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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구니로 산다는 것

종단 주요 권리·직책에서 배제
설정 스님 ‘비구니 공약’ 기대
불교의 평등 정신 되살리기를

조계종 제35대 총무원장에 설정 스님이 당선되면서 향후 조계종에도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 비구니 위상도 그 중 하나다. 설정 스님은 비구니스님들의 권익 향상과 수행환경 개선을 위해 비구니부 및 비구니특별교구 설립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또 비구니스님들의 참종권을 확대하고 종법 체계 중 비구니 차별조항 개정도 적극 추진하겠다고 공약했다. 이러한 약속은 비구니스님의 위상을 크게 높일 뿐 아니라 불교의 평등정신을 실현한다는 점에서 큰 기대를 갖도록 한다.

현재 조계종을 비롯한 천태종, 태고종 등 주요 종단에는 비구스님과 비슷한 수의 비구니스님들이 수행과 전법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종단의 주요직책이나 큰 사찰 주지 소임은 비구스님들이 독점하는 것이 현실이다.

조계종 중앙종회 배부자료집에 따르면 2015년 11월 기준으로 비구·비구니계(사미·사미니 제외)를 받은 조계종 스님은 1만1279명이다. 이 중 비구 5857명, 비구니 5422명으로 비구니스님이 전체의 48.1%를 차지한다. 그러나 종헌종법에는 종정을 비롯해 방장, 원로의원, 총무원장, 교육원장, 포교원장, 호계위원, 법규위원, 교구본사 주지 등 주요 직책을 모두 비구로 한정하고 있다. 또 조계종 입법기구인 종회의원도 전체 81명 중 10명에 불과하다. 이러다보니 비구니의 위상이 낮을 수밖에 없고, 출가자의 절반 가까운 비구니스님들의 의견이 반영되기 쉽지 않다.

비구 중심의 종단운영 체계는 산중총회법에도 여실히 드러난다. 교구의 중요한 사안을 결정하는 산중총회에 비구스님의 경우 해당 교구에 재적하는 스님으로 법계 중덕(법랍 10년 이상)이면 참가할 수 있다. 반면 비구니스님은 말사 주지로 한정하고 있다. 다만 2013년에 비구니 구성원의 수가 비구 구성원의 5분의 1이 안될 때는 부족한 수만큼 비구니를 채울 수 있다는 항목이 추가됐을 뿐이다. 이 때문에 말사 주지가 아닌 비구니스님들은 법랍이 20~30년이 됐더라도 산중총회에 참가조차 어려운 불합리한 구조다.

천태종과 태고종 비구니스님들의 위상은 더욱 낮다. 천태종은 출가자가 500여명으로 비구 200여명, 비구니 300여명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구니스님들이 수적으로는 훨씬 많지만 종정과 총무원장을 비롯한 주요 직책에서는 철저히 배제된다. 심지어 전국 150여 사찰 주지를 모두 비구스님이 맡고 있다. 비구스님이 사찰 2~3곳의 주지를 한꺼번에 맡는 곳도 여럿이지만 비구니스님이 주지로 있는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입법기구인 중앙종의회 의원도 전체 30명 중 비구니스님은 3명에 불과하다. 이런 탓에 천태종이 비구스님들만 삭발을 허용하고 있는 것도 심각한 비구니 차별로 비춰질 수밖에 없다. 태고종도 종정과 총무원장은 물론 집행부 모든 부장과 국장을 비구스님들이 맡고 있으며, 현재 55명의 종회의원 중 비구니스님은 1명뿐이다.

▲ 이재형 국장
이 같은 불교계 내부의 비구니 차별은 남녀평등의 시대적 흐름을 역행하는 일이다. 뿐만 아니라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불교의 평등정신에도 어긋난다. 그렇기에 비구니 차별 문제를 극복하는 것은 단순히 비구니스님들의 권익 차원이 아니다. ‘이 법은 평등하여 위아래가 없다(是法平等 無有高下)’는 불교의 평등정신을 되살리는 일이다. 비구니로 살아가는 것이 당당해질 때 비로소 한국불교도 산다. 그 중차대한 역할이 이제 새 총무원장 설정 스님에게 주어졌다.

이재형 mitra@beopbo.com

 


[1412호 / 2017년 10월 2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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