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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1966년 2월 첫 종비생 졸업

기자명 이병두

비구·대처 갈등 속 한국불교 희망 움터

▲ 1966년 2월 첫 종비생 졸업식.

1960년대 초반, 비구·대처 갈등과 분쟁이 막바지에 이르면서 극심한 혼란 상황에 있었지만 당시 종단의 미래를 내다보는 스님들은 “이럴 때 일수록 미래 인재 양성에 힘을 써야 한다”고 자각하고 그 실현 방법을 모색하고 있었다. 세속에서 훌륭한 정치 지도자들이라면 전쟁 중에도 장교 양성을 게을리 하지 않는 것과 같은 생각이었으리라.

중앙종회, 1962년 교육법 공포
“인재양성 제일 목표로 할 것”
월탄·현해·혜성 등 15명 졸업

1962년 12월 조계종 중앙종회는 ‘종비생(宗費生) 교육법’을 제정·공포했다. 종단이 돈을 대 스님들이 동국대 불교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이에 따라 1964년 3월에 불교학과 8명, 인도철학과 7명 등 15명의 종비생이 탄생했다. 현해(전 동국대 이사장)·월탄(원로의원)·지하(전 중앙종회의장)·자광(동국대 이사장) 스님 등 제1기 종비생들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현대 교육을 받게 해준 종단 어른들의 뜻을 받들어 학업과 불교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위 사진은 청담·서운·벽안·행원·성수 스님 등 종단 어른들이 1966년 2월26일 동국대 학위 수여식에 직접 참석해 종비생들을 격려 축하하고 찍은 기념사진이다. 둘째 줄 학사모를 쓴 졸업생 사진에서 그 왼쪽에서부터 현해, 월탄, 혜성 스님이다. 혜성 스님은 지관·인환·묘엄·명성 스님 등과 함께 종비생 제도 도입 전에 동국대에 입학해 다니고 있었다. 학사모를 쓴 스님들의 모습이 매우 어색하게 보이지만 당시 어려운 종단 상황에서 이들을 대학에 보내 현대식 교육을 마치게 한 청담 스님 등 어른들의 마음은 얼마나 뿌듯했을까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다.

1962년 말 종비생 교육법이 통과되었지만 지지부진(遲遲不進)하며 현실화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1964년 1월 열린 제6회 임시종회에서 녹원(전 동국대 이사장) 스님의 제안으로 “3대 사업 추진의 건에 대하여는 총림을 위시한 교육문제는 행정부에 위임하고 재래 강원은 존속시키면서 진보적인 교육은 승가대학의 체제가 확립될 때까지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에 두어 교육하고 제복·기숙사·학비 등 제 문제는 총무원에서 방안을 마련토록 한다”는 결의안이 통과되면서 빠르게 진행되어 3월 새 학기 입학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처럼 갑자기 종비생 제도가 현실화될 수 있었던 배경에 “대처 측에서 장악하고 있는 동국대학교를 정상화하기 위해 비구승들을 입학시켜야 했다”는 종단 정치 상황에서 비롯됐다는 주장도 있지만 어쨌든 기본적인 사무공간조차 제대로 마련하지 못하고 있던 종단에서 ‘인재 양성’을 최우선 목표로 하여 종비생을 입학시키고 그 졸업식에 최고위급 스님들이 참석하여 격려했다는 점은 큰 박수를 쳐서 감사를 드릴 일이다.

함께 입학한 동기라고 하지만 종비생들 사이에 속랍(俗臘)과 법랍(法臘)의 차이가 커서 일반 사회의 동기 개념과는 다른 “우리가 한국 불교의 주인공이다. 불교의 미래가 우리 어깨에 달렸다”는 동지 의식이 강했을 것이다. 한편 승복 입고 학교 다니는 것을 싫어하는 일반 학생들과 갈등도 있었다고 하지만 종비생 스님들은 월정사에서 열리는 대불련 학생들의 하계 수련회에 함께 참여하는 등 ‘세상과의 거리’를 좁히려고 애를 썼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월정사 수련회에서 “앞으로 스님들도 영어를 배워 세계로 나가야 한다”는 취지로 종비생 스님들을 대상으로 한 영어 강좌가 있었는데 영어도 “유붕(有朋)이 자원방래(自遠方來)하니…”하는 식으로 현토를 붙여 읽는 스님들이 있어서 당시 강의를 진행하던 서경수 교수가 화를 내며 “더이상 못하겠다”며 짐을 쌌다가 풀고 다시 강의를 이어갔다는 재미있는 일화도 있다. 당시 서울대 의대 학생으로 이 강의에 조교로 참여했던 한국불교연구원 김종화 이사장에게서 이 에피소드를 직접 들었다.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beneditto@hanmail.net


[1411호 / 2017년 10월 1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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