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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보임(保任)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기자명 조정육

깨달아도 변화는 순식간에 일어나지 않는다

▲ 김성관, ‘달항아리’, 54×54×58cm, 2014. 달항아리를 만드는 것은 쉽지 않다. 굽이 조금만 얇아도, 흙이 조금만 물러도 달항아리는 주저앉아버린다. 도공은 수없이 주저앉은 달항아리를 보면서도 물레질을 멈추지 않았기에 당당하면서도 기품 있는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다. 모든 이론은 실습을 통해 나의 것이 된다.

대전에서 대학원을 다니는 아들이 집에 왔다. 모처럼 집에 온 아들을 위해 이것저것 음식을 준비했다. 일주일 전에 나주에서 강의를 하고 온 이후 계속 몸이 아파서 누워 있었다. 아들이 오는 날도 손끝 하나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아팠지만 벌써부터 누워있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 억지로 참으면서 음식을 만들었다. 예전에 집안 어른들이, 자식들이 집에만 오면 맨날 아프다고 인상을 찡그리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절대 그러지 않으리라 다짐했었다. 지금까지는 그 다짐을 잘 지키고 있다. 물론 앞으로 더 나이가 들면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말이다.

‘색즉시공’임을 깨달아도
색신의 아픔 그대로 남아
도인도 습 바꾸긴 어려워
새 습 들이는 시간이 보임

요즘은 조금만 피곤해도 머리가 깨질 듯 아프다. 역시 나이는 못 속인다더니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아들이 온 날도 마찬가지였다. 아프다는 내색을 하지 않으니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아들이 밥을 먹으면서 한마디 한다.

“요즘 의학은 진짜 눈부시게 발전한 것 같아요. 엄마도 그렇게 큰 수술을 했는데 지금 이렇게 정상으로 돌아왔잖아요.”

정상은 무슨. 완전히 고물이 됐는데. 아들의 생각이 맞지 않다는 것을 확인시켜 줄 마음으로 내가 뜨악한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얼마 전에 뇌종양 수술을 한 사람을 만났는데 그 사람은 엄마처럼 뇌를 절개하지 않고 감마나이프를 했대. 정말 운이 좋았나봐. 그 사람도 처음에는 의사 말대로 개두술을 하려고 했는데 우연히 병원 앞에서 의사 친구를 만나서 감마나이프로 바꿨다는 거야. 그 덕분에 머리에 칼을 대지 않고 종양만 제거했다니까 얼마나 다행이야. 엄마도 감마나이프로 했으면 멀쩡했을 텐데 괜히 의사 말만 믿고 머리를 열어서 이렇게 고생을 하고 있어. 나도 그 당시에 병원에 아는 의사만 있었어도 머리를 열지는 않았을 텐데 빽 없는 사람은 서럽다니까. 하여튼 우리나라 의사들은 환자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돈만 챙기려고 하니까 문제야. 어찌 됐건 일단 몸에 칼을 대면 골병드는 거잖아. 재수가 없으려니까 안 해도 될 수술을 해가지고 엄마 몸이 엉망이 되어버렸어. 그날 이후 조금만 무리를 하면 금새 피곤해서 무슨 일을 할 수가 없다니까.”

나는 마치 아들이 나를 수술한 의사와 친분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도 되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말하면서 점점 흥분해지는 나와 달리 침착하게 얘기를 다 듣고 난 아들이 이렇게 말했다.

“그 덕분에 무리를 안 하게 되니까 오히려 잘 된 거잖아요. 만약 엄마가 감마나이프로 해서 아픈 증세가 없었다면 수술 이후에도 더 무리를 했을 테고 그러다가 더 큰 병을 얻을 수도 있었을 거 아니예요. 엄마한테는 머리 뚜껑을 열었다 닫은 것이 다행인 줄 아세요.” 

