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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사찰의 용 ①

기자명 정진희

사찰의 용문양은 불법이 지닌 절대 존엄 상징

▲ 인도 팔상도의 관수장면, 굽타시대, 사르나트 출토, 인도 뉴델리국립박물관.

이달 초 부산 해양박물관에서 고대로부터 지배자와 수호자의 상징이었던 용과 관련해 다양한 주제로 진행된 연구의 결과물들이 발표되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부처님의 탄생 설화 때부터
호법신장 같은 역할로 등장

힌두교 뱀신에서 차용된 용
인도선 코브라 모습 그려져

용 신령스럽지만 역시 동물
사천왕들에 의해 제어 당해

용에 대한 피상적인 상식만 갖고 있던 필자도 이 글을 쓰게 될 인연이었는지 우연히 참석할 기회를 얻어 용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용의 모습은 뱀뿐만 아니라 악어, 도마뱀과도 연결고리가 있단다. 그리고 8000년 전의 중국 사해(査海)유적에서 발견된 20미터에 달하는 용 형태의 돌무더기가 현재 용을 표현한 최초의 유물로 판명되면서 용문화의 기원은 중원지역이 아닌 만리장성 북쪽 요하(遼河) 일대가 되었다. 이 지역은 동이(東夷)의 땅이었으니까 지역만으로 본다면 우리민족과 전혀 관련 없는 사실은 아닌 듯싶다.

용의 모습은 한나라시기에 만들어졌다. 머리는 낙타, 뿔은 사슴, 눈은 토끼, 귀는 소, 목덜미는 뱀, 배는 큰 조개, 비늘은 잉어, 발톱은 매, 주먹은 호랑이와 비슷한 여러 동물의 형태를 모아서 만든 집성체와 같다. 용의 비늘은 81개이며 울음소리는 구리로 만든 쟁반을 울리는 것 같고 입 주위는 긴 수염이, 턱 밑에는 명주(明珠)가 있으며 목 아래는 거꾸로 박힌 비늘(逆鱗)이, 머리 위는 박산이 있단다. 사람들은 용이 상상속의 동물이라고 말하면서 도대체 어찌 알고 저리 세세히 용을 그려내게 되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 비람강생중 구룡토수장면, 1459년, 월인석보 팔상판화 부분, 서강대 도서관.

사찰을 장식하는 여러 문양 가운데 불법을 의미하는 연꽃만큼 용도 다양한 의미로 즐겨 사용되었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에만 의존해 농사를 짓던 시절 비를 내리는 구름과 밀접한 용 문양이 가진 가장 큰 의미는 물과 관련된 것이지만 사찰의 용 문양에서 기우와 관련된 뚜렷한 상징성은 보이지 않는다. 사찰의 용이 가지는 다양한 의미 가운데 가장 뚜렷한 상징성은 무소불위의 절대적인 권위이다. 용은 신령스러운 동물 가운데서도 그 위상과 권위가 으뜸이라 절대적인 지배자의 상징으로 여겨졌기에 사찰에 이용된 용 문양은 불법이 갖고 있는 절대 존엄성을 의미한다. 그래서 주불이 모셔진 금당이나 주요전각의 기둥이나 들보, 지붕 아래 공포장식 등에서는 그 모습을 찾을 수 있지만 부속 건물의 장식으로 용이 사용된 예는 흔치 않다.

더불어 사찰의 용은 호법신장과 같은 역할을 한다. 부처님을 공양하면서 불법을 수호하는 의미로 용이 등장한 예는 부처님의 탄생 설화에서부터 보인다. 부처님이 태어나 처음으로 일곱 걸음을 걸으실 때 하늘에서 아홉의 용신들이 감로수로 몸을 씻겨 주었다는 구룡토수(九龍吐水) 설화는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이야기이다. 불전에서 불법을 수호하는 호법룡으로 묘사되는 나가(Naga)는 원래 힌두교 뱀의 신에서 차용되었기 때문에 인도와 동남아시아에서 목둘레가 넓은 코브라와 같은 모습을 띠고 있다. 인도 굽타시대 사르나트에서 만든 부처의 탄생을 묘사한 불전부조에는 어린 싯타르타 좌우로 관욕을 위해 물 항아리를 가진 나가들이 있다. 나가의 모습은 머리에 세 마리의 코브라 장식후드를 하고 있는 남녀로 이 불전부조와 같이 반인반수 형상에서부터 코브라와 같은 뱀이나 완전한 사람까지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지고 있으며 남성인 나가와 여성인 나가니 이렇게 짝을 이루어 표현되기도 한다.

▲ 용왕과 용녀, 미륵하생경변상도 부분, 1350년, 일본 친왕원(親王院). ‘고려시대의 불화’, 시공사.

