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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절터 발견·출처 불명 불상 팔다 들통난 사건

기자명 이숙희

불상은 금품 아닌 종교적 이상 담긴 성물

▲ 금동불입상, 통일신라, 높이 14.8cm.

도난된 불상 외에 절터에서 발견되거나 야산, 농가의 땅 등 출처가 불분명한 곳에 있던 불상들을 팔려다 붙잡힌 사건들도 신문기사에서 종종 볼 수 있다. 현직 교사가 민속관을 마련하기 위해 학생들이 가져온 토기의 출처를 물어 근교 산비탈이나 땅속에서 습득한 200여점의 유물을 골동품 상인에게 팔아 버린 일이나 간혹 변질된 스님이 수년에 걸쳐 자기 집에 옮겨 두었던 불상을 시중에 내다 팔다가 들통 나는 일들이 있었다. 전문적인 장물아비가 가담한 굵직한 사건에서부터 좀도둑과 같은 치졸한 사건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했다. 그중에는 현재 보물로 지정되어 있을 만큼 중요한 불상도 더러 포함되어 있었다. 

불상을 돈 되는 물건 생각한
전문 장물아비 가담 사건부터
좀도둑 치졸한 사건까지 다양

영주서 발견된 국보급 문화재
금동여래좌상 등 불상 26구는
1959년 이승만이 보고 간 후
경무대서 가져갔단 소문 무성

순천 매곡리 발견 청동불감 등
땅 주인이 멋대로 팔려다 들통
2015년 보물 제1874호로 지정

1916년 11월20일 경상북도 영주군 부석면 북지리 부석사 수선공사에 종사하던 중 무량수전이 헐릴 때 들보 위에서 청동으로 만든 불상 10구를 발견하였는데 일본인 4명이 공모하여 그 불상을 절취하였다. 다음해 7월10일 대구경찰서에서 범인 4명을 붙잡고 불상도 회수하였다. 이 불상들은 부석사에서 처음 발견된 가장 값진 유물 중 하나로 통일신라기 작품이라고 전하나 1962년 2월28일에 다시 잃어버렸다. 없어진 경위는 1961년 3월22일 강원도 명주 상원사 주지 일행 3명이 와서 문제의 불상들을 구경한 다음 그해 12월쯤 없어진 사실을 알았다. 이 불상의 종적에 대해서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국보급 금불상을 팔아버린 주지 3명이 구속되는 사건이 있었다. 경찰에 의하면, 대전사(大典寺) 주지를 비롯한 3명은 대전사 보광전 북쪽 30m 지점, 불에 탄 법당자리에 보물이 묻혀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리고 1968년 4월5일 이곳을 파헤쳐 금동불입상 2점(당시 시가 약 600만원 상당) 등 10점의 유물을 발견하였다. 그들은 값이 나가는 금동불상 2점을 빼돌리고 나머지 8점만 당국에 신고하였다. 같은 해 10월20일에는 빼돌린 금동불상을 각각 12만원, 20만원을 받고 골동품 상인에게 팔아 넘겼다. 서울 시경은 골동품상으로부터 정보를 입수하여 이들을 검거하였다. 금동불상 2점은 모두 압수하여 전문가에게 감정을 의뢰하였는데 모두 통일신라시대 작품이며 국보로 지정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한다. 27cm 높이의 탄생불상은 오른손을 위로 들고 왼손은 아래로 내린 채 서있는 모습이며 21cm 높이의 석가불입상은 도금이 일부 벗겨져 있으나 보존상태가 좋은 편이다.

1953년 12월1일 경상북도 영주군 순흥면 내죽리 숙수사 옛터에서 소수중학교 신축공사를 하다가 발견된 금동여래좌상 1구 및 25구의 불상과 사리철탑 여러 개 등이 감쪽같이 없어졌음이 뒤늦게 밝혀졌다. 당시 박물관장의 말에 의하면, 금동여래좌상 등 26구의 불상은 6세기 이전의 중국 불상 형식을 본떠 만든 통일신라기 것으로 우리나라 불교문화의 극치를 보여주는 국보급 문화재라고 한다(사진 1). 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국보로 지정하기 위해 부석사에 보관하던 중 1959년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부석사에 와서 마지막으로 보고 간 후 경무대에서 몽땅 가져간 것으로 알려졌으나 확인되지는 않는다. 게다가 영주군 교육청 문화재대장에는 이 불상들이 등록되어 있지 않으며 언제 누가 가져갔는지조차 모르고 있는 실정이다.  

