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64. 조병화의 ‘백담사2’

기자명 김형중

불멸의 시집 ‘님의 침묵’ 남긴 만해
하늘 별과 목욕하는 모습으로 연출

밤이 깊어지니
별들이 하늘에 내려와
목욕을 하더라

하늘은 너무나 넓어서
물장구를 치는 애기 별도 있더라

만해도 별이 되어
백담사도 시도 벗어 던지고
하늘로 목욕을 하러 떠났더라

멀리 한양에서 찾아온 이들,
아랑곳없이.

만해 스님이 가고 없는 오늘날
백담사서 만해시 평론·낭송 등
시인들의 찬양과 사모 이어져
절 풍경까지 담은 순례시 백미

설악산 백담계곡에서 여름 한 밤 중에 목욕하는 사람들이 있다. 만해 스님이 살아생전에는 시를 쓰다말고 하늘의 별들이 계곡물에 비추는 밤에 목욕을 했다. 참선하던 선승들도 가부좌를 풀고 물속에 첨벙 몸을 담그고 목욕삼매에 들었을 것이다.

만해가 가고 없는 지금은 서울에서 백담사를 찾아와 만해시를 평론하고 낭송하면서 시로 목욕을 하고 있다. 시인들은 백담사에 모여 이렇게 애타게 만해시를 찬양하고 사모하는데 정작 만해는 어디에 갔는지 모습을 찾을 수가 없다. 시인은 만해의 종적을 유추하였다.

“하늘은 너무나 넓어서/ 물장구를 치는 애기 별도 있더라/ 만해도 별이 되어/ 백담사도 시도 벗어 던지고/ 하늘로 목욕을 하러 떠났더라” 만해가 하늘나라로 목욕하러 잠깐 백담사를 떠났다고 한 시인의 상상력은 기발하다. 만해가 별이 되어 하늘로 떠나 시인들의 별이 되었다.

지금이야 어림도 없지만 1980년대만 하더라도 백담사 옆 계곡에서 피서 관광객들이 텐트를 치고 밤새도록 떠들며 목욕하던 때가 있었다. 술집도 있었다. 지금은 설악산 관리사무소로 사용하는 조그만 돌집 건물이다. 시인묵객에는 술도 있고, 달빛에 교교히 흐르는 맑은 시냇물도 있고 하늘에 별도 있으니 자연히 시와 그림이 없을 수가 없었다. 백담사 옆 계곡에 참배객들이 소원을 담아 쌓은 돌탑들은 장관이다. 큰 비가 오면 모두 쓸어가고 다시 쌓은 돌탑이다.

조병화(1921~2003) 시인도 분명 여름밤을 이곳 주막에서 시인들과 밤새 술을 마시다가 백담사의 이 광경에 취하여 시를 읊었을 것이다. 산사의 계곡에서 밤새도록 천경만어(千經萬語)로 설법하는 시냇물 소리를 들으며 반야주(般若酒)를 마시는 사람은 신선이 되어 가만히 있을 수가 없을 것이다.

자고로 시인들이 산사를 찾아 기행시를 많이 남겼는데 조병화 시인의 ‘백담사2’ 처럼 절의 아름다운 모습과 그곳에서 불멸의 시집 ‘님의 침묵’을 남긴 민족 시인 만해 스님을 하늘의 별들과 목욕하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완벽하게 연출한 시인은 없었다. 참으로 아름다운 시이다. 명성은 괜히 생기지 않고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 명불허전이다. 사찰 순례시의 백미이다.

지금은 하늘에는 만해가 있고, 만해가 쓰던 선방에는 오현 큰스님이 가부좌를 틀고 임의 큰 뜻을 대신하고 있으니 백담사는 만고에 시선일여(詩禪一如) 이름이 이어지는 명찰이 되었다.

조병화는 한국시인협회 회장,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대한민국예술원 회장 등을 역임하고, 한국시인협회장상, 5·16민족상, 대한민국금관문화훈장 등을 수상하였다. 53권의 창작시집을 낸 교수, 시인으로 최고의 영예를 누리고 산 사람이다. 1979년 서울에서 개최했던 제4차 세계시인대회 대회장을 역임하였고 이 대회에서 계관시인(桂冠詩人)으로 추대되었다.

그의 제2시집 ‘하루만의 위안’은 도시화가 진행된 서울시민의 혼란함과 고뇌를 읊은 시집이다. 그의 호가 ‘한 조각의 뜬 구름(一片浮雲)’을 뜻하는 ‘편운(片雲)이듯이 고독한 인생을 살아가는 나그네로서 삶의 의미를 시에서 내포하고 있다. ‘

백담사는 김시습이 머물고 만해가 일제 경찰을 피해 이곳에 와서 불후의 명작인 ‘님의 침묵’ ‘조선불교유신론’ ‘십현담주해’를 집필했던 곳이며, 대한민국 제12대 대통령 전두환이 유배생활을 한 사찰이다.

김형중 동대부여중 교장·문학박사 ililsihoil1026@hanmail.net
 


[1413호 / 2017년 11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