나무아미타불. 스승이 따로 없다. 어쩌면 저렇게 영특할까. 아무리 부정적인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부분을 찾아낼 줄 아는 아들은 얼마나 근기가 뛰어난 영혼인가. 하근기인 나하고는 출발점부터가 다르다. 내가 깨달음을 얻었느니 생사를 해탈했느니 하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깨달음과 전혀 상관없는 사람으로 행동하는데 반해 아들은 삶 자체가 깨달은 사람이다. 아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새삼 나의 습(習)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실감했다. 오래전 ‘반야심경’에서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이라는 구절을 봤을 때 무릎을 치면서 감탄하고 동의했었다. 색(色)이 곧 공(空)이면 이 몸도 비어있다는 뜻인데 아픔이 어디에 있고 집착할 것이 또 무엇인가. 그런 깨달음을 얻으면서 환희로움 그 자체를 맛보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 문장이 불교학적인 해석의 차원을 떠나 나의 문제가 되었을 때는 적용 자체가 달라진다. 색은 절대로 공할 수 없고 아픈 통증도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 따라서 아픈 나의 몸은 색불시공(色不是空)이고 공불시색(空不是色)이다. 이론 따로 실천 따로인 셈이다.

위대한 가르침이 혹은 깨달음이 나의 것이 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보임(保任)의 시간이다. 진실로 위대한 가르침은 그 가르침이 가 닿은 사람을 완전히 변화시켜야 한다. 그러나 변화는 순식간에 일어나지 않는다. 전깃불을 켜면 시커먼 어둠이 순식간에 사라지듯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 몸과 마음속에는 다겁생래(多怯生來) 지어온 습이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다겁생래까지 갈 필요도 없다. 이 생에 태어나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익힌 습만으로도 충분하다. 그 습을 바꾼다는 것이 말처럼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습은 마치 환지통(幻肢痛) 같아서 팔다리를 절단했는데도 이미 사라진 수족에 아픔과 저림을 느끼는 것과 같다. 그래서 시간이 필요하다. 햇볕이 얼음을 녹이는데도 시간이 필요하고 맑은 물이 오염된 강을 정화시키는데도 시간이 필요하듯 습을 바꾸고 사람이 변하는데도 시간이 필요하다. 일단 이런 사실을 인정해야 보임의 시간을 받아들일 수 있다.

수월 스님처럼 위대한 분도 북간도에서 6년 동안이나 젊은 스님의 욕설과 행패를 견디며 보임공부를 하셨다고 했다. 아니 ‘견디었다’는 표현은 맞지 않다. 아무리 심한 욕설과 행패를 당해도 미워하거나 원망하는 마음이 전혀 들지 않으셨다고 했다. 그런데 그 경지에 쉽게 도달했겠는가. 도인같은 분에게도 6년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은 쉽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하물며 사소한 자극에도 금새 흥분하는 나 같은 사람이야 말해 뭣하겠는가. 그런 마음 자체가 일어나지 않을 때까지 자신을 들여다보고 들여다보면서 점검하는 것이다.

보임은 단순히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자비행과 보살행을 통해 몸으로 익혀야 한다. 몸에 새로운 습을 가르치는 것이다. 수월 스님이 백두산 기슭에서 3년 동안이나 소먹이 일꾼 노릇을 한 것도 그 때문이다. 수월 스님은 일꾼을 해서 받은 품삯으로 밤을 새워 짚신을 삼고 주먹밥을 만들어 간도로 넘어오는 사람들에게 무주상보시를 했다. 수월 스님 자체가 워낙 자비로운 분이라서 그런 실천을 했을 수도 있지만 그것조차도 어쩌면 보임의 과정이었을지 모른다.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만 나도 그런 자비행을 따라하다 보면 보임이 되지 않을까. 하다보면 조금 빠르고 늦는 차이가 있을 뿐 언젠가는 결국 목적지에 도달하지 않겠는가. 한심한 내 자신을 그렇게 위로했다. 아니 다짐을 했다.

조정육 미술평론가 sixgardn@hanmail.net
 


[1415호 / 2017년 11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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