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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어떤 목숨이든

기자명 최원형

‘유해’ 낙인찍힌 야생동물 92만 마리 없애겠다니

지난 13일 오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으로 북한병사 한 명이 넘어왔다. 추격하던 북한군은 그를 향해 40발이 넘는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 북한병사는 5발 이상의 총상을 입고 군사분계선 남쪽 지점의 낙엽더미 속에서 피투성이로 쓰러진 채 발견됐다. 그는 헬기편으로 병원에 후송되어 수술을 받았으나 아직까지 호전여부를 단언키 어려울 만큼 위중한 상태라 한다. 그 사건이 벌어지자마자 모든 뉴스가 집중했다. 다들 비슷한 심정일 테지만 뉴스를 처음 접했을 때 가장 궁금했던 것은 병사의 생명이었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환경부, 멧돼지·참새 등 수렵 허용
정기적 포획이 최선일 수는 없어
가족 잃은 동물들 슬픔 돌아봐야

그가 남측으로 내려오려 마음먹었을 때 총알이 쏟아지는 위험상황을 예상 못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왜 내려왔을까? 이유야 그 병사가 회복되어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의 건강 상태와 함께 북에 있는 그의 가족들이 걱정되었다. 상태가 어떤지도 얼굴을 볼 수도 없는 그 가족들은 얼마나 막막할까. 특히 그를 낳아 키운 어머니가 살아있다면 심정이 어떨까. 이 뉴스를 접하며 내게 떠오르는 또 한 가지 뉴스가 있었다. 지난 10월 마지막 날 환경부가 발표한 뉴스였는데 내용은 겨울 석 달 동안 유해야생동물 92만 마리를 포획하겠다는 발표였다. 수도권과 충청남도를 제외한 전국 시와 군에서 운영하는 수렵장에서 11월부터 내년 1월까지 3개월 동안 멧돼지 2만 4000여 마리를 포함해 고라니, 참새, 까치 등 수렵 동물 92만 마리를 포획할 수 있게 됐다. 이 뉴스를 접하자마자 들었던 반감은 유해야생동물이라는 글자였다.

유해하다는 기준은 과연 공정하고 객관적인가? 환경부 발표 자료를 보니 최근 5년간 유해 야생동물별 피해 현황이 나와 있다. 2012년에는 야생동물로 인한 피해액이 대략 120억이었고 그 금액은 이후로 점차 줄어서 2016년에는 109억여 원이었다. 연도별로 포획된 야생동물 숫자는 2012년에 13만2000여 마리였는데 이후 계속 늘어 2016년에는 24만 9000여 마리였다. 그리고 올해에는 92만 마리를 포획하기로 했다는 얘기다. 농가에서 고라니, 멧돼지 등의 피해를 입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최근 지리산에 방사한 곰들로 양봉 농가도 피해를 입고 있는 걸로 안다. 그런데 이렇게 동물들에 의한 피해를 과연 어떤 관점에서 봐야할까? 제임스 러브록은 지구 환경 파괴의 주범으로 농업과 함께 쟁기와 톱을 꼽았다. 조선의 생태 환경사를 살피다보면 러브록의 설명은 어느 정도 타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고려시대까지 마을과 마을 사이에는 숲과 늪이 있었다. 숲과 늪은 다양한 야생의 공간이었다. 산골짜기에서 만들어진 물이 계곡을 따라 흐르다 평지 쪽으로 오면서 내를 이룬다. 내는 여름 장마철이나 홍수가 날 경우 물이 흘러넘치게 된다. 바로 그 땅이 무너미다. 무너미란 물이 흘러넘친다는 뜻이다. 마을은 무너미가 중간지대역할을 함으로써 홍수의 피해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무너미는 평탄하고 기름진 땅이어서 야생동물들이 살기 최적의 장소였다. 기름진 땅이니 풍성한 수확을 기대하기에도 얼마나 좋았을까. 해서 그곳에 냇둑을 쌓고 논으로 바꾸어버렸다. 숲에는 불을 질러 화전을 일구며 농경지로 탈바꿈시켰다. 야생의 공간에 살던 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조선의 중농정책은 인구 증가로 이어졌고 그로 인해 식량은 더욱 많이 필요했고 농사를 지을 땅도 더 많이 필요했다. 더불어 농사에 중요한 동력인 소도 많이 필요했다. 점차 야생의 공간을 잠식해 들어간 것은 다름 아닌 인간이었다. ‘호랑이와 곶감’이나 ’해님 달님‘에 등장하는 호랑이는 아둔하기 짝이 없다. 숲속에서 당당했을 호랑이가 왜 그렇게 묘사되었을까 의문이었는데 서식지가 점점 줄어드는 야생동물들에게 선택지는 그리 많지 않았을 듯싶다. 호환을 두려워하면서도 그 호환의 원인이 어디서 기인했는지에 대해선 왜 좀 더 살피지 못했을까? 호환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포수가 동원되었고 그로 인해 한반도에서 호랑이는 씨가 마르게 됐다.

남녘땅으로 찾아든 병사는 얼마나 아프고 고통스런 시간 속에 놓여 있을까를 생각하면 답답하고 슬프다. 그런데 92만 마리라는 가늠키 힘든 숫자의 생명들이 포획된다는 것은 왜 큰 뉴스거리가 되지 못하는 걸까? ‘92만’이라는 숫자는 피해액과 맞바꿔도 아무렇지 않을 생명인가? 사람에게 피해를 주기에 그런 죽임은 너무나 당연한 걸까? 단지 동물을 포획한다고 해도 내년이면 또 야생동물의 숫자는 증가하게 될 것이다. 내년에는 얼마나 더 늘어난 숫자의 동물들을 포획하게 될까? 이렇게 해마다 포획을 하는 게 과연 최선일까? 생명의 저울에 올랐을 때 기우는 생명이 누구던가? 어미 잃은 동물의, 새끼 잃은 어미의 슬픔에 우리는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지.

최원형 불교생태콘텐츠연구소장 eaglet777@naver.com
 

[1416호 / 2017년 11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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