▲ 순천 매곡리 청동불감 및 금동아미타삼존상, 조선(1468).

자기 소유의 땅에서 발견된 불상을 멋대로 팔려다 들통 난 사건도 있었다. 전라남도 순천시 매곡동에 사는 최모씨는 2002년 11월 집을 짓기 위해 자기의 밭에 있던 5층 석탑을 전통음식점을 운영하는 문모씨에게 100만원에 팔았다. 이 석탑은 심하게 파손되어 옥개석 3개만 남아 있었는데 기중기를 이용하여 석탑을 옮기는 과정에서 진귀한 보물이 발견되었다. 발견된 청동불감 안에 금동아미타불상과 금동관음보살상, 금동지장보살상, 사리 4과, 석탑 조성발원문 등 조선시대 문화재 6점이 들어 있었다. 최씨는 유물 6점을 문씨에게 1200만원에 팔았다가 가치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500만원을 얹어 주고 다시 매입하였다. 그러나 최씨는 자신의 밭에서 발견됐다 하더라도 문화재는 국가에 신고해야 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문씨를 통해 화랑 운영상인 오모씨에게 1700만원을 받고 다시 팔았다. 오씨는 2003년 5월14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고미술종합대전을 개최할 예정이었던 조모씨에게 3억원에 팔아달라고 의뢰했다가 검찰에 덜미를 잡혔다. 

순천 매곡리 청동불감과 금동아미타삼존불상은 고려 말 불상 양식을 충실히 계승한 것으로 조선 초기의 불상 양식을 알 수 있을 뿐아니라 조성발원문과 함께 발견되어 중요한 자료적 가치가 있다(사진 2). 2015년 4월22일 보물 제1874호로 지정되었다. 금동아미타불좌상의 복장에서 나온 조성발원문에 의해 1468년 4월 전라도 순천부 남촌 별량리의 죽사(竹寺) 도인 일선(一禪)과 시주 목암, 정우, 김동 등의 발원으로 미타, 관음, 지장 삼존상을 조성하였음을 알 수 있다. 매곡리 삼존불상은 전통적인 아미타삼존불상과는 달리 관음과 지장보살상이 협시로 배치되었는데 이는 고려시대에 지장보살상이 유행하게 되면서 세지보살 대신에 등장하는 경우가 많아지게 되었다. 특히 두건을 쓴 지장보살상은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그 예를 찾아볼 수 없고 서역과 우리나라에만 나타나는 특이한 형식이다. 더욱이 각이 진 두건 표현은 조선 전기에 나타나는 지장보살상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이러한 아미타삼존불상의 형식은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크게 유행했던 것으로, 경기도 남양주 수종사 석탑에서 발견된 금동아미타삼존불상과 금강산에서 출토된 것으로 조선력사박물관에 있는 금동아미타삼존불상 등에서도 볼 수 있다.

원래 절터나 야산, 자신이 소유한 땅에서 우연히 문화재로 보이는 유물을 발견했을 때에는 그 지역의 문화재 관련 부서에 7일 이내에 알리도록 ‘매장문화재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에 명시되어 있다. 발견된 문화재는 신고 절차에 따라 소유자 확인과 문화재 여부를 감정하고 문화재위원회 평가회의를 거쳐 보상금이 지급된다. 그러나 이를 신고하지 않았을 경우에는 은닉죄가 적용되어 법적인 처벌을 받게 되어 있다. 

모든 불상은 그 시대를 상징하는 이미지와 종교적 이상을 갖고 있다. 그 때문에 불상에게서 깊은 종교적 신앙심과 역사적 상상력, 예술적 감동을 동시에 받을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를 모르는 사람들은 불상을 그저 돈이 되는 커다란 돌덩어리로만 생각할 뿐이다. 

이숙희 문화재청 문화재감정위원 shlee1423@naver.com
 

[1416호 / 2017년 11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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