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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의없는 공직자들

  • 기자칼럼
  • 입력 2017.10.20 21:51
  • 수정 2018.03.23 09:52
  • 댓글 14

조계사 법회에 참석해 합장조차 안해…종교적 신념에 어긋난다면 ‘내빈’으로 참석 말아야

조계사는 불자들만의 도량이 아니다. 인근 주민들의 이웃이고 서울시민들의 쉼터다.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는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관광지다. 그러다보니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고 때로는 조금 예의에 벗어나는 복식이나 행위가 있어도 과하지 않다면 눈감아준다.

하지만 공식적인 직책을 맡고 있는 이가 공적인 행위로 조계사를 찾는다면 경우는 다르다. 사찰의 예절을 따라야한다. 무종교인이거나 타종교인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민주당 대표시절 조계종 총무원장 예방에 앞서 조계사를 찾은 문재인 대통령은 대웅전에 들러 삼배를 했고 대통령부인 김정숙 여사도 영부인이 된 후 봉은사를 방문했을 때 마찬가지로 예를 갖췄다. 대통령부부가 가톨릭신자인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정치인뿐 아니라 타종교 성직자들도 사찰을 찾으면 불교식으로 예의를 갖춘다. 최소한 합장 인사 정도는 한다는 뜻이다.

지난 10월13일 조계사에서 열린 조계사 국화향기나눔전 개막식 행사에서는 이 같은 최소한의 예의조차 갖추지 않는 공직자들로 인해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함평군과 결연을 맺고 있는 조계사는 이날 함평군민들이 정성껏 기른 국화로 도량을 장엄하는 대표 가을 축제 ‘시월국화는 시월에 핀다더라’에 함평군 관계자들을 초청했다. 공식 일정 때문에 참석하지 못한 함평군수를 대신해서 조태용 함평군 부군수와 종로구를 지역구로 활동하고 있는 김복동 종로구의회 의장, 박노섭 종로구의원이 주요내빈으로 단상에 올랐다. 이어진 개막식은 삼귀의, 반야심경 봉독 등 일반적인 불교의례 순으로 진행됐다.

▲ 조계사 국화향기나눔전 개막식에 참석한 일부 공직자들은 의례가 끝날 때까지 단 한 번도 합장하지 않았고 허리를 숙이지도 않았다.

주지 지현 스님, 김의정 조계사 신도회장 등과 나란히 단상의 가장 앞줄에서 자리한 공직자들 역시 신도들의 눈에 가장 띄는 자리에서 법회에 참여했다. 하지만 이들은 의례가 끝날 때까지 단 한 번도 합장하지 않았고 허리를 숙이지도 않았다. 법회의 처음부터 끝까지 이들은 약속이나 한 듯 부동자세로 법당을 응시한 채 서 있었다. 그 옆에서 허리를 숙이고 예를 갖추는 스님들과 단상 아래에서 개막식에 참석한 신도들의 합장례 속에서 이들의 꼿꼿한 자세는 더욱 도드라졌다. 조계사 한 관계자는 이들의 모습을 보고 “아마도 종교적 신념이 다른 까닭이 아니겠느냐”며 한 두 번이 아니라는 듯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문제는 그들이 개인자격으로 이 자리에 참석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그랬다면 굳이 행사장 단상에 내빈으로 그들을 앉힐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그들 또한 그런 모습을 공공연하게 보이지 않았어도 될 것이다. 이들은 함평군과 군민, 종로구와 구민을 대표하는 자격으로 그 자리에 참석했다. 군·구민들과 조계사의 유대를 통해 상생의 관계를 더욱 확대해 나가자는 약속이자 서로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자리였다. 이들 또한 축사에 그런 뜻을 전했다.

 

하지만 군민과 구민을 대표하는 자격으로 참석한 이들은 적절한 예를 갖춰 최소한의 의례를 표하는 것조차 실천하지 않았다. 상식 밖의 일이다.
종교적 신념이라고 묵인할 사안도 아니다. 개인의 종교적 신념은 개인적으로 참석한 자리에서 확고히 표시하면 된다. 공적인 자리에서조차 자신의 신앙과 배치돼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면, ‘주요 내빈’으로 참석하지 않으면 될 일이다.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1412호 / 2017년 10월 2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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