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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요구하는 ‘객승’ 만나면

  • 기자칼럼
  • 입력 2017.11.20 11:31
  • 수정 2017.11.25 07:30
  • 댓글 3

11월6일 의왕 청계사에서는 ‘선중흥조 5대선사 다례재’가 열렸다. 청계사는 한국불교 선 중흥조 경허 스님 출가 사찰로 스님의 선맥을 이은 만공, 보월, 금오, 월산 스님 등 선사 5명을 추모하는 다례재를 매년 봉행해 선사상을 고취시켜왔다. 참석자들은 전통 다례법에 맞춰 차공양을 올리며 한국불교 선풍을 진작시킨 선지식들의 기백을 본받아 정진해 나갈 것을 발원하는 근엄한 행사였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예기치 못한 상황에 마주했다. 다례재에 참석했던 스님들이 일렬로 서서 돈봉투를 받고 있었다. 그 스님들은 일명 ‘객승’들이었다. 그 자체로도 충분히 낯 뜨거울만 한데도 스님들은 당당하게 웃돈을 요구했다. 단호하게 거절하자 객승들도 더 이상 말을 붙이지는 못하고 돌아갔다. 청계사 관계자는 “사찰 행사를 찾아준 스님들이기에 매몰차게 거절하기가 쉽지 않지만 분명 반가운 손님은 아니다”라며 난감한 입장을 표현했다.

예전의 객승은 지금처럼 난감한 손님이 아니었다. 최소한의 생활도구를 담은 바랑을 메고 일정한 거처를 정하지 않은 채 사찰에서 사찰로 이동하며 만행하는 수행자를 일컬었다. 사찰에서도 이들의 수행을 돕기 위해 공양과 침소를 제공하며 다음 목적지까지 갈 수 있도록 여비를 주었다. 대승불교 계율 사상을 담은 경전 ‘범망경’에도 ‘객승을 정성으로 대접하라’는 항목이 있을 정도다.  

하지만 이같은 불교의 전통은 언제부턴가 왜곡되기 시작했다. 만행과 수행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유명한 행사를 찾아다니며 참석하고 여비만을 요구하는 객승들이 등장한 것이다. 심한 경우 이들은 행사장 주변에서 신도를 대상으로 부적, 염주 등을 강매하거나 불전함을 옆에 두고 보시를 강요하는 행태를 보이기도 한다.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는 청정한 수행자의 표상이었던 만행승. 그리고 이들의 수행을 돕기 위해 ‘객승’이라는 명목하에 공양과 보시를 실천했던 불교집안의 풍습은 이제 신도 혹은 일반인에게 보이기 부끄러운 불교의 단면이 되고 만 것이다.

이러한 객승을 근절하기 위한 종단의 노력은 20여년전 부터 시작됐다. 1995년 2월 조계종은 제115회 임시중앙종회를 열고 불교정화방안의 하나로 객승에 대해 규제를 가하기로 결정했다.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대처방안이 나왔지만 아직까지 근절되고 있지 않다.

▲ 조장희 기자
객승문화가 아름다운 전통으로 회복되기 위한 해법은 가까운 곳에 있다. 물론 불자라면 사찰 입구나 거리에서 승복을 입고 돈을 요구하면 거절하기 어렵다. 이는 객승들을 대하는 주지스님들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보시가 공덕이 되려면 보시하는 사람은 물론 보시 받는 사람도 모두 청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 보시는 사찰을 떠돌아다니며 돈을 요구하는 ‘걸인’을 양산할 따름이다. 그것은 자비도 아니고 불교를 위한 것도 아니다. 설령 내키지 않더라도 “안 된다”가 해답이다.

조장희 기자 banya@beopbo.com


 

[1416호 / 2017년 11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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