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청정한 몸과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선 신랑 신부는 깊은 사랑과 보살심으로 부부되기를 부처님께 서원하오니 위없는 자비광명을 드리워 주옵소서. 일곱 송이 꽃을 연등부처님께 바쳤던 선혜보살과 구리선녀의 슬기로움이 이 부부에게도 항상 하게 하소서.”
봉은사, 전통불교혼례시연회
10월22일, 개산대재 맞아
현대 한복도 선보이는 자리
“일상 속 불교의례 활성화
젊은층 다가오는 계기되길”
청량한 가을밤에 울리는 고유문 아래서 선남자, 선여인이 부부의 인연을 맺는다. 턱시도나 웨딩드레스 대신 한복 곱게 단장하고 샹들리에 대신 등공양으로 불단을 밝힌 부처님 전에서 열리는 불교식 혼례. 개산 1223주년을 맞이한 봉은사(주지 원명 스님)가 개산대재의 일환으로 10월22일 경내 미륵전에서 선보인 불교전통혼례시연회다. 조금은 낯설지만 신심과 품격 속 진행된 시연회는 7000겁을 거쳐 맺어진 부부의 연이 얼마나 소중한 만남인가를 깨닫는 자리가 되었다.
‘한복의날(10월21일)’을 맞아 한복의 아름다움과 불교문화를 알리기 위해 봉은사가 기획한 불교전통혼례시연회는 2014인천아시아게임 무대의상 감독을 맡은 디자이너 이유숙씨가 ‘한복에 홀린’을 주제로 구성했다. 전통의 아름다움을 지키면서 현대인에게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간 한복의 변신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정신은 옛 것을 쓰되, 소재에 현대성을 불어 넣는다’는 이번 행사의 취지에 맞게 전통 혼인예복 외에도 다양한 형태의 한복이 선보였다. 1부에서는 △가을 달밤에 거닐다 △서로의 눈빛이 스치다 △두 집안이 만나다 △인연을 맺다로 구성돼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남녀가 부부의 인연을 맺기까지의 과정을 아름다운 한복에 담아 표현했다. 이 인연의 결실인 혼례식은 이날 행사의 하이라이트로 2부에서 선보였다. △결혼식을 고하다 △서약하다 △혼례를 치르다를 주제로 새로운 부부의 탄생을 한 편의 드라마와 같이 선보였다.
혼례시연 무대에서 주례법사 역할은 주지 원명 스님이 직접 맡아 무대에 올랐다. 원명 스님은 부처님께 고하는 고유문 낭독을 시작으로 석가모니 부처님의 전생담을 설법하는 것으로 주례사를 대신했다. 신랑신부는 선혜보살과 구리선녀의 인연담에 근거해 일곱 송이 꽃을 부처님전에 헌화하는 것으로 이번 생에 부부로 살아갈 것임을 서약했다. 원명 스님은 “모든 불보살님의 증명과 많은 사람들의 축복 속에서 결혼이 성사되었다”고 성혼선언을 했다.
원명 스님은 “사찰에서 자주 선보이지 못한 특이한 행사를 열기까지 고민이 많았지만 불교는 부처님 말씀을 배우고 실천한다는 의미에서 신앙의 종교보다는 신행의 종교라 할 수 있다”며 “하지만 불자들이라고 해도 일상에서 불교적 생활습관이나 의례에 익숙하지 않고 특히 결혼이라고 하는 중요한 의식에서 불교적 의식을 실천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고 이번 행사를 기획한 이유를 설명했다. 원명 스님은 “결혼은 소중한 인연이 맺어지는 중요한 의식이고 전통적인 결혼예법이 있지만 알려지지 않은 것이 아쉬웠다”며 “불교전통혼례식이 얼마나 장엄하고 깊은 의미를 담고 있는지를 알리고 젊은 층의 마음에도 가까이 다가가 더 많은 부부들이 불교전통혼례식을 실천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1413호 / 2017년 11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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