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9. 박용열의 ‘노을’

기자명 신현득

애기중이 울리는 저녁 종소리 배경
가을 산사 동심에 담은 노을빛 선시

가을은 색깔의 계절이다. 들과 산천이 고운 색깔의 옷을 갈아입었다. 들판에는 오곡이, 과원에는 백과가 무르익었다. 낙엽이 지고 있다. 이러한 때에 맞추어 산사의 정서를 동심에 담은  가을의 시 한 편이 있다. 

6·25 참전 함북 청진 출신 시인
발가락·왼쪽 폐 절단 상이제대
불교 인연 맺고 산간벽지 봉사
노을은 고향 향한 애타는 심정

고추잠자리의 빨간 날개, 고추 빛깔의 빨간 저녁노을, 노을빛을 스치며 산천을 울리는 산사의 종소리를 그림처럼 펼쳐 놓은 동시 한 편이다.

노 을 / 박용열

고추잠자리 날던 푸른 하늘에
고추같이 빠알간 노을이 떴다.

나뭇잎이 우수수 지는 두메에
애기 중이 울리는 저녁종소리

까마귀 날아가는 고개 저쪽에
감빛처럼 익어가는 노을이 졌다.

‘경향신문 1959년 1월1일자 신춘문예 발표에서’

이 동심의 시는 작자를 먼저 알고 시의 내면을 살펴야 그 참맛을 느낄 수 있다. 작자 초연 박용열(超然 朴容設, 1929~ ) 시인은 북을 탈출한 실향민이요, 6·25 참전용사이다. 전투지에서 입은 동상으로 발끝을 절단했고, 제거할 수도 없는 몇 개 적탄 파편을 폐 안에 지닌 채 고통을 앓아 온 상이용사이다. 그리고 초연은 월정사에서 머리를 깎은, 탄허(呑虛)의 문도였다.

함북 청진 출생 의학도였던 초연은 북이 일으킨 6·25에서 북을 해방시키러 온 국군을 맞아 백골부대 수색대에 자원하여 수색 임무에 충실했다. 쌓인 눈 속에서 벌어진 강원도 고성 남강전투의 수색임무 중에 적의 직사포탄이 초연을 눈 속에 쓰러뜨렸다. 얼마 뒤 초연은 눈 속의 시신으로 발견되어 야전병원에서 깨어났다.

동상을 당한 발가락을 모두 잘라야 했고, 적탄에 부서진 왼쪽 폐를 절단하고 파편을 지닌 한쪽 폐로 견뎌야 하는 운명을 지니고 육군병원에서 상이제대를 했다.

초연이 월정사와 인연이 된 것은 한 발짝이라도 두고 온 어머니 가까이로 가보고 싶은 소망 때문이었다. 월정사에 이르러 탄허 큰스님을 만나 그의 문도가 된 것이었다. 

가을 저녁 빨간 노을을 배경으로 한 이 서경시는 애기 중이 울리는 저녁 종소리를 배경에 두고 있다. 움직임이 있는 빨간 날개의 고추잠자리와 저녁하늘에 드리운 빨간 노을 빛깔은 큰 뜻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고향을 향한 애타는 심정의 색깔이다.

어머니 나 여기에 죽지 않고 살아 있어요. 맘 놓아요, 하는 메시지의 색깔을 설정한 것이다. 낙엽이 지고 있어서 고향생각은 더 간절하다. 거기에다 저녁 종소리 쇳송은 산천과 중생의 마음을 같이 울린다. 외우는 진언은 ‘종소리 듣는 이마다 번뇌가 끊어져라(聞鐘聲煩惱斷)!)’에 이어 ‘지옥을 두드려 깨는 파지옥진언(破地獄眞言)’으로 이어진다. 지옥을 깨고 나면 평화요 통일이다.  

그런데, 종루에 앉아 진언을 외우며 종을 치는 이가 동심으로 부처님 세계를 공부하는 애기중 사미다. 시의 분위기를 동시에 맞추려는 작자의 시도는 좋았다. 사미의 등장으로 시적효과를 크게 하였다.

의학도인 초연 박용열 시인은 의학에 부처님 정신을 심기 위해 환속 후 강원도 산간벽지에서 사회봉사에 진력하였다. 그러다가 고향 가까운 땅, 속초에 신진의원을 차려 인술을 베풀고 있다. 선의 경지를 동심으로 노래한 연작 동시집 ‘고요’와 ‘어머니’ ‘오대산 가는 길’ 등 시 작품집이 있다.

오대산 월정사 들머리에 초연 박용렬 동시 ‘노을’과 ‘오대산 가는 길’을 새긴 시비가 오대산과 월정사를 안내하고 있다. 지난 10월 21일 강원도 속초에서 설악문화예술포럼이 주최하는 설악 문화제에서는 ‘아동 선시 박용열 시인의 삶과 문학’을 주제로 초연 박용열 시인의 문학과 생애를 조명하는 문학 강연 등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지기도 했다.

신현아동문학가·시인 shinhd7028@hanmail.net


[1412호 / 2017년 10월 2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