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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지혜와 함께하는 연민수행

기자명 재마 스님

지혜의 가르침은 자비·연민 수행에서 빛나

지난주에 저는 어느 독자로부터 한 통의 메일을 받았습니다. 첫 느낌은 반가움과 당혹스러움이었습니다. 하지만 찬찬히 읽어본 그 메일 속에는 출가자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느껴져 저의 출가 목적과 이유, 삶의 자세를 돌아보게 하는 따뜻한 마음이 느껴져 고마웠습니다. 제 글에서 느껴지는 부족함을 짚어주면서 불교의 가르침을 순수하게 전할 것을 당부한 말씀은 제 수행에 대한 일침이라고 받아들입니다.

지혜·자비 날개처럼 양립할 때
완전한 깨달음의 완성도 가능
우리 삶 주변 도움으로 이뤄져
타인과 맺은 인연에 감사해야

그런데 그분이 제게 보내주신 연민(karuna, compassion)수행에 대한 이해는 완전한 깨달음인 열반이나 공(空)을 위한 지혜수행이 아니기 때문에 세속적인 작업이라는 뉘앙스를 받았습니다. 어쩌면 다른 독자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계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번 글에서는 연민수행과 지혜수행이 함께 필요함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연민수행은 이 세상에서 몸을 가진 인간들이 수행하는 동안 경험하는 고통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합니다. 깨달음을 위한 수행도 결국 이 세상에서 인간의 몸으로 수행을 하기 때문에 완전한 깨달음으로 가는 데는 새의 날개처럼 지혜와 자비가 함께 가야합니다.

세상의 모든 존재들이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고통 속에 있는 존재들을 향해 연민의 마음을 보내도 존재들은 고통을 벗어나지 못하는데, 그것은 각자의 업(業)과 업의 원인들 때문이라는 지혜를 바탕으로 해야 중단하지 않고 연민수행을 지속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혜수행을 통해서는 이 업과 고통의 본성은 환영과 같고, 물거품과 같이 공(空)한 것을 알게 되기 때문에 ‘금강경’이나 ‘반야심경’에서 말씀하듯이 결국은 연민을 하는 자도, 받는 자도, 수행도 없다는 진제(眞諦)의 완성에 이르게 된다고 봅니다.

그런데 지혜의 가르침은 역설적이게도 더 자유롭게 자비수행으로 드러나게 해준다고 봅니다. 인간이 고통에서 벗어나 열반에 이르는 탁월한 길을 제시한 대승불교는 홀로 아리랑을 넘어서 더불어 큰 배로 함께 노를 저어 저 언덕으로 가자는 운동입니다.

부처님께서 사무량심수행을 말씀하신 이유도 제자들이 통찰수행을 통해 무상·고·무아의 본질을 깨닫는 과정에서도 현상적으로는 대중들과 관계를 계속하며, 함께 생활할 때 자애와 연민과 기쁨, 평온 등의 긍정적인 마음이 발현되어야 화합하는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다고 보셨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서 사무량심이 자신을 가득 채우고 넘쳐서 위로 아래로 사방팔방으로 퍼져나가 모든 존재들을 위한 평화의 세상을 구현하고자 하신 것이죠.

지난주에 말씀드린 파머도 ‘온전한 삶으로의 여행’에서 내면의 교사가 드러나는 여러 방법 중에 고독과 커뮤니티를 함께 필요로 한다고 말합니다. 붓다고사 스님이 엮으신 ‘청정도론’에서는 부처님께서 깨달은 지혜의 눈으로 바라보셨을 때 모든 인간들이 전생에 자신의 어머니가 아니었던 이가 없다고도 하셨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나와 무관한 듯이 보이는 사람들도 6명을 거치면 모두가 아는 사람이라는 것이 실험을 통해 드러났습니다.

‘입보살행론’을 지으신 샨티데바 스님도 타인의 고통은 우리와 무관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것은 지혜에서 생겨난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혜가 발현될수록 타인이라는 경계를 분명하게 구분하기가 어려우며, 타인의 입장과 자신의 입장을 바꿔보는 수행을 하면 지혜가 계발된다고 하십니다. 나를 미워하고 험담, 욕설을 하는 사람도 나에게 인욕수행을 할 기회를 주는 고마운 분이며, 나는 그분으로 인해 인욕수행을 통해 즐겁고 행복한 과보를 받는데, 그분은 욕과 험담의 원인으로 인해 고통과 괴로움의 과보를 받을 것을 생각하면 연민의 마음이 쉽게 일어날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의 삶은 얼마나 많은 이들의 도움과 활동, 헌신으로 이루어지는 것일까요? 평소 타인이라고 알고 있던 이들이 나와 어떤 관계를 맺는지, 어떤 고마운 인연인지 깊이 숙고해보면 어떨까요?

재마 스님 jeama3@naver.com

[1410호 / 2017년 10월 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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