산스크리트어 나가라는 말은 중국에서 용이라는 한자로 번역되었는데 그런 까닭에서인지 한국을 비롯한 동북아지역의 불전도 비람강생의 관욕장면은 인도와 동일한 내용을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뱀의 신이었던 나가를 상상의 동물인 용으로 바꿔 묘사한다. 농경을 위주로 하는 남방문화는 대부분 뱀을 신성시하기에 이 지역에서는 용보다 뱀이 숭배되었다. 그래서 남방문화의 불교신화에 나오는 뱀은 힌두교 뱀의 신인 나가를 차용하였기 때문에 뱀과 인간이 합체된 혹은 뱀 형상 그대로 표현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인류 최초로 용문화가 생성되었다는 사해유적과 같이 초원지대와 사막지대가 많은 북방으로 지역이 바뀌면 뱀보다는 용이 신성한 동물로 숭배되어졌다. 때문에 인도불교의 나가는 중국으로 전래되어 정착하며 뱀에서 하늘을 나는 용으로 그 모습이 바뀌어 진 것이다.

그렇다면 용을 현실의 왕과 같은 모습으로 그려낸 우리나라 용왕도는 나가를 완전한 인간으로 표현했던 방식을 따른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고려불화 ‘미륵하생경변상도’에서 화면 중단 불법에 귀의하여 삭발하는 미륵부처의 부모님 바로 옆, 용과 함께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남녀형태로 그려진 인물들은 용녀와 용왕이다. 우리나라에서 용왕이 여성으로 설화에서 묘사되거나 작품으로 그려진 예는 전무하다시피해서 그림의 용녀를 보면서 의아해 했던 적이 있었는데 나가를 남녀로 표현한 사례들을 알고 나니 고려 왕비와 같은 모습으로 묘사된 여성 용왕도 이해가 간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고려불화는 섬세하고 화려하다는 품평을 넘어 도상이 경전의 내용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그 가치가 대단하다.

▲ 상원사 동종의 용뉴, 통일신라(725년), 국보 제36호, 상원사. (사진제공 문화재청)

사찰을 장식하고 있는 용 문양은 사용되어진 공간에 따라 의미를 각각 달리하는 특징을 보이는데 그 근거는 대부분 용들의 왕이라고 하는 규룡(虯龍)이 낳은 아홉 자식(龍生九子)들인 비희(贔屓), 이문(螭吻), 포뢰(浦牢), 폐안(狴犴), 도철(饕餮), 공하(蚣蝦), 애자(睚眦), 산예(狻猊), 초도(椒圖) 이야기에서 따온 것이 많다. 절에 세워진 비석 아래 거북이의 모양을 하고 있는 귀부는 무거운 것을 등에 지기 좋아하는 뿔 없는 용 비희를 나타낸 것이고, 전각의 지붕 위 용머리 장식인 취두는 멀리 보기 좋아하는 이문의 형상을 본 떠 만들었다고 하는데 이 용은 화재를 누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단다. 대부분의 건축물이 나무로 지어졌던 시절에 화재는 무서운 재난이었기에 물을 다스리는 능력을 가진 용의 형상은 화마를 제어하는 벽사의 의미가 컸다.

소리 지르는 것을 좋아하는 포뢰는 종을 걸어두기 위한 고리 역할을 하는 용뉴의 문양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이는 우리나라 범종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종의 구조이다. 포뢰는 큰 물고기인 고래를 무서워하기에 종소리가 크게 울리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종을 치는 당은 고래모양으로 만들기도 한다. 선암사 입구 돌다리 아래 용머리 장식과 같이 물을 좋아하는 공하는 다리의 기둥에 많이 새겨지고 사자를 닮은 산예는 연기와 불을 좋아하여 향로에 새기기도 하며 앉아 있는 것을 즐겨하는 습성으로 인해 부처님의 대좌 아래 사자로 많이 표현되기도 한다. 우리가 아는 용이 모두 선한 성품을 가진 것은 아니어서 향로에 새겨지는 도철은 먹고 마시는 것을 좋아하고 애자는 죽이기를 좋아하여 칼의 콧등이나 칼자루에 새긴다.

▲ 소조 증장천왕상, 조선시대(1649), 보물 제1255호, 완주 송광사. (사진제공 문화재청)

용이 신령스럽기는 하나 동물인지라 이를 부리고 제어하는 신의 권속으로 표현되기도 하는데 절 입구에 위치한 천왕문에서 볼 수 있는 팔뚝에 감겨있는 용을 억센 손으로 꽉 쥐고 있는 사천왕의 모습은 용을 다스리는 능력을 의미한다. 대개 사천왕 중에서 용과 여의주를 지물로 가지는 천왕은 서방의 수호신인 광목천왕으로 알려져 있지만 완주 송광사 사천왕문에서처럼 남방을 다스리는 증장천왕의 손에 용과 여의주가 들려있는 예도 적지 않다. 사실 사천왕의 지물은 시대나 지역에 따라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어느 것이 정답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순수한 우리말로 용은 미르이다. 여기저기서 크고 작은 사고가 끊이질 않는 요즈음 필자에게도 독자 여러분에게도 수호신 미르가 있었으면 좋겠다.

정진희 문화재청 감정위원 jini5448@hanmail.net
 


[1415호 / 2017년 11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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