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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담란 스님의 공사상

정토와 중관 가르침 다르지 않아

중국 칭명염불 선구자 담란 스님은
공사상에 정통했던 뛰어난 사상가
아미타불 법신이듯 극락도 법성토
극락 유무 묻는 것은 희론에 불과

오늘은 담란(曇鸞, 476~542)스님의 말씀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담란 스님은 원래 사론가(四論家)입니다. 네 가지 논서, 즉 용수(龍樹)의 ‘중론(中論)’ ‘십이문론(十二문論)’ ‘대지도론(大智度論)’, 그리고 용수의 제자인 제바(提婆)의 ‘백론(百論)’을 전문적으로 연구하셨습니다. 이러한 네 가지 책들은 모두 공(空) 사상에 입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50대 중반에 이르러 정토신앙을 받아들이게 되었으며, 중국 정토신앙의 앞머리에 자리하게 됩니다. 중국 정토교의 역사에서 다른 흐름도 있습니다만, ‘무량수경’ ‘관무량수경’, 그리고 ‘아미타경’에 입각한 정토신앙 즉 “나무아미타불”이라고 아미타불의 이름을 칭명(稱名)하는 방식의 정토신앙을 말할 때는 담란 스님이 중국의 최초라고 말하게 됩니다.

그러한 역사적 평가를 담란 스님에게 드려야 하는 것은, 바로 그 분이 ‘정토론주’라는 저술을 남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2권으로 이루어져 있는 이 책은 달리 ‘왕생론주’라고도 말합니다만, 정식 이름은 ‘무량수경우파제사원생게주(無量壽經優婆提舍願生偈註)’입니다.

‘무량수경’은 정토신앙의 가장 근본적인 경전이라 말해도 좋을 것입니다. 아미타불의 48가지 본원이 말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무량수경’에 대하여 인도의 천친(天親)이 주석서를 남기고 있습니다. 천친은 달리 세친(世親)이라고 부릅니다. 과연 유식학파의 그 세친이 이러한 정토사상의 텍스트를 저술했겠는가 하는 점에 대해서 의심하는 견해도 있습니다만, 그 내용에는 유식사상의 입장이 투영되어 있다고 인정됩니다.

우파제사라는 말은 산스크리트 upadeśa의 음사(音寫)입니다. 어원학적으로 말하면, ‘가까이에서 가리키는 것’이라는 말이므로 주석서의 뜻입니다. 그러니까 천친은 ‘무량수경’을 읽고서는 그에 대한 하나의 주석서를 쓰기로 하였습니다. 우선 게(偈, gatha)로 씁니다. 게는 시(詩)라는 말입니다.

이 시의 이름을 ‘원생게’라고 한 것은 ‘무량수경’의 주제가 극락정토에 왕생하는 것을 원하는 것이라 보았기 때문입니다. 천친은 시를 짓고 나서, 이 시에 대해서 산문으로 주석을 씁니다. 그리고 이 둘을 하나의 책 속에서 순서대로 합편(合編)합니다. 그것이 ‘무량수경우파제사원생게’입니다. 간략히 ‘정토론’ 내지 ‘왕생론’으로 부릅니다.

담란 스님의 ‘정토론주’를 읽어보면 그분이 정토사상을 만나기 전에 사론가 즉 공사상의 전문가였다는 점을 잘 느낄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다음과 같은 문장은 담란 스님이 말하는 정토사상의 핵심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일법구(一法句)라는 것은 청정구(淸淨句)이다. 청정구라는 것은 진실한 지혜인데, 무위(無爲)의 법신(法身)이기 때문이다. 이 세 구절(일법구, 청정구, 진실지혜·인용자)은 맞물려 서로서로 포함한다. 어떤 의미에서 법이라 말하는가 하면, 청정하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 청정하다 말하는가 하면, 진실한 지혜가 무위의 법신이기 때문이다. 진실한 지혜는 실상(實相)의 지혜이고, 실상은 무상(無相)이기 때문에 진실하게 아는 것(眞智)은 앎이 없는(無知) 것이다. 무위의 법신은 법성의 몸(法性身)인데, 법성이 적멸(寂滅)하기 때문에 법신은 무상이며 무상이기 때문에 상(相)이 아님이 없다. 그러므로 상호(相好)를 장엄하는 것이 곧 법신이다.”(대정장 40, 841쪽 中)

실상은 무상이라 말하고 있고, 무상은 또한 상이 아님이 없다고 말합니다. 이때 ‘상’이라는 말은, 곧 형상입니다. 형체입니다. 지금 무상이면서도 상이라고 하는 것, 즉 유상(有相)이라고 말하는 것은 모두 술어입니다.

