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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신곡’의 지옥과 순례자 ①

기자명 김성순

기독교 지옥과 구원에 대한 서술

이번 회차에서는 13세기 그레코로만 문학의 정수라 할 수 있는 단테의 ‘신곡’ 지옥편의 서사를 들여다보면서 중세 시인들의 지옥순례에 동참해보기로 하겠다.

불교지옥과 마찬가지로
기독교 지옥도 빛 없어
지옥 상징 3가지 짐승들
불교 삼독과 유사한 맥락

단테의 ‘신곡’은 전체적으로 기독교의 심판과 구원론, 그리스로마 신화와 역사, 그리스 철학 등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마치 한국의 무가나 불교의 게송처럼 음률을 맞춘 서사로 이루어져 있다.

‘정법념처경’에서 지옥의 고통상과 죄업의 본성을 관조하는 비구의 눈을 빌려 지옥을 순례했던 것처럼 단테의 ‘신곡’ 역시 순례자의 눈을 빌려 지옥의 참상과 기독교 신앙의 구원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불교의 지옥과 마찬가지로 ‘신곡’의 지옥 역시 ‘빛이 없는 곳’으로 묘사된다. 또한 순례자의 길을 막아서는 지옥의 세 짐승들-표범과 사자, 암늑대-은 각각 음란과 오만, 탐욕을 상징한다. 순례자를 위협하는 이 세 가지 악의 본성은 인간이 저지르는 모든 죄의 근본 원인들로서 불교의 탐진치 개념과 유사한 맥락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모든 빛이 침묵에 잠기는 곳, 맞부딪치는 바람들이 싸우는 전쟁터, 폭풍이 휘몰아치는 바다가 으르렁거리는 곳이 바로 지옥인 것이다.

또한 ‘신곡’ 에서는 죽은 자들의 세계를 여행하는 순례자의 길잡이가 등장하는데, 바로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 마로(기원전 70-19)이며, 단테는 그를 ‘오랜 침묵으로 목이 잠긴 듯한 사람’으로 표현하고 있다.
지옥의 뱃사공 카론은 암흑의 신 에레보스와 밤의 여신 닉스 사이에 태어났으며, 아케론 강에서 죽은 자들 중에 죄지은 영혼들만을 실어 나른다. 따라서 그가 다른 항구의 언덕으로 가라고 한 영혼은 구원의 가능성이 있게 된다.

불교 경전 속의 지옥 중생들이 그러하듯이, ‘신곡’에서 묘사하고 있는 지옥의 영혼들도 벌거벗은 상태이다. 단지 불교의 지옥중생들은 중음에서부터 감각에 대한 탐착으로 인해 물리적인 몸을 받아 그 죄업만큼 커지지만, ‘신곡’의 영혼들은 몸이 없어진 상태로 고통에 시달리게 된다.

순례자인 시인이 본 지옥의 사람들 중에 첫 번째로 본 이는 수많은 언어들의 여제로서, 애욕이 강한 기질 때문에 셀 수 없는 추문들을 만들고, 그것을 덮기 위해 음란을 정당화하는 묘한 법을 만든 ‘세미라미스’였다. 불교 지옥교설에서도 음욕의 죄업으로 인해 떨어지게 되는 지옥들이 숱하게 등장하듯이, ‘신곡’의 지옥에서도 애욕으로 인해 고통당하는 자가 첫 번째로 관찰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불교의 지옥에 불타는 주둥이를 가진 개가 있는 것처럼 이 지옥에도 머리가 셋 달린 케르베로스가 세 개의 아가리로 영혼들을 할퀴고 조각조각 찢어발긴다.

다음으로 순례자가 만나는 이는 ‘부유함’ 혹은 ‘풍요’를 주는 지하세계의 왕 하데스로서, 그가 지키고 있는 지옥은 절제할 줄 모르고 부를 낭비하며, 유용한 자들이 가게 되는 곳이다. 순례자가 본 그 지옥에는 탐욕스러운 교황과 추기경들이 서로 반목하며 소리 높여 다투고 있다.

불교의 지옥 구조에서도 근본지옥과 그에 딸린 별처지옥들이 있듯이 ‘신곡’에서 묘사하는 지옥 역시 커다란 고리 형태의 큰 지옥이 세 개의 구렁으로 나뉘어져 있는 구도이다.

예를 들면, 첫 번째 고리에는 폭력배들이 갇혀 있는데, 그들의 폭력이 세 부류- 이웃과 자기 자신, 그리고 하느님-에게 행사되기 때문에 세 개의 구렁으로 나뉘어져 있는 식이다. 살인자, 폭력, 도둑, 모리배 등은 첫 번째 구렁에서 벌을 받고, 제 손으로 자신과 자기 재산을 파괴한 자들은 두 번째 구렁으로, 하느님을 부정하고 저주한 자들은 가장 좁은 세 번째 구렁에 떨어지게 된다고 한다.

두 번째 고리에는 위선자, 아첨꾼, 마법사, 허풍쟁이, 도둑, 성직 매매자, 포주, 사기꾼과 같은 자들이 둥지를 틀고 있다. 마지막으로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한 고리이자, 지구의 중심부인 ‘디스’는 항상 불타고 있는 도시로서, 모든 배신자들이 몰려서 영원한 고통을 받게 된다고 한다.

김성순 서울대 종교문제연구소 연구원 shui1@naver.com
 


[1415호 / 2017년 11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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