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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학연구회 ‘깨달음 논쟁’-3. 중관학파에서 무상정등각의 성취과정

“자비심·보리심·반야지 갖춰질 때 무상정등각 성취”

▲ 인도불교의 점수법과 중국불교의 돈오법을 두고 돈점 논쟁이 벌어진 티베트 쌈예사 전경. 법보신문 자료사진

한 나무의 가지들이 공통성과 차별성을 함께 가지고 있는 것처럼, 불교의 여러 학파들도 공통성과 차별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그럴 경우 여러 불교 학파들의 공통성이란 그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진리로 승인한다는 것이고, 차별성이란 그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서로 다르게 해석한다는 것이다.

중관학파에서 무상정등각은
일체법 모두 아는 부처님 지혜
자비심, 중생 위한 서원 뿌리
반야지는 자비·육바라밀 완성
세 조건 갖춰야 깨달음 얻어

불교의 궁극 목적인 깨달음과 열반에 대한 해석에서도 그와 같은 공통성과 차별성이 발견된다. 불교의 모든 학파들은 깨달음과 열반을 수행의 궁극 목적이라고 생각하며, 그것들의 성취를 통해서 번뇌와 고통이 모두 소멸된다고 생각하는 점에서 공통성이 발견된다.

그러나 그들은 깨달음과 열반의 세부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서로 다르게 설명한다. 초기불교는 무상정등각을 열반의 성취를 위한 수단인 것처럼 말하며, 아라한과 부처님을 동일한 것으로 간주하지만, 중관학파는 무상정등각을 열반의 성취를 위한 수단으로 간주하지 않으며, 아라한과 부처님을 동일한 것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인도불교와 중국불교에서도 그와 같은 공통성과 차별성이 발견된다. 인도와 중국의 대승불교는 보살사상에 따라 자신의 열반을 뒤로 미루고 깨달음을 수행의 최고 목적으로 간주한다는 점에서 공통성을 지닌다. 그러나 그들은 수행 방법에 대해서는 차별성을 드러낸다.

인도의 대승불교는 전통적으로 계정혜 삼학을 수행의 방법으로 간주하였고, 중국의 대승불교에서도 삼학의 점수법은 육조 혜능 이전까지는 충실히 지켜져 왔다. 그러나 계율에 의해 선정을 닦고 선정에 의해 지혜를 얻는다는 점수법은 혜능에 의해 획기적으로 전환되어 돈오법으로 통합된다. 그에 의하면 법의 실상은 오직 한 모습이기 때문에 지혜와 선정에 구별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바로 여기서 수행 방법에 대한 인도불교와 중국불교의 차별성이 발견된다.

그 후 인도불교의 점수법과 중국불교의 돈오법은 티베트에서 돈점논쟁으로 충돌하였다. 783년 쌈예 대승원 전체 가람이 완성되면서 그해에 돈황에 머물던 중국의 선승 마하연이 티베트로 들어오게 된다. ‘안사의 난’으로 피폐해진 중국으로부터 사주의 돈황을 손아귀에 넣은 티베트가 그 지역의 선승인 마하연을 쌈예사로 초빙한 것이다.

마하연은 쌈예사에서 중국 선불교의 돈오법에 따라 불교를 전하다가 점오법을 따르는 인도불교계의 반발을 사게 된다. 마하연이 티베트로 들어오기 전에 이미 샨타락시타는 타계하였으므로, 그의 제자인 까말라실라가 초빙되어 마하연과 어전에서 논쟁하게 되는데 이를 티베트의 돈점논쟁, 혹은 쌈예 대논쟁 혹은 라싸의 논쟁이라고 부른다. 이로부터 불교 내 여러 학파들의 깨달음 해석은 차별성을 지닐 뿐 아니라, 그런 차별성에 따라 다양한 논쟁이 벌어졌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런 깨달음 논쟁은 오늘날 한국불교에서도 돈점논쟁과 해증논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중관학파는 인도에서 대승불교에 속한다. 따라서 그들에게 수행의 최고 목적은 무상정등각의 성취이다. 무상정등각이란 ‘최고의 올바르고 완전한 깨달음’이라는 의미다. 그것은 본래 초기불교에서 부처님이 성취한 ‘사성제에 대한 최고의 올바르고 완전한 깨달음’을 의미하는 말이었지만, 중관학파에서 그것은 초기불교와는 다소 다른 의미로 사용되어진다.