그러면 주어는 무엇일까요? 바로 법신입니다. 법신은, 다 아시다시피 부처님의 몸을 세 가지로 말할 때, 가장 근본적인 몸을 법신이라 하는 것이지요. 진리 그 자체를 법신이라 하였습니다.

일법구라고 한 것은 총체적으로 말할 때 하는 것이고, 세부적으로 나누어서 말하면 극락의 국토, 극락의 아미타불, 그리고 극락의 보살을 말하는 것입니다. 극락의 국토, 아미타불, 보살, 이러한 세 가지 주제는 바로 ‘무량수경’에서 말하는 내용의 범위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상권은 그 세 주제를 말하고 있습니다.

극락, 아미타불, 보살을 함께 하나로 포섭하여 말하게 되면, 결국 일법구입니다. 하나인 법(一法)입니다. 그 일법을 말하는 중에 법신을 이야기하게 되고, 그 법신은 무상이면서 유상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법신은 아미타불을 그렇게 보고 있는 것입니다.

흔히 아미타불은 보신(報身), 즉 수행의 과보로 얻은 부처님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담란 스님은 법신을 법성법신과 방편법신 둘로 나눕니다. 법성법신은 법신에 해당하고, 방편법신은 보신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무상이면서 유상이 아닐 수 없다는, 얼핏 보면 모순적으로 보이는 이런 언술은 법신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주어로서 아미타불만이 가능한 것이 아니라, 극락 역시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극락국토 역시 일법구의 세 가지 주제에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자, 극락이 있는지요? 이렇게 물으니까, 담란 스님은 “극락의 참모습(實相)은 모습이 없다(無相). 그러므로 모습이 아닌 것도 없느니라.” 이렇게 답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형상이 없다면, 형상을 취하는 것은 아닌 줄 압니다. 그렇게 알게 되면, 형상이 없는 것과 형상을 상대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됩니다. 그 세계를 넘어서야 불이(不二)에 들어가는 것이지요.

형상이 없으므로 형상이 아님이 없다는, 이 무상과 유상 사이의 전환 내지 비약은 바로 불교의 묘미입니다. 그러므로 극락국토가 어떻게 생겼다는 ‘무량수경’의 설명들, 즉 장엄들은 다 타당하다는 것입니다. 아미타불이 법신이듯이, 극락국토 역시 법성토(法性土)입니다. 법성토이므로 형상이 없는 것이지만, 형상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형상이 없이 형상이 있다고 하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형상이 있으면서 형상이 없다는 것입니다. 형상이 있으면서 형상이 없다는 것은 색즉시공(色卽是空)이고, 형상이 없으면서 형상이 있다는 것은 공즉시색(空卽是色)의 도리입니다. 극락의 존재 여부는 바로 색을 문제 삼고 있는 것이지만, 그것은 바로 공으로 매개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극락은 있는 것일까요? 없는 것일까요? 아직도 이런 식으로 묻는다면, 바로 용수가 ‘중론’을 통하여 적멸(寂滅)시키고자 노력했던 희론에 해당될 것입니다. 그러한 희론일 수밖에 없는 문제들을 내려놓고 나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그때 비로소 진정으로 우리는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할 수 있게 될지도 모릅니다.

바로 그러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시려고 했던 것 아닐까요? 생각하면, 담란 스님이 공사상을 깊이 공부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정토신앙을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입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스님에게는 이 정토불교의 가르침이야말로 평생 공부해 오던 중관(中觀)불교와 다른지 않다는 확신이 있었을 것입니다. 극락은 유(有)이지만, 이렇게 공(空)에 입각(卽)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토불교야말로 불교적인 너무나 불교적인 가르침이라 말해서 좋은 것 아닐까요?

김호성 동국대 불교학부 교수 lokavid48@daum.net


[1411호 / 2017년 10월 1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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