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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불법 함께 연찬한 법학자 황산덕

기자명 이병두

군부에 저항한 깨인 신자의 표상

▲ 1962년 초 미국 국무부 초청으로 방미했던 젊은 시절의 황산덕.

5‧16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박정희는 쿠데타 두 달 만에 민정이양 계획을 발표하였지만, 이 약속을 여러 차례 뒤집었다. 게다가 쿠데타 세력이 연루된 비리 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궁지로 몰리게 되자 1962년 7월 헌법심의위원회를 구성, ‘개헌 논의’로 난관을 돌파하려고 하였다.

독재합리화 위한 꼼수 개헌
신문사설 통해 거세게 비판
불교학자·시인도 적극 후원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헌법을 개정해서 '합법적 집권'을 꾀하는 것이었지만, 이에 대해 반대의 목소리를 낼 용기 있는 지식인들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그해 5월부터 동아일보 논설위원을 겸하고 있었던 서울대 법대 교수 황산덕(黃山德, 호 石隅, 翠玄)은 ‘국민투표를 거친 개헌’이라는 ‘합법절차를 가장한 술수’를 써서 국가 권력을 농단하려는 군부의 계략을 모른 체 하지 않았다.

그는 독재를 합리화하려는 쿠데타를 질타하며 박정희 세력이 의도하는 헌법 개정은 불법이기 때문에 “제2공화국 헌법을 완전히 원상 복구시키고 국회로 하여금 … 합헌적 절차를 밟아서 고치도록 하자”고 일갈한다. 그리고 7월28일에는 사설 ‘국민투표는 결코 만능이 아니다’를 써서 권력에 결정타를 때린다. 이처럼 헌법 논의를 기본 삼아 5·16 쿠데타 자체가 위헌적이라는 취지의 칼럼과 논설을 6회나 쓴 그는 혹독한 필화를 당하게 된다.

사설이 나온 지 이틀 뒤인 7월30일 밤 중앙정보부 분실에 끌려간 그를 계장·과장·국장이 돌아가며 조사해도 뒤집어씌울 죄가 없자 김종필 부장이 직접 나섰으나 죄가 될 만한 단서를 찾아내지 못했다. 그러나 훗날 대법원장이 되는 유태흥 판사가 영장을 발부해 결국 구속되었고, 128일 만인 12월7일에야 검찰의 공소 취하로 풀려났다.

이 사진은 1962년 초 미국 국무부 초청으로 방미했던 젊은 시절에 찍은 것인데, 그로부터 몇 달 뒤 이런 고초를 겪게 되었으니 그 뒤로 이처럼 젊은 법학자 황산덕의 모습은 다시 보기 어렵다.

1917년 6월18일 평남 양덕군에서 태어나 1989년 10월19일 서울 종로 명륜동 자택에서 세상 인연을 마친 황산덕은, 불교사에 큰 자취를 남긴 재가불자였다. 그는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어느 순간 불자가 되었다.

1960년대에 그의 자택을 드나들며 불교 공부를 할 때 서가에 법학과 불교전문 서적들이 나란히 꽂혀 있는 것을 직접 확인한 이민용의 회고에 따르면 황산덕과 그의 부인 황리선은 “워낙 지적이라 쉽게 불교로 기울어졌고 기독교계가 알면 펄쩍 뛸 불교로의 개종을 과감히 실천에 옮기고 청소년을 위해 룸비니학생회를 키운 신심 깊은 불자였으며, 서구 불교학의 추이를 정확히 이해한 불교학자였다.” 이들은 또한 유럽에서 귀국한 “이기영을 처음으로 인지하고, 서경수의 재기발랄한 발언을 경청”해 주어 두 학자를 계속 지원한 든든한 후원자였다.

은사 효봉 스님과 인연으로 황산덕의 “서재에 있는 불교 서적들 덕분에 유식학을 독학으로 공부했다”는 시인 고은은 선학원에서 이 부부를 처음 만났을 때의 느낌을 “난데없이 신선한 선승 하나를 만나고 그들의 신앙의 품위를 만난 기쁨이었다”고 회고한다. 그에 따르면 “이 부부는 소천 스님과 함께 대각회를 설립해 대각사를 무대로 독자적인 불교 지식인 집단”을 이루기도 하였다.

황산덕은 1964년부터 대한불교(불교신문 전신) 주필을 지내고, 1975년 대한불교진흥원 창립부터 타계할 때까지 이사를 지냈으며 1980년부터 9년 동안은 이사장을 맡아 재단의 초석을 다졌다.

유신 시절인 1970년대에 황산덕이 법무와 문교부 장관을 맡은 것, 특히 법무부장관 시절의 인혁당 사건 재판과 사형 집행은 그의 70년 인생에 ‘옥(玉)의 티’로 남게 되는데, 그때 김종필이 국무총리였으니 이들의 만남은 악연(惡緣)인가 선연(善緣)인가.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beneditto@hanmail.net

[1416호 / 2017년 11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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