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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귀향, 혹은 부모도 태어나기 전 고향에 대하여-하

본래면목 돌아감이란 무상한 지금 긍정하는 것

▲ ‘산에 핀 꽃은 비단결 같고, 시냇물은 쪽빛처럼 맑구나(山花開似錦 澗水湛如藍)’ 고윤숙 화가

“부모도 태어나기 전 내 자신의 본래면목은 무엇인가”를 묻는 육조의 질문을 나는 이런 맥락에서 이해하고 싶다. 내 자신의 본래면목을 내 자신 안에서 찾는 것은 내가 갖고 있는 것, 내가 익숙해 있는 것에서 본래면목을 찾는 것이니, 언제나 아상(我相)이나 아소상(我所相)만을 재발견하게 될 뿐이다. 내가 익숙한 것에서 내가 돌아가야 할 ‘고향’을 찾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내 자신의 본래면목을 나는 물론 부모도 태어나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도록 묻는다. 서양인처럼 신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면 그 신의 본래면목조차 신의 부모 이전에서 찾으라는 말이다. 생물학적 발생을 따라간다면, 이 질문은 인간 이전으로, 유인원 이전으로 계속 거슬러 올라가게 한다. 어떤 것도 그것을 탄생하게 한 부모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한다.

산속에 틀어박혀도 고향 될 수 없고
고향 찾는 그런 삶 넘어설 수 있다면
선 자리 앉은 자리가 바로 본래면목

결국 우리가 도달하게 되는 것은 어떤 거슬러 올라감도 불가능하게 되는 지점이다. 모든 존재자 이전 존재, 모든 유 이전의 무가 아마도 그것일 게다. 그러나 그것은 그저 없음을 뜻하는 무가 아니라, 모든 유가 탄생할 수 있었던 무, 수많은 존재자들의 잠재적 싹을 포함하고 있기에 어느 하나로 명명할 수 없는 무일 것이다. 중관학이라면 의당 그건 바로 ‘공’이라고 답했을 것이다. 공이란 불변의 본성이 없기에 조건에 따라 어떤 것도 될 수 있는 무규정성이니까. 그렇다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것도 없지 않은가? 지금 여기 존재하는 모든 것이 그런 무규정성으로서의 공을 잠재성으로 안고 있는 것이니. 그런 점에서 거슬러 올라감이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감이 아니라 지금 현재의 규정성을, 지금 현재의 연기적 조건을 거슬러 올라감이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고향으로 돌아감 또한 시간적 기원의 장소를 찾아가는 게 아니라 모든 규정 이전의 잠재성을 찾아가는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장자라면 무(無)라고, 만물이 생겨나게 한 ‘하나’ 이전, 그 미분화된 하나가 생겨나게 된, 유도 없고 이름도 없던(無有無名) 태초의 무라고 답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무는 그저 없음은 아니다. 그저 없음이라면 아무 것도 낳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건 차라리 ‘혼돈’이다. 어떤 구멍도 생기기 이전의 혼돈(混沌), 아무런 규정도, 제한도 없는 혼돈. 그렇기에 언제나 어두움 속에 숨어 있는 도, 현도(玄道)이다. 장소도 없고 시간도 넘어선 만물제동(萬物齊同)의 세계다. 앞서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학인에게 한 낙포의 대답은 집이 허물어지고 가족도 흩어졌는데, 그게 그대가 돌아가고자 하는 곳인가, 그게 그대가 말하는 고향인가 반문하는 것이다. 어디로 돌아가겠느냐는 물음은 그대가 생각하는 고향이 대체 어디 있겠느냐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자 학인이 다시 말한다.

“그렇다면 돌아가지 말라는 말씀이로군요.”
“뜰 앞에 남아 있는 눈은 햇볕이 녹이지만, 방 안에 날리는 먼지는 누구를 시켜 쓸어 없앨까?”

일단 말만으로 보자면, 방안에 날리는 먼지를 쓸어 없애려면 누군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니, 집은 허물어지고 가족은 떠났지만 가서 그렇게 허물어진 집에 먼지라도 쓸어주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를 들어 낙포의 말이 단지 “고향이 예전 같지 않겠지만 그래도 돌아가서 고향을 돌보며 살아라”라는 뜻이라고 한다면 크게 오해한 것이다. 고향이라고 하지만 집도 가족도 무상하게 변하게 마련이니 고향이라 할 곳이 따로 없다는 말이다. 그러니 고향으로 돌아가라 한 것이라지만 동시에 돌아갈 곳이 따로 있지 않다는 말이기도 하다.