‘대지도론’은 일체지와 일체종지의 차이점을 설명하고 있다. 즉, 일체지와 일체종지는 차별하지 않고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그것을 차별해서 사용하는 경우에 일체지란 일체법의 총상(總相)만 아는 성문과 벽지불의 지혜로서, 일체법의 총상인 무상, 고, 공, 무아만을 알거나, 혹은 별상을 알더라도 남김없이 알지 못하여, 일체법을 폭넓게 설명하지 못하는 것으로서, 예를 들면 사성제만을 설하거나, 고성제만을 설하거나, 출생의 고통만을 설할 수 있는 지혜를 말한다.

한편 일체종지란 일체법의 총상과 별상(別相)을 남김없이 완전하게 아는 부처님의 지혜로서, 일체법의 총상인 무상, 고, 공, 무아를 아는 동시에, 일체 중생에 대해서 그들의 생처(生處), 좋아하고 싫어하는 일, 업의 많고 적음을 별상으로 알고, 삼천대천세계 모든 사물의 여러 가지 이름들, 즉 여러 천신들의 말이나 용(龍)의 말로 알고, 그것들의 인연과 생처, 호악(好惡)과 귀천을 알고, 복을 얻는 원인, 죄를 얻는 원인, 도를 얻는 원인과 같은 현재의 일을 남김없이 알고, 나아가 마음과 심소법(心所法)인 소위 선정과 지혜 등의 여러 법에 대해서 별상으로 남김없이 알아서, 일체법을 폭넓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이로부터 중관학파에서 일제종지 즉 무상정등각이란 일체법의 총상과 별상을 남김없이 아는 부처님의 지혜를 의미하는 용어임을 알 수 있고, 바로 여기서 대승의 보살이 열반의 성취를 보류하고, 무상정등각의 성취를 서원하였던 이유를 알 수 있게 된다. 즉 대승보살의 서원은 모든 중생을 남김없이 제도하는 것이고, 그것은 일체법의 총상과 별상을 남김없이 아는 무상정등각을 성취함으로써 가능해진다. 여기서 대승의 보살이 중생 제도의 서원에 따라 열반의 성취를 보류하고 무상정등각의 성취를 수행의 최고 목적으로 삼았던 이유를 알 수 있게 된다.

중관학파에 의하면 무상정등각의 성취를 위해서는 자비심과 보리심과 반야지라는 세 가지의 조건이 갖추어져야 한다고 한다. 중생을 위한 자비심은 보리심 즉 무상정등각 성취를 위한 서원의 뿌리가 되고, 반야지는 자비와 육바라밀을 완성시킴으로써 무상정등각의 성취를 가능하게 한다. 여기서 용수가 자비심과 보리심과 반야지를 무상정등각 성취를 위한 세 가지 조건이라고 말한 이유를 알 수 있게 된다.

용수는 ‘보행왕정론’에서 육바라밀의 완성을 설하지만, 월칭은 ‘입중론’에서 십바라밀을 설한다. 그렇지만 중관학파에서 육바라밀과 십바라밀은 서로 다른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월칭은 방편, 서원, 력, 지혜의 사바라밀은 반야바라밀과 다른 것이 아니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월칭에 의하면 보살은 환희지로부터 법운지에 이르는 수행의 열 가지 단계에서 육바라 즉 십바라밀을 완성하게 된다.

십지의 첫 번째 단계는 환희지다. 보살은 중생을 위한 자비로 가득차서 자신의 마음을 보현보살의 10대 서원에 회향하고서 환희를 일으키기 때문에 이 단계를 환희지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 단계에서 보살은 육바라밀의 첫 번째인 동시에 무상정등각의 첫 번째 원인인 보시를 집중해서 닦는다는 것이다.

두 번째 단계는 이구지다. 보살은 여기서 파계의 더러움을 떠나 있기 때문에 이구지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 단계에서 보살은 계율을 지키고 십선업도를 지키지만, 그와 같은 지계에 자성이 있다고 분별하면 그것은 청정한 지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세 번째 단계는 발광지다. 보살이 보시와 지계를 바탕으로 선정을 닦을 때, 아침 노을 같은 적정한 무아를 아는 지혜의 불꽃이 처음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발광지라고 한다. 그는 무아의 지혜를 바탕으로 인욕바라밀에 정진하며, 그는 무아의 지혜를 바탕으로 자신의 자성을 인식하지 않기 때문에, 매우 잔인한 사람이 핍박하더라도 화를 내지 않고 인욕에 정진하게 된다는 것이다.

