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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문수보살의 문병

기자명 이제열

병 앓고 있는 이는 유마 아닌 문수라는 역설

“부처님께서 문수사리에게 이르셨다. ‘그대가 유마힐에게 가서 병을 위문하여라.’ 문수사리가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그는 말을 건네기가 매우 어려운 사람입니다. 실상의 이치를 깊이 통달하고 변재에 걸림이 없으며 여러 부처님들의 법문을 꿰뚫었으며 신통력이 구족하고 지혜와 방편이 완벽하나이다. 그러나 부처님께서 명령을 하시니 기꺼이 가서 병을 위문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문수사리는 여러 보살과 제자들과 천상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비야리성으로 들어갔다. 이때 유마힐은 ‘지금 문수사리가 여러 대중들과 함께 나를 찾아오는구나’하고 생각하고는 신통력으로 방을 비워놓고 방안에 있던 물건과 시자들을 내보내고 평상하나만 놓고 병을 앓으며 누워 있었다.”

사리풋타는 소승지혜 상징
문수, 대승지혜 상징 보살
유마를 위로 방문한다지만
문병인은 문수가 아닌 유마

지금부터는 제5 문수사리문질품에 대한 해설이다. 유마거사의 병에 부처님의 십대제자들은 물론 대보살들까지 문병을 거절하자 부처님은 마지막으로 문수보살에게 유마거사의 문병을 요구하신다. 이에 문수보살은 부처님의 명령을 받아들여 유마거사의 집을 향한다. 문수보살은 대승의 가르침에 등장하는 보살들 가운데에 으뜸을 차지한다. 문수보살은 부처님의 깨달음 가운데에 대승의 지혜를 상징하는 보살이다. 부처님의 지혜를 보살화시킨 것이다.

본래 부처님의 여러 제자들 가운데에 최고의 지혜를 얻은 사람은 사리풋타이다. 그는 부처님이 가장 신뢰하는 제자로 부처님을 대신하여 법을 설하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법의 장수 혹은 법의 사령관이라 불려왔다. 하지만 이러한 사리풋타의 위상은 대승에서 형편없이 무너진다. 대승에서는 사리풋타가 이룬 지혜를 소승의 지혜로 보고 미완성의 경지로 여긴다. 대승의 모든 경전에서 사리풋타 존자는 보살들로부터 질책을 받거나 새로운 가르침을 받는 존재로 그려진다.

바로 이와 같은 사리풋타의 위상을 대신하는 보살이 문수보살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승의 모든 경전에는 문수보살이 반드시 출현하여 최종적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완성시키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그가 이제 부처님을 대신하여 모든 대중들을 이끌고 유마거사의 집을 향하고 있다. 유마거사는 이미 자신의 뛰어난 신통능력으로 문수보살과 대중들이 자신을 찾았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방안의 물건과 시자들을 다 내보낸 뒤 평상 하나만 남겨둔 채 그들을 기다린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우리는 경전의 말씀을 그냥 읽어 내려가서는 안 된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왜 유마거사가 방안의 물건을 모두 치우고 시자들을 내보내고 평상 하나만 남겨 두었느냐는 것이다.

역시 이 구절은 유마거사의 경지를 상징과 비유로써 설명하고 있음을 알아야한다. 여기서 방안의 살림도구들을 모두 내보냈다함은 유마거사의 몸과 마음은 공적하여 어떠한 분별이나 번뇌도 깃들지 않았다는 의미이며 시자들을 다 물리쳤다함은 육근의 경계를 모두 걷어 들이고 몸과 마음의 작용을 그쳤다는 의미이다. 또한 평상 하나만 남겨 두었다함은 몸과 마음이 공적하여 작용이 없는 가운데에서도 하나의 오롯한 삼매가 일체를 평등하게 비추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유마거사의 본래실성을 밝히는 내용으로 대승의 깨달음이 어떠한 경지인지를 잘 알려준다. 대승의 깨달음은 일체의 분별과 모습이 끊어진 빈 거울과 같은 경계이며 털끝만한 법도 얻지 못하는 허공과 같은 경계이다. 그러나 대승의 깨달음은 텅 비어 아무것도 없는 무멸(無滅)의 상태만은 아니다. 이 아무런 경계도 없는 경계에서 지혜가 일어나 일체만법의 실상을 평등하게 비추고 중생들을 향한 대자비를 나타내어 제도한다. 흥미로운 일은 유마거사가 병을 앓아 병석에 누워있고 이를 문병하기 위해 대중들이 찾아온다고 하지만 실지의 측면에서는 그와는 반대가 된다는 사실이다. 병을 앓는 자는 유마거사가 아니라 문수사리보살과 함께 오는 대중들이며 문병하는 자는 대중들이 아니라 유마거사인 것이다. 병자가 문병인이 되고 문병인이 병자가 되는 상황을 만들어 대승의 이치를 설하는 ‘유마경’의 형식은 매우 독특하다 아니 할 수 없다.

이제열 불교경전연구원장 yoomalee@hanmail.net
 


[1414호 / 2017년 11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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