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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합중 정신으로 돌아가자

기자명 이중남

사람은 자기가 소속된 집단, 즉 내(內)집단을 외(外)집단에 비해 편안하게 느끼고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자기가 속한 집단 안에서 적당한 위치를 찾고, 거기에 부응하는 역할을 수행하면서 보람을 느낀다. 이것이 심리학과 사회학에서 성립한 ‘사회 정체성 이론’의 요지다. 하지만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집단 간 분쟁이 그저 각자 자기네 편을 드는 것만으로 원만하게 해결될 수 있다거나, 내용을 불문하고 내 편에 유리한 것이 공정하다는 식의 논지가 성립될 리는 없다. 오히려 소속을 떠나 객관적으로 성찰하는 때 치우침 없는 결론에 도달한다고 보는 편이 사실에 가까울 것이다.

조계종은 요즘 종단 지도부를 성토하는 촛불법회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촛불법회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이견(異見)이 자유롭게 표출되는 것이야말로 건강한 집단이라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생각했다. 그런데 ‘개혁’이나 ‘각성’ 같은 구호를 넘어 ‘적폐청산’이라는 용어가 등장하고, 또 그 책임을 물어 임기가 거의 끝난 총무원장에게 퇴진하라는 요구까지 나오는 것을 알고는 적잖이 놀랐다.

촛불법회는 벌써 여러 달째 이어지며 규모가 확대되어 왔다. 다만 거기 모인 대중의 뜻이 누구 말처럼 총무원장 선거를 겨냥한 단순 동원인지, 미진한 종단개혁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하고 각성을 촉구하는 차원인지, 아니면 정말로 이 모든 것이 적폐세력인 현 지도부와 시스템 때문이니 완전히 갈아엎고 새 판을 짜자는 것인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법회 참가자들의 참가 동기와 주장의 면면을 보아도, 일부 사건들에 대한 처리의 부당성, 몇몇 피징계자의 발명, 금권선거 비판, 언론에 대한 억압과 선거중립 의무 위반, 총무원장 직선제, 수행자 노후복지와 비구니승가의 위상 같은 종책 문제 등 하나로 범주화하기에는 너무나 이질적이다. 그리고 그런 모든 것들이 현 집행부를 적폐로 규정해 퇴진시키고 직선제를 채택하면 해결될 문제인지도 분명치 않다.

기대가 크면 물론 실망도 크기 마련이다. 하지만 조계종처럼 전국망을 가진 종교조직은 기민한 변화보다는 조직적 통일성과 안정성에 친하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개혁이 더디고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고 당장 판을 엎자고 주장하는 것은 성급하다고 본다. 하물며 권위주의 정권 시기의 구태가 불교계에서는 여태 진행 중이라거나, 조계종이 94년 종단개혁 이전으로 퇴행했다는 주장은 과도한 것이다.

종단 집행부는 현안에 대한 대중공사를 여러 차례 열어 중의를 타진하는 노력을 기울였고, 현재 촛불법회에서 주장하고 있는 대부분의 종책은 실은 그런 계기를 통해 수립·제안되어 오던 것들이다. 또 결사추진본부나 사회노동위 등 종령 기구들을 신설해 사회적 요청에 부응하고 소수자·약자 보호를 위해 전례 없이 애써온 공로가 뚜렷하다. 다만 범계자 등에 대한 사법(司法) 처리의 공정성을 둘러싼 시비는 정말 어려운 문제다. 시비가 일어난 예는 전체 징계 건수에 비하면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일부 피징계자들이 사실관계부터 평가에 이르기까지 유권 기관의 결정과 완전히 다른 주장을 하고, 거기에 불교와 무관한 사회 인사들이 함께 총무원장 퇴진을 외치는 형국이니, 종단과 승가의 위신은 떨어지고 불자들은 상처받고 있다.
제35대 총무원장 선거가 시작되었다. 입후보한 모든 분들이 위기를 수습할 지혜를 구하며, 촛불법회를 포함한 교단 내 모든 의견을 경청하겠다고 밝히고 있는 점은 다행한 일이다.

승가가 화합승(和合僧)이듯, 대중은 화합중(和合衆)이다. 화합은 평등을 전제로 하며, 대화를 통해서만 달성된다. 선거는 특히나 대화에 적합한 장이니, 이를 통해 잘못된 것이 있으면 바로잡고, 오해가 있으면 풀고, 감정의 앙금을 씻어 화합의 정신을 회복하기를 기원한다.

이중남 마하이주민지원단체협의회 운영위원 dogak@daum.net
 

[1410호 / 2017년 10월 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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