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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희견보살

기자명 정진희

깨달음을 주신 가르침에 소신공양으로 보은

▲ 월정사 석조 공양보살 좌상, 고려, 전체높이 1.8미터, 국보 제48-2호, 월정사 성보박물관.

“오대산의 가을 단풍이 절정”이라고 매스컴에서 떠드는 소리만 철석같이 믿고 천연색으로 곱게 물들인 털실로 뜨개질한 것 같은, 그야말로 금수강산을 한번 진하게 볼 일념 하나로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강원도를 향해 길을 나섰다. 하지만 꽉 막힌 도로에서 수 시간을 부대끼며 찾아간 나의 기대와는 달리 눈앞에 펼쳐진 강원도의 산은 아직 청춘의 빛을 잃지 않고 있었고 그 푸르름에 눈이 시릴 정도였다. 억울한 마음을 위로 받을 심사로 월정사로 향했던 발걸음도 사찰 진입로부터 끝이 보이지 않는 차량의 행렬에 금세 기가 꺾였고 차선책으로 찾은 것이 새로 지어 유물을 모신 월정사 성보박물관이었다. 아마도 내년 2월 강원도 평창에서 펼쳐질 세계적인 축제를 위해 기존의 박물관을 확장해 새로운 개관을 준비하고 있었을 텐데 사찰의 인심은 역시 훈훈하여 아직 정식 개관은 하지 않았지만 찾아간 이들을 박하게 내쫓지 않고 내부 관람을 하게 해 주었다.

부처님 사리 수습 소임 맡아
두팔 태우며 7만2000세 동안
부처님 사리탑 공양올린 보살
제일의 공양 의미 ‘소신공양’
희견보살의 공양에서 비롯돼  

새로 만든 월정사 성보박물관은 트인 공간에 엄청 규모가 장대해 입구부터 살펴보는 재미가 적지 않아 이것저것 구경하다 보니 박물관에서 보기 드문 석굴처럼 생긴 방이 만들어져 있었다. 안으로 들어갔더니 천장이 높은 공간이 나타났고 감실 같은 공간 중앙 연화대좌에는 예전 월정사 팔각구층석탑 앞에 있던 보살상을 따로 모셔 두었다. 야외에 있을 때는 대좌가 땅 속에 묻혀 바닥에 놓인 상태와 같았는데 대좌 높이를 달리 하고 왼팔을 고이기 위해 후대에 동자를 새겨 끼웠던 석조 부조물도 떼어 내니 크기도 다르고 생김새도 뭔가 다른듯 내가 예전에 보았던 그 보살상인가 싶다. 정면으로 바라보다 밑에서 우러러 뵈니 정말 사람뿐만 아니라 유물도 있는 자리에 따라 이렇게 달라 보일 수 없어 요즈음 뜨는 말 그대로 “슈퍼 그뤠잇!”이었다. 전시실 입구 한쪽에는 ‘공양보살상’이라 하고 맞은편에는 ‘희견보살(喜見菩薩)’이라는 유물명을 달아 놓았는데 동행하였던 조각 전공자가 “무슨 근거로 희견보살이라고 확정지었지?”라고 전문가답게 한마디 한다. ‘월정사사적기’에 의하면 이 보살은 무릎을 꿇고 앉아 손에 향로를 들고 공양하는 약왕보살상(藥王菩薩像)이라 하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월정사 탑 앞 문수보살상이 지키고 있어 천년동안 새가 탑 위로 날지 못했다는 고려시대 정추라는 문신이 지은 시가 있다고 하니 이 보살상의 이름을 두고 예전부터 설왕설래가 많았구나 싶다.

‘법화경’의 ‘약왕보살본사품’을 보면 약왕보살의 전생담에 희견보살이 등장한다. 약왕보살이라는 보살명이 다소 생소하지만 경전에는 문수, 관음, 대세지 등과 함께 약사 8대보살로 등장하고 실제로 석가여래의 협시보살로 조성된 예가 있다. 약왕보살은 전생에 ‘일체중생희견보살’이라는 한 보살님이셨는데 어느 날 일월정명덕이라는 부처님이 설해주는 ‘법화경’을 듣고 고행하며 정진하여 삼매에 들어 깨달음을 얻었다. 그리고 일월정명덕불과 ‘법화경’에 고마움을 표현하기 위해 1200년 동안 최고의 향을 자신의 온몸에 바르고 먹는 정성을 들이고 마지막에는 몸을 향처럼 불태우는 소신(燒身)공양을 올렸다. 이후 다시 몸을 받아 이 세상에 태어난 희견보살은 부처님의 사리를 수습하여 탑을 세우고 장엄하는 소임을 맡아 이를 수행하면서 탑 앞에서 또 다시 자신의 두 팔을 태우며 7만2000세 동안 사리탑을 공양하였다. ‘법화경’에서 희견보살이 자신의 몸을 불태워 부처님에게 공양하였던 일을 두고 ‘제일의 보시’라고 한 것에서 소신공양이라는 말이 생겨났다고 하며 소신공양은 중국에서 ‘법화경’이 번역된 이후 현실에서도 행해졌다고 하는 궁극의 공양법이다.

