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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하명선

기자명 김영욱

시간 속 잃어버린 본질을 수복하다

▲ ‘중대팔엽원(中臺八葉院)’, 비단에 채색, 50×50㎝, 2017년.

누군가에게 시간은 더디게 흘러간다. 혹여 시간이 멈춘 것일 수도 있다. 앉아 있는 몸은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고 시선은 손끝으로 향해있다. 이 적막한 공간 안에서 작가의 숨소리만 들렸고 천천히 움직이는 붓 끝만 보였다. 이내 붓을 멈추고 몸을 일으켜 그림을 지그시 바라본다. 그리고 그는 다시 자신만의 공간에 발을 들였다.

시간의 흐름서 빗겨서
만물의 본질을 통찰해
섬세한 도상으로 표현

누군가에게 시간은 빠르게 흘러간다. 그 속도에 묻혀 시간과 자신을 망각한다. 1초, 1분, 1시간…. 얼마나 지났는지도 알 수 없는 시간 속에서 자신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빠른 시간 안에서 자신을 돌아볼 여유는 허락되지 않는다. 행위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것은 중요치 않다. 결과는 행위를 통해 얻는 정신적인, 물질적인 성취감이다.

하명선은 천천히 나아가는 시간의 발걸음을 통해 본질에 다가가는 작가이다. 그는 만다라(曼茶羅, Mandala)를 수복하는 작업을 통해 잃어버린 자신을 되찾고 있다.

시각 디자인을 갓 배운 그는 자신의 뒤를 돌아 볼 여유조차 없는 바쁜 업무 속에 시간을 흘려보냈다. 과거의 시간은 중요치 않았다. 그의 시선은 오직 앞을 향하고 있을 뿐이었다. 8년여의 시간이 지난 후 그에게 남은 것은 어느 정도의 직위와 통장에 적힌 숫자뿐이다. 주변에는 공적 관계로 형성된 사람들만 남아있었다. 모든 일을 정리한 그는 훌쩍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지금의 작가로 모습을 드러냈다.

만다라는 불가에서 말하는 우주 법계(法界)의 온갖 형상과, 그 형상에 내재된 덕(德)을 도상으로 풀이한 그림을 말한다. 그림에 불가의 진수(眞髓)가 녹아있는 것은 당연하다. 범어로 ‘Manda’는 ‘진수’ 또는 ‘본질’을, ‘la’는 ‘변화’를 뜻한다. 즉 만다라는 참된 의미가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변화하지만 내재된 본질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다라의 하나인 양계만다라(兩界曼茶羅)는 다시 금강계만다라(金剛界曼茶羅)와 태장계만다라(胎藏界曼茶羅)로 구분된다. 그중 태장계만다라는 ‘대일경(大日經)’을 근거로 대일여래상을 중심으로 네 부처와 네 보살을 만다라의 중심인 중대팔엽원(中臺八葉院) 안에 그려 넣는다.

작가의 만다라는 태장계만다라의 중심인 중대팔엽원을 수복한 작품이다. 그는 태장계만다라의 핵심인 ‘이(理)’의 이치에 주목했다. 이(理)는 곧 본체와 정신, 본질을 의미한다. 우주와 만물의 근거이며 우주로서의, 만물로서의 모습을 부여해주는 본질 그 자체이다. 즉 ‘이’는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의 본질과 증거이다.

여러 불화 가운데에서도 태장계만다라에 흥미를 가진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는 8년의 시간 속에서 잃어버린 자신의 본질을 회복하고자 했다. 숨소리조차 느끼기 힘들었던 빠른 시간의 공간에서 벗어나 자신을 돌아보기 위해 멈춰있는 시간의 공간에 발을 내딛었다. 작가는 적막한 공간에서 하나하나의 도상을 세심하게 그려내며 자신의 본질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명선의 작품은 보고 있자면 그의 과거 행적을 밟고 있는 나 자신의 모습이 투영된다. 많은 일에 묻혀 나 자신의 본질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누군가에게 시간은 천천히 흘러가거나 혹은 빠른 속도로 스쳐지나간다. 어찌 보면 시간의 속도는 중요치 않다. 시간보다 방향이 중요하고, 방향을 통해 나아가는 본질의 깨달음이 필요하다.

김영욱 한국전통문화대 강사 zodiacknight@hanmail.net
 


[1413호 / 2017년 11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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