하기 위해 굳이 쇠붙이를 달굴 필요가 있겠소? 자유는 지금-여기에 이렇게 풍부하게 널려 있는데! 백인 양반, 난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오!’

과거·미래보다 지금이, 저기·거기보다 여기가 중요하다고 가르치는 명언들은 많다. 한 예로, 예수는 “내일 걱정은 내일로 미루라. 오늘은 오늘 걱정으로 충분하다.”고 말했다. 스피노자의 “설사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고 하더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말도 유명하다.

알고 보면 불교의 가장 중요한 선정법인 위빠싸나는 마음을 ‘지금-여기’에 두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수행법이다. 위빠싸나는 몸·느낌·마음· 법 등 네 주제를 있는 그대로 통찰하는 수행법인데, 이 네 가지 수행 주제는 과거나 미래가 아니라 지금의 그것이며, 이 네 가지 수행 주제를 통찰하고 있노라면 마음은 저절로 여기에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내가 삶을 경험하고 있는 현장을 당처(當處)라고 부르거니와 불교에서의 당처는 내가 있는 사무실이나 거실을 의미하지 않는다. 불교는 내가 있는 장소 말고 또 다른 당처를 말한다. 내가 있는 장소를 경험하는 몸과 마음이 그것이다.

먼저 첫 번째 당처에 마음을 두어 내가 지금 해야만 하는 일에 전념하자. 그럼으로써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걱정에서 벗어나자. 그런 다음 두 번째 당처에 마음을 두자. 지금­여기에 마음을 머물러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을 있는 그대로 통찰함으로써 심신 가운데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자. 불교는 말한다. 그때 우리는 삶이라는 무거운 짐을 벗고 홀가분해질 것이라고.

김정빈 소설가·목포과학대교수 jeongbin22@hanmail.net
 


[1409호 / 2017년 9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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