네 번째 단계는 염혜지다. 이 지는 보살이 37보리분법의 수습에 정진하여 발광지보다 더욱 밝은 지혜의 불꽃이 일어나기 때문에 염혜지라고 한다. 보살은 발광지에서 사선, 사무량, 팔등지, 오신통을 얻고, 탐욕 등이 완전히 소멸하게 되지만, 방일하지 않고 37보리분법, 즉 사념처, 사정근, 사신족, 오근, 오력, 칠각지, 팔정도 등 깨달음 성취의 원인이 되는 37가지 수행에 정진하여 발광지보다 더욱 밝은 지혜의 불꽃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다섯 번째 단계는 난승지다. 이 단계에서 보살은 더욱 정진하여 선정바라밀에 뛰어나게 되고, 선혜제, 즉 사성제의 지혜에 더욱 정통하게 되기 때문에 마왕들도 그를 이기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여섯 번째는 현전지다. 여기서 보살에게 연기의 진실이 생생하고 완전하게 현현하기 때문에 이 단계를 현전지라고 부른다. 여기서 보살은 지각과 대상의 소멸로부터 무희론, 무분별의 진실을 보게 되며, 사성제의 진실, 연기의 진실, 공의 진실, 비유비무의 진실, 인무아 법무아의 진실, 실재론의 오류, 16공과 4공 등 공성의 여러 가지 특징을 완전하고 생생하게 깨닫게 된다. 여기서 보살은 일체법이 공임을 분명하게 알기 때문에 일체법에 대한 희론과 분별, 번뇌와 집착을 모두 떠나 열반을 성취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그러나 중관사상에 의하면 그 보살은 중생들을 위한 자비심 때문에 무상정등각의 성취를 위하여 열반을 뒤로 미룬다고 한다.

일곱 번째 단계는 원행지다. 여기서 보살은 현전지에서 얻어진 일체법의 진실인 진여에 자주 입정하여 희론과 분별을 모두 소멸하고 여러 가지 방편을 얻게 된다. 여기서 방편이란 불법을 닦는 보살이 다른 중생들을 깨달음으로 인도하기 위해 사용하는 수단을 말한다. 보살은 반야의 지혜를 바탕으로 하여 청정해진 여러 가지 방편을 행함으로써, 중생들을 깨달음으로 인도하게 된다. 그럴 경우 방편과 서원 등의 사바라밀은 모두 지혜의 형태이기 때문에, 반야바라밀과 다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덟 번째 단계는 부동지다. 여기서 보살은 반야의 지혜를 바탕으로 해서 원바라밀을 청정한 것으로 완성하고 10자재를 얻는다. 여기서 보살은 불퇴전의 보살이 되기 때문에 부동지라고 부른다. 십자재란 수명자재(壽命自在), 심자재(心自在), 자구자재(資具自在), 업자재(業自在), 생자재(生自在), 원자재(願自在), 승해(勝解)자재, 신통(神通)자재, 지자재(智自在), 법자재(法自在)를 말한다.

아홉 번째 단계는 선혜지다. 여기서 보살은 역바라밀을 완성하여 사무애해와 자신의 여러 가지 공덕들을 청정하게 만든다. 그 중에서 사무애해란 법무애해, 의무애해, 사훈무애해, 변재무애해이다. 그는 법무애해에 의해서 일체법의 특성을 명료하게 알고, 의무애해에 의해서 일체법의 차별을 명료하게 알며, 사훈무애해에 의해서 여러 법을 혼동하지 않고 여러 가지 말로 설명하는 것이 가능해지고, 변재무애해에 의해서 여러 법에 뒤따르는 원인을 남김없이 명료하게 알고 설명하는 것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열 번째 단계는 법운지다. 이 단계에서 보살은 한량없는 삼매의 마지막에 보살의 삼매는 부처님의 지혜와 다르지 않다는 관정을 받는다. 여기서 보살의 지혜바라밀은 더욱 청정해져서 커다란 비구름처럼 세간의 여러 중생들에게 선업의 싹을 키우기 위하여 힘들이지 않고 성스러운 법의 비를 내린다는 것이다. 보살은 이와 같은 10단계를 오랜 시간에 걸쳐 반복적으로 수행함으로써, 마침내 불지에 오르게 된다.

▲ 남수영
동국대 외래교수
불교 내 여러 학파들의 깨달음 해석은 차별성을 지닐 뿐 아니라, 그런 차별성에 따라 다양한 논쟁이 벌어졌다. 그리고 그와 같은 깨달음 논쟁은 오늘날 한국불교에서도 돈점논쟁과 해증논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여기서 여러 불교 학파들의 깨달음 논쟁 및 한국불교의 깨달음 논쟁을 이해하려면, 여러 불교 학파들의 다양한 깨달음 해석과 논쟁들을 그 학파들 각자의 사상적인 맥락 속에서 논의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1416호 / 2017년 11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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