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72. 마음을 얻는다는 것

기자명 최원형

결정의 순간, 같은 실수 되풀이 하지 않으려면

살면서 우리는 무수히 많은 결정을 하게 된다. 결정의 스펙트럼은 매우 넓어서 사소한 것부터 중대한 결정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그 비중이 크든 적든 무언가를 결정한다는 것은 결코 간단치가 않다. 오죽하면 ‘결정 장애’란 말도 있을까. 나 역시도 결정하는 일은 언제나 어렵기만 하다. 그런데 결정하는 일이 왜 힘들까를 곰곰 생각해보면 결국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결정을 내린 뒤 찾아올 후과가 클 경우 그 책임이 너무 버겁기에 애당초 결정을 내리는 일을 주저하곤 한다. 그렇지만 살아가는 일은 매 순간 결정의 연속이다. 약속 시간에 늦어 급히 서두르다보면 이동수단을 무엇으로 할지 순간 결정을 내려야 한다. 택시를 타는 게 빠를까, 전철을 타는 게 빠를까? 그럴 때는 단순하게 탈 것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도로의 흐름과 시간대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출퇴근 시간인지 교통이 정체되고 있는지 등의 변수를 살펴서 결정을 내려야 한다. 신중하게 살피고 살펴 결정을 내렸어도 의외의 복병이 숨어 있을 수 있다. 아니 순간 발생할 수도 있다. 갑작스레 어느 구간에선가 공사 중이든가 사고가 발생해서 교통이 통제된다든가. 이런 경우 애당초 내린 결정에 대해 비난할 수 있을까? 주변에서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며 자책하는 이들을 이따금 만난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그럴 때 나는 ‘지난 일은 모두가 잘한 결정’이라는 말을 떠올리곤 한다. 지나간 일이 모두 잘한 결정이어서가 아니라 어차피 벌어진 일의 잘잘못을 따져본들 바뀔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난 일은 모두 잘한 결정이다. 그 대신 새롭게 결정해야 할 순간이 왔을 때 앞선 결정의 결과를 복기하면서 같은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으면 된다.

신고리 5·6호기 재개 선택한 시민
핵 없는 세상 발원한 시민은 허탈
53.2% 원전축소 의견 소중히 여겨
신뢰 바탕한 외연 확장 시작해야

최근 우리 사회는 공론화라는 민주적 절차 하나를 경험했다. 그동안 국가 정책은 소수의 전문가가 결정하고 통보하는 식이었다. 이번 공론화가 처음 거론되었을 때 전문가 그룹에서는 전문적인 일을 어떻게 아마추어인 시민이 결정하느냐며 반발했다. 핵발전소 건설을 반대하는 측에서는 왜 대통령이 공약한대로 핵발전소 건설을 중단하지 않고 공론화에 부치느냐고 반발했다. 이런 갈등 상황 속에서 시민참여단이 꾸려졌고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 여부는 숙의과정을 거쳐 끝이 났다. 공론화위원회의 권고안 발표가 있던 그 시각에 나는 회의를 하러 이동 중이었다. 스마트폰에 이어폰을 연결해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듣고 있다가 59.5%라는 숫자와 ‘재개’라는 말을 듣고는 다리에 힘이 풀렸다. 공론화 시작부터 언론을 뒤덮던 가짜뉴스 속에서 이미 기울어진 조건이었고, 꾸준히 제기되던 여러 문제점들이 마치 이런 결과의 서곡이었다는 생각으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특히나 미래세대에게 핵 없는 안전한 세상을 물려주고자 애썼던 이들의 허탈감은 곁에서 보기가 안쓰러웠다.

다음날 새벽 식생조사를 핑계로 지리산으로 향했다. 흠뻑 땀을 흘리며 오르다 보니 어느새 무심한 상태인 나를 발견했다. 허리도 무릎도 신통치 않아 등산은 무리라는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나선 산행이었던 터라 한발 내디딜 때마다 조심스러웠다. 그렇게 집중하며 걷다보니 뉘엿뉘엿 해가 질 무렵 세석대피소에 다다랐다. 뚝 떨어진 기온으로 한껏 투명해진 대기 너머에 별이 가득했다. 어쩌면 이미 사라졌을 별들이 수억 광년을 달려와 내 머리 위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일순간 일희일비하던 일들이 봄 눈 녹듯 스러져가는 걸 느꼈다. 쏟아지는 별빛 아래서 시민참여단의 결정을 비로소 분노하지 않고 떠올릴 수 있었다. 시민참여단의 결정을 가장 크게 좌우했던 건 무엇이었을까를 되짚어봤다. 결정을 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냐 아니냐를 떠나, 옳고 그름을 떠나 마음을 움직이는 무엇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은 정말 무엇이었을까? 건설을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에서 우선시하는 것은 각각 경제성과 생명이었다. 건설재개로 권고안이 나왔고 그걸 정부가 수용했다. 그렇지만 원전축소를 선택한 비율이 53.2%나 되었다. 건설을 재개하자면서도 원전축소를 원하는 결과는 시민참여단 역시 결정이후 나타날 결과를 고민한 흔적일 것이다. 여전히 핵으로부터 안전한 세상을 염원하는 이들이 있다. 외연을 확장시켜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에서 다시 시작했으면 좋겠다. 마음을 얻고 나야 신뢰가 쌓일 테고 보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핵 없는 세상을 향할 수 있지 않을까?

최원형 불교생태콘텐츠연구소장 eaglet777@naver.com
 


[1413호 / 2017년 11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