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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조풍류

기자명 임연숙

현대적 미감으로 풀어낸 전통의 아름다움

▲ ‘인왕산’, 캔버스에 먹·호분·분채·석채, 220×140cm, 2017년.

도심의 한 복판에서 가끔 새로운 눈으로 사방을 둘러보면 가까운 곳에 아름다운 자연풍경도 많다. 특히 광화문에서 사방을 넓은 시각으로 둘러보면 인왕산과 북악산이 눈에 들어온다. 갤러리, 미술관이 많은 평창동만 가도 사방에 아름다운 산이 둘러 쳐져있어 익숙한 눈으로 가까운 데만 봤을 때 느끼지 못했던 아름다움을 느끼게 된다.

여러 계절의 다양한 인왕산
현대 소재로 산수화에 담아
시대상 반영한 개성적 표현

얼마 전 끝난 조풍류 작가의 ‘이산 저산 서울 한 바퀴’ 개인전에서는 그런 의미에서 가까이에서 발견하지 못한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게 한다. 산수화라는 장르는 동양에서 오래된, 아주 오래된 역사를 지닌다. 산수화를 이야기할 때 중국의 남북조시대 종병(宗炳, 375~443)의 ‘화산수서(畵山水敍)’라는 책과 ‘와유(臥遊)’라는 말을 떠올리게 된다. 젊은시절 각지의 명산대천을 돌아다니며 본 풍경을 노년에 병들어 다니지 못할 때 방에 걸어놓고 즐겼다는 데서 유래한 이 말은 철학적, 종교적 의미를 떠나 천년이 넘게 동양회화의 미적 기준으로 남아있다. 현대에 와서도 여전히 산수 풍경은 즐기고 위안 받을 수 있는 대상인 것이다. 
조풍류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여러 계절의 다양한 시간대의 인왕산을 표현했다. 재료며 기법이며 전통과 현대를 넘나들며 고민한 흔적을 보여준다. 한지 위에, 혹은 캔버스 위에 먹과 호분, 분채, 석채라는 재료와 작품이 주는 질감 자체가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인왕산을 그린 그림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은 겸재 정선(謙齋 鄭敾, 1676~1759)의 ‘인왕제색도’이다. 중국미술의 영향권에 있었음에도 우리의 눈에 익숙한 우리의 자연을 현대의 시각으로 봐도 멋지게 표현한 작품이다. 인왕산은 서울, 즉 한양의 주산 오른쪽에 위치한 웅장하지만 따뜻한 느낌의 모습을 하고 우직하게 서 있는 산이다.

안국동 쪽에서 광화문으로 오면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는 산이 인왕산이다. 남대문에서 광화문을 들어서면 바라다보이는 북악산이 주는 느낌과는 사뭇 다르다. 인왕제색도는 짙은 먹과 산과 산 사이의 여백으로 표현된 운무의 과감함으로 인해 기존의 산수화와는 다르고 작가의 다른 작품들과도 차별된다. 유독 이 작품에서 작가의 개성과 시대의 반영이 읽혀진다.

이렇듯 그림 속에는 시대의 미감이 반영되는데, 조풍류 작가의 ‘인왕산’은 달빛아래 드러나는 산과 그 도시의 불빛이 함께 표현되어 있다. 짙푸른 색감의 깊이감은 서울을 감싸 안고 있는 산의 정령처럼 느껴진다. 유화를 그리는 화면인 캔버스에 수용성 매제인 아교를 사용한 채색기법이나, 먹을 사용해 전통 재료로부터 자유로움을 택하고 있지만 전통회화를 전공한 작가다운 필선은 산과 바위의 표현에서 전통성을 느낄 수 있다. 작가가 사용하는 재료 중에 호분은 단순한 흰색이 아닌 조개껍질을 갈아 만든 재료로 질감을 함께 가지고 있는 재료이다. 분채나 석채라는 재료 또한 한국화 작가들에게는 익숙한 재료이지만 한지에 수묵이라든가 캔버스 유화라고 하는 것보다는 생소하다.

분채는 안료 가루다. 식물이나 광물에서 얻어진 천연안료를 가루로 만들기도 하고 현대에 와서는 인공색소를 활용하기도 한다. 석채는 말 그대로 광물에서 얻어진 재료들을 열처리해 다양한 색감을 만들어내는 광물성분의 안료다. 이 재료들은 아교를 매제로 하여 화면에 칠하게 되는데, 유화가 주는 물성의 느낌과는 달리 화면에 색감이 스며들면서 발색이 되는 느낌을 준다.

과감한 재료와 기법을 활용하되 전통회화의 미학적 기준이 되는 산수를 접목하는 작가의 실험성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단순히 화려한 서울의 산천을 소재로 눈에 보이는 서울의 풍경이 아닌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는 진경산수를 그리고자 한다”고 하는 작가의 말처럼 전통에 대한 애착과 미련 만큼이나 현대적인 미감을 찾고자 하는 작가의 절실함을 느낄 수 있다.

임연숙 세종문화회관 전시팀장 curator@sejongpac.or.kr
 


[1414호 / 2017년 11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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