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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풀꽃 같았던 태연 스님 그립습니다”

기자명 법보신문
  • 교계
  • 입력 2017.11.09 12:41
  • 수정 2017.11.09 14:43
  • 댓글 2

진광 스님, 태연 스님 입적 추모글

조계종 가사원 사무국장 태연 스님이 입적한 가운데 스님과 함께 중앙종무기관에 근무했던 교육원 교육부장 진광 스님이 추모의 글을 보내왔다. 스님은 “태연 스님의 갑작스러운 입적 소식에 눈물이 흐른다”며 “짧지만 태연 스님과 함께 했던 시간이 행복했고, 고맙고, 감사하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편집자

조계종 중앙종회를 마치고 북한산 승가사 주지스님께 전화를 드리는 중에 가사원 사무국장이던 태연(兌衍) 스님의 갑작스런 입적 소식을 접했다. 눈앞이 아득하고 황망한지라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두 줄기 눈물이 흐른다.

선시에 이르길 “산호 침상위의 두 줄기 눈물이여, 반은 님을 사모함이요 반은 님을 원망함이로다! (珊瑚枕上兩眼淚 半是思君半恨君)”하였으니 지금의 내 마음도 또한 그러하다 할 것이다.

‘삼국유사’ ‘감통편(感通篇)’에 보면 8세기경 신라시대 월명사(月明師)는 누이의 죽음에 ‘제망매가(祭亡妹歌)’라는 향가를 지어 명복을 빌었다고 한다. 스님을 떠나보내는 내 마음과 다르지 않으리라 믿는다.

“죽고 사는 길이 예 있으매 저히고/ 나는 간다 말도 못다 하고 가는가/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이에 저에/ 떨어질 잎다이 한 가지에 나고 가는 곳 모르누나/ 아으 미타찰(彌陀刹)에서 만날 내 도 닦아 기다리리다.” (무애 양주동 풀이)

내가 스님을 처음 본 것은 2015년 봄 무렵이다. 가사원 운영국장으로 임명받아 사미, 사미니 의제 관계로 만났다. 그때 첫인상은 참 맑고 고운 마음을 지닌 소녀 같다는, 아니 고향 누이 같은 인상이었다. 알고 보니 세 살 어린 나이로 절에 들어와 1994년에 계를 받았으니 나와는 계도반(戒道伴)인 셈이다. 또한 덕숭문중의 일원인지라 더욱 애틋한 정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스님은 이산 연(怡山 然)선사의 발원문에 나오는 ‘아이로서 출가하여 참하고 세상에 물 안든’ 동진(童眞) 스님이었다. 운문사 승가대학을 졸업한 후에 다시 중앙승가대학을 나왔으며 이후 제방 선원에서 12회 안거를 성만하였다.

2008년 이후에는 은사이신 정엽 스님을 모시고 용인 법륜사에서 소임을 다하다가 2015년 가사원 운영국장에 임명되어 3년째 종단가사 제작에 힘써왔다. 항상 부드러운 말과 환한 미소로 모든 이를 대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스님을 보고 듣는 이 모두가 환희찬탄 하였음은 물론이다.

도고마성(道高魔盛)이라고 했던가! 세상에 흠 없는 영혼이 없고,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만 그런 스님에게 천형과도 같은 아토피 증세가 심하였다고 한다. 어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 보살의 마음과 실천을 하였는지 도무지 모를 일이다. 아마 천성이 곱고 아름다웠으리라 믿는다.

선가에서는 “생이란 한 가닥 뜬 구름이 일어남이요 죽음이란 그것이 사라지는 것이니라.(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라고 한다. 하지만 죽음도 사람의 일인지라 마냥 섭섭하게 우는 마음을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이다. 부디 한 세상 연꽃 만나러 오는 바람같이, 혹은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처럼 섭섭하게, 하지만 아조 섭섭하지는 않게 그렇게 보내드릴 일이다.

나태주 시인은 ‘풀꽃’에서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라고 노래했다. 고은 시인의 ‘그 꽃‘이란 시는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 올 때 보지 못한 그 꽃”이라고 읊었다.

태연 스님은 이름 없는 풀꽃처럼 짧은 생애를 수행자로 살다갔다. 그러나 우린 자세히 볼 수도, 오래 바라다 볼 수도 없이 그렇게 급히 떠나보내야만 한다. 왜 그때는 그를 보지 못했던가! 조금만 더, 아주 작은 찰나라도 그랬어야 했는데…. 때늦은 후회와 자책은 우리 남은 자의 몫일게다.

지금도 방문을 열고 환한 미소로 “스님!”하고 부를 것만 같아서 자꾸만 문을 바라보곤 한다. 아침 예불 시간에 가사를 수할 때마다 스님이 그곳에 서려있다. 그의 못다 한 꿈과 희망을, 그토록 살고 싶어 했던 시간을 입는 느낌이다.

그러니 대한불교조계종 모든 비구, 비구니 스님들이여, 가사를 수하고 벗을 때마다 잠시 동안만이라도 우리 태연 스님을 기억하고 축원해 주시기를 간곡하게 빌어마지 않는 바이다.

“나뭇잎 하나 떨어져 천하가 가을임을 안다(一葉落天下知秋)”고 했던가! 바야흐로 낙목한천(落木寒天) 찬바람이 불어오니 나무는 잎을 다 떨군 채 그야말로 체로금풍(體露金風)을 여실히 드러낸다. 그러나 봄날이 오면 인고의 겨울을 이겨낸 새싹과 풀꽃이나 사람들에게 어김없이 또다시 피어 만발하리라 믿는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여정(旅程), 그 자체로 보상(The journey is the reward)”이라고 했듯이, 당신의 짧지만 아름다운 여정에 함께할 수 있어 행복했다. 고맙고 미안하고 감사함이 가득하다.

부디 불망본서(不忘本誓)하시고 속환사바(速還娑婆)하시어 광도제중(廣度濟衆)하소서!

교육원 교육부장 진광 합장

 

 

[1415호 / 2017년 11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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