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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당암의 비불

협시불서 국보급 성보 확인했지만
불상 신성성 위해 봉인 유지 결정
어떤 경우라도 들춰내는 건 차선

며칠 전 해인사 원당암 보광전의 주불인 목조아미타불좌상 복장(腹藏)에서 15세기 후령통과 고려시대 귀중한 전적들이 다량으로 발견돼 관심을 모았다. 지난 8월 개금불사를 위해 복장을 확인하던 중 고려시대 경전들이 납입됐음을 확인한 것이다.

그러나 복장 유물 확인 과정에 참여했던 전문가들은 본존불인 목조아미타불좌상보다 협시불인 관음보살입상과 지장보살입상에 더 큰 관심을 보였다는 후문이다. 목조아미타불좌상은 1983년에도 개금불사를 위해 복장 일부가 개봉됐었으나 관음보살입상과 지장보살입상 복장은 지금까지 한 차례도 개봉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원당암측으로부터 보광전 아미타삼존불상 정밀검사를 의뢰 받은 총무원 문화부 관계자들은 엑스레이를 촬영해 협시불의 복장에 무엇이 납입됐는지를 확인하기로 결정했다.

그 결과 놀랍게도 관음보살입상과 지장보살입상 양쪽 모두에서 족자형 사경이 확인됐다. 족자형 사경인 경우 사경축에 금속장식이 확인되는데 일본 킨잔지(金山寺)에 소장돼 있는 고려사경인 ‘불설대길상대다라니경’(1324년 추정)의 사례가 유일한 것으로 알려져 왔기 때문이다. 희귀본 사경이라는 점에서 국보로도 지정될 수 있었기에 전문가 중에는 원당암측에 복장을 열 것을 조심스럽게 제안하기도 했단다.

하지만 원당암측은 그 제안을 정중히 거절했다. 전 조계종 종정 혜암 스님의 유지와 현 해인사 방장 원각 스님의 뜻에 따라 600년간 지켜온 불상의 신성성을 지키기 위해 향후에도 복장을 열지 않고 비불(祕佛)로 모시기로 최종 결정한 것이다.

사실 탑과 불상 내부에 성물을 봉안하는 복장은 연구자에게도, 사찰측에도, 도굴꾼에도 늘 견디기 힘든 유혹이다. 익산미륵사 창건 연대가 명확히 밝혀지고, 백제 무왕과 신라 선화공주가 창건한 사찰이라는 철썩 같은 믿음에 금이 간 것도 2009년 1월 미륵사지석탑 1층 심주석에서 발견된 금제 사리봉안기의 내용에 따른 것이었다. 이렇듯 탑과 불상의 복장에서는 예술적 가치를 지닌 유물을 비롯해 중요한 역사적 사실을 밝히는 내용들이 종종 발견된다. 그렇기에 연구자들에게 복장유물은 오랜 과거와 마주할 수 있는 일종의 타임캡슐이다.

사찰측에서도 복장유물이 중요하기는 마찬가지다. 복장에서 귀중한 유물이 발견되면 관람료 사찰이 될 수 있는가 하면 정부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서 지원받는 것도 용이해진다. 부득이 복장유물을 확인해야 할 경우 지금은 총무원에 알리고 전문가가 참여한 가운데 절차에 따라 진행되지만 불과 십수 년 전까지만 해도 비전문가가 직접 꺼내다가 유물을 훼손하는 일이 벌어졌다. 또 문화재를 고가의 골동품으로 간주하는 문화재전문털이범들의 표적이 되었고, 그로 인해 수많은 복장 안의 불교문화재들이 일본 등 국외로 빼돌려졌다.

▲ 이재형 국장
고고학자인 조유전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은 “남겨진 흔적을 찾고 유물을 찾는 발굴조사를 한다는 것은 곧 유적을 파괴하는 일이다. 고고학은 발굴이고 발굴은 곧 파괴라는 등식이 성립한다”며 자신은 평생을 후회로 점철된 일에 종사해왔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그의 말처럼 최선은 있는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며, 어떤 경우라도 들춰내는 것은 차선이다. 더욱이 불상은 불자들에게 최고의 신성성을 지닌 성보다. 원당암측의 이번 결정이 반가운 것은 불상의 성스러움을 지켜내려는 그 결연함 때문이다.

이재형 국장 mitra@beopbo.com


[1413호 / 2017년 11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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