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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문병란의 ‘직녀에게’

기자명 김형중

민중의 염원 모아 실천적 행동으로
조국통일 이루자고 읊은 통일 노래

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
선 채로 기다리기엔 은하수가 너무 길다.
단 하나 오작교마저 끊어져 버린
지금은 가슴과 가슴으로 노둣돌을 놓아
면도날 위라도 딛고 건너가 만나야 할 우리.
선 채로 기다리기엔 세월이 너무 길다.
그대 몇 번이고 감고 푼 실올
밤마다 그리움 수놓아 짠 베 다시 풀어야 했는가.
내가 먹인 암소는 몇 번이고 새끼를 쳤는데,
그대 짠 베는 몇 필이나 쌓였는가?
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
사방이 막혀버린 죽음의 땅에 서서
그대 손짓하는 연인아
유방도 빼앗기고 처녀막도 빼앗기고
마지막 머리털까지 빼앗길지라도
우리는 다시 만나야 한다.
우리들은 은하수를 건너야 한다.
오작교가 없어도 노둣돌이 없어도
가슴을 딛고 건너가 다시 만나야 할 우리
칼날 위라도 딛고 건너가 만나야 할 우리
이별은 이별은 끝나야 한다.
말라붙은 은하수 눈물로 녹이고
가슴과 가슴을 노둣돌 놓아
슬픔은 슬픔은 끝나야 한다. 연인아.

연인에게 통일의 가시밭길을
함께 나아가자 호소하는 형식
민족간 대립·갈등 고리 풀려면
칼날 위일지라도 딛고 만나야

문병란(1935~2015)의 ‘직녀에게’는 1976년 ‘심상’에 발표된 시다. 군사정권의 서슬이 시퍼렇던 그 시절에 시인은 민중이 염원하는 통일의 노래를 읊었다. 너무나 간절한 국민 모두의 노래였지만 그때는 그런 시를 쓰면 블랙리스트에 올라가는 시대였다.

문병란은 교수·시인으로서 5·18광주시민의 정신적 지주로서, 역사가 쥐어주고 시대가 안겨준 무거운 짐과 역할을 마다하지 않고 기꺼이 담당한 이 시대의 지성이고 큰 시인이다.

‘직녀에게’는 미당 서정주가 ‘견우와 직녀의 설화’를 시화한 ‘견우에게’의 시를 계승하고 있다. “눈썹 같은 반달이 중천에 걸리는 칠월칠석이 돌아오기까지는 검은 암소를 나는 먹이고 직녀여, 그대는 비단을 짜세.” 이와 같은 미당의 ‘견우에게’가 ‘견우와 직녀의 설화’를 교과서적으로 시화한 것이라면 문병란의 ‘직녀에게’는 우리 민족의 역사적이고 현실적인 분단 조국의 통일을 민중 모두의 의지와 염원을 모아 실천적 행동으로 이룩하자는 통일시다.

그의 시 속에는 통일에 대한 비장한 각오와 염원이 있다. “그대 손짓하는 여인아 유방도 빼앗기고 처녀막도 빼앗길지라도 마지막 머리털까지라도 빼앗길지라도 우리는 만나야 한다. 우리는 은하수를 건너야 한다.… 말라붙은 은하수 눈물로 녹이고 가슴과 가슴을 노돗돌 놓아 슬픔은 슬픔은 끝나야 한다. 여인아” 사랑하는 연인에게 통일의 가시밭길을 함께 나아가자고 호소하는 형식의 시다.

1980년 광주민중항쟁과 더불어서 문병란의 ‘직녀에게’는 빛 고을의 아름다운 가수이며 작곡가인 박문옥에 의해서 작곡되어 노래로 불려지면서 ‘임을 향한 행진곡’과 함께 민중집회에서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민중가요가 되었다. 당시 시민은 스스로 시를 쓰고 구호를 외치며, 노래를 부르며 부당한 군사 권력에 항쟁했다. 박문옥의 친형인 동국대 불교학부 박경준 교수가 열창하는 ‘직녀에게’는 기성가수를 능가한다.

불교의 핵심 교리가 인연 연기설이다. 인생이란 사람과 사람이 인연이 있어서 만나고 헤어지고 또 만나는 과정이다. 만나야 할 사람은 꼭 만나야 한다. 좋은 만남은 기쁨이요 행복이다. 이별은 슬픔이요 불행이다. 남북으로 분단된 우리 민족도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만나서 화합하고 통일을 해야 한다.

일심(一心)의 근원으로 돌아가 대립과 갈등의 고리를 풀기 위해서는 먼저 조건 없이 우리는 만나야 한다. 칼날 위라도 딛고 만나야 한다. 우리에게 더 이상 기다릴 시간이 없다.

김형중 동대부여중 교장·문학박사 ililsihoil1026@hanmail.net
 


[1411호 / 2017년 10월 1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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