▲ 법주사 석조 희견보살입상, 전체높이 213㎝, 통일신라 보물 제1417호, 충북 보은 법주사(사진제공 문화재청).

돈황 막고굴 벽화를 비롯하여 고려시대 ‘묘법연화경’ 변상도에는 탑 앞 혹은 높은 대좌에 가부좌로 앉은 부처님 앞에서 자신의 몸과 팔을 불태워 소신공양하는 희견보살이 있으며 조선시대 사경(寫經)에도 희견보살은 같은 모습으로 표현된다. 법주사의 향로를 머리에 이고 있는 조각상은 학계에서 피부색이 검은 노예를 뜻하는 곤륜노(崑崙奴)의 형상이라는 의견이 있기도 하지만 일반 대중들에게는 희견보살로 여겨져 왔다. 서 있는 자세에서 두 손을 들어 머리에 연화향로를 이고 있는 돌로 만든 법주사의 보살이 희견보살이 맞는다면 아마도 약왕보살의 전생에서 희견보살로 있으면서 자신의 몸을 소신공양하였던 이야기를 조각품으로 만들어 모셨을 것이다. 그리고 법주사 희견보살과 달리 탑 앞에서 무릎을 꿇은 채 한 다리를 올리고 두 손을 모아 무엇을 들고 있는 월정사 공양자상은 인간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 사리탑을 조성하고 장엄하면서 자신의 두 팔을 태웠던 일월정명덕국의 왕자로 지낸 전생 이야기를 표현한 작품일 것이다.

한 쪽 무릎을 세우고 바닥에 꿇어앉은 형태의 공양자상은 삼국시대부터 그 예가 나타나고 대부분이 스님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만 월정사 석조보살좌상과 같이 탑 앞에 앉아 공양하는자세로 조성된 보살상들은 고려시대로 들어오면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이들 공양보살좌상은 머리에 원통과 같은 관을 쓰고 있어 기존 고려보살상의 모습과는 차이가 있다. 원통형 보관은 요나라 귀족들도 쓰고 있는 특징적인 머리장식으로 이런 모양의 보관을 착용한 보살상들은 고려와 요나라 사이 교류가 시작되어 새로운 문화가 유입되면서 우리나라에 새롭게 등장한다. 원주의 법천사지에서 나온 석등 부재조각에 새긴 공양보살의 모습을 보면 원통형으로 높은 관을 쓰고 무릎을 꿇고 앉아 향로를 올리는 형태이다. 따라서 월정사 성보박물관 보살상의 모아 쥔 두 손에 뚫린 구멍은 향로를 꽂기 위해 만든 것으로 지금은 사라졌지만 처음 만들 당시에는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향로가 들려져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 신복사지 석불좌상, 전체높이 181㎝, 고려 보물 제84호, 강릉시 신복사지(사진제공 문화재청)

전설에 의하면 이 보살은 월정사 남쪽 금강연이라는 연못에서 나왔다고 하는데 흥미롭게 우리나라에서 이런 모습의 공양자상 혹은 고려시대 강원도 명주(지금의 강릉지역), 오대산, 충남 연산지역에서 만 보이고 있다. 10세기 초반 연산 개태사에서 처음 등장한 석조공양보살상은 11세기 이후부터 원주 법천사, 강릉 신복사, 오대산 월정사 등에서 만들어졌는데 모두 탑 앞에 놓여있던 공양보살로 추정되고 있어 이 모두가 월정사 공양보살좌상과 유사한 의미로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탑 앞에 석조공양보살좌상이 강원도 지역에서 유독 많이 만들어진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히 밝혀진 바는 없고 옛 명주지역 장인들에 의한 지역적인 특색 정도로 추정만 할 뿐이니 앞으로 연구자들의 과제로 남겨져 있다.

보살이 불도를 수행하기 위해 실천하는 육바라밀 가운데 제1의 덕목이 보시바라밀이다. 타인을 위해 널리 베푸는 수행과정에서 자신의 몸을 불태워 공양하는 것은 이타정신의 극치일 것이다. 궁극의 깨달음을 얻었기에 그러한 공양이 가능했던 것일까? 개인의 이기심에 의해 돌아가는 현실을 사는 필자에게 깨달음을 주신 가르침에 보답하기 위한 그 마음 하나로 자신이 가진 가장 소중한 몸을 보시하는 희견보살의 마음이 이 가을 하늘처럼 높고 푸르게 느껴진다.

정진희 문화재청 감정위원 jini5448@hanmail.net
 


[1413호 / 2017년 11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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