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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안길 수 없이 커버린 지현이

기자명 성원 스님

언제부턴가 내게 달려오지 않았다

 
서울에 사는 교수님이 페이스북에 노오란 단풍으로 가득한 사진을 올렸다. 문득 가을이 저만치 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주변을 돌아보니 지천에 가을이 무르익고 있었다. 큰 절 소임을 놓고 나면 인간사도 잠시 잊고 자연과 더불어 벗하며 살 거라 생각 했는데 ‘넘고 지나가는 가을을 잊을 뻔하였구나’라는 생각에 혼자 놀랐다.

먼저 달려와 힘껏 안기던
애살 많은 리틀붓다 단원
어른들 주의에 거리감 생겨
아이가 아이다운 세상 그리워

잠시 저녁 뉴스를 보니 9년 전 어린아이 성추행으로 12년 형을 받은 성 범죄자의 2020년 출소를 막아 달라는 청와대 민원이 40만 건 가까이 접수 되었다는 소식이다. 많은 사람들이 어린아이 문제와 성문제 두 가지를 얼마나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는지 알만한 기사다. 하지만 현재 범법자의 퇴소를 막을 법적 근거는 별달리 없다고 한다. 현재 법을 정비한다고 해도 불소급원칙이 있다는 것을 대부분의 국민들이 알고 있지만 얼마나 답답하면 청와대 전자 게시판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투고를 할까 싶다.

범법자가 새로운 삶을 살아가도록 좋은 길로 이끌어 주는 것이 종교 지도자들의 역할이 아닐까? 그의 잘못은 단죄하고 그 사람이 다시는 그러한  삶을 살지 않도록 하기 위해 교도소에 가두었지만 별로 달라진 것이 없는 것 같다. 12년이면 짧은 시간이 아닐 텐데 스스로 성찰하며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지 못한 것을 보면 수감제도만이 최상의 방법은 아닐 것도 같다.

부처님 살아계실 때에도 오늘날에 버금갈 정도로 무수한 사건이 발생 했다. 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사건의 발생이 아니라 그 사건의 처리다. 문제의 사람들을 변화시켜 새롭게 이끌어주는 일을 부처님께서 해주셨다. 부처님의 상담은 정말 뛰어나다. 현대사회의 상담사도 내담자의 문제를 나름 해결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부처님께서는 내담자의 상처를 치유해 주실 뿐만 아니라 치료 과정에서 내담자에게 감화를 불어 넣어 문제의 해결과 동시에 불법에 귀의제자로 흡입하는 놀라운 장면을 많은 경전에는 기록하고 있다.

사람들과 함께 출소일이 다가오는 그에게 마음으로 돌을 던지려 하다가 조용히 나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지 않을 수가 없다. 지장보살은 지옥이 텅 빌 때까지 그들의 잘 잘못을 따지지 않고 구제하지 못함을 아파하시지 않았던가? 정말 누가 나타나 그를 감화시켜 새로운 삶으로 이끌어 주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면 탄원서를 올린 그 많은 사람들의 마음도 함께 평화롭게 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애살이 많다’는 이야기가 있다. 말로만 듣고 표현했지 실제로 애살 많은 사람을 만나기 쉽지 않았는데, 리틀붓다들과 대하다 보면 대단히 애살스러운 단원들이 있다. 지현이가 처음 합창단에 들어왔을 때 정말 애살이 넘쳤다. 그때도 약간은 덩치가 있었지만 언제나 가장먼저 달려와 힘껏 안기기도 하고, 천장에 닿을 정도로 안아 높이 던져주곤 했다. 물론 그 아이에게만 그렇게 한건 아니고 차례대로 모두 안아주고 던져주고 팔을 잡고 돌려주었다. 그들과의 친밀감을 더하는 소통의 방식이었다.

언젠가부터 한 단원이 달려들지 않았다. 그때는 그러려니 하고 말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친구에게 들었는데 그 단원의 자모가 스님에게 달려들지 말라고 했단다. 정말 어린아이에게 도무지 뭘 전하려 했는지는 몰라도 그 후 나 자신도 그 단원을 가까이 하는 게 망설여졌다. 주변을 맴돌며 확 다가오지 못하는 아이를 볼 때면 참 맘이 아팠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는 걸 잘 안다. 우리 사회가 불신의 벽을 쌓았고 그 벽에 갇히는 첫 번째 수인은 어처구니없게도 바로 사랑스러운 우리 자녀들이 되어 버린 것 같았다.

애살 많은 지현이는 지금은 내가 도무지 들어 올릴 수 없이 자라버렸는데도 가끔은 들어 달라고 애살을 부린다. 어른이 참 어른답고, 어린아이가 참 어린아이다운 세상이 오늘 더욱 그리워진다.

성원 스님 sw0808@yahoo.com


[1415호 / 2017년 11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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