본래면목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변하지 않는 고향 같은 본래면목은 없다. 그러니 따로 찾아갈 고향 같은 본래면목은 없다. 그러나 탐심과 치심, 분심에 끄달리며 사는 현재의 삶이 본래면목이 아님은 분명하다. 따라서 본래면목을 찾아, 고향을 찾아 돌아가야 한다. 가서 방 안에 날리는 먼지를 쓸고, 번뇌들을 쓸어 없애주어야 한다. 먼지 날리는 삶을 넘어서지 못하는 한, 따로 고향을 찾아가고 따로 산속에 틀어박혀도 거기는 고향이 될 수 없고, 반대로 그런 삶을 넘어설 수 있다면 따로 어디 안 가도 선 자리 앉은 자리가 바로 본래면목이란 말이다.

그러나 이것뿐이라면 낙포의 말은 사실 육조가 말하려는 본래면목보다는 거울에 먼지가 쌓이지 않도록 매일 열심히 닦으라는 신수의 가르침에 더 가까이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낙포도 이를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비록 학인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자신을 ‘낮추어’ 방안에 날리는 먼지를 쓸라 했지만, 그에 이어 다음과 같은 게송을 덧붙인다.

뜻을 굳혀 고향으로 돌아가고자/배를 타고 오호(五湖)를 건너노라.
삿대를 잡으니 별과 달이 숨고/노를 멈추니 해가 밝도다.
닻줄을 풀고 삿된 언덕을 떠나서/돛대를 달고 바른 길 향해 떠나네.
도달하고 보니 집은 깨끗이 쓸려 사라졌고/집안에서 어리석음 저지를 일도 면했도다.

도착해보니 집이 깨끗이 쓸려 사라졌다함은 집이라고, 고향이라고 따로 말할 것이 없었음을 뜻한다. 그러니 집안에 들어가 먼지 쓸 일 또한 없다는 말이다. 즉 먼지를 쓸어 없애 깨끗이 해야 할 것이 따로 없다는 말이니, 본래 한 물건도 없으니 먼지 앉을 곳이 어디 있겠느냐는 오조의 말과 부합한다 하겠다. 조산(曺山)이 스승 동산(洞山)을 떠나며 했던 말도 이와 같은 것일 게다.

조산이 동산에게 작별인사를 하자 동산이 물었다.

“어디로 가려 하는가?”
“변함이 없는 곳으로 가려 합니다.”

그러자 동산이 “변함이 없는 곳에 어찌 가는 것이 있겠는가?”라고 물었다. 변함없는 곳이 어디 있겠느냐는 낙포의 질문과 달리, 변함없는 곳이 있다면 오고감이 없을 터인데, 거기에 간다 함이 어떻게 있을 수 있겠느냐는 반문이니, 오고감이 없음을 증명하려 했던 ‘중론’의 관거래품(觀去來品)의 논지와 가깝다 하겠다. 이에 대해 조산은 “가더라도 변함이 없습니다”라며 인사하고 떠났다. 조산의 대답은, 승조가 ‘조론’의 ‘물불천론’에서 “선람(旋嵐)의 바람이 불어 큰 산이 무너져도 아무런 변화가 없이 고요하고/ 강과 하천이 다투어 달려도 흘러가는 것이 없이 고요하다”고 썼던 게송을 생각나게 한다.

그러나 이 말을 인정한다고 해도, 사실 이 말은 무상하게 변하는 세계에 반하는 불변의 실체가 있는 것인 양 오해하게 한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원오는 조산의 말을 수긍하긴 하지만, “나라면 ‘변함이 없는 곳으로 가려합니다’라는 말을 듣고 그에게 ‘이놈아! 문밖으로 나가기도 전에 벌써 변해버렸다.’라고 말해주었으리라”라고 덧붙인다.

귀향, 즉 본래면목으로 돌아감이란 부서지고 변화하는 무상한 지금 여기를 긍정하는 것이다.

어느 학인이 대룡에게 물었다.

“색신(色身)은 부서지는데 어떠한 것이 견고한 법신입니까?”
“산에 핀 꽃은 비단결 같고, 시냇물은 쪽빛처럼 맑구나.”

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solaris0@daum.net
 


[1413호 / 2017년 11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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