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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지세보살과 마왕

기자명 이제열

애욕과 번뇌 없다면 깨달음도 있을 수 없어

“부처님이 지세보살에게 이르셨다. 그대가 유마힐에게 가서 문병하여라. 지세보살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도 그에게 가서 문병할 수 없나이다. 그 까닭은 제가 어느 때에 방에 앉아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마왕파순이 제석천으로 변장하여 권속들을 이끌고 저에게 예배하고 한쪽에서 있거늘 저는 그에게 무상과 욕망에 대해 설법하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마왕파순은 저에게 ‘정사여 이 일만이천의 천녀들을 시봉하는 종으로 삼아 주십시오’ 하였습니다. 저는 그 말이 법답지 못하다하여 거절하였는데 그 때 유마힐이 찾아와 ‘정사여 이 제석천은 마왕 파순으로 당신을 유혹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하고는 마왕파순에게 ‘이 천녀들을 나에게 달라. 내가 시봉으로 삼으리라’하였습니다. 마왕은 두려워하며 천녀들을 유마힐에게 주었사온데 유마힐은 ‘마왕이 너희들을 나에게 주었으니 너희들은 이제 아뇩다라 삼먁삼보리를 일으키도록 하여라’하며 천녀들에게 설법하였습니다. 천녀들이 유마힐의 설법을 듣고 ‘저희들이 이제 어떻게 마의 궁전으로 돌아가 머물러야 합니까?’하고 묻자 그는 ‘누이들이여 여기 무진등이라는 등이 있다. 하나의 등불이 백천 한량없는 등불을 밝히는 것처럼 한 보살이 백천 중생을 제도하니 결코 꺼지지 않으므로 무진등이라 하느니라. 너희들이 마의 궁전에 있더라도 무진등으로써 천상의 인간들을 제도하라 이것이 부처님의 은혜를 갚고 일체 중생을 크게 이익 되게 하는 것이니라’ 하였습니다. 세존이시여 유마힐의 신통과 변재가 이와 같으므로 저는 그를 찾아 병을 위문할 수 없습니다.”

번뇌가 괴로움 만들지만
이를 돌리면 깨달음 얻어
대승불교에서의 깨달음은
자신 밝히고 중생도 밝혀

마왕 파순은 부처님이 성도하실 때에 부처님의 성도를 방해했던 인물이다. 부처님은 파순의 온갖 협박과 유혹을 물리치고 무상정각을 이루어 부처가 되었다. 파순의 실상은 기독교와 같은 악마의 성격을 띠고 있기보다는 중생의 마음속에 깃들여져 있는 무명과 갈애 그리고 갖가지 번뇌를 상징한다고 보아야한다. 그가 원하는 것은 중생들이 자신의 지배를 받아 감각적 쾌락에 빠지고 생사의 괴로움을 받게 하는 일이다. 초기경전에는 파순이 부처님의 성도 후에도 가끔씩 나타나 부처님을 시험하지만 대승경전에는 감히 부처님께 나타나지 못한다. 대승에서는 부처님께 파순 같은 악마가 나타나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보며 초기불교의 악마관에 찬동하지 않는다. 이런 그가 지세보살에게 제석천의 모습으로 나타나 지세보살을 속인다. 제석천은 천계의 왕으로 한량없는 세월동안 보시와 지계를 닦은 공덕으로 천왕이 되었다. 마왕 파순이 이러한 모습으로 몸을 변화시켜 지세보살에게 나타났다는 것은 중생들 마음속에 깃든 온갖 번뇌와 감각적 쾌락은 중생들에게 밝음과 기쁨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번뇌는 지혜를 방해하는 어둠이며 감각적 쾌락은 해탈을 장애하는 덩굴인 줄을 중생들은 모르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파순의 천녀들은 감각적 쾌락의 극치인 애욕을 뜻한다. 애욕은 중생들이 일으키는 갖가지 감각적 쾌락을 향한 욕망 가운데에 으뜸이다. 이러한 애욕의 상징인 천녀들을 지세보살이 받아들일 리 없다. 깨달음과 애욕은 서로 만나서는 안 될 대립적 관계에 놓여 있다. 그러나 유마거사는 애욕과 깨달음을 대립적 관계로만 보지 않는다. 애욕과 번뇌가 없다면 깨달음도 없기 때문이다. 버려야 할 애욕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으로 인해 깨달음으로 탈바꿈한다. 중생의 번뇌는 그냥 두면 괴로움을 만들지만 이를 돌려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으로 만들면 깨달음과 열반의 공덕을 낳는다. 세상은 파순이 머무르는 마의 궁전과도 같다. 온갖 욕망과 감각적 쾌락이 지배한다. 바로 이러한 세상에서 필요한 것은 무진등 즉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이다. 소승에게는 무진등이 없다. 자신을 밝힌 다음에는 그 불은 꺼지고 만다. 하지만 애욕을 돌려 깨달음으로 전환시킨 마음은 다함이 없는 등불이 되어 길이 세간을 밝히고 중생들을 성숙시킨다.

이제열 불교경전연구원장 yoomalee@hanmail.net
 


[1412호 / 2017년 10월 2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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