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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신행일기] 모규엽

기자명 법보신문

▲ 56, 자명
축서사 보광전에 홀로 앉는다. 신라시대 비로자나 부처님을 대면한다. 큰 귀 늘어뜨리고 지권인에 반개한 눈 사이로 뻗어 나오는 안광에 주눅이 든다. 하지만 나도 눈빛을 교환해 본다. 불법으로 세상을 환하게 밝혀 놓았으나 마주한 중생은 그 빛 속에서 어둠만 보고 있다. 움켜진 손 안에 내 마음이 들어 있다고 말씀한다. 그 손가락을 펼쳐 보지 못한다. 그만두고 눈을 감고 눈앞 부처님을 떠나 내속 부처님으로 가볼까. 그 길을 찾을 수가 없다.

‘모태불교신자’라 불렸지만
큰스님 법문 외면했던 시절
원통암 인연으로 바뀐 신행
축서사·무여 스님 뵈며 정진

부처님 옷깃도 스쳐보지 못했다. 의심만으로 가득한 마음에 불법은 구름을 거두고 나타난 빛이 돼 줄 수 있을까. 왜 축서사를 찾는가. ‘나는 누구인가’에 답을 구하기 위해서다. 무여 스님은 누구든 친견에 응해 주신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스님의 처소인 응향각을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서성거렸다. 여름 휴가 때, 지리산 원통암에서 만났던 스님 얼굴이 떠올랐다.

할머니 손잡고 절을 다닌 이른바 ‘모태불교 신자’다. 사람으로서 진실된 삶을 사는 방편으로 택한 종교가 불교다. 도덕적인 일상의 반복이 점수이며 점오라고 여기고 건강한 중산층을 자신하며 살았다. 부처님오신날이면 으레 등을 달았고 가족과 전국 사찰을 순례하는 정도만으로도 불자라 자신했다.

2014년 8월, 여름이었다. 누나 및 여동생 가족들과 휴가를 보내러 지리산 의신마을을 찾았다. 가족 모두 불자여서 화암사, 쌍계사, 칠불사 부처님을 참배하는 일은 휴가 일정 중 하나였다. 장엄한 새벽예불과 저녁예불에 동참도 하며 가족과 휴가를 보낸다. 숙소 인근을 찾아보니 원통암도 있었다. 한 시간 정도 산 밑에서 걸어 오르니 깔끔하고 아담한 암자가 정상에 가까운 중턱에 자리하고 있었다. 인기척이 드문 암자였다. 절하는 누나와 동생, 아내를 뒤로 하고 잠시 수식관을 하고 ‘반야심경’을 봉독했다. 그 즈음 스님 한 분이 다가왔다. “차, 한 잔 하시지요.”

스님들과 대화를 피해왔던 자신을 직면했다. 법문 보단 혼자 책 읽으며 습득한 지식으로 가득 찬 오만한 신자였었다. ‘반야심경’의 “무지역무득 이무소득고”를 묻는 스님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 스님은 가만히 찻잔에 찻물을 부었다. 재적사찰이 있느냐 묻는다. 없다고 답했다. 법명이 있느냐 묻는다. 없다고 답했다. “부처님 만나는 것을 겁내는 분이군요. 큰스님 법문 많이 들으시고 절도 많이 하십시오.” 스님의 법명을 알고 싶었다. “몰라도 됩니다. 인연 있으면 이름 몰라도 또 만날 수 있지요.” 영화나 소설 같은 말씀을 남긴 그 스님이 축서사를 추천했다.

휴가를 마치고 스님도 축서사도 잊고 지냈다. 수확의 계절 가을이 왔다. 불현 듯 원통암에서 만났던 스님과 축서사가 생각났다. 추석을 1주일 앞둔 일요일 새벽, 아내와 함께 축서사로 향했다. 절집을 염탐하듯 이리저리 기웃거렸다. 그러다 보광전에 앉아계신 비로자나 부처님을 뵀다. 형언할 수 없는,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감정에 휩싸였다. 그리고 그때 처음으로 반문했다. “진정, 난 누구인가.”

사성제와 삼법인, 연기로 뒤덮인 세상 속에 분별심이 적은 나, 정견·정사유·정어·정업·정명·정정진·정념 등 팔정도를 노력하는 나, 정정으로까지 갈 수 없는 나, 돈오돈수는 없고 점오점수만 가능하다고 여기며 살아온 나. 축서사에서 비로자나 부처님을 친견하고 나서야 비로소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추석 연휴, 다시 축서사를 찾았고 무여 스님을 예방했다. 설 연휴에는 삼남매를 데리고 축서사에서 2박3일 템플스테이를 했고, 무여 스님에게 세배를 올렸다. 그 후로도 큰스님을 뵈면 인사드린다. “가족들이 무탈하냐” 물으시면 “그렇습니다” 대답만 올린다. 무탈하냐는 물음 하나에 많은 의미가 담겼으리라 짐작한다.

나만, 우리 가족만이 우선이었다. 나와 이웃 그리고 사회까지 바라보는 시야를 좀 더 넓히고 싶었다. 조계종 포교원 디지털대학에 입학했고 수료했다. 강좌를 수강하며 불교에 대한 지식이 한층 깊어지면서 또 하나의 ‘나’가 생겼다. 하지만 아직, 난 내가 누군지 모른다. 시시각각 달라지는 모습이란 사실을 확연하게 알았다.

신행하며 지내는 동안 부처님 옷깃이나 스쳤을까. 부여잡고 빌고만 있을까. 부처님 옷깃 부여잡고 열심히 뒤따르겠다는 원력을 다시 세워본다.

공동기획:조계종 포교원 디지털대학


[1414호 / 2017년 11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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