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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지혜와 깨달음과 열반으로 이끈다

극락도 지옥도 버리고 ‘나무아미타불’

오늘도 초기불교의 가르침을 다시 생각해 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초기불교의 가르침에 관심이 많고, 그것을 기준으로 해서 생각하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써 초기불교의 가르침과 대승불교, 특히 정토불교 사이에 가교를 놓는 일 역시 의미 있는 일이라 판단합니다.

극락이 있나 없나 따지는 건
‘전유경’ 독화살 비유와 같아

독화살을 바로 뽑지 않으면
화살재료 알기 전에 죽게 돼

극락의 존재 따지는 건 희론
아무리 고민해도 해답 없어

극락에 대해 판단 중지하고
오직 ‘아미타불’만 염불해야

오늘 드릴 말씀은 만(?)동자라는 젊은 수행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 밑에 들어와서 여러 해 수행을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본인이 궁금해 하는 것에 대해서 부처님으로부터 명확한 이야기가 없는 것 아닙니까. 참다 참다, 어느 날 부처님께 나아가서 자신의 불만을 말씀드립니다. 자기가 갖고 있는 문제에 대한 명확한 대답을 해주지 않는다면, 수행을 그만두고 떠날 것이라 말한 것입니다.

“세간은 영원한가? 세간은 무상한가? 세간은 한계가 있는가? 세간은 한계가 없는가? 영혼과 몸은 하나인가? 영혼과 몸은 다른가? 여래는 죽음이 있는가? 여래는 죽음이 없는가? 여래는 죽음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가? 여래는 죽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죽음이 없는 것도 아닌가?”

이러한 질문에는 그 시대의 다른 종교철학 등에서 흔히 논의해왔던 것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만동자(Malunkyaputta)의 희망과는 달리, 부처님께서는 아무런 대답도 주시지 않았습니다. 이를 ‘무기(無記)’라고 합니다. 명확한 대답(記)을 하지 않으셨다는 이야기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 이유를 비유로써 설명합니다. 바로 ‘독화살의 비유’입니다. “누가 독화살을 맞았다고 하자. 그러면 그 독화살을 맞은 사람이 시급히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이렇게 묻습니다. 당연히, 빨리 독화살을 뽑아내고 치료를 하는 것이겠지요. 그래야 목숨을 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하면서, “누가 이 화살을 쏘았는가? 화살은 어느 방향에서 날아왔는가? 화살의 재료는 무엇인가? 화살에 바른 독의 종류는 무엇인가? 이러한 그 모든 의혹이 해명되지 않는다면, 이 독화살은 뽑을 수 없다”라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당연히 그 모든 의혹이 다 해명되기도 전에 독은 전신에 퍼지고 말 것입니다. 독화살을 맞은 사람은 죽고 말 것입니다.

이것이 그 유명한 ‘독화살의 비유’인데, ‘전유경(箭喩經)’이라는 경전에서 말씀되고 있습니다. 과연, ‘전유경’을 통하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또 그것이 우리가 지금 사색하고 있는 극락의 문제와는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요?

‘독화살의 비유’에서 우선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만동자의 질문이 갖고 있는 성격입니다. 시간적으로 우주의 무한성 여부를 묻는 질문이 2개, 공간적으로 우주의 무한성 여부를 묻는 질문이 2개, 몸의 유한성을 뛰어넘어서 영혼의 영원성을 묻는 질문이 2개, 마지막으로 여래에게 죽음이 있는가 하는 질문 4개입니다.

이 네 갈래의 질문 중에서 앞의 세 가지는 불교 이전부터 논의되어 왔던 전통적인 문제들입니다. 네 번째 갈래의 질문만 만동자가 불교를 받아들인 이후에 갖게 된 의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앞의 세 갈래 질문들이 불교 이전부터 있던 문제라는 것은, 그 해답이 이미 제시되어 있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쉽게 어느 한 의견이 전적인 동의를 받지 못하여, 당시에도 다양한 논의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논의는 많고 대답은 없는 상태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희론(戱論)이라 합니다. 쓸데없는 논의, 논의를 위한 논의라는 의미입니다. 부처님이 보시기에는, 그렇게 희론을 아무리 거듭 한다 해도 진정한 해답은 찾을 수 없다고 본 것입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문제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뭘 그런 것에 관심을 갖느냐는 것입니다. 지금 여기의 문제는 아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극락의 존재 여부를 말하는 것 역시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지요. 반은 그렇고, 반은 그렇지 않다고 저는 봅니다. 먼저 반이 그렇다는 것은, 여래의 사후를 묻는 것처럼 극락의 존재 여부 역시 사후의 문제를 묻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차이도 있습니다. 그것은 그렇게 문제를 갖는 사람들이 놓여있는 맥락(근기)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만동자는 당시 다른 종교철학의 논의에 영향을 받아서, 사후의 문제를 포함한 그러한 문제들에 대한 의혹 때문에 수행을 못할 정도입니다. 부처님께서 제시하는 진정한 수행에 착수도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 반대로 지금 극락의 존재여부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정토신앙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의 입장은 만동자와는 정반대가 아니겠습니까? 만동자는 내세에 집착해서 현세의 삶이나 수행에 방해를 받을 정도였다고 한다면, 지금 사람들은 현재의 실재(實在)에만 집착하여서 극락의 존재 여부에 대한 확신을 못하고, 그 결과 염불수행을 하지 못할 정도가 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동자의 질문에 극락의 존재여부를 대입해 보면 이렇게 될 것입니다. “극락은 있는가? 극락은 없는가? 극락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가? 극락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가?”

만약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이러한 질문을 받으신다면, 어떻게 하실까요? 역시 침묵하시지 않을까요? 왜 침묵하실까요? 그런 식의 의혹 때문에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할 수 없다고 한다면, 그것은 꼭 독화살의 재료가 무엇인지 등을 다 알기 전에는 독화살을 뽑을 수 없다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만동자의 질문에 침묵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그 질문이 희론이라고 판단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 쓸데없는 논의를 아무리 반복하더라도, 그것은 수행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고 법에 부합하지 않고 범행(梵行)의 근본이 아니고, 지혜와 깨달음과 열반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한다”라고 하는 입장이었습니다.

이러한 ‘전유경’의 입장을 정토신앙으로 가져와서 생각해 본다면, 극락의 존재여부에 대한 의혹은 ‘괄호치라’고 말합니다. 괄호 속에 넣어라, 판단중지하라는 것입니다. 많은 현대인들은 극락을 믿을 수 없어서 염불을 못한다고 말합니다. 그런 분들이라면, 바로 극락의 존재여부에 대한 문제는 괄호친 채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하시면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전유경’의 ‘독화살의 비유’에 나타난 관점을 정토신앙에 대입하여 생각할 때, 바로 앞의 편지에서도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만, “극락도 버리고 지옥도 버리고 ‘나무아미타불’ 염불만 하라”는 잇펜(一遍)스님의 가르침이 떠오릅니다.

“나무아미타불”은 지혜와 깨달음과 열반으로 인도하지만, 극락의 존재여부에 대한 의혹과 토론은 아무리 오래 하더라도 지혜와 깨달음과 열반으로 인도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나무아미타불 김호성 합장

김호성 동국대 불교학부 교수 lokavid48@daum.net

[1416호 / 2017년 11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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