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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사영의 무지와 외부세력

기자명 이병두

얼마 전 한국 가톨릭교회가 중요한 순교자 중 한 명으로 기리는 황사영이 중국에 보낸 비밀 편지(흔히 ‘황사영 帛書’라고 한다) 내용을 소개한 적이 있다. 지난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황사영은 소년 등고(登高)하여 촉망받던 수재였다. 그러나 그 청년 수재의 눈에 비친 조선은 도저히 희망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곳이었다. 그런데 처삼촌 정약현의 권유로 접한 천주교 서적을 통해서 보게 된 서양 나라들, 특히 당시 법국(法國)이라고 했던 프랑스는 ‘하느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온 백성이 평등세상을 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 프랑스가 군함 몇 척을 보내 조선 정부를 무너뜨리고 천주교를 믿게만 해준다면 조선을 그들의 식민지로 삼더라도 오히려 행복할 것 같아 보였다.

당시 조선 상황을 비관적으로 본 황사영이 출세가 보장되어 있던 관료의 길, 탄탄대로를 버리고 스스로 가시밭길을 걷기로 하였던 것은 탓할 일이 아니라 박수 받아야 할 일이다. 그가 피눈물을 흘리며 편지에 썼듯이, 당시 조선은 프랑스 군함 몇 척이나 소규모 청나라 군대만 보내도 무너져 내릴 정도로 허약한 국방력에다가 맨 위의 왕실과 정승·판서에서부터 아래로는 현청의 아전까지 썩지 않은 곳이 없었다. 아니 깨끗한 사람은 당상관·당하관은 물론 아전이 될 수 없었다.

그러면 황사영이 모범으로 여기고 있던 프랑스는 과연 조선보다 나은 상황이었을까. 군대의 힘만을 갖고 이야기하면, 세계 곳곳에 식민지를 두어 착취하고 외국을 침략하여 문화재와 보물을 약탈하고 있던 프랑스가 조선보다 훨씬 강하였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황사영이 프랑스에 기대한 것은 이처럼 ‘총칼로 모든 것을 지배하는 무뢰한(無賴漢)들의 나라’가 아니라 ‘만인이 평등한 세상’ ‘인륜 도덕이 지켜지는 문화 세상’이었을 것이다.

황사영이 중국 베이징 주재 가톨릭 주교에게 편지를 보냈다 적발되어 처형되기 10여 년 전인 1789년 7월부터 1794년 7월에 걸쳐 프랑스에서는 절대 왕정과 귀족들의 부패로 고통 받던 시민들이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되자 떨치고 일어나 왕정을 무너뜨리는 혁명이 일어났다. 당시 프랑스 국민들이 겪고 있던 처참한 상황은 영화와 뮤지컬로도 우리에게 잘 알려진 빅토르 위고(Victor Hugo; 1802~1885)의 장편소설 '레미제라블(Les Miserables)'을 통해 생생하게 알 수 있다.

역사가들의 연구 결과 실제로 당시 서유럽 전역에서 "자식들과 함께 먹고살기 위해 매춘부가 되거나 아기를 그냥 버리는 여성들이 급격히 늘어났으며, 1760년부터 1789년 사이에 파리에서는 매년 약 5000명의 기아(棄兒)가 발생했는데, 이는 1700년부터 1720년 사이의 기간에 비해 세 배나 늘어난 숫자"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프랑스 육군 장교였던 피에르 쇼데를로 드 라클로(Pierre Choderlos de Laclos; 1741~1803)가 1782년에 출간한 소설 '위험한 관계(Les Liaisons dangereuses)'에서 생생하게 묘사하듯이, 하층 민중들의 이런 고통과는 상관없이 귀족들은 '배신 ‧ 거짓말 ‧ 음모 ‧ 간통'을 예삿일로 여기며 환락의 늪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나라 밖 사정도 다르지 않았다. 특히 중남미의 작은 나라 아이티가 ‘세계 최빈국’이라는 부끄러운 이름을 갖게 된 것도 프랑스의 착취 때문이었다. 흑인 노예 출신들을 중심으로 1794년부터 독립투쟁을 펼쳐 1804년 프랑스에서 독립했지만, 프랑스에 지급해야 하는 독립보상금 문제에 짓눌려 헤어나지 못하고 되풀이되는 독재와 쿠데타에다가 천재(天災)까지 겹쳐 독립 20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고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서아프리카의 프랑스 식민지들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전개되었다.)

1801년(辛酉)에 황사영의 편지가 적발되지 않고 그대로 전달되어 프랑스 군함이 조선을 짓밟고 그들의 식민지로 삼았으면 아이티와 같은 상황을 맞지 않았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실제로 조선 정부가 천주교의 선교 자유를 인정해준 뒤 제주도 등지에서 그들이 저지른 죄악이 커서 민란(이재수의 난)을 일으키기도 하였다는 사실로도 이것이 기우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외부의 힘을 빌려 내 집안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이들은 황사영의 이런 착각과 무지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beneditto@hanmail.net

[1413호 / 2017년 11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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