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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언론들, 로힝야족 사태 오도 말아야”

기자명 법보신문
  • 교계
  • 입력 2017.10.03 13:54
  • 수정 2017.10.03 14:18
  • 댓글 7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기고

로힝야족 문제 근원은 영국 식민정책
미얀마 불교도들은 타종교에 관용적
독립 과정 거치며 불교민족주의 등장
사이비 불교지도자들이 정치적 악용
동남아 ‘불교-이슬람’ 종교갈등 우려
불교 폭력 일반화 현상 보도는 잘못
조계종이 관련국 대사 대화 주선을

▲ 2017년 9월26일 스리랑카 수도 콜롬보의 UN난민 캠프에 수용된 로힝야족 난민을 추방하라고 시위를 벌이는 극단파 불교도들.
흔히 불교국가로 알려진 미얀마(옛 버마)에서 여러 해 전부터 소수 종족이며 무슬림인 로힝야 족이 겪고 있는 고통이 전해지고 있었지만, 최근에는 미얀마 밖의 이슬람 국가들도 이 사태에 개입하면서 더욱 심각한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게다가 아직 일부에 지나지 않지만 스리랑카의 일부 극단적 불교주의자들이 미얀마의 무슬림 탄압을 응원하는 집회까지 열고 있어서, 이러다가 자칫하면 여러 나라가 관계된 ‘불교-이슬람’ 갈등 양상으로 확대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언론 보도를 통해서도 알려졌지만, 로힝야족 문제의 근원은 과거 아시아 여러 나라를 식민 지배했던 제국주의 영국이 뿌려놓은 악연(惡緣)의 씨앗에 있다. 영국 지배자들의 편의를 위해서 현재의 방글라데시에 거주하던 로힝야족을 대거 미얀마로 이주시켜 이용하다 미얀마 독립 시에 그 갈등의 원인을 버려둔 채 떠나간 것이다.(현재 말레이시아 주석광산 노동자로 중국인, 고무농장 노동자로 인도인들을 끌어와 쓰다가 그냥 버려놓고 떠나 인종과 종교 갈등의 씨앗을 뿌려놓고 간 것도 영국이다.)

본래 미얀마 불교도들은 다른 종교와 신앙에 관용적이었다. 이미 500년 전부터 가톨릭과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어서 양곤에는 수백 년 된 성당이 있고 신도들은 별 어려움 없이 가톨릭 종교 활동을 이어간다. 로마 교황청에서도 그 중요성을 감안하여 추기경을 임명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남쪽의 스리랑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제국주의 영국의 지배에 저항하는 독립운동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불교와 민족주의가 결합하여 불교민족주의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독립을 이룩하기까지 이 불교민족주의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고, 독립 이후에도 국가가 안정을 확보하는 데에 기여하였으니 미얀마와 스리랑카에서 불교민족주의의 등장과 전개는 당연한 역사 발전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세상 다른 일들이 다 그렇듯이,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한 법”이다. 과거 제국주의에 저항하고 독립을 열망하며 출발한 그 운동의 순수성은 사라지고 이제 자신들의 정치 입지를 강화하거나 사회 영향력을 확장하려는 불순한 ‘주의자(主義者; ~ist)’들이 이 불교민족주의를 악용하게 된 것이다. 이 불순한 사이비 불교 지도자들에게 대중들이 속아서 미얀마에서는 로힝야족, 스리랑카에서는 타밀족에 대한 타도와 절멸(絶滅)을 외치는 상황까지 온 것이다.

로힝야족 사태가 국제 이슈가 되면서 이웃의 이슬람 국가인 말레이시아에서 비행기를 급파해 난민을 자국으로 데려가기도 하는데, 이런 소식은 다른 무슬림들을 자극해 언제 어떤 상황이 터져 나올지 예측할 수 없게 만든다. 게다가,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지난 9월26일 스리랑카 수도인 콜롬보에서는 극단적인 승려가 이끄는 불교 집단이 “미얀마의 불교도들이여, 스리랑카 국민은 여러분과 함께 합니다. 테러리스트들이 모두 다 무슬림은 아니지만, 테러리스트들은 대부분 무슬림”이라고 쓴 펼침막을 들고 UN이 운영하는 난민 캠프에 있는 로힝야족들을 해외로 추방하라는 시위를 하는 장면이 외신으로 전해졌다.

이 사진을 내 페이스 북에 올리자, 파키스탄 출신으로 한국에 와서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 대학에 근무하는 어느 의사는 “한국의 불교도들은 친절하지만, 미얀마와 스리랑카 불교도들은 모두 살인자들…”이라는 댓글을 달고 비슷한 내용을 메시지로 보내오기도 하였다. 다른 문제에서도 그렇지만, 특히 이 종교 갈등 문제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와 같다. 미얀마와 스리랑카에서 이런 식으로 이 화약고에 휘발유를 끼얹고 불을 붙이게 되면, 전 세계의 무슬림들을 자극하게 될 것이고 그 후유증은 상상 밖으로 크고 깊을 것이 분명하다. 가장 가깝게는 방글라데시의 소수 불교도인 줌머족들이 더욱 고통을 당하게 될 것이고, 세계 최대의 무슬림 국가이지만 전 국민의 3%가 불교도로 그 동안 평화롭게 공존해온 인도네시아에서도 불교 사원과 불교도들이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1969년 종족 분쟁 이래 조용했던 말레이시아에서도 위기 발생 가능성이 있고, 그 북쪽의 태국에서도 ‘불교-이슬람’ 갈등이 더욱 깊어갈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언론에서는 이 사태에 대한 심층 분석 없이, “다수인 불교도들이 소수자인 무슬림들을 탄압‧추방‧인종청소하고 있다”고 보도하는 경우가 많아서 걱정이다. 특히 이스라엘 군인들이 유아를 포함한 팔레스타인의 비무장 민간인들을 학살하는 데에 대해서는 입 한 번 뻥긋하지 않던 신문에서는 기사 제목을 ‘불교도의 무슬림 학살’이라는 식으로 해서 불교의 폭력이 일반화된 현상인 것처럼 보도하면서 독자들을 오도(誤導)하고 있어서 안타깝다.

제발 한국 언론에서 이 사태를 선정적으로 전하며 화약고에 부채질을 하는 짓은 멈추길 바란다. 그리고 불교계가 앞장서서 미얀마‧스리랑카‧태국‧인도네시아‧파키스탄‧말레이시아 등 남아시아의 불교와 이

▲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슬람 국가의 주한 대사관을 통하여 각 정부와 국민들에게 ‘평화를 간절히 희망하는 우리의 발원’을 전해주면 좋겠다. 조계종 총무원이 이 나라들의 대사를 동시에 초청하여 대화 모임을 주선하는 것도 방법이 될 것이다.

이번 시위를 주도한 스리랑카의 일부 사이비 불자들처럼 아집과 편견에 사로잡히고 세상을 ‘내 편, 네 편’으로 가르는 진영(陣營)의 족쇄에 묶여서 허우적대는 이들, 나와 남을 함께 사랑하는 자비의 마음을 망각한 이들이라면, 그들이 설사 승복을 입고 매일 절에 가서 예불을 드린다고 할지라도 부처님 제자라고 할 수 없다. 미얀마와 스리랑카 사태를 보면서, 우리 안에는 이런 더러움이 없는지 다시 점검해볼 필요도 있다.

[1411호 / 2017년 